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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떠돌며 고독한 삶을 관조하는 낭만주의 시인 오세영

“의미가 없는 시는 시가 아닙니다”

■ 글·박상건(시인·문화선교대학원 문예창작학과 교수)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4.03 10:55:00

좋은 시인을 배출하기 어렵다는 서울대 풍토에서 시인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하고 있는 오세영 시인.
문단 권력이 팽배한 풍토에서 줄서기를 거부하고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그의 시에는 평범한 자연을 통해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이 가득해 독자들에게 사유의 즐거움을 준다.
자연 떠돌며 고독한 삶을 관조하는 낭만주의 시인 오세영

오세영 시인(61)을 만나러 가는 날, 서울대 관악 캠퍼스에 봄비가 내렸다. 교문을 들어서자 가지치기 해놓은 단풍나무 가지마다 빗방울이 영롱하게 맺혀 있었다. 저것을 봄의 혼령이라 불러도 좋을까. 새싹들은 저 빗방울을 머금으며 찬란한 봄을 꿈꾸고 있을 터.
언젠가 시인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인간은 봄을 꿈꾸지만 그 꿈은 가을에 비로소 깬다”고 했다. 저렇게 물오르는 봄도 어느새 갈잎으로 변해 뚝뚝 떨어진다는, 떨어지는 그 모습이 비장하기조차 하더라는…. 그래서 우리네 삶도 사랑도 화려한 저 봄의 꽃들처럼 최선을 다하고 스러진다는, 그런 빈손이 아름답다고 말하던 오세영 시인.
그이의 연구실로 가는 길목에서 우산을 던져버린 채 비에 젖어 생각에 잠겨 있는 시인을 만났다. 호숫가에 선 뒷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영락없는 낭만주의 시인이라는 사실을 가늠할 수 있었다.
오세영 시인은 이 학교 국문과 61학번이다. 사실 이희승 등 국어학자들이 대를 이어온 서울대 풍토에서 문학의 끈을 놓지 않고 예까지 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이는 고답적인 서울대에서 문학을 포기하지 않은 채 현대문학을 가르치며 학자로, 시인으로 문단에서 그 위상을 확고히했다. 나아가 문단 권력이 팽배한 현실에서 줄서기를 거부하며 창작에 전념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즈음 젊은 비평가들이 영악하게 문단에 줄서는 풍토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는 대선배의 작품을 과감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김수영 시인의 ‘풀’이 시인의 죽음을 예견한 시라거나 민중시라는 해석을 거부하고, 또 무의미의 시를 주장하는 김춘수 시인의 작품에 대해서 좀더 긴 안목으로 관찰하고 싶다며 평가를 유보한다. 의미 없는 시는 시일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이는 산행과 여행을 즐긴다. 내편 네편을 가르지 않고 서로 어깨 걸고 나아가는 저 산하에서 삶과 철학을 체득한다. 관조하는 삶에서 철학의 메시지를 읽는다. 그런 탓에 해마다 여름과 겨울이면 백담사 등 산사에서 보름 정도 머물면서 시를 쓰며 보낸다. “한나절 산문(山門)에 기대어/싸락눈을 맞고,/한나절은 바람벽에 기대어/먼 산을 바래고,/한나절은 활활 타오르는 화주(火酒)로,/울음을 태우는” 탈속의 시인이 되기를 꿈꾼다.
눈밭에 빠지고 미끄러지고 쉬엄쉬엄 걸으면서 사색을 즐긴다. 낙엽 밟는 소리에 놀란 산짐승 한 마리가 절벽 바위 틈에서 물끄러미 그이를 쳐다보고도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면 짐승들도 악의 없는 사람은 금방 알아보는구나 싶어진다. 한동안 그 짐승과 마음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렇게 그는 산에서 산인 채로 이녁을 지우고 선시를 쓰곤 한다.
또한, 스스로 고독에 빠지고 고독에 절망한다. 어차피 삶은 소멸이다. 산정에 외로이 누운 묘지 하나가 징표로 서 있지 않던가. 그러나 소멸은 생성을 꿈꾼다. 풀이 죽어 두엄더미가 되고 두엄더미가 썩어 다시 풀뿌리를 키워내듯이 말이다. 그렇게 자연을 노래한다는 면에서 그이는 자연주의자이기도 하다. 자연에서 삶의 절망과 번뇌를 문지르며 희망을 캐는 모더니즘적 서정시인이다.

자연 떠돌며 고독한 삶을 관조하는 낭만주의 시인 오세영

오세영 시인은 산행과 여행을 즐기며 자연속에서 느끼는 철학을 시로 승화시킨다.


시인은 지난 겨울 문우들과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해에도 1천5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실크로드 번성기 과거로 시간을 거닐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열기를 뚫고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의 초원지대를 지나 중국의 끝이자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관문인 무스타크산(빙산)까지 다녀왔다. 눈이 녹아 만들어진 빙산호라는 호수 주변에는 태고의 암벽과 만년설이 어우러져 장관이었는데, 이 광경을 보고 ‘파미르’라는 미발표 시 열 편을 썼다.
그이는 나무 한 그루 없는 기이한 바위섬, 텅 빈 사막, 자연의 경이감 앞에서 삶의 덧없음을 느꼈다. 인생무상이라…. 연륜이 쌓일수록 이별하는 우리네 삶. 그래서 “참다운 소유는 빈 그릇”이라고 노래한다. 무소유의 삶을 노래한 그를 일러 평론가 이숭원은 “소멸의 미학과 비움의 철학” 정끝별은 “역설과 모순으로 일궈낸 동양시학” 김수이는 “이성적 사유, 고독과 사랑에 대한 낭만적 열정”이라고 규정했다.
오세영 시인은 이처럼 시에 동양사상과 실존주의적 정서를 깔고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존재와 허무 사이에서 모든 것을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삶은 있음과 없음. 있고 없음의 철학이란 곧 우주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이다. 그 안에 고독이나 사랑이 걸쳐 있다. 결국 고독과 사랑은 실존을 찾아가는 도구다.
이를테면 ‘그릇’이라는 시에서 그릇은 흙, 불, 물로 빚어진 것이다. 이 세상 생명의 근원이 그릇의 구성요소다. 하나의 고체에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다는 메시지다. 그런데 그릇은 이내 깨지고 만다. 인간의 만남도 이별로 회귀하며 결국 소멸하는 것.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도 균열이 생기면 부서지는 것. 하찮은 생활 속의 그릇이 시를 통해 철학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이는 흔한 일상의 단어들, 즉 인생, 사랑, 이별, 슬픔, 그리움, 장미, 벚꽃 등을 즐겨 쓰면서 소심하고 연약한 정서에 머물지 않는다는 장점을 소유하고 있다. 체험적 메시지가 함축적이면서 날카롭다. 그래서 때로 이 시대의 자본과 문명 이기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기도 한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아메리카의 사료를 먹고 있다… 음식의 독재, 자본의 길들이기”라고 단언한다.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들어올리던 젓가락 문화,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정겹게 천천히 즐기던 우리의 식문화를 앗아가버린 햄버거. 이질화되고 기계화된 문화 속에 갇힌 우리네 자화상을 몇개 시어로 묘사하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목에 건 휴대전화에 대해서도 “오늘도 외출을 하면서/개띠처럼/목에 휴대폰을 건다”라고 묘사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부패상과 인간상실을 꼬집는 감성적 지식인이자 시인, 학자로서 그는 오늘도 스스로 절망하면서 실존을 터득하고 있다.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것도 그이의 시의 매력이다. 시인은 버려진 유리병에서 생명을 찾고 희망을 노래한다. “버려진 것이 아니다./뒹구는 유리병,/그 공간에도 별은 뜨고/가슴은 비어” 있다고 노래한다. 하찮은 유리병에 별이 뜬다? 유리병은 곧 우주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유를 창조한다. 닫힘이 아니라 열림의 세계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가야 할, 우리들이 꿈꾸어야 할 세상이기도 하다.
문학적 재질 키워준 외갓집 분위기
시인은 전남 영광에서 출생했다. 출산후 백일 때까지 선친의 고향에서 머무르다 외가인 장성으로 가 월평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다. 외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 것은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다. 아버지가 서울 경성공전 재학생으로 졸업 때까지 어머니를 친정에서 머무르게 했는데, 며느리 시집살이를 안타까워하는 외조모의 배려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어머니가 23세 되던 해 전염병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에게는 결혼 2년 만의 슬픔이었다. 어머니는 그후 오랫동안 심장판막증을 앓으며 고생하시다가 시인이 아직 결혼도 못한 30세 때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 수발 한번 못해드리고 이승을 떠나게 한 것이 깊은 한으로 남아 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논에서 메뚜기 잡는 일을 즐겨 했다. 그 논둑길을 달리던 상쾌한 날들을 잊을 수 없다. 어느날에는 조무래기 사내들이 뱀을 돌팔매질로 잔인하게 때려 죽이는 모습을 본 후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할머니는 “하찮은 미물이라도 죽이면 안된다”고 소년 세영을 타일렀고, 그후 그이의 어린 자식들은 아버지 영향을 받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성묘 때 방아깨비를 잡아 가지고 놀다가 아버지 오세영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뒤 날려보낸 일도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그이는 어릴 적부터 나룻배로 영산강 지류인 황룡강을 건널 때마다 시퍼런 물굽이를 보며 죽음의 유혹이나 저승을 떠올릴 정도로 물을 무서워했다. 지금도 해수욕장에 가면 가슴보다 깊지 않은 안전지대를 알아놓은 후에야 물장난을 할 정도다. 이런 고질병이 생긴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강물에 빠져 익사 직전에 구출된 사건 탓이다.
마을 앞에는 일반인 출입이 봉쇄된 나환자들만이 사는 섬이 있었다. 무성한 아카시아 숲을 이룬 아름다운 섬이었다. 어느날 이 섬에 호기심이 발동해 친구와 헤엄쳐 건너간 순간 숲속에서 험상궂은 두 사나이가 불쑥 나타났다. ‘문둥이가 사람 잡아 먹는다’는 말이 떠돌던 시절이라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는데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거룻배로 고기를 잡던 어부에 의해 목숨을 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읍에서 동냥질하고 돌아오는 불쌍한 나병환자들이었는데 왜 그렇게 놀랐던지 웃음이 절로 난다.

이때의 익사체험으로 인해 요즘도 냉수를 마시거나 머리를 감거나 할 때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생각해보면, 대개 좌절감이나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사색에 몰두하거나 시 창작에 고심할 때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에는 물과 불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이는 전쟁 때 광주로 피신, 광주 수창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린시절을 비교적 유복하게 보냈지만 전쟁중에 외가가 철저히 몰락했다. 이는 소년 오세영이 가난과 싸워 나가야 하는 운명의 예고편인 셈. 호남에서 기독 명문사학으로 불리는 전주 신흥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중2 때 양영옥 선생님을 통해 김소월을 알게 되고 모파상과 하이네를 접했다. 그것이 문학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과목 전공이었던 선생님은 다른 과목 선생님이 결강하면 으레 보강을 도맡았는데 자습보다는 책을 읽어주었다.
고교 때는 전주 시내에서 문학동인지를 만들어 활발한 문학활동을 했다. 그때 시인이 되고자 마음먹었다. 고교 1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아카시아’라는 작품이 장원이 된 것. 그의 문재(文才) 뒤에는 문장을 숭상하던 집안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호남의 명유인 하서 김인후 선생의 직계 후손인 외조부의 낭낭한 책 읽는 소리, 송강 정철 선생의 후손인 외조모의 가르침, 별당 마루에 앉으면 들려오던 대숲 바람 스치던 소리, 황룡강을 돌고 돌아가던 기적소리, 강촌의 저녁 냉갈, 학교 빨간 담장을 에워싸던 아카시아꽃 풍경 등등.
그이는 고3이 되어야 비로소 서울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외가 집안인 고려대학교에 가고 싶어했지만 워낙 가난해서 호롱불을 켜고 희미한 불빛 아래서 책을 읽으면 책에 시커먼 그을음이 맺히고 눈은 충혈돼 감기던 시절. 가난 탓에 장학금을 받기 위해 국학대(우석대)에 지원, 합격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재수를 해서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입학금 5천원은 중학교 때 은사인 양영옥 선생님이 절반을, 나머지 절반은 어머니 신혼 살림이자 아버지 유산인 화개 장롱을 팔아 마련했다.
대학시절에는 입주 가정교사로 숙식을 해결했다. 단 한번만이라도 남들처럼 밤거리에서 데이트하고 문학 친구들과 담론을 즐겼으면 하는 생각들이 굴뚝 같던 시절이었다. 졸업후 전주기전여고에서 국어 교사 생활을 했는데 그때 ‘혼불‘의 저자 최명희씨를 가르쳤다. 그 해 박목월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3년후인 71년 서울대 조교로 발령받아 10여년의 시간 강사 시절을 거쳐 충남대, 단국대 부교수를 지낸 후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학교 때 선생님 도움으로 서울대 입학
어느 문학인이 그렇지 않으랴만 오세영 시인의 성장기는 참 드라마틱하다. 삶의 굴곡이 많았으면서도 시가 투박하거나 구호성에 머물지 않고 시도 마음도 과묵하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와 낭만주의적 심상에 실존주의적 철학을 견지해나가는 매우 독특한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 시가 보이지 않는 미물에서 실존을 찾고 이를 가락으로 길어올릴 줄 안다. 또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감춰 은유할 줄 안다.
그만의 이 오묘한 시 기법이 만들어낸 시에서 이따금 한편의 그림이나 영화처럼 영상미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포구의 닻줄’이라는 시에서 “내가 맨발을 엷은 꿈에 딛고/안개와 불빛 속에 옷을 벗고 있을 때/말하라, 사랑이 은유를 타고 왔던가”라고 노래한다.
서커스장에서 줄타는 인생을 떠올리기도 하고 닻줄의 여백이 되는 푸른 하늘이나 바다를 떠올리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연상하게도 한다. 그 바다 그 하늘에는 수많은 날씨 변화와 뱃사람들의 희로애락이 펼쳐져 있기도 하다. 배와 포구를 잇는 그 줄을 타고 한 사람의 사랑이 건너온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대단한 장면의 연출이 아니겠는가. 너와 나의 사랑의 오작교, 텔레파시라고 부르자. 아니 우리가 영원히 배반할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의 탯줄이라고 부르자. 우리가 늘 부르고 찾는 저 희망의 아침을 위해서 말이다.

아침은
참새들의 휘파람소리로 온다.
천상에서 내리는 햇빛이
새날의 커튼을 올리고
지상은 은총에 눈뜨는 시간
아침은
비상의 나래를 준비하는
저 신들의 금관악기
경쾌한 참새들의 휘파람 소리로
온다.
(‘아침’ 전문)


여성동아 2003년 4월 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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