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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남편 위해 천도재 지낸 안정환 어머니 안혜령씨 옥중 참회 고백

“20여년간 생부에 대해 말못한 못난 어미의 잘못을 사죄할 겁니다”

■ 기획·최미선 기자 ■ 글·김순희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05.07 10:36:00

이제야 말한다. 축구스타 안정환의 어머니 안혜령씨가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아들의 생부에 대해 옥중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폐암으로 남편을 잃은 후 스무살에 혼자가 된 안씨는 “아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차마 말할 수 없었다”며 그동안 아버지 없이 살아온 아들, 안정환에게 ‘못난’어미로 고통을 안겨준 것을 뒤늦게 후회하며 용서를 구했다.
죽은 남편 위해 천도재 지낸 안정환 어머니 안혜령씨 옥중 참회 고백

“정환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축구스타 안정환의 어머니 안혜령씨(45)가 영등포구치소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4월17일 오전 10시30분 영등포구치소의 여성면회소 3호 접견실. 하늘색 수의에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안씨의 얼굴 표정은 지난 4월7일 1차 면회 때와는 달리 밝은 빛이 돌았다.
“죽은 남편은 저에게 맺힌 한이 많았나 봅니다. 지금껏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아들에게 한번도 꺼내지 않았어요. 정환이는 엄마의 마음이 상할까봐 아버지에 대해서 물어보지 못했던 것 같고, 전 아들이 어릴 땐 어리다는 이유로, 커서는 집을 떠나 합숙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분자분 얘기할 기회가 없었어요. 죽어서도 원한을 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던 남편이 저를 여기(영등포구치소)까지 내몰지 않았나 싶어요.”
안씨는 지난 6개월 동안 구치소 안에서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했다. ‘왜 이렇게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서 험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하지만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5년 전부터 알 수 없는 고통과 불안에 휩싸인 그는 밤마다 악몽을 꾸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불면증에 시달려왔다. 그 즈음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우연히 화투판에 발을 들여놓게 된 그는 밤에 잠드는 것이 무서웠고 그로 인해 화투판에서 밤을 지새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노름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심심풀이로 기웃거리던 화투판의 규모가 날로 커지자 안씨는 ‘도박자금’을 빌리기 시작했는데, 그 빛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더니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유명한’ 아들을 둔 덕분에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되는데…’ 하고 자책하면서 마음을 다잡아먹으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안씨는 지난해 10월15일 경기도 포천의 한 친척집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사기와 절도 혐의로 검찰과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던 안씨는 전날인 10월14일 오전 11시경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모텔 앞에서 용산경찰서 소속 문모 경사(40)의 검문을 받자 “그냥 달아나자”며 운전자 김모씨(40)를 사주해 문경사를 차에 매단 채 10m 가량 달아나다 붙잡힌 것.
안씨가 구치소에서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자신이 끌려가고 있음을 느낀 것은 지난 3월 탤런트 김수미가 ‘빙의’ 치료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안씨는 자신이 ‘혹시 빙의(죽은 귀신이 사람의 몸에 붙어 다니는 것)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품게 된 이유는 죽은 남편 때문이다.
“남편이 죽은 이후로 제사를 한번도 안 지냈어요. 남편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제 갓 돌을 넘긴 어린 정환이를 두고 떠난다는 것에 참으로 가슴 아파했는데….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마음속에서 남편을 잊고 싶어서 제사도 안 모셨어요. 제 기억 속에서 남편을 지우려고 억지로 애를 썼던 거죠.”
안씨는 구치소에서 묘심화 스님이 쓴 책 ‘빙의‘(찬섬출판사)를 본 후 책 내용에서 밝힌 빙의의 증상과 자신이 겪은 고통이 너무나 흡사해 지난 3월21일, 출판사 관계자를 통해 스님에게 ‘나도 빙의에 걸린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제 편지를 받은 스님은 ‘빙의가 맞다’면서 지난 4월3일 죽은 남편을 위해 천도재(薦度齋, 죽은 영혼을 극락세계로 가게 하는 의식)를 지내주셨죠. 남편의 영혼은 그제서야 위로를 받고 제 몸을 떠나 좋은 곳으로 갔나 봐요. 지금은 저도 예전과 달리 홀가분한 느낌이거든요.”

죽은 남편 위해 천도재 지낸 안정환 어머니 안혜령씨 옥중 참회 고백

안씨는 남편의 천도재를 지내고 일주일 후인 지난 4월10일 밤, 잠을 자다가 남편 꿈을 꿨다고 한다. 꿈속에서 남편은 안씨와 정열적인 사랑을 나눈 후 다정하게 웃으면서 ‘이놈의 여편네!’라는 말을 남긴 후 구치소 안에 있는 신발장의 문을 열더라는 것. 그리고 안씨의 흰 고무신을 꺼내 고무신의 앞코를 출입문 쪽을 향해 돌려놓은 후 밝은 얼굴로 안씨를 쳐다보더니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꿈이 현실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생생한 겁니다. 눈을 떠보니 새벽 3시40분쯤이더라고요. 꿈속에서 본 남편의 얼굴이 아주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그동안 남편은 제가 미웠는지 제 몸에 달라붙어서 도박판을 비롯해 안 좋은 곳만 이끌고 다니면서 괴롭히다가 감옥에까지 쳐넣은 것 같아요. 이제는 한이 풀렸는지 제 신발을 돌려놓았네요. 조금 있으면 제가 출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하고 남편은 저에게서 영원히 떠나간 것 같아요.”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완연하던 1차 면회 때와는 달리 두번째 면회를 갔을 때 한층 얼굴이 밝아진 안씨는 “남편에게 진 마음의 빚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정환이 생부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정환이뿐만 아니라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남편의 존재에 대해서 처음으로 털어놓겠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항간에는 제가 미혼모로 정환이를 낳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교사였던 남편과 연애를 하던 중에 정환이를 임신했어요. 나이 차이(열살 차이라고 했다)도 많은 데다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친정 집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당시 남편과 저는 너무나 열렬히 사랑을 했기에 헤어질 수 없다며 버텼어요. 결국 (친정)부모님과 시댁 어른들은 결혼을 허락했지만 ‘임신중에 결혼을 하면 안 좋다’면서 ‘아이를 낳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하셨죠.”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미혼모로 숨어서 정환이를 낳은 건 아니에요”
“그러나 결혼날짜를 잡아놓고 보란 듯이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들떠 있던 안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들을 낳고 행복에 묻혀 있던 시간도 잠시. 금방 치유되리라고 믿었던 남편의 병(급성폐렴)이 폐암이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때문에 미처 손을 써 볼 겨를도 없이 남편은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당시 안씨의 나이 스무살. 결혼식을 마친 후 혼인신고를 하리라 마음먹고 있던 터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안정환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정환이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살아온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정환이는 정환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둘 다 한이 맺혔을 것 같아요. 그래도 남편은 정환이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제 꿈속에 나타나서 아들을 보살폈어요. 언젠가 한번은 꿈에 나타난 남편이 ‘정환이가 배가 아픈가 봐’하고 말한 후 사라지길래 다음날 아침에 합숙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정환이가 전날 먹은 것이 체했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2000년 당시 부산 아이콘스 소속이었던 안정환이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프로축구단 ‘페루자’에 진출할 때도 안씨의 꿈에 남편이 나타나 다섯 개의 유니폼 중 하나를 골라서 그의 손에 건네줬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페루자’의 유니폼이었다고 한다.

죽은 남편 위해 천도재 지낸 안정환 어머니 안혜령씨 옥중 참회 고백

안혜령씨의 죽은 남편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는 모습.


“아버지가 지켜줬기 때문에 지금의 정환이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안씨에게 “항간에 ‘안정환은 미국에 살고 있는 A씨를 자신의 생부로 알고 있어 그쪽으로 돈을 보낸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안씨는 거듭 손사레를 쳤다.
“아니에요. 정환이는 생부가 두살 때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어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생부의 존재 자체를 잘못 알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 이야기는 정환이와 저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예요. 정환이가 ‘엄마를 팽개친 못된 자식’이라는 이야기도 아들과 저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는 사람들의 주장이고요. 모든 것이 다 제가 잘못해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이지, 정환이는 저에게 아주 잘했어요. 그동안 정환이가 저 때문에 마음 고생한 것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많은 빚을 저 대신 갚아줬고요.”
안정환은 어려서부터 먹고 살기 위해 생업 전선에 뛰어든 어머니 대신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때문에 그는 어머니 못지않게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한다. 안정환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38평 아파트를 자신의 명의로 구입하면서 “이 집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편히 생활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금도 안정환은 외할머니에게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낸다고 한다.
안씨는 검찰 기소장에 적힌 채무관계를 살펴보고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안정환과 관련된 체육계 인사에게 돈을 빌린 것은 이해가 가지만 생면부지인 모 가수에게까지 접근해 돈을 빌렸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것.
안정환은 어머니 안씨가 진 사채를 몇 차례에 걸쳐 갚아주었음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어머니가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고통이 극에 달했다. 그러던 중에 99년 12월 어머니 안씨가 안정환의 대리인 행세를 하며 모 업체와 초상권 계약을 해 법적 분쟁을 일으키자 안씨와 아들 안정환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지금도 “모자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된 상태”는 아니라는 게 안씨 측근의 말이다.
“오래 전에 정환이가 저보고 ‘엄마만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면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며 울면서 호소하더라고요. 그 이후에도 제가 계속 일을 저지르고 다녔으니…. 그러고 돌아다니는 엄마가 얼마나 미웠겠어요.”
지난해 9월 일본 프로축구 ‘시미즈 S 펄스’로 이적해 일본 프로축구 무대에서 활약중인 안정환은 어머니의 구속 소식을 일본에서 들었다. 그후 지난해 11월20일 열린 브라질과의 평가전에 출전하기 위해 안정환은 사흘 전인 11월17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안씨가 구속된 이후 안정환의 첫 한국 방문이었지만 그는 수감중인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또한 지난 4월16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국가대표평가전’에 출전하기 위해 어머니가 구속된 이후 두번째로 한국을 방문했지만 영등포구치소를 찾지 않은 채 이틀 후 일본으로 떠났다.
“정환이와 혜원이(며느리)가 면회를 한번도 안 왔지만 섭섭한 마음은 없어요. 다 제가 잘못한 일인 걸요. 주변 사람들이 자식된 도리로 정환이가 찾아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들 말하는데…. 정환이가 그걸 왜 모르겠어요. 여길 찾아오지 못하는 정환이의 마음은 얼마나 미어지겠어요. 제가 구속되기 직전에 입원했을 때도 정환이가 찾아와서 입원비를 전부 계산하고 갔어요. 정환이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저를 내팽개쳐두지 않았어요.”

“다시는 아들 가슴에 못박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구속된 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지만 면회 한번 가지 않고 구속된 어머니를 바라보는 안정환의 심정은 어떨까. 지난 4월15일 오후 7시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안정환을 만났다. 다음날 치러질 ‘한·일 국가대표평가전’ 출전에 대비해 훈련에 몰두하던 안정환은 연습경기가 끝나자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취재진에게 웃는 얼굴로 다음날 열릴 경기에 임하는 소감을 밝힌 후 국가대표팀 소속 차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정환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면회하고 왔다. 어머니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냐”고 묻자 예상치 않은 질문에 놀랐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기자를 잠깐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어떤 말 한마디도 없이 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은 안정환은 땀에 젖은 유니폼의 상의를 벗은 후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천장을 쳐다보더니 두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떨궜다.
안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갚아야 할 채무는 4억7천만원 정도”라면서 “채권단과 2억5천만원선에서 합의를 보기로 변호사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합의금에 필요한 2억5천만원은 안정환이 안씨의 변호인에게 “봉천동 아파트를 팔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어제(4월 16일) TV에서 정환이가 뛰는 것을 봤어요. 비록 한국이 아쉽게 지긴 했지만 훨훨 날아다니는 정환이를 보니 기분이 좋네요. 이젠 정신도 맑아졌으니 밖에 나가면 새사람이 될 겁니다. 정환이를 만나서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할 거고요. 이제 남편 제사도 지낼 겁니다.”
안씨는 “그동안 저지른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 정신으로 저지른 일이 아닌 것 같다”면서 과거의 잘못을 뉘우쳤다. “천도재를 지낸 이후에 머리도 맑아지고 불면증도 사라졌다”는 그는 “다시는 아들의 가슴에 못박지 않을 것이다”는 말을 덧붙이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여성동아 2003년 5월 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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