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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따로 또 같이’ 사는 형제

같은 시기 공연되는 뮤지컬에 출연하는 형제 뮤지컬 배우 남경읍·남경주

“변화무쌍한 형과 말썽꾸러기 동생이 벌이는 한판대결 무대로 초대합니다”

■ 기획·최미선 기자 ■ 글·조희숙 ■ 사진·박해윤 기자

2003. 06. 03

뮤지컬계의 인기스타 남경읍·남경주 형제가 같은 시기에 무대에 올라 연기대결을 펼쳐 화제가 되고 있다. 두 형제가 이번에 들고 나온 비장의 무기는 경쾌한 탭댄스. 서로 다른 작품으로 관객들 앞에서 유쾌한 대결을 펼치는 두 사람을 만나 뮤지컬 배우로 사는 즐거움에 대해 들어보았다.

같은 시기 공연되는 뮤지컬에 출연하는 형제 뮤지컬 배우 남경읍·남경주

국내 내로라하는 뮤지컬 배우 남경읍(45)·남경주(39) 형제가 동시에 ‘마네킹’과 ‘싱잉 인 더 레인’에서 주연을 맡아 화제다. 형제가 같은 시기에 다른 작품으로 나란히 관객들 앞에 서는 것이다.
형 남경읍이 선택한 작품은 연강홀에서 공연될 창작뮤지컬 ‘마네킹’ (5월23일∼7월13일). 백화점 직원과 도둑, 마네킹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그린 내용으로 그는 개그맨 출신 백화점 수위 홍태수 역을 맡았다.
영화로 더 유명한 ‘싱잉 인 더 레인’(5월30일∼6월29일)은 무성영화시대에서 유성영화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배우들의 사랑을 그린 작품. 뮤지컬 전용극장 정동 팝콘하우스홀에서 남경주는 주인공 돈 록우드 역으로 열연한다.
남경주이하 경주) 이상하게 형하고 저는 비슷한 시기에 공연을 자주 했어요. 92년 ‘돈키호테’나 94년 ‘레미제라블’도 같은 시기에 다른 무대에서 공연을 했거든요.
남경읍(이하 경읍) 형제끼리 경쟁의식 같은 것은 없지만 같은 시기에 뮤지컬을 하니까 관심을 많이 갖게 되나 봐요. 게다가 공교롭게도 탭댄스까지 똑같이 한다니까 누가 더 잘하나 궁금해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경주 사실 작품 결정은 저보다 형이 먼저 했어요. 나중에 이 작품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형이 탭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생각나더라고요. 순간 형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컬 관객이 많지도 않은데 형이랑 나눠 가져야 하잖아요(웃음). 하지만 ‘마네킹’은 창작극이고 ‘싱잉 인 더 레인’은 잘 알려진 작품이니까 이왕이면 창작품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해요.
무대는 각각 다르지만 이번 공연에서 최고의 볼거리는 두 형제의 탭댄스 실력. ‘마네킹’은 ‘탭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형식이고, ‘싱잉 인 더 레인’은 주인공이 빗속에서 춤추는 명장면에 탭댄스가 삽입된다. 각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은 형과 아우는 어쩔 수 없이 연기대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남경주의 탭댄스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급. 하지만 5개월간 하루 15시간 이상을 탭댄스 연습에 몰두한 형 남경읍의 탭댄스 실력도 결코 만만치 않다. 남경읍은 탭댄스를 배우느라 몸무게가 무려 6kg이나 빠질 만큼 춤 배우기에 공을 들였다.
경읍 탭댄스는 아무래도 경주가 잘 추죠. 동생은 서울예술단에 있을 때부터 탭댄스를 잘했어요. 그때 경주한테 놀러 가서 가끔 배운 게 전부예요. 저는 예전에 따로 배울 만한 데도 없었으니까 거의 못 춘다고 봐야 해요.
경주 저는 시립가무단 시절에 탭댄스를 배우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탭댄스 선생님을 찾아가서 배웠어요. 그때는 기본기만 배우고 88년에 롯데월드 예술극장에 들어가면서 미국 친구들에게 본격적으로 배웠으니까 한 15년 됐네요.
경읍 솔직히 이번 작품이 제 데뷔작 다음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탭댄스는 최소한 서 있거나 걷거나 뛰어야 하니까 육체적으로 힘든 춤이거든요.
경주 제 생각에 탭댄스는 춤이라기보다 리듬이라고 봐요. 소리를 크고 작게 낼 수도 있고 빠르거나 천천히 낼 수도 있잖아요. 리듬감을 음악적으로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가 탭의 매력이죠.
형제는 올해로 뮤지컬 경력 24년과 20년에 이르는 베테랑 배우들이다. 두 사람 모두 뮤지컬 배우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터라 종종 한 무대에 서거나 같은 시기에 비슷한 작품에 출연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경읍 ‘돈키호테’라는 작품은 동생이랑 각각 다른 무대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나중에 동생이 합류해서 저와 더블캐스팅으로 한 무대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죠.
같은 시기 공연되는 뮤지컬에 출연하는 형제 뮤지컬 배우 남경읍·남경주

남경읍씨(왼쪽)는 뛰어난 탭댄스 실력을 갖춘 동생 남경주에게 간간히 춤을 배운다고.


경주 그 유명한 ‘사랑은 비를 타고’도 형과 함께 출연했던 작품이고요.
경읍 ‘한강은 흐른다’ ‘지하철연가’ ‘가스펠’ 등등. 그러고 보니까 같이 출연한 작품도 꽤 많네요.
경주 ‘철부지’라는 작품도 형이랑 같이 출연했는데, 그때 형이 해설자 역할을 했죠.
경읍 그 작품은 정말 우리 형제와 묘한 인연이 있는 작품이에요. 저도 그 작품에서 ‘마트’라는 남자주인공 역을 맡아 뮤지컬에 데뷔를 했고, 몇년 후에 동생도 똑같은 역할로 뮤지컬에 데뷔를 했죠. 그때 제가 해설자 역할을 한 거예요.
경주 나중에 제가 나이 들면 그때 형이 했던 해설자 역할을 해보려고요(웃음).

같은 시기 공연되는 뮤지컬에 출연하는 형제 뮤지컬 배우 남경읍·남경주

두 형제가 같은 시기에 나란히 선을 보이는 작품 ‘마네킹’(위사진)과 ‘싱잉 인 더 레인’.


남경읍은 동생 남경주를 지금의 뮤지컬 배우로 이끌어준 장본인이다. 두 사람은 4남1녀 중 각각 첫째와 셋째아들로, 남경주는 학창시절 맏형인 남경읍이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을 공부하던 남경주는 무대 위에 선 형의 모습에 반해 남경읍을 따라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경주 학교에 다닐 때도 형은 평범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머리를 바짝 깎고 들어오기도 하고 수염을 길게 기르기도 했어요. 하여간 변화무쌍한 사람이었죠. 제가 중학교 다닐 때 형이 다니는 대학교에 가본 적이 있는데 연극동아리에서 형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경읍 경주가 어릴 때부터 기계체조를 했는데 대학 다닐 때 경주한테 그 ‘기술’을 배우려고 일부러 학교로 부르곤 했거든요.
경주 무대에 서 있는 형은 다른 배우들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어요. 우리 식구가 모두 고수머리인데 길게 기른 머리로 무대에 오르면 정말 눈에 확 띄죠.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땐가? 형이 시립가무단에서 ‘시집가는 날’을 공연했는데 그때는 꼭 외국인 선교사가 갓 쓰고 도포 쓴 것처럼 어색하더라고요.
경읍 외모가 이국적으로 생겨서 그랬다는 소리예요. 하하.
뮤지컬계에서 모범적인 선배로 알려진 남경읍은 집안의 맏형으로 동생들에겐 군기반장으로 통했다고 한다. 남경주는 그런 남경읍을 “동생들의 성적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무서운 큰형님이었다”고 덧붙인다.
경주막내 여동생만 빼놓고 모두 형한테 맞고 자랐어요. 특히 저랑 남동생은 성적 때문에 정말 많이 혼났어요.
경읍 아버지가 일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셨기에 제가 동생들을 관리해야 했어요. 하다못해 어린 동생들 붙잡아놓고 글씨연습도 제가 시켰거든요.
경주 그래서 식구들이 모두 글씨를 잘 쓰는데 그때 저만 ‘땡땡이’ 쳐서 글씨를 못써요(웃음).
경읍 경주는 장난도 잘 치고 말썽도 많이 피우고… 좀 유별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경주한테 예술적인 감각이 있다는 걸 발견했죠. TV에서 무용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안되는데 동생은 한번 보더니 그대로 따라 추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동생이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두말 않고 찬성했지요.
경주 지금은 형이나 제가 서로 바빠서 자주 못 만나지만 우리는 형제끼리 우애가 좋은 편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우리 형제들은 같은 방을 쓰면서 자랐거든요.
경읍 근데 한 방에서 생활하면 맏형이 최고잖아요. 음악을 들을 때도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 들어야 했으니까 동생들은 아마 그게 고역이었을 거예요.
경주 정말이에요. 그때는 그게 왜 이렇게 싫던지…. 아무튼 형은 제가 듣기에 만날 재미없는 음악만 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두 사람이 배우를 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경읍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태교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어머니가 저하고 경주를 가지셨을 때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셨다고 해요. 경주를 임신했을 때는 영화를 많이 보셨고, 제가 뱃속에 있을 때는 동네에 들어오는 악극이나 공연은 빼놓지 않고 모두 챙겨보실 정도였다고 해요.
두 사람은 같은 뮤지컬 배우라는 점 이외에도 공통점이 유난히 많다. 여섯살 터울이 지는 두 사람은 똑같은 고수머리이고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문 사이다. 서울예대 연극과 선후배이기도 한 두 사람은 졸업 후 차례로 시립가무단과 서울예술단을 거친 경력까지 꼭 닮았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활동무대가 오로지 하나라는 것과 다양하다는 것뿐. 뮤지컬 배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남경주와 달리 남경읍은 여러 개의 ‘신분증’을 갖고 있다. 현재 계원예고 연극영화과를 비롯해 각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동국대 공연영상학과 대학원에 재학중인 학생이기도 하다.

같은 시기 공연되는 뮤지컬에 출연하는 형제 뮤지컬 배우 남경읍·남경주

형제가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의지도 되고 시너지 효과가 생겨 좋다는 남경읍 남경주씨.


경읍 1인 3역을 하다 보니 1년 중 추석하고 신정, 딱 이틀밖에 못 쉬어요. 그래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사명의식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 그 어느 것도 손을 못 놓겠어요. 내가 잘해야 나한테 배운 친구들도 잘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가끔 행동에 제약을 받을 때가 있기도 해요.
경주 형이 앞길을 잘 닦아놓아서 제가 편한 게 많지만 형하고 같은 길을 걸으니까 아무래도 저도 매사에 조심스러워요. 학교 다닐 때는 만날 형 얼굴에 먹칠만 하고 다녔어요. 대학교 1학년 때까지 툭하면 명동에 가서 싸우고 간판 ‘뽀개고’ 다녀서 교수님한테 불려가 야단도 많이 맞았죠. 그래도 나중에는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고 학교 다녔어요.
경읍 지금은 너무 잘하고 있죠. 바라는 게 있다면 빨리 동생 닮은 조카를 보고 싶은데….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나요. 그런 점에서 우리 어머니는 참 좋으세요. 당시 연극을 비롯해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참 배고픈 직업이었잖아요. 매일 나가서 뭔가 하긴 하는데 돈 벌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을 법도 한데 어머니는 제게 단 한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어요. 또 경주가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채근하는 눈길도 없고요.
경주 아직 구체적인 결혼계획은 없지만 하긴 해야죠. 올해는 연말까지 공연 일정이 꽉 차 있어서 결혼은 어려울 거 같아요. 여자친구는 있어요. 사귄 지 2년이 좀 넘었는데 아직 학생이에요. 내년 초에 대학을 졸업하죠. 아이고, 더는 말 못하겠어요.
경읍은 지난 78년 뮤지컬 배우로 데뷔해 ‘돈키호테’ ‘한강은 흐른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레미제라블’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왔다. 82년 대학시절부터 프로 무대에 데뷔한 남경주도 ‘가스펠’ ‘아가씨와 건달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레미제라블’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수많은 히트 작품에서 주인공을 도맡다시피 했다.
이중 형제가 꼽은 최고의 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사랑은 비를 타고’다. 공연횟수 1천회를 넘긴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극중에서도 형제로 출연해 20만 관객을 동원했던 최고의 뮤지컬이기도 하다.
경읍 그 작품은 둘이 함께 작품을 해보자며 동생이 앞장서서 추진한 것이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사랑은 비를 타고’ 같은 작품을 다시 한번 꼭 같이 해보고 싶어요.
경주 저는 그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좋아해요. 형제 배우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면 감동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넣은 장면이었는데 정말로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셨죠.
경읍 동생이 고등학교 시절에 작은 골방에서 둘이 피아노 치며 노래하던 기억을 살리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앞으로 우리가 같이할 수 있는 작품을 또 창작해야죠.
경주 형제가 같은 일을 하니까 장점이 많아요. 형이 있어서 정신적으로 의지도 되고 후배들이 형을 잘 따르니까 형이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형제 뮤지컬 배우니까 관심을 많이 가져주잖아요.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거 같아 기분 좋아요.
경읍 맞아요. 정말이지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은 일인 거 같아요.
경주 한때 시립가무단에 1년 정도 몸을 담고 있다가 그만둔 적이 있어요. 그때 뮤지컬을 포기하려고 방황했는데 형이 다시 무대로 이끌어주셨어요. 아무튼 형은 저의 든든한 ‘빽’이죠(웃음).
경읍은 실질적인 우리나라 뮤지컬 1세대. 남경주는 여성 뮤지컬 배우 최정원 등과 함께 2세대를 이끄는 주역이다. 뮤지컬 배우로선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들이지만 형제는 알아주는 연습벌레들이다. 남경읍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후배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연습에 몰두했을 정도. 이에 질세라 남경주도 틈만 나면 연기론 서적을 펼치며 자신의 연기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각자 깨달은 연기론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경읍 연습을 많이 하는 건 무대에서 땀 흘린 만큼 관객들이 더 감동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경주 형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먼저 인간이 되라’는 것이죠.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폭넓게 연구해서 제대로 된 인간상으로 표현하라는 뜻이죠. 그래서 요즘 후배들한테도 관심을 넓히라는 얘기를 자주 하곤 해요.
경읍 사람이란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가 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알고 할 때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배우는 무대에서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낼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동생이지만 경주에게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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