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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애끊는 사부곡

독방 수감중인 ‘서방파’ 보스 김태촌 아내 이영숙 통곡사연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3.03.05 18:04:00

남편은 폐암 말기, 아내는 자궁경부암 말기. 그러나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병실이 아니다.
그것도 남편은 이중문으로 갇힌 교도소 독방에서 건강악화와 정신이상을 호소하고 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병든 몸을 이끌고 왕복 스무시간 가까이 걸리는 교도소로 향한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방파 보스 김태촌과 99년 옥중 결혼한 아내 이영숙씨의 안타까운 사연 독점 취재.
독방 수감중인 ‘서방파’ 보스 김태촌 아내 이영숙 통곡사연

남편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울먹이는 이영숙씨.


“우리 부부는 지금 하루하루가 사형대에 서 있는 심정입니다. 제 소원이 있다면 단 하루만이라도 남편 곁에서 약봉지와 물을 건네주며 병간호를 하는 것입니다.”
70∼80년대 전국 암흑가를 평정했던 서방파 보스 김태촌씨(56)의 아내 이영숙씨(55)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눈물부터 쏟았다. 99년 옥중결혼으로 화제를 모은 이후 좀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4년여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인 그는 당시보다 무척 수척해 보였다. 또한 손과 발이 부어 있는 등 한눈에도 건강이 안 좋다는 게 느껴졌다.
“2000년에 병원에서 자궁경부암 말기 판정을 받고, 그해 3월29일 수술을 했어요. 자궁뿐 아니라 방광에도 암이 전이돼 절반 정도를 잘라냈죠. 그래서 소변 배출이 안 돼 호스를 끼우고 생활하고 있어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씨는 병원에 입원해 간병을 받으며 몸을 요양해야 할 중환자인 셈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추스를 여유가 없다. 자신보다 더 심각한 상태인 남편을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김태촌씨는 지난해 12월 경북대병원에서 내과검진을 한 결과 위염이 심하고, 폐기능과 간기능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받았다. 또한 정신과의사는 “불안, 초조, 심장통증, 호흡곤란, 손발마비, 숨이 멎어 죽을 것 같은 공포 등 정신이상을 호소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89년부터. 70∼80년대 ‘양은이파’ 조양은, ‘칠성파’ 이강환 등과 함께 국내 암흑가를 주름잡았던 ‘범서방파’ 보스였던 김태촌씨는 86년 인천 뉴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을 습격한 사건에 연루돼 88년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그러던 중 89년 폐암말기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연세대학병원에서 왼쪽 폐를 완전히 절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몸을 채 추스르기도 전인 90년 ‘범죄와의 전쟁’으로 1만5천명의 조직폭력배가 검거될 때 폭력단체구성 및 협박공갈, 외화 밀반출 등의 혐의로 구속돼 징역 10년에 보호감호 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98년엔 옥중에서 폭력조직 재건,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이 추가되었다. 결국 조양은, 이강환 등 굵직한 보스들을 비롯 ‘범죄와의 전쟁’으로 구속되었던 조직폭력배 1만5천명이 다 풀려난 지금 그만이 감옥에 남아 있다.
암은 완치란 게 없고, 언제 재발될지 모르는 병이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몸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청송교도소에 수감중인 그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다. 결국 2001년 4월 다시 몸 상태가 악화돼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야 치료시설이 있는 진주교도소로 옮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그가 수감되어 있는 건물에서 교도소 반입금지 물품인 현금, 담배, 유선전화기 등이 발견되고 호화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파문이 일면서 다시 청송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그후 그는 독방에 갇힌 채 병마와 싸우고 있다.
남편은 폐암 말기, 아내는 자궁경부암 말기 투병
“남편은 지금 창고를 개조해 만든 독방에 있는데, 창문도 없고 문도 이중으로 되어 있어 환기가 거의 안돼요. 폐 질환 환자에겐 맑은 공기가 생명인데, 치명적이죠. 제발 환기가 잘 되는 곳으로 옮겨달라고 간청해도 진주교도소 사건 때문에 안 된다는 거예요.”
이씨는 “더 큰 문제는 남편을 관리하는 교도관마저 없다는 것”이라며 답답함을 하소연했다. 이중문으로 갇혀 있어 철저하게 고립된 그에게 외부세계와 연결된 유일한 끈은 인터폰. 따라서 인터폰이 고장나면 외부와 연결할 길이 없다. 심장발작이나 호흡곤란이라도 일어나면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게 이씨의 걱정이다.

독방 수감중인 ‘서방파’ 보스 김태촌 아내 이영숙 통곡사연

김태촌이 형님으로 모시는 김두한 후계자 조일환씨가 이씨를 위로하고 있다.


“산소호흡기를 항상 옆에 놓고 살 정도로 중병을 앓는 환자예요. 죗값은 당연히 받아야 하겠지만 재소자라도 인권적인 차원에서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없다면 이중문이라도 떼어내 숨이라도 편히 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는데도 교도소측은 묵묵부답이에요.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방치해 병세가 나날이 악화되도록 하는 것은 재소자에 대한 인권유린 아닌가요?”
그는 지난주에 면회를 갔는데 동상에 걸려 벌겋게 달아오른 남편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여름이면 무더위에 지치고 겨울엔 혹한에 시달리는 폐암환자의 고통이 그의 말을 통해 진하게 전해왔다.
이씨는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슴앓이를 하지만 이씨의 몸 상태 역시 자궁경부암 후유증으로 매달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할 정도로 말이 아니다. 방광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비뇨기과에 들러야 하고, 자궁경부암이 재발하지 않았는지 체크하기 위해 산부인과에도 들러야 한다. 또한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 위에 이상이 생겨 내과에도 들러 몸 상태를 살펴보아야 한다. 의사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라고 권유하지만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청송감호소 독방에 수용돼 몸을 웅크리고 기침하고 지내는 남편을 생각하면 혼자 입원하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차가운 독방에서 외롭게 투병하는 남편 생각하면 눈물만
그는 매주 한번씩 청송교도소로 향한다. 8시간 걸려 도착해 또다시 2∼3시간 가량 기다리지만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 내외. 그마나 특별면회라도 되면 남편 손이라도 잡아보련만 이마저도 금지돼 투명 아크릴판 너머로 남편의 얼굴만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야 한다. 그렇게 천근만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8시간 걸려 집으로 돌아오면 가슴에 무언가 꽉 얹힌 것처럼 답답해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한다. 그리고 다시 면회를 가기 위해 몸을 추스르기를 반복한다.
“몸이 안 좋아 승합차를 타고 누워서 갔다가 누워서 와요. 그래도 갈 때는 남편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는데, 병으로 고생중인 푸석한 남편의 얼굴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눈물 범벅이 되고 말죠. 남편은 제가 암 수술을 받은 후부터는 힘드니까 자주 오지 말래요. 하지만 차디찬 감방에서 저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안 가요. 가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죠. 만약 면회를 가지 않으면 남편이 더 걱정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남편 걱정 안 시키기 위해 언제나 많이 좋아졌다고 웃으면서 말하곤 하죠.”
이영숙씨는 전직 가수다. ‘그림자’ ‘가을이 오기 전에’ ‘아카시아 이별’ 등의 히트곡이 있고 영화 에 출연하기도 했다. 가수 김상희 등과 함께 교도소, 고아원, 양로원 등 불우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서 표창까지 받은 경력이 있다.
그가 김태촌씨와 인연을 맺은 것은 96년 12월. 평소 봉사활동을 함께하던 교회 선배로부터 “청송교도소에 김태촌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교화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씨는 다른 재소자들에게 하듯 편지를 보냈고, 김씨로부터 답장이 왔다.
“처음엔 조직세계에 몸담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언론에 오르내리는 거물급이라는 것은 몰랐어요. 그런데 답장을 읽어보니 누가 이 사람을 폭력배라고 했을까 싶을 정도로 영혼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었어요.”
두 사람은 서신왕래를 계속했고, 늘어나는 편지만큼 애틋한 감정도 커져갔다.
“남편은 편지를 통해 부모님 이야기, 조직세계에 발을 딛게 된 계기 등 다섯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진솔하게 들려주었어요. 지금은 과거를 후회하고 있고 출소하면 성스럽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죠.”
연민은 우정으로, 다시 사랑으로 발전했다. 98년 11월 면회를 통해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부부의 연을 맺기로 합의했다. 그 소식을 듣고 이씨의 집에선 극심한 반대를 했지만 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사실 두 사람은 가정적으로 매우 불행한 편이었다. 김씨는 밤의 황제이면서 밤무대 가수와 10여년의 열애 끝에 결혼한 남다른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92년 청송교도소로 이감되자 변심을 한 아내가 당시 수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고 미국으로 도피, 현지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폐암이라는 시한부 생명으로 수감생활을 하던 그에게 이혼소송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이씨 역시 20대 후반에 사랑에 빠졌다가 아들 하나를 낳고 이별, 혼자 몸으로 아이를 길러왔다.

독방 수감중인 ‘서방파’ 보스 김태촌 아내 이영숙 통곡사연

김태촌과 옥중 서신교환을 하다 혼인신고까지 한 이영숙씨.


“처음엔 결혼 약속만 하고 남편이 출소하면 그때 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직계가족이 아니면 면회 자체가 어려웠어요. 결국 혼인신고를 먼저하고 결혼식은 출소 후에 하기로 했죠.”
이씨는 99년 3월31일자로 직접 혼인신고를 했다. 두 사람은 옥중 결혼식을 하려고 했지만 교도당국의 불허로 인해 무산돼 현재까지 식도 못 올린 채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세상사람들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는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조폭마누라’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시선을 대할 때면 힘들죠. 동네 사람은 물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남편에 대한 인간성을 모른 채 단지 조폭의 보스라는 것 때문에 저에게 거리감을 두는 사람도 있어요. 저랑 무척 친했던 사람까지 저를 멀리할 때는 가슴이 아프죠.”
주위의 냉대보다 더 힘든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일 것이다. 가수활동을 그만둔 후 시작한 건축사업도 IMF 이후 경제불황이 닥친 데다 남편 옥바라지 때문에 집중을 못 하다보니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남편에 대한 보고픔과 과로, 극도의 불안, 정신적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암까지 걸린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우린 부부로 살 것”
“지금도 몸이 안 좋아요. 호스를 끼운 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일을 하기도 힘들고…. 아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근근이 먹고살고 있죠.”
그에게 남편과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았느냐고 묻자 “전에는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엔 특별면회를 시켜주어 손이라도 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금지되었다”고 한다.
“면회를 갈 때마다 단 1분만이라도 둘이서 교도소 뜰이라도 걸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요. 아니, 단 둘만이 있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면회를 할 때 교도관 입회는 물론 녹음까지 해요. 인권침해가 너무 심해요.”
현재 이씨의 꿈은 김씨가 살아서 내년 10월에 출소해 한 이부자리에서 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신할 수 없다. 지난해 추가기소된 교도관에 대한 뇌물공여가 유죄로 확정되면 그만큼 더 살아야 하고, 보호감호 7년을 집행하겠다고 하면 정말 언제 나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남편이 언제 교도소에서 나올지도 모른다는 게 정말 막막해요.”
남편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었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이 사람이랑 살 것이고,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하고 살 거예요. 이 사람이 식물인간이 되면 등에 엎고 제가 쓰러질 때까지 함께 부부의 길을 갈 겁니다. 그 생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요. 남편이 있기에 제가 있고, 또 제가 있기에 지금 남편이 살아있다는 겁니다.”
김태촌씨 역시 이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모양이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땐 종이학을 접어 보내는가 하면, 이씨가 암 수술을 했을 땐 매일매일 편지를 보내 옥중에서나마 마음으로 간병을 했다. 그가 보내온 편지만 벌써 8백통이 넘는다.
“하루하루가 눈물이죠. 하지만 남편이 나온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가끔 꿈을 꿔요. 천길 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꿈을. 그럴 땐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울다 정신을 차리고….”
이씨와의 만남엔 김두한 후계자 조일환씨가 함께 동행했다. 조씨는 남들이 경찰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면회조차 가지 않을 때도 면회를 할 정도로 김태촌과 각별한 사이다. 그는 “김태촌이 지은 죄에 비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수천억원씩 국민의 혈세를 포탈하면서 각종 부정부패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된 정·재계 권력층 인사들은 몸이 조금만 아파도 보석으로 풀려나고 민간병원으로 이감돼 치료를 받게 해줍니다. 그런데 사람 하나 죽인 적이 없는 동생은 지금 말기암 환자인데도 16년째 감옥에 있어요.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고, 재소자도 최소한의 인권은 있는 법인데,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요.”
날이 많이 풀렸건만 인터뷰를 마친 후 부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이씨의 어깨가 무척 춥게 느껴졌다. 하물며 봄바람과 햇빛이 이중으로 차단된 독방에서 혼자 폐 질환으로 고통받는 김태촌씨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동아 2003년 3월 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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