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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엄마이자 회사원이면서 충북과학대학 수석 졸업한 억척주부 문옥이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장다혜 ■ 사진·홍상표

입력 2003.04.14 19:10:00

지난 2001년 산업체 특별전형으로 충북과학대학 컴퓨터정보학과에 입학, 2년 내내 과 수석을 독차지하다.
지난 2월 전체수석의 영광을 안은 문옥이씨.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낮에는 직장여성으로, 밤에는 야간대학생으로 ‘1인 3역’을 보기 좋게 수행한 억척주부 문옥이씨의 도전하는 삶.
두 아이 엄마이자 회사원이면서 충북과학대학 수석 졸업한 억척주부 문옥이

2녀 내내 잠 한번 제대로 못자면서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더 이를 악물었다는 문씨.


“있잖아요, 우리 엄마 컴퓨터 박사예요!”
지난 2월 충북과학대학(야간)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문옥이씨(34) 집을 방문했을 때 문씨의 큰아들인 태환이(10)가 손님을 향해 엄마자랑부터 한다. 둘째아들 승환이(8)도 형에게 질세라 “우리 엄마 짱이에요!” 하면서 엄마를 부둥켜안는다. 문씨의 두 아들뿐 아니라 남편 조천휘씨(39) 역시 얼굴에 미소가 넘쳐흐른다.
문씨는 이렇게 두 아들을 둔 엄마이면서 낮에는 일을 하는 직장여성으로 지난 2001년 산업체 특별전형으로 충북과학대학 컴퓨터정보과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2년 내내 학과 수석을 독차지했던 그는 이번 졸업식에서 전학년 평점 4.5 만점에 4.45점을 얻어 전체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1인 3역’을 보기 좋게 수행한 억척주부 문씨에겐 하루 24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2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단 한번도 강의시간을 빼먹은 적이 없었던 그에게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시간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밖에 없었다. 문씨의 수면시간은 고작해야 3시간. 말이 3시간이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2년 내내 그렇게 지내다 보니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더 이를 악물었다.
문씨가 이토록 이를 악물고 학교를 다니게 된 동기를 물었다.
“회사 때문이에요. 제 꿈이 우리 회사 기획실 팀장이 되는 건데 기획실 팀장이 되려면 대학을 나와야 하거든요. 제가 결혼 전 이 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고졸인 사람도 사무실 근무를 할 수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다시 나가니까 고학력자가 많아 저는 생산직에 근무하게 됐어요.”
문씨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직원이 40여명 정도 되는 작은 비료제조회사다. 알고 보니 그 회사의 기획실장이 바로 문씨의 남편이고 대표이사는 남편의 형으로 문씨에게는 시아주버니가 되는 셈이다.
89년 공주여고를 졸업한 문씨는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3남매 중 장녀였던 문씨는 공부도 그럭저럭 잘하는 편에 속했지만, 두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 부모님이 그녀에게 조심스레 던진 말은 ‘너는 대학에 진학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너무 서운하고 슬퍼 문씨는 며칠 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런 딸을 보며 이내 아버지 또한 가슴아파하며 ‘그럼 시험이라도 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시험이라도 보라고 했지만 만약 내가 시험에 붙었는데도 대학에 갈 수 없다면 아버지 심정이 어떨까 싶어 시험 보는 날 시험장에 가지 않고 하루종일 이불 속에서 뒹굴었죠, 뭐.”
문씨의 아버지는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농부다. 하루종일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을 해도 생활은 늘 빠듯해 3남매 모두를 대학교에 보낼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장녀인 문씨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온 그에게 취업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문씨는 취업을 위해 컴퓨터 학원에 등록,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그러던 중 같은 교회에 다니던 문씨를 참하게 본 시아주버니가 선뜻 자신의 회사에 채용한 것.
“92년에 입사했는데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남편이 사장님 동생인 줄 몰랐어요. 당시 남편이 저를 많이 따라다녀서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고 혼사말까지 오갔는데 사장님이 결혼을 반대하시는 거예요. 그때 아마 아주버님이 우리 남편하고 결혼시킬 여자를 점찍어두셨던 것 같아요.”
문씨의 남편은 조실부모한 후 형이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때문에 문씨의 남편에게 형은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로 당시 형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처지였다. 문씨의 남편은 형이 생각해둔 여성과 선을 본 후 문씨와는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무렵 회사가 부도난 거예요. 회사가 망하니까 남편하고 만나던 그 여자가 뒤도 안 돌아보고 남편을 떠났지요. 어느 비 오는 날인가, 남편이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면서 창 밖을 내다보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까 가슴이 막 아려오는 거예요. 역시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 봐요.”
두 사람은 사귄 지 1년 만에 결혼을 했고 그때서야 시아주버니도 문씨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문씨는 결혼과 함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여자는 결혼하면 무조건 회사를 그만두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한때 두 사람의 관계를 극구 반대했던 시아주버니에 대해 안좋은 감정이 있을 법도 하지만 문씨는 오히려 시아주버니를 “너무너무 존경한다”고 했다. 비록 중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회사를 경영하는 오너로서 나무랄 데가 없고 거의 신용 하나로 회사를 세우고 이만큼 끌고 왔다는 것이다.

두 아이 엄마이자 회사원이면서 충북과학대학 수석 졸업한 억척주부 문옥이

정신없이 바쁜 생활에 지쳐 남편과 싸움도 많았지만 틈나는대로 집안살림을 거들며 자신을 도와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는 문옥이씨.


“사실 우리 가족이 회사에 투입된 건 IMF 때문이에요. 한번 쓰러졌던 회사를 다시 일으킨 지 몇년 안되어 회사가 IMF로 또다시 위기를 맞은 거죠. 그때 직원들을 거의 다 내보내고 가족 모두가 회사에 들어가 다 함께 힘을 합치게 된 거죠.”
문씨는 결혼 후 겨우 마련한 집을 팔아 회사 자금으로 보탰다. 문씨의 입장에서 시아주버니는 남편에게 부모 같은 사람으로 차마 시아주버니의 집을 팔게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의 심정도 마찬가지임을 문씨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씨는 남편에게 ‘형님 집은 놔두고 우리집을 팔자’고 먼저 제안했다. 그러자 속으로만 끙끙 앓던 남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보는 순간 문씨는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면서 그만둔 회사에 IMF 위기로 98년 다시 들어갔을 땐 고졸이라는 이유로 비료 생산직에 발령받았어요. 회사가 어려운데 뭔들 못하겠냐는 생각에 몇년간 꾹 참고 일을 했지만 자꾸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한편으론 기획실로 다시 가고 싶었어요. 제가 원래 일 욕심이 많거든요.”
그무렵 충북과학대학교에서 낸 산업체 특별전형 모집공고를 보게 된 문씨는 남편에게 대학에 진학할 뜻을 비췄다. 남편은 두말없이 지지해주었지만 친정에서는 반대를 했다. ‘아이 키우고 엄마가 회사에 다니면 됐지 뭐하러 힘들게 학교를 다니냐’는 거였다. ‘또 넉넉지 않은 생활비로 등록금은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게 부모님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2001년 대학 신입생이 되었다.
“사실 2년 내내 과 수석을 한 건 오로지 오기였어요. 과 수석을 놓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으니까 기를 쓰고 공부를 한 거죠.”
대학에 진학할 때 큰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아침만 되면 전쟁 아닌 전쟁이 시작되었다. 두 아이를 챙겨서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남편과 함께 회사에 출근했다가 오후 6시가 되어 집에 오면 대충대충 밥과 반찬을 만들어놓고 학교로 뛰어가는 일이 2년 내내 계속되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을 씻기고 밥을 챙겨 먹이면서 숨돌릴 새도 없이 2년이 지나갔다.
“그렇게 바쁜 생활이 계속되니까 둘 다 지쳐서 남편하고 싸움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정말 고마운 건 싸우면서도 남편이 학교를 그만두라고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두 사람 다 순간순간 피곤하고 지친 마음에 티격태격 싸우긴 했지만 대학에 진학한 아내를 위해 남편은 리포트 자료를 찾아주기도 하고 틈나는 대로 집안 살림을 거들며 열심히 외조를 해주었다. 때문에 겉으로 표현은 안하지만 남편에게 늘 미안하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다른 엄마들처럼 숙제도 봐주고 이것저것 챙겨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큰애가 공부를 못해요(웃음). 공부는 못하지만 다행히 성격이 무척 활발하고 좋아요. 바쁜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동생도 잘 봐주고, 어떤 날은 보너스라고 하면서 집안 청소도 깨끗이 해놓는걸요. 그래도 요즘은 내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공부를 열심히 해요. 휴일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도 해야 하는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잔병치레로 누워 있던 적이 많았거든요.”
그동안 공부한다는 이유로 아내와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게 가족들에게 늘 마음에 걸렸다는 문씨. “그런데 이번에 남편이 대학원에 들어갔으니까 이젠 제가 남편을 내조할 순서가 됐네요”라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여성동아 2003년 4월 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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