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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아름다운 가족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국토종단한 김광용씨 가족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몸으로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 기획·최미선 기자 ■ 글·최규정 ■ 사진·정경진

입력 2003.05.07 14:42:00

요즘은 아이들 교육이라고 하면 대뜸 무슨 학원에 보내는지, 외국어 공부는 얼마나 시키는지부터
생각하는 세상이다. 이런 와중에 수학 한 문제 더 풀고, 영어 한 단어 더 외우기보단 넓은 세상을 직접 만나고 경험하라며 어린 아들과 함께 국토종단에 나선 아빠가 있어 화제다.
최근 국토종단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광용씨 가족을 만났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국토종단한 김광용씨 가족

지난 3월23일 오후, 남한의 최북단 임진각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꼬박 1년 동안의 국토종단을 마치고 곧 그곳에 도착할 김광용씨(41)와 그의 아들 아석이(11). 아버지와 함께 상기된 얼굴로 도착한 아석이는 할아버지가 건네는 꽃다발을 목에 건 순간,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아석이네 부자가 걸어온 길은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총 620여km. 지난해 3월24일부터 1년 동안 꼬박 42일을 투자해 국토종단을 마친 아버지와 아들이 그간 찍어놓은 비디오테이프만도 12개, 사진은 6백컷이 넘는다.
이날의 행사는 그동안 아석이가 배낭에 달고 온 ‘국토종단’이라고 쓰인 천 조각을 임진각 철조망에 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거기에는 ‘평화를 사랑합니다!’라는 김광용씨의 글과 아석이 할아버지가 써주신 ‘신시경종(愼始敬終, 삼가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끝내라)’ 이란 문구, 그리고 아석이네 네 식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로부터 2주 후, 신길동에 위치한 아석이네 집을 찾았다. 1층에는 어려서부터 아석이와 동생을 돌봐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살고있고, 2층이 아석이네다. 현관 입구에 가족사진과 함께 걸려있는 화이트보드에 적힌 ‘아인, 아석아 오늘 촬영 있으니, 머리 감으세요!’라는 메모가 이 집 식구들의 평범한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여느 집과 다른 점이라곤 아이방 한면을 장식한 대한민국 전도와 파란 지구본뿐이다.
아이들의 인내심 키우기 위해 국토종단계획
“맞벌이하는 집은 대부분 둘이 버니까, 아주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건 웬만하면 다 사주잖아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오해하는 것 같아요. 자기 집이 돈이 아주 많은 줄 알고 뭐든지 쉽게 쉽게 얻어진다고 생각하고…. 돈을 물려줘봤자 얼마나 주겠어요? 그래서 저희는 아이들이 사달라는 것을 무턱대고 사주기보다 가급적이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인내력 있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국토종단을 생각했고요.”
김광용씨뿐 아니다. 부인 최명희씨(41)도 아이들이 거침없이 자라길 바라는 건 마찬가지다.
“회사가 같은 방향이다 보니 함께 출근하는 차 안에서 남편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특히 오래 전부터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뭔가 해보자 싶었죠. 우리 부부는 가급적이면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어요. 칭찬이라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땀 흘린 것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기에 더 노력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소 뜬금없는 소리를 잘 하는 남편은 아이들을 소림사에 보내면 어떨까? 하는 얘기도 하고 그랬죠(웃음).”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쳐 이들 부부가 얻어낸 결론은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몸으로 만날 기회를 줘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맘때쯤 ‘바람의 딸’ 한비야씨의 책을 읽던 김씨가 ‘국토종단’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국토종단을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법. 직장인인 김씨 자신과 아내, 그리고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석이의 여건을 고려해 주말과 휴일을 이용한 국토종단을 계획하기에 이르렀고 한다. 아석이가 어려서부터 산을 잘 탔기에 이번 계획을 잘 이루어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드디어 종단 첫날. 금요일 퇴근과 함께 온 가족이 해남 땅끝마을을 찾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시간을 꼬박 걷고는 서둘러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주중에는 각자 일터와 학교를 오가며 여느 사람들처럼 지내다 주말이 되면 지난주에 멈췄던 지점으로 돌아가 걷기를 계속했다. 이같은 일정은 그 뒤로 계속 이어졌고 주말만으론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월요일 휴가를 적절히 활용하기도 했다. 다행히 김씨 부부의 직장 상사들은 그들의 계획을 흔쾌히 받아들여 암암리에 도움을 주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국토종단한 김광용씨 가족

1년 동안 주말마다 꼬박 걸은 끝에 지난 3월23일, 국토종단을 마친 김광용씨 가족.


부인 최명희씨는 이번 계획의 꼼꼼한 기록자이자 매니저로서 막중한 역할을 도맡았다. 가족들을 실어나르는 운전사 역할은 물론이고 차로 일행을 따르면서 비디오와 사진 촬영을 하고 그날그날의 현장을 기록해나갔다. 매번 숙소를 정하고 효과적인 식사와 휴식시간을 마련하는 것, 무엇보다 아들과 남편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 역할 역시 최씨의 몫이었다. 평소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인 딸 아인이(8)도 시시때때로 같이 걸으며 아빠와 오빠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김광용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는 아빠다. 부인 최씨가 보기에도 오픈마인드에 합리적인 자세로 아이들을 대한다고. 야단치는 역할은 주로 최씨가 하는 반면 남편 김씨는 가능하면 대화로 풀어가는, 한마디로 ‘협상 잘하는 아빠’다.
이런 김씨의 성격은 이번 국토종단을 진행하면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먼저 부부가 합의를 한 다음에 무려 두달 동안 아석이의 결정을 기다렸다는 것. 물론 부부가 “열살에 우리나라 국토종단을 한 사람은 아마 네가 처음일 것”이라든지 “완주하고 나면 얼마나 자랑스럽겠냐?”면서 끊임없이 아석이를 유혹(?) 것도 한몫을 했다. 아석이 역시 스스로 약속한 일인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많이 힘들어하고 짜증도 냈지만 단 한번도 ‘안하겠다’는 말은 없었어요. 아이 스스로 약속한 게 있으니까 주말마다 놀고 싶은 것도 꾹 참고 해내더라고요. 그동안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아빠랑 임진각까지 가기로 약속했어요’라고 대답하고 그랬죠.”
김씨의 표정에는 꿋꿋하게 버텨준 아들에 대한 대견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최씨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지금껏 육아일기를 써오고 있다. 아석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쓴 두 아이의 육아일기는 벌써 다섯 권에 이르는데 요즘은 사무실에서도 틈틈히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일기장 사이에 끼워놓기도 한다. 그의 육아일기에는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마음과 둘째 아인이에게 같은 여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빼곡이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아석이네 국토종단 이야기는 최씨가 날짜별로 꼼꼼하게 정리한 ‘국토종단일기’로 인해 인터넷 카페(cafe.daum.net/asugi, ‘우리나라 걸어가기’)에서 생생한 현장을 볼 수 있다.
말이 국토종단이지, 오로지 두 발로 걸어 우리나라 전역을 훑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울 리는 없다. 특히 열 살의 아석이에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에 부친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안이다. 처음 종단을 하던 주에는 심한 몸살에 걸리기도 했고 한여름에는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입고 있던 티셔츠에서 물이 떨어지기도 했다. 다행히 몇 달이 지나자 아이도 자기 페이스를 찾고 잘 버텨주었다. 하지만 옆에서 보는 엄마 최씨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던 일도 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국토종단한 김광용씨 가족

“차령휴게소를 향해 가던 때였는데, 작년에 왜 그리 눈이 많이 오는지…, 그날도 눈이 엄청 많이 와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였어요. 휴게소 쪽으로 가다가 제가 그만 길을 잘못 들어선 거예요. 그래서 길을 돌아 다시 더듬어 올라가는데 눈보라 속을 아무리 달려도 아이와 남편이 보이질 않는 거예요. 설상가상으로 휴대전화도 안 받고요. 분명 무슨 사고가 났나 보다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거예요.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차령휴게소까지 다시 오니까 그제서야 ‘국토종단’이라고 쓰인 배낭이 보이더라고요.”
최씨는 그때 얼마나 마음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안쓰러운 마음은 아빠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빠듯한 일정에 쉴 틈이 없던 터라 힘에 부쳐 눈물을 흘리던 아석이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또 차도를 따라 걷다 보니 무엇보다 안전문제가 심각했다. 줄곧 눈에 잘 띄는 빨간색 상의를 입고 다녔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는 것. 차가 한산한 국도는 그나마 나았는데 차들의 통행량이 많은데다 고속도로에 버금가는 4차선 도로를 걸을 때는 바로 옆을 달리는 차량의 속도에 모자가 날아가는가 하면 급커브 길을 달려오는 트럭과 부딪힐 뻔한 위험천만의 경험도 있었다. 배낭에 태극기를 달고, 나중에는 안전봉까지 동원했던 것도 다 이런 안전상의 이유였다.
그뿐 아니다. 종단이 중반쯤 접어들면서 논산에 도착한 무렵부터 김광용씨의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일로 아들과 약속한 일을 중도에 포기할 순 없었다. 그때부터 김씨는 주중엔 치료를 받고 주말엔 걷는 양을 조금 줄이면서 종단을 계속 해나갔다. 한동안 제대로 굽히기가 힘들었던 김씨의 무릎도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근력이 좋지도 않은 사람이 갑자기 많이 걸으니까 무릎 연골이 닳아버린 거예요. 나이 들면 잘 걸린다는 퇴행성관절염이 미리 찾아온 거죠. 이번 경험으로 장차 국토종단을 계획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전에 꼭 건강검진부터 받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 힘든 일정 속에서도 비교적 한적한 도로에선 가끔씩 자연을 바라보기 위해 ‘옆으로(?)’ 걸었다. 평소 도시에서만 생활하던 아이들에게는 모처럼 대자연의 싱그러움을 누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기 때문이다. 들판에선 메뚜기를, 냇가에선 개구리나 올챙이를 잡으며 더위를 식혔고 수풀 속에 숨어있는 빨간 산딸기를 발견하고는 온 가족이 즉석 ‘산딸기 파티’를 열기도 했다. 한번은 아석이가 줄지어 이동하는 개미를 보느라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적도 있다. 지난해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 열기나 전국을 강타하던 선거바람 속에서도 어김없이 이렇게 길을 떠났던 아이들은 그사이 한살씩 더 먹고 한뼘씩 더 자라났다.
하지만 정작 김씨는 국토종단을 한 후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한다. 단지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고 이젠 다시 일요일에 늦잠을 잘 수 있게 된 것뿐이라고. 아석이 또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걷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라고만 한다.
그러나 김씨는 어렵게 이루어낸 이번 여정이 아이들에겐 값진 수확이며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씨 부부는 아석이나 아인이가 큰인물이 되는 것보다도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발견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의지가 있고 노력을 한다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는 마음으로 씩씩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길 바란다. 지금은 잘 모르더라도 아이들이 삶의 어느 시점에서 이번 경험을 두고두고 우려내면서 살 수 있으니까, 그것이야말로 큰 선물이 아니겠냐는 생각이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국토종단한 김광용씨 가족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내심있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국토종단을 실행했다는 김광용씨 부부.


게다가 덤으로 얻은 것도 있다. 그전에는 밥상머리에 앉아 ‘밥 먹어라, 더 먹어라’ 잔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종단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국토종단을 통해 음식의 소중함을 안 아이들은 더는 잔소리가 필요없을 만큼 잘 먹었다. 그래서인지 아석이는 한겨울 눈보라 속을 걸으면서도 감기 한번 앓지 않았다. “아이가 잘 먹기를 바란다면 잔소리 대신 스스로 땀을 흘리게 하라!” 김광용씨가 다른 부모들에게 덤으로 주는 조언이다.
이번 종단이 단지 아이들에게만 의미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두 다리로 직접 우리나라 곳곳을 걸어온 김광용씨에게도 힘들지만 소중한 가치를 안겨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김씨는 길을 걸으며 만난 인연들과 함께 나눈 따뜻한 정이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그중에서 요즘도 아석이네 카페에 글을 올리는 은수아빠는 여러모로 마음이 가는 좋은 사람이다. 은수아빠는 종단중 만난 인라인스케이트동호회의 일원인데, 이번 아석이네 국토종단을 처음 인터넷에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또 각 지방에서 안부를 묻고 같이 걸으며 응원해준 사람들도 있었고, 아석이네처럼 종단을 하고 있던 청년도 만났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백명 남짓으로 늘어난 ‘우리나라 걸어가기’ 회원들에게도 고마울 뿐이다.
지금 김씨네 집에는 땅끝마을에서 가져온 세 덩이의 돌조각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종단을 시작하면서 작으나마 이번 일에 의미를 담고자 했던 김씨는 땅끝마을에 있던 돌 하나를 세 조각으로 부수었고 그 뒤로 10kg은 족히 나가는 이 돌덩이들은 김씨의 배낭에 실려 임진각까지 함께 올라왔다. 김씨가 이 돌조각을 통해 기원하는 것은 바로 ‘평화’. 원래 돌이 하나였던 것처럼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가 되기를, 나아가 세계가 하나같이 평화롭기를 희망하는 그와 가족들의 마음을 담았다.
이제 막 국토종단을 마친 김씨에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언젠가는 이 돌들을 제 위치에 갖다놓겠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북녘땅 저 끝 함경북도 온성에, 다른 하나는 온성을 지나 지구 반대편의 유럽 어딘가에, 그리고 세번째 돌은 원래 있던 땅끝마을에 다시 갖다 둘 참이라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김씨는 이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염원대로 머지않아 땅끝마을에서 임진각이 아닌, 북녘땅을 향해 배낭을 지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동아 2003년 4월 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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