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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색 부부, 튼튼 사랑

철인 3종 경기로 맺어진 이정휘·김정숙 부부 이색 러브 스토리

■ 기획·조득진 기자 ■ 글·이연희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3.06.10 15:34:00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고, 각종 레포츠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부부가 함께 운동하는 모습은 이젠 낯선 광경이 아니다. 그러나 식사 후 가볍게 하는 운동이 아닌 수영에 사이클, 마라톤까지 이어지는 철인 3종경기를 하는 부부라면? 운동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운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는 부부의 ‘스포티한’ 이야기.
철인 3종 경기로 맺어진 이정휘·김정숙 부부 이색 러브 스토리

토요일 오후 한강변엔 나들이와 운동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강아지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로운 풍경이 연출하고 있을 때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나타난 부부. 사이클 복장을 완벽하게 갖춰 입은 이들이 나타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그 시선의 주인공은 바로 철인 3종경기 선수인 이정휘(31), 김정숙(33) 부부. 두 사람 모두 뛰어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국내에서는 알아주는 선수들이다. 이정휘씨는 10시간 53분, 김정숙씨는 11시간 15분의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특히 김씨의 경우는 국내 여자선수 중 최고기록 보유자. 그런 경력 때문인지 사이클을 타는 그들의 모습은 초보자의 눈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보통 철인 3종경기라고 하면 무척 격렬하거나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냥 좀 오랜 시간 동안 경기를 할 뿐이죠. 철인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도 일반인들의 생각처럼 거칠고 강한 타입은 아니에요. 저만 해도 운동을 할 때는 승부에 강한 집착을 보이지만 보통 때는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죠.”
검게 탄 피부와는 달리 수줍게 말을 꺼낸 김정숙씨는 무척이나 여성스럽고 신혼의 달콤함에 젖어 있는 애교 만점의 새색시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 역시 다정다감한 새신랑의 모습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에 결혼했다. 원래 계획은 지난해 8월, 속초에서 열린 철인 3종 정식 코스에서 나란히 우승, 하와이 챔피언십 출전권을 따낸 후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계획은 무산됐다.
“계획대로 아내는 여자부에서 우승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만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죠. 경기를 앞두고 미리 코스를 답사하는 연습을 하거든요. 하지만 모든 경기가 그렇듯 철인 3종경기도 아무리 열심히 연습을 한다 해도 경기 당일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거나 리듬을 못 타면 우승권에서 멀어지게 돼요.”
김씨는 하와이 챔피언십 참가와 결혼을 두고 고민하다가 사랑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결국 결혼을 선택했다. 속초대회 우승으로 받은 항공권은 신혼여행을 가는 데 사용됐다.
철인 3종경기에 뛰어든 경력으로만 따지면 아내가 남편보다 훨씬 선배라고 한다. 중간에 잠시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걸 제외해도 아내는 8년차, 남편은 4년차다.
김씨가 이 경기를 처음 시작한 것은 13년 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시절 비디오를 통해 처음 철인 3종경기라는 것을 접하고 마음에 두고 있던 차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수영장에서 철인 3종경기 마니아인 손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중학교 때 친구랑 같이 하와이 챔피언십 비디오를 봤어요. 경기에 참가한 사람들을 보고 ‘참 독특하다’는 친구와 달리 제겐 또 다른 느낌이 밀려오더라고요. 근 열시간이 넘는 역경을 헤치고 골인지점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어떤 전율을 느꼈다고 할까요. 비 오듯 흐르는 땀과 희열에 찬 표정이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인생의 계획 속엔 철인 3종경기라는 것이 자리잡은 것 같아요. 그러다 대학 때 그 손님을 만난 뒤로 철인경기에 발을 들이게 됐죠.”
조금씩 철인 3종경기의 맛을 느끼던 그녀는 그러나 92년 말, 가족과 함께 귀국하면서 한동안 3종 경기를 접어야만 했다. 13년 동안 일본 생활에 익숙해 있던 그녀에겐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기업체 사원들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던 그녀에겐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이었다고 한다. 수십명의 수강생 앞에서 하루 종일 열강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쓰러져 잠자기에 바빴고, 그런 일상이 반복되자 조금씩 삶에 지쳐갔다.

철인 3종 경기로 맺어진 이정휘·김정숙 부부 이색 러브 스토리

철인 3종경기에서 아내는 국내 일인자, 남편도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그런 생활에 한동안 적응하기가 어려웠죠. 게다가 오랜 외국생활로 말동무 하나 없었거든요. 그래서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주위에 철인 3종경기를 할 수 있는 곳을 물어봤는데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한국은 철인 3종경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러던 97년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그녀의 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포스터 한장을 발견했다. 바로 철인 3종경기를 알리는 포스터. 이후 그녀의 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피곤에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던 예전과 달리 몸과 마음에 다시 생기가 돌았고, 힘겨운 일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게 된 것이다. ‘트라이윈(Trywin)’과 ‘여성철우회’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여자선수들의 활발한 활동을 이끌 만큼 열성적이었다. 성적도 좋았다. 아마추어 마라톤 대회는 물론이고, 올림픽 코스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여자부 우승을 차지했다.
남편 역시 아내 못지않게 운동과 긴밀한 삶을 살아왔다. 철인 3종경기 경력은 4년에 불과하지만 이전부터 산악자전거 모임인 ‘산고양이’ 활동을 하면서 사이클과 마라톤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던 것. 더군다나 자전거를 수입, 판매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 사이클과는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었다.
“‘산고양이’ 활동이나 철인 3종경기에 참가하는 것이 일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회사에서 A/S를 담당하고 있는데 제가 직접 사이클을 타고 동호회 활동을 하다보니 고객들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거든요.”
그가 철인 3종경기를 접한 것은 철인대회의 서포터를 하면서였다. 참가한 사람들의 강한 체력과 의지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욕심이 생기더라고. 사이클이야 늘 접하고 있었던 것이라 우선 수영부터 시작했다. 늦게 시작했지만 요즘 실력은 수영이나 마라톤 모두 아마추어 3위권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수영장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아내 김정숙씨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철인 3종경기 여성 선수 중 한 사람이어서 그는 그녀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 남편 이정휘씨는 철인 3종경기를 지망하는 수많은 남자 중의 한 사람. 두 사람의 관계는 한동안 수영장에서 함께 운동을 하는, 동료 이상의 관계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의 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그의 고백이었다.
“함께 도로 사이클 훈련을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었어요. 제가 운전하고 아내는 뒷좌석에서 다른 동료랑 얘기를 하고 있었죠. 차가 막히면서 운동뿐만 아니라 꽤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생각하고 있는 거나 관심 분야가 저하고 비슷했어요.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한테 끌리게 되잖아요. 그때 ‘저 사람하고 사귀면 참 잘 맞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찍었죠, 하하.”
며칠 동안 기회만 엿보던 그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썰렁. ‘사귀자’는 제안에 돌아온 것은 ‘NO’ 한마디였다.
“당황스러웠어요. 함께 운동하는 동료로만 생각하고 있어서 남편에 대해 아는 게 없었거든요. 더군다나 제가 좀 보수적인 편이라 남편이 저보다 연하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요.”
하지만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을 하고 돌아간 그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의 용기가 가상하기도 했고, ‘꽤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결국 다음날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프러포즈를 받은 바로 다음날, 철인 대회가 있었어요. 처음으로 남편이 경기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지요. 열심히 하는 모습, 좋은 성적으로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그날 이후 함께 운동을 하자는 그의 제안을 김씨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 옆에서 하나라도 더 배우자’는 욕심도 있었고, ‘과연 어떤 사람일까’하는 궁금증도 발동했던 것이다. 청춘남녀가 매일같이 함께 어울리면 무슨 일이든 생기는 법.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 또한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는 체계적인 계획 없이 양으로만 훈련을 하는 편이었는데 남편은 하나하나 분석하고 기술적인 면을 연구하면서 운동을 하는 편이에요. 그 덕을 저도 많이 봤죠. 그러다 보니까 함께 운동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랑 함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두 사람이 함께 운동을 한 후로 동료들이 “사랑의 힘이 대단하다”고 감탄할 만큼 그녀의 기량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고 한다. 서로 만나고픈 생각에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다섯시에 만나서 운동을 하고 퇴근 후에도 데이트삼아 운동을 했으니 실력이야 자연스럽게 오를 수밖에.

철인 3종 경기로 맺어진 이정휘·김정숙 부부 이색 러브 스토리

운동을 매개로 맺어진 부부는 결혼 후에도 운동을 통해 서로를 이끌고, 이해한다고 한다.


부부는 결혼을 해서도 여전히 함께 운동을 다닌다.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주말이면 장거리 라이딩(도로훈련)을 가기도 한다.
“함께 운동을 하니까 좋은 점이 많아요. 같이 있는 시간도 많고 대화도 잘 통하죠. 안 좋은 점이요? 글쎄요, 아직은 없어요.”
이런 남편의 마음과는 달리 아내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한다.
“제가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주니까 실력이 늘어서 좋아요. 하지만 저 챙기느라 정작 남편은 제대로 연습도 못해요. 아무래도 제가 여자다 보니까 같이 운동하기에는 속도도 느리고 힘도 달리잖아요. 철인에 오르기 위한 개인적인 욕심도 있을 텐데 그게 늘 미안하죠.”
그런 미안함 때문인지 함께 운동을 하고, 아내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남편에게 집안일을 요청하지 않는다. 물론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 위층에 시부모가 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식사를 해결하는 등 집안일이 수월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마라톤, 수영, 사이클 세 가지 운동을 소화해야 하는 부담 때문인지 철인경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철인 3종경기에 뛰어들 가치가 충분하다 입을 모은다.
“철인 대회를 치르다 보면 발에 물집이 잡히는 것은 다반사고, 심한 경우 발톱이 뽑히기도 해요. 마라톤 때문에 무릎이나 관절에 이상이 오기도 하고요. 특히 저 같은 여성들은 생리중일 때 정말 어렵죠. 사이클을 타다보면 출혈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것은 철인 3종경기가 주는 매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이나 만족감은 물론이고 힘들 때 옆에서 함께 뛰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어도 위로가 된다고. 특히 포기하고 싶을 때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동료들, 골인 지점에서 자신의 완주를 바라며 기다리는 동료들을 보면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라는 것.
부부는 요즘 8월말에 있을 정식코스에 참가하기 위해 맹연습중이다.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올 한해만 하고 끝낼 운동이 아니기에 우선은 즐기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에게도 철인경기를 권하고 싶어요. 저희는 운동을 통해 무엇보다도 ‘절제’와 ‘끈기’를 배웠거든요. 우리 아이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참고 견딜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함께 땀흘리며 운동하다 사랑에 빠지고, 또 결혼 후에도 운동을 통해 서로 이끌고 이해하는 부부. 부모를 닮아 튼튼한 몸과 마음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철인 3종경기 가족’의 탄생도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여성동아 2003년 6월 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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