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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젊은 인권운동가의 초상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고상만씨의 ‘인권 운동 그 뒷이야기’

“분신한 노점상, 억울함을 호소하는 무기수, 의문사 유가족들의 가슴 속 한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 글·이영래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05.14 11:46:00

대학 시절 한 선배의 의문사 사건 이후 인권운동에 뛰어들게 돼 10여년간 인권 현장을 누볐던 인권운동가 고상만씨가 최근 인권 현장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밝힌 책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2003년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에게 들어보았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고상만씨의 ‘인권 운동 그 뒷이야기’

인권운동가. 무슨무슨 운동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었다. 과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사실 인권운동가란 표현은 얼마나 모호한가? 인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는 모두 인권문제다.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가두 농성을 벌이는 노점상들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성희롱이나 성폭행 피해자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연일 야근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고민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의미가 모호해지는 어떤 표현이나 단어는 특정한 인물을 통해 바라볼 때 그 윤곽이 드러나기도 한다.
‘인권운동가 고상만’.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책 제목보다 지은이의 이름을 먼저 보는 건 오랜 습관이기도 했지만, 지은이 이름 위에 적힌 인권운동가란 표현이 기자의 시선을 끌었다. 인권운동가 고상만씨(33)와의 인터뷰는 한마디로 우리 시대의 인권이란, 또 인권운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고, 답이다.
“처음 출판사에선 ‘아름다운 사람 고상만‘이라고 하자고 했어요. 근데 제가 싫다고 했죠. 왜냐하면 제가 봐도 전 아름답지 않거든요(웃음). 대신 인권운동가라고 해달라고 했어요. 인권운동가는 제 꿈이었거든요. 진짜예요, 전 인권운동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70년생. 89학번. 60년대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조건에서 대충 386세대로 분류하는 게 용이할 그는 ‘인권운동가’란 표현을 자신의 이름 앞에 단 것만으로 더는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90년대초, 그는 강원도의 한 대학에서 학내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사학 비리와 부패를 청산하자는 일군의 젊은이들. 그러나 그들은 학원 폭력배의 욕설과 협박, 때론 감금과 폭행에 시달렸다. 당시 학생회장에 출마했던 한 선배는 한적한 도로변에서 의문의 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서, 관공서 등을 돌아다니며 탄원해봤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화를 이기지 못한 그의 친구는 분신을 결행하기도 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맞았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면 다음날 깡패들이 ‘니들이 신고했냐’고 또 와서 때렸어요. 아무도 믿을 수 없었죠. 정말 힘이 없으면 이렇게 당하는구나. 억울하게 죽어도 아무 할 말이 없구나. 그때 결심했어요. 내가 죽는 그날까지 이렇게 힘 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해보자. 인권운동가, 그때 제 마음속에 새겨놓은 꿈이었어요.”
그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힘과 돈이 없어 권력과 부의 횡포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들. 어딘가에 하소연하지도 못한 한에 분신이나 자살 등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 그의 가슴에 깊이 남아있는 사람은 95년 분신자살한 노점상 최정환씨다.
최정환씨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였다. 더군다나 뺑소니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휠체어 신세를 지는 중증 장애인이었다.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94년 12월, 구청측이 동원한 용역깡패에게 맞아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뒤 구청측을 폭력혐의 등으로 형사 고소하겠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구청측은 노점 강제 철거도 중단하고 장사도 묵인해주겠다며 그를 회유했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고상만씨의 ‘인권 운동 그 뒷이야기’

그가 기억하는 가장 안타까운 사건은 고아 출신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씨의 분신 자살이었다. 그의 눈물 앞에 그는 맹세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남기겠노라고.


그러나 구청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상처가 아문 뒤, 다시 노점을 펼친 그는 노점 단속에 나선 구청측에게 자신의 생명줄과도 같은 배터리를 압수당하고 말았다. 약속이 틀리지 않냐며 구청에 찾아갔으나 아무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휠체어에 실린 채 구청 바깥으로 내쫓긴 그는 결국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기는 것으로 마지막 항의를 대신했다.
“심한 화상으로 그분은 얼마 후에 숨을 거두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제가 그분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억울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그분은 기쁨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눈물을 흘리셨는데…. 사실 그런 일들은 묻혀 잊혀지게 마련이죠. 가난한 노점상의 분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그때 결심했죠. 언제가 이분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그 생각은 제겐 어떤 부채 같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99년엔 택시운전사 지용석씨 분신사건이 있었다. 지용석씨는 택시 운전중 다른 택시와 사소한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그때 현장에 나타난 경찰관의 첫마디는 “짜식들, 좀 천천히 다니지. 왜 급하게 다녀서 사고를 내”였다. 그후 지용석씨는 일주일간 경찰서 교통계로 출두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온갖 핀잔과 무시,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분신 자살을 기도했다.
‘아무도 나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았다. 생업에 바쁜 나를 불러놓고 자신들이 시간이 날 때까지 4시간이고 5시간이고 나를 앉혀놓고 무시했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무능력했던가!’
자기 모멸감에 시달리던 그는 ‘이 서운함이 가실 때까지 당분간 경찰 서비스 헌장을 떼어달라 청해주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경찰서 정문 앞에서 분신 자살을 기도했다.
96년 한총련 여대생 성추행 사건도 심각한 인권침해사례라고 그는 말했다. 당시 추미애 현 민주당 의원이 피해 여학생들의 증언을 국회에서 여과 없이 소개, ‘국회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며 국회 정회 소동까지 일어난 바 있다.
‘한 전경은 옆에 있는 애한테 배고프지 않냐. 나가서 밥 사주겠다. 밥을 사준다고 그런 다음에 여자 애가 가만히 있었더니, 자기 혼자 그 애를 때리면서 웃더니 ‘내가 밥 사줄 테니까 내 것도 빨아줄래?’라고 이야기하니까 그 애가 울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애를 곤봉으로 때리고 그 옆에 있던 선배 같은 사람이 ‘제발 그러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는데, 그 소리친 애를 헬멧 같은 것으로 찍고, 그런 식으로 욕설이 계속되었습니다.(1996년 10월 9일, 당시 서울경찰청 국정감사, 내무 위원회 회의록 중)’
인권침해 사건들은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그와 잠깐의 설전이 벌어졌다. ‘노점상 문제는 기존 상가의 상권을 침해하는 행위이지 않은가, 당시 한총련은 문제가 없었는가’ 등 해당 사안에 대해 여러가지 반론이나 의문을 던져보았다. 그는 아주 명쾌하게 그 모든 질문에 답했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고상만씨의 ‘인권 운동 그 뒷이야기’

고씨는 10여 년의 인권운동 활동 중 느낀 것, 에피소드 등을 모아 최근 '니가 뭔데…'라는 책을 냈다.


“인권은 시시비비를 떠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어떤 것입니다. 잘못이 있다고 인권을 침해할 수는 없는 겁니다. 가난하다고, 배우지 못했다고 무시와 멸시를 당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이 이야기를 들어주길,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바로 인권운동가의 역할이죠.”
‘억울하다’고 하는 소시민들의 원망은 이런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의문사일 수도 있고, 사법기관의 무성의, 또 가난으로 제대로 된 변호를 받지 못한 채 범인으로 몰리는 사람들의 민원일 수도 있다.
그는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사건 국방부 특별조사단 민간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벙커에서 판문점 경비대대 소대장 김훈 중위가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됐다. 당시 이 사건은 육사 출신의 청년 장교가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점, 자살장소가 공동경비구역 내였다는 점, 그리고 자살이라고 판단하기엔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 많다는 점 때문에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사태가 복잡해지자 정부는 특별조사단을 만들어 사건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특별조사단은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기존의 발표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군대에서 죽는 사람들이 한해 평균 3백여 명에 이릅니다. 모두 소중한 우리의 아들들입니다. 그 가족들 중 3분의 1은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항의합니다. 이른바 군 의문사 유가족들입니다. 문제는 결론이 아닙니다. 가족들이 의혹을 가지지 않고 납득할 만한 성의 있는 사건 조사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자기 아들의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받아들일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의 억울함을 함께 풀어주는 것도 인권운동의 한 형태인 거죠.”
그는 인권침해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사법기관이라고 했다. 경찰이나 판검사, 이들도 사람인 이상 실수할 가능성은 있다. 때문에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가령 92년에 있었던 김순경 사건은 이러한 예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카페 종업원 이모양과 여관에 투숙했던 김순경은 그 여관에서 이모양이 사체로 발견되면서 살해범으로 몰렸다. 그는 억울하다고 주장했지만 정황증거상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1심과 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던 그는 우연히 진범이 잡히면서 억울한 옥살이를 마칠 수 있었다.
고상만씨는 이러한 일이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알리바이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된 한 무기수의 탄원, 그리고 구로구 사채업소 여직원 피살사건의 살인범으로 몰린 방모씨 등의 사례를 나열하며 그는 얼마나 많은 형사사건이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종결되고 판결이 내려졌는지를 따졌다.
“그런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원한은 바로 가난에 대한 것입니다. 돈만 있었더라도 변호사를 사서 이 억울함을 벗을 수 있을 텐데 하는…. 물론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며 민주주의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정말 모든 이들이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이 없다고 믿습니까?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한 사회가 바르고 맑아지려면 그런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인권운동이란 게 두루뭉실 한계가 없죠.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 모든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인권운동인 거죠.”
그는 자신의 책 ‘니가 뭔데…‘를 딱 세 사람만은 반드시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세 사람은 바로 신임 경찰청장, 국방장관, 법무부 장관이다. 그러나 억울하게 죽음을 맞는 사람도, 억울하게 감옥에 가는 사람도 없는 그런 세상, ‘사회적 약자 우선의 원칙’이 지켜지는 ‘아름다운 편견’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선 이들뿐 아니라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여성동아 2003년 5월 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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