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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의 선택

남성 푸드 스타일리스트 된 탤런트 정신우

■ 글·최숙영 기자 (ary95@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 푸드채널 제공

2003. 03. 31

또각또각 칼질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드라마 '상도' 등에 출연했던 MBC 공채 탤런트 출신인 정신우가 남성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됐다. 최근엔 푸드채널 프로그램에서 '정신우의 요리공작소' 진행을 맡아 ‘요리사’로까지 나선 이 남자 이야기.

남성 푸드 스타일리스트 된 탤런트 정신우

남성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된 정신우(33)는 인터뷰 장소를 정할 때 굳이 ‘청담동’을 고집했다. 지난 3월3일 첫 방송된 푸드채널 프로그램 ‘정신우의 요리공작소‘에서 진행을 맡고 있는데 요리를 하면서 협찬받은 ‘그릇’들을 반납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릇들을 협찬해준 회사들이 모두 청담동에 몰려 있고 그것을 반납하는 데도 한나절이 걸리므로 ‘반드시’ 청담동에서 만나야 한다고 부득부득 우겼다. ‘탤런트’에서 국내에서 보기 힘든 남성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된 이 남자, 흥미가 느껴졌다.
“사람들을 만나면 백이면 백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뭐하는 직업이냐’고 물어요. 98년에 국내에 처음 소개가 돼서 아직은 많이들 모르는 것 같아요. 푸드 스타일리스트란 정확히 말해서 요리한 음식을 돋보이게 꾸며주는 직업이에요. 요리는 기본이고 테이블이나 공간 연출, 인테리어, 파티 문화까지 알아야 하죠.”
그런 까닭에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아는 것도 많아야 하지만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야 한다. 정신우 역시 요리는 물론 사진, 재봉, 꽃꽂이까지 잘할 뿐 아니라 서울의 20여 군데나 되는 재래시장들도 한눈에 다 꿰고 있다. 직업상 요리 재료를 많이 사다보니 시장에 자주 갈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제과제빵 제품을 많이 파는 방산시장이나 천 종류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 광장시장에 매일 간다고 한다.
“점점 아줌마가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2남1녀 중 장남인데 아줌마들처럼 겨울이면 김장김치를 담가요. 그게 벌써 5년째예요. 아버지께서 친구분들을 모시고 집에 오면 어머니를 대신해 제가 술안주도 만들어드리는데 아버지 친구분들이 더 좋아하세요(웃음).”
며칠 전에는 충격적인 얘기도 들었다. 요리 프로그램 촬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설거지 등을 하며 일을 보조해주는 아줌마가 대견하다는 듯이 그의 등을 두들기며 “맏며느리감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자들이 그를 보고 여성성이 강하다고 해서 ‘언니’라고 부르긴 해도 ‘맏며느리감’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기에 “진짜 충격을 받았다”며 하하하, 웃는다.
순간 궁금한 것이 있었다. MBC 공채 탤런트였던 그가, 동기들 중에서 ‘베스트셀러극장‘ 등에 최다 조연으로 출연할 정도로 연기자로서 인정을 받았음에도 왜 갑자기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됐을까.
“연예인들이 수입이 일정치 않으니까 부업을 많이 하잖아요. 제 눈에는 그게 별로 안 좋아 보였어요. 저는 98년 연기자가 되기 전에도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레스토랑 사업을 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러던 차에 99년인가, 식도락 동호회에 가입을 하게 됐죠. 거기서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2000년부터 2년 동안 유명한 요리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요리 공부를 하고 푸드 스타일리스트 전문학원에서 과정을 밟았어요.”
그런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음식 전시회 등의 행사로 요리학원 수강생들과 같이 지방에 내려가면 호텔방을 하나만 잡기 때문에 남자인 그가 잘 곳이 없었던 거였다. 그런 날이면 컴컴한 옷방에서 쭈그려 자고, 씻을 때도 여자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화장을 지운 맨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며 여자들이 그나마 옷방에서조차도 못 나오게 할 때면, 씻지도 못하고 그냥 자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여자들의 영역에서 남자인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정신우는 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받아들였다. 남자가 없기 때문에 실력을 인정받으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참 욕심 많은 남자다.

남성 푸드 스타일리스트 된 탤런트 정신우

그는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된 후로 아줌마가 돼가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 일이 연기보다는 훨씬 창의적이에요. 내가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보기 좋게 테이블 세팅을 하는 일이잖아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3가지 조건 중에 하나래요. 음식, 사랑, 가족 중에 하나만 충족이 돼도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고 하던데 저는 그 중의 하나를 직업으로 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에요.”
푸드채널 프로그램 ‘정신우의 요리공작소‘뿐만 아니라 EBS ‘황현정의 최고의 요리비결‘과 잡지 등에서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자신이 테이블 세팅을 해놓은 걸 보고 사람들이 예쁘다고 감탄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또 그럴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인다.
“물론 체력적인 소모가 많긴 해요. 요리에서부터 테이블 세팅까지 혼자 다 해야 되니까 시간이 많이 걸려요. 테이블 위에 놓을 꽃장식만 하더라도 꽃을 사오고 예쁜 화병을 구해서 보기 좋게 꽂아야 하니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직업이에요.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된 후로 일에 쫓겨서 친구들도 제대로 못 만났어요. 스키장을 안 가본 지가 5년이 됐고 여름에 바다를 안 간 지가 3년이 됐나 봐요. 제 개인 생활이 없어진 셈인데 그래도 저는 만족해요. 왜냐면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2001년 MBC 드라마 ‘상도‘를 끝으로 연기는 잠시 휴업중이다.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피곤한지 그의 입술이 다 부르텄다. 그는 올여름부터 모델 일을 시작으로 연기를 다시 할 계획이고, 내년에는 요리학교에서 일식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 한식, 중식, 양식은 다 할 줄 아는데 일식만 유독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사람들은 제가 집에서도 밖에서처럼 아주 근사하게 요리를 해서 먹을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집에서는 고추장에 밥 비벼서 대충 먹거나 귀찮을 때면 사발면에 김치 하나 놓고 먹을 때도 많아요. 직업이 푸드 스타일리스트인데 집에 와서까지 요리를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 말과 함께 또 하하하, 웃는 정신우. 그의 가방을 열어보았더니 각종 요리에 관한 책자며 맛집 정보를 적은 노트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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