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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김수미 ‘아주 특별한’ 고백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김순희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3.31 15:07:00

‘일용엄니’ 김수미가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는 고백 에세이를 발간했다.
2년 동안 ‘빙의’에 시달리며 ‘사람 같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왔다는 그가
그동안의 투병생활과 ‘원미경의 남자’인 ‘이창순 PD’를 짝사랑했던 일,
최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최진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김수미 ‘아주 특별한’ 고백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 20년이 넘도록 ‘일용엄니’로 살아온 탤런트 김수미(54)가 최근 발간한 자신의 고백 에세이의 제목이다. 책 제목만으로도 그동안 그에게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말 막을 내린 드라마 ‘전원일기‘를 눈여겨본 시청자라면 3년전부터 일용엄니가 ‘예전의’ 생기발랄한(?) 수다쟁이 노인네의 모습이 아니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간 방송가에는 김수미를 두고 ‘알코올 중독이다, 중풍이다, 미쳤다…’는 소문들이 끊이지 않고 떠돌아다녔다. ‘전원일기‘ 홈페이지에는 ‘일용엄니가 이상해요, 어디 아픈가요’라는 질문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그래요. 2년 동안 미쳐서 지냈어요. 가족들도 제가 미쳤다고 인정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빙의(다른 영혼이 몸에 들어와 다른 인격을 형성하는 현상)’를 앓았어요. 빙의를….”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빙의 환자로서 겪어야 했던 신비한 체험과 고통을 비롯해 자살시도 경험에 대하여 자세히 털어놓았고 또 기 치료와 구명시식을 통해 빙의를 극복한 힘겨운 과정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그가 정상인의 생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4년전, 고부간이었지만 ‘각별했던’ 시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운명을 달리하면서부터다. 사고의 원인은 자신의 차인 BMW의 급발진에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제 차에 치여서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잖아요. 제 운전기사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동안 시어머니가 차에서 내리셨죠. 기사가 차를 빼려고 할 때, 시어머니가 뒤쪽 담벼락 끝에 서서 ‘오라이, 오라이’하시며 뒤를 봐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굉음을 내면서 튕겨나가 담벼락 앞에 서 있는 시어머니를 덮친 겁니다.”
뜻하지 않게 시어머니를 잃은 그는 만사가 귀찮아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가서 죽어버리고만 싶었다고 한다. 드라마 섭외가 들어왔지만 출연중인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할조차도 빼달라고 할 형편이었다. 세수하는 것도 귀찮고, 물 마시러 주방에 가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였다. 하루 종일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고 침대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워만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샤워를 안했는지 머리를 긁으면 손톱 밑에 까만 때가 낄 정도였다고 한다. 2001년 봄, 그의 몸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전에는 혼자 먹는 점심도 한정식집에서 먹는 것처럼 있는 대로 다 차려놓고 먹었는데, 먹는 것도 귀찮아서 1년4개월 동안 아침은 굶고 점심, 저녁에 만두 다섯개씩 먹고 살았어요. 증상이 심해지자 샤워는커녕 한달째 속옷도 안 갈아입고 살았죠. 이런 저를 가족들이 병원에 입원을 시켰는데 사나흘 동안 모든 검사를 해도 갑상선 외에는 다 건강하다는 진단이 나왔고, 정신과에서도 갱년기 우울증일 뿐 그리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해서 일주일만에 퇴원했어요.”
하지만 별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증상은 점점 악화됐다. 정신은 멀쩡한 상태였지만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아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타인에 의해 대소변을 받아내는 날이 허다했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고 잠에서 깨면 심장 뛰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손바닥으로 가슴을 쳐댔던 날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빈 속에 소주를 커피잔에 가득 따라 마시고 나서야 심장이 가라앉았다. 그런 것이 한잔이 두잔으로 늘어나고 두잔이 한병으로, 한병이 두병으로 늘어났다.
“매일 소주 두병으로 살았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집에 있는 양주며 와인까지 다 갖다버리고, 남편은 기자들의 눈을 피해 저를 한 대학병원에 다시 입원시켰어요.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입원실 앞에 경호원을 배치시킨 후 MBC 제작부장을 만나서 ‘아내를 ‘전원일기‘에서 빼달라’고 부탁했대요. 하지만 ‘완전히 뺄 수는 없다’는 제작진의 말에 야외촬영에서 제외시키고 대사를 줄이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나 봐요.”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김수미 ‘아주 특별한’ 고백

그런 상황에서 방송가와 기자들 사이에 김수미의 와병설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그의 남편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맞다. 떠도는 소문대로 아내가 가끔씩 미친다. 두달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해 갖은 검사를 다 해봤지만 의학적으로 밝혀낸 게 없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들이 있고 이제 스물세살이 된 딸아이도 있다. ‘김수미가 미쳤다’는 기사가 나가면 신문이 조금 더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자식들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면서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꼬박 2년 동안 두문불출했어요. 큰오빠가 죽기 전 ‘수미가 보고 싶어. 수미 보내 줘’라고 애원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저는 만사가 귀찮다며 병문안을 가지 않았고 심지어는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어요.”
가족들은 미국 휴스턴에 있는 그의 사촌오빠(재미 핵의학박사)에게 건강상태를 알렸다. 그의 진료기록과 의사들의 소견을 종합해본 결과 내려진 병명은 포제션(possession). 즉 ‘영혼이나 강력한 힘, 혹은 절대적인 신의 영향으로 새로운 인격이 나타나서 전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하게 되는 질병으로, 그대로 두면 폐인이 되거나 자살을 한다. 운동도 안하고 음식 섭취도 제대로 하지 않아 암과 같은 질환에도 잘 걸리는 이 병은 아직까지 과학적인 치료 방법이 발견되지 않아 종교적인 방법이나 영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는 게 전부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가족들은 절망 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2001년이 지나갈 무렵 김수미는 문득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였다. 자신이 살고 있는 3층 빌라에서 떨어져 봤자 죽지 않고 병신만 될 게 뻔했고 쥐약이나 농약을 먹으면 고통이 너무 심할 것 같아 포기했다. 한강 물에 몸을 던지는 것도 무서워서 싫었단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그는 권총으로 자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원일기‘ 촬영중에 잠시 쉬느라 들렀던 양촌리의 파출소가 생각난 그는 경찰들이 차고 있던 권총을 떠올렸다. ‘전원일기‘ 야외촬영 녹화 때 ‘거사’를 치르기로 작정했지만 드라마 내용상 아파서 누워있는 그에게 파출소 인근에 외출하는 신은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권총자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안방 화장실에서 목을 매어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화장실 천장에 달려있는 샤워커튼 봉에 줄넘기하는 줄을 묶고 의자 위로 올라가 목을 맨 후 의자를 걷어차면 될 것 같았어요. 줄자를 찾아서 의자의 높이를 재고 일하는 아줌마에게 운동을 하겠다며 줄넘기 줄을 찾아달라고 했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죽으려고 아침에 식구들이 나가면 아줌마에게 변비약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후 죽으려고 했죠.”
자살을 결심한 그는 눈을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김)혜자 언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언니, 만약에 내가 언니보다 먼저 죽으면 내 무덤가에 나팔꽃씨 뿌려줄 거야?’라고 물었더니 ‘그래, 꽃씨 한 가마니 사서 뿌려줄게’라고 하더라고요. 언니에게 ‘자살할 것’이라고 했더니 ‘너 만날 자살한다고 그랬어. 말로만 그러지 말고 실천에 옮겨 봐’라고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언니는 제가 죽기로 결심한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어요. 울먹이며 전화를 받은 언니가 그 새벽에 우리집으로 온다기에 그만두라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죠.”
밤을 꼬박 새운 그는 가족들이 외출할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른 아침 남편이 한통의 전화를 받더니 그에게 코트를 입히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고 한다. 자살할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 그는 차를 타고 가면서 악을 써댔다. 남편이 데려간 곳은 기 치료를 해주는 곳이었다.
“아랍의 왕실에서 기 치료를 한다는 분에게서 두번째 기를 받는 순간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어요. 기를 받고 있는 중이라 어지간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죠. 변기에 앉으니 튀밥을 튀길 때처럼 ‘펑’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변기에는 새까만 그을음 같은 게 묻어 있었고 마른 나뭇잎같이 자잘한 것들이 둥둥 떠 있대요. 열번 정도 기를 받은 후 집에 돌아왔고 그후 사흘 동안 기 치료사가 제가 있는 곳으로 기를 보낸다는 시각에 맞춰 좌선을 한 채 10분 동안 기를 더 받았어요.”
기 치료를 마친 다음날 아침, 2년 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그가 말을 하고 흐릿했던 눈동자가 또렷해지자 믿어지지 않는 듯 ‘얘기를 해봐라, 노래를 불러봐라, 일용엄니 대사를 해봐라’ 하며 법석을 떨었다.

“남편은 정상인이 된 저를 보더니 안방에 들어가 집안이 떠나가도록 울더라고요. 2년 동안 제 모습을 지켜본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남편은 제가 자살할까 봐 사업까지 접고 스물네시간 제 옆에 붙어 있었어요. 남편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으면 ‘우리 같이 죽자. 그동안 많이 즐기고 살았으니 같이 죽자. 강원도 쪽으로 가면 벼랑도 많으니 거기서 죽자. 다들 교통사고인 줄 알 거야’라면서 죽자고 합디다. 아줌마가 그러는데 제가 2년 동안 사계절 내내 똑같은 옷을 입고 살았다고 해요.”
그는 지난해 봄 기 치료를 받고 몸이 좋아질 때까지 자신이 ‘빙의’를 앓고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기 치료를 받고 몸이 괜찮아져서 뛸 듯이 기뻤던 즐거움도 잠시, 서너 달 후부터 눈에 모래가 낀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눈물샘도 마르지 않았고 시력도 정상이라는 검진결과가 나왔지만 고통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어느날 아들 방에 들어갔는데 아들 방에 있던 사진 속의 시어머니가 나를 노려보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노려보는지 귀신처럼 느껴지면서 무서워서 액자를 창 밖으로 던져버렸어요. 또 제가 미쳤다고 할까 봐 아무에게도 이런 얘기를 못했죠. 사진 속의 시어머님이 늘 저를 노려보고 있는데 얼음장 같은 한기가 빠져나오더니 제 얼굴에 닿는 것 같았어요. 이런 현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고민하던 중 묘심화 스님이 쓴 ‘빙의‘라는 책을 읽고 혹시 빙의가 아닐까 싶어 스님을 찾아갔어요.”
서울 구기동에 있는 자비정사를 찾은 그를 본 묘심화 스님은 대뜸 “눈에 빙의가 아직 안 빠졌네요”라고 하더라는 것. “시어머님이 왜 나를 노려보느냐”고 묻자 스님은 “억울하게 죽은 혼령이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떠돌다가 가장 애착이 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붙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친정부모님, 우리 형제 셋, 시댁식구들, 2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시누이 아들 이름까지 다 적은 뒤 한이 많은 영가(영혼)를 불러낸 뒤 달래서 보내는 퇴마의식을 치렀어요.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날 이후로 무섭게 노려보던 사진 속의 시어머니는 다시 웃고 있었어요.”
기독교 신자인 그는 “왜 목사님을 통하지 않고 스님을 통해 빙의를 치료했는지 나도 몹시 궁금하고 불가사의하다”고 털어놓았다. “빙의는 심한 우울증과는 확연히 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그는 연예인으로서 선뜻 털어놓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드러낸 이유가 “빙의를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다수의 빙의환자와 가족들은 자신처럼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지난해 5월경 ‘빙의’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는 ‘전원일기‘가 끝난 이후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하는 월요일이 두려워서 앉아 있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어 지난 연말 인도여행을 떠났다.
“‘전원일기‘에 출연하는 22년 동안 발목에 족쇄를 채운 사람처럼 맘놓고 여행 한번 제대로 가지 못했거든요. 두달 전 인도여행에서 돌아와 밀린 신문을 보니 최진실 기사가 신문 1면을 도배하고 있더라고요. 최진실과 조성민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공방을 벌이는 꼴이었어요. 헤어져도 얼마든지 깨끗하게 헤어질 수 있는데…. 진실이가 계속 가정을 이루면서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공인도 사람이죠. 꽉 끼는 구두를 신고 산에 올라간다고 생각해 봐요. 산 정상에 다이아몬드가 널려 있어도 신발을 벗어던지고픈 마음이 먼저 들게 될 겁니다.”
7년 전쯤 최진실이 흰 장미 50송이를 들고 상담차 그를 찾아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먹고 살아온 밥그릇 수만큼 온갖 지혜를 짜고 또 짜서 최진실의 고민에 대해 나름대로 처방전을 내려줬고 일은 잘 해결이 되었다는 것.
그후 빙의에 시달려 최진실의 결혼식에도 못 간 그는 “예전의 ‘나’로 돌아왔으니 이젠 최진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진실아! 너는 공인이다. 유교주의 국가인 우리나라 스타는 할리우드 스타와는 다르단다. 만약 내가 너라면 이때 확 내숭떨겠다. ‘내가 환희 아빠가 방황할 만한 원인을 제공했다. 운동선수 아내로서 내조를 못했다. 하지만 두 아이를 아빠 없는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 다 내 잘못이다”라고.

“진실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 있어 꼭 해주고 싶은 말 있다”
“오래전에 저 역시 이혼을 하려고 법원에 간 적이 있어요. 첫아이가 네살 때였고 진실이처럼 둘째아이를 임신(8개월)한 상태였는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알게 됐고, 출산을 한 이후에 이혼을 하려고 작정했죠. 아들이 첫사랑의 여자와 바람난 사실을 알게 된 시어머니는 혈압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유복자라고 오냐오냐, 키운 내가 잘못이다’라면서 살고 계시던 아파트와 신사동 네거리에 있는 3층짜리 작은 건물의 명의를 내 앞으로 옮겨놓으셨어요. 그러면서 ‘너는 내 아들과 살기에는 과분하다, 좋은 남자 만나서 보란 듯이 잘 살아라’고 하셨죠.”
하지만 그런 시어머니의 말에 일단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좀더 지켜보기로 한 그는 둘째를 낳은 후부터 방송일이 쏟아져 들어와 차일피일 이혼을 미뤘다. 그 일로 인해 부부싸움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그의 속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었던 남편의 ‘여자’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장장 2년을 끌었던 ‘대하드라마’는 끝이 났고 이혼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저는 후배들이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어 찾아오면 급하지 않으니 일단 이혼을 서두르지 말라고 충고를 해요. 옛말에 부부는 전생에 원수였던 사람들끼리 만나 한과 오해를 풀며 살아가는 거래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내려 평생 후회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어쨌든 저도 악몽의 세월을 보내고 나니 다행히 남편이 돌아왔어요. 당시에 이혼을 했더라면 금세 재혼했을 것이고 자식 있는 여자가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는 힘들었겠죠.”
‘그해 봄…‘을 통해 그는 한때 탤런트 원미경의 남편인 이창순 PD를 사랑한 적이 있다고도 털어놓았다. ‘전원일기‘의 조연출을 맡았던 이PD가 원미경과 결혼하기 직전인 2년여 동안 ‘짝사랑’을 했다는 것.
“이 사실을 이PD나 (원)미경이가 아냐고요? 어∼휴, 몰라요. 처음 밝히는 건데. 아직 책을 안 봐서 그런지 두 사람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네요. 이제 와서 안다고 한들 어쩔 거예요. 손 한번 안 잡고 나 혼자 좋아하다 만 사랑인데….”
밝게 웃는 얼굴에서 수다쟁이 ‘일용엄니’의 모습이 되살아난 그는 “빙의를 앓았던 오랜 시간 동안 제 병수발을 위해 사업도 포기하고 돌봐준 남편에게 한없이 고맙다”면서 쑥스럽지만 “남편과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면서 그가 좋아한다는 나팔꽃처럼 활짝 웃었다.凍

2년 동안 가족들 사이에서도 ‘미친 사람’취급받으며 살아왔던 비정상적인 삶을
이제는 훌훌 떨쳐버렸다는 김수미.

여성동아 2003년 4월 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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