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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의 해피 토크

“나도 변하고 싶다”

2003. 05. 07

어느 날 문득 찾아든 충고 하나. “말이나 감정표현, 머리 스타일이나 화장,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모든 것들이 과하네요. 학벌, 지위, 용모, 연공서열 등이 무시되는 시대에는 남을 의식해 아등바등 살 것이 아니라 ‘좋은 느낌’을 만들어야 해요.” 굳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트레스 받을 필요없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때 저절로 좋은 느낌과 향기가 배어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평화롭고 즐거울 때 표정과 말투도 상냥해지고, 타인을 수용하는 포용력도 생기지 않던가. 그래서 요즘 튀는 옷차림과 액세서리를 삼가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기 위한 일들로 시간을 보낸다. 내방과 책상 위에 나를 위한 작은 화분도 마련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내 자신이 평화롭고, 나를 만나는 이들이 나의 좋은 느낌을 공유할 수 있도록 달라지고 싶다.

“나도 변하고 싶다”

요즘 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로 외모를 바꾼다거나 직업을 전환해 제2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소하게는 늘 착용하던 액세서리부터 크게는 ‘체질 개선’이 아닌 ‘성질 개선’을 하며 나를 새롭게 가꾸려 하고 있다.
평소 나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커다란 브로치나 귀고리, 핑크·보라·파랑 등 튀는 빛깔에 디자인이 화려한 옷 대신 모노톤의 정장차림에 액세서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내부 공사도 진행중이지만 일단 외부 수리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주문받은 물건을 생산해내는 공장처럼 그저 주어진 일, 해야만 하는 일로 바빠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 뭘 원하는지조차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나의 행동과 나의 이미지는 이미 낡고, 유행도 지났지만 몸에 익숙해져, 버리지 못하는 옷 같았다. 계절이 바뀌면 철에 맞는 옷을 찾아 입어야 하듯 사람 역시 나이와 자리에 따라 말투나 몸가짐이 달라져야 하는데 난 항상 사회초년생 수준이었다. 더욱이 철이 없는 나는 그 ‘변함없음’이 미덕인 양 착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마음을 ‘검진’받고, 지금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어느 봄날의 대화 덕분이다.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분이 있어요. 나도 새로 시작한 사업과 직원들 때문에 속상했을 때 그분이 아주 적절한 도움말을 줘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거든요. 한번 만나보실래요?”
평소 알고 지내던 매우 유쾌하고 유능한 여사장의 권유로 신문사가 휴무인 토요일, 큰 기대 없이 경기도의 한 절을 찾았다. 아주 자그마하고 깨끗한 절, 유난히 화사한 꽃꽂이가 인상적인 절이었다. 절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집으로 들어가니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한 여성이 우리를 반겼다. 마침 점심식사 때라 별다른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봄나물로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았다. 차를 한잔 마시고 나자 그 ‘보살’이란 분이 나를 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참 좋은 기운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모든 게 너무 과하네요.”
‘과하다니? 과식을 하고 과체중이긴 하지만 또 뭐가 과하단 말인가.’
“말, 감정표현, 동작도 너무 과해요. 머리 스타일이나 화장도 그렇고요.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지나쳐 보이네요. 이목구비가 큰데 왜 그렇게 화장을 진하게 하세요? 또 마흔살이 넘었는데 왜 옷차림이나 머리모양으로 억지로 젊어 보이려 하세요? 이젠 자신을 ‘자중자애’할 때예요. 정숙하고 품위 있게 자신을 표현하세요. 모든 이들을 편하게 대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 천박해 보일 수 있어요. 당신은 자석 성분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붙을 텐데 스스로를 맑고 밝게 해야 그런 기운을 가진 사람들과 가까워지지요.”
물론 처음 듣는 지적은 아니다. 그러나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분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뜨끔하기도 했다. 그분의 말씀이 이어졌다.
“지금 우리는 ‘무조건’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 전에는 조건의 시대였잖아요. 학벌, 지위, 경력, 용모 등등 우리가 따져야 하고 통과해야 할 조건이 얼마나 많았나요. 그런데 노대통령 보세요. 객관적인 조건으로만 따지자면 이회창 후보나 정몽준 후보와는 비교가 안될 열악한(?) 조건이지만 대통령에 당선되었죠. 강금실 법무장관을 비롯한 주요 각료들도 마찬가지죠. 연공서열, 위계질서 등이 무너지고 있어요.
최근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도 예전의 기준으로 보면 그야말로 개천에서 나온 용들이죠. 개천 출신들에게 ‘당신 어디서 왔어?’를 물으면 안되지 않습니까. 각자의 개성과 능력으로 승부해야죠. ‘저 사람은 과거가 어떻다’ ‘나보다 학력이나 조건이 나쁜데 왜 저 사람이 저런 자리에 올랐지’ 등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조건의 시대엔 뭐가 남을까요? ‘무조건’ 다음에 나올 단어는 ‘좋다’와 ‘싫다’ 밖에 없어요. 조건이 사라지면 느낌만 남습니다. 좋은 조건을 따내기 위해 아등바등 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좋은 느낌’을 주도록 해야 해요. 느낌을 만드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아요. 항상 자연과 함께 하고, 의식주와 우리 기본 생활만 정갈하게 하고 질서를 지켜도 우리를 감싸는 기운이 맑아집니다.”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평소 알면서도 늘 잊어버리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분 말의 핵심은 ‘나를 아끼고 사랑하라’였다.
우린 늘 자신의 가치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의 기준으로 우리를 다스렸다. 내 마음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우선시했다.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이 주연인 드라마에 조연으로 등장하느라 스트레스만 받은 셈이다.
집에 돌아와 ‘좋은 느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은 섹시한 외모와 현란한 말솜씨, 또는 화려한 이력서가 아니다. 내가 평화롭고 즐겁고 행복해야 표정과 말투도 상냥해지고, 타인을 수용하는 포용력도 생긴다. 체질 개선보다 성질 개선이 더 우선이고, 얼굴 성형보다 마음 성형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엔 내 존재를 튀게 보이려는 노력 대신 마음을 평화롭게 하기 위한 일들로 시간을 채운다. 튀는 옷차림과 액세서리로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말을 줄이니 불필요한 말로 구설수에 오를 일도 없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그동안 내가 날 너무 자주 죽였어.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다른 사람 흉내내느라 나를 억누르고, 함부로 대했구나. 그리고 너무 쉽게 자신을 학대하고 수시로 포기했어. 이젠 날 기분 좋게 해줄게.”
굳이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잘 해주는 것이 좋은 느낌의 사람이 되는 핵심인 것 같다. 나는 일단 내 방과 회사 책상에 꽃과 허브를 들여놓았다. 눈을 뜰 때 아침햇살을 받아 피어난 작은 꽃을 보는 것, 출근해서 온몸과 마음까지 신선해지는 허브향을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주 즐겁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잘 키우기 위해 제때 물을 주고 상한 잎들을 따주면서 ‘과연 난 내 자신에겐 얼마나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햇빛을 쐬게 했으며 낡은 생각과 부질없는 욕심을 버렸던가’ 반성했다.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신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호기심은 있지만 부질없는 욕망과 타인에 대한 질투는 없던 그런 천연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항상 평화로운 마음과 표정을 지니면 값비싼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그윽한 향기를 풍기지 않을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는 것보다는 내 자신이 평화롭고, 날 만나는 이들이 적어도 나와 함께하는 순간은 그 평화를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취미는 ‘각오’와 ‘다짐’이고 특기는 ‘작심삼일’이라 얼마나 유지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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