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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장형일PD 사위에게 살해당한 딸을 가슴에 묻은 사연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김순희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02.28 17:36:00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는 SBS ‘야인시대’ 장형일 PD의 딸 살해사건이 지난 1월 21일 발생했다.
경찰이 살해범으로 체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위 B.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며 평소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인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야인시대’ 촬영에 임하고 있는 장형일 PD의 근황을 취재했다.
‘야인시대’ 장형일PD 사위에게 살해당한 딸을 가슴에 묻은 사연

딸의 죽음소식을 듣고도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촬영현장을 지켜 보는 이들마저 가슴아프게 했던 장형일PD.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장형일 PD는 지난 1월22일 경기도 부천의 ‘야인시대’ 오픈세트장에서 촬영 도중 딸이 살해당했다는 믿기지 않는 비보를 접했다. 경찰이 살해범으로 체포한 사람이 다름 아닌 사위라는 사실에 장PD는 할 말을 잃었다.
장PD의 사위 B씨(42)는 지난 1월21일 오전, 강남구 대치동 자택 안방에서 잠을 자던 부인 장모씨(34)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B씨는 경찰조사에서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죽였다”며 범행사실을 시인했다가 “죽이지 않았다”고 하는 등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B씨의 친구. 사건 다음날인 1월22일 B씨와 만나기로 했던 그는 약속장소에 B씨가 나오지 않은데다 휴대전화와 집 전화 모두 받지 않자 B씨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고 B씨의 집으로 향했다. B씨는 숨진 채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장씨의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장씨의 사인은 노끈에 의한 교살. 수사 결과 경찰은 현장에 있던 남편 B씨를 살해혐의로 체포했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B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평소 피해망상증 증상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가족의 진술에 따라 정신병력에 대해 조사도 벌였다”면서 “조사과정에서 진술할 때도 오락가락했으며 불안에 떠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사고 현장에는 ‘아내를 사랑한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고 싶다’는 문구가 쓰인 B씨의 일기장과 ‘아내를 사랑해서 같이 죽어야겠다. 저 세상에 가서 편히 살겠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다. B씨는 범행 후 문구용 칼로 자신의 왼쪽 팔목에 자해를 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두 사람 다 초혼에 실패한 B씨 부부는 5년 전에 재혼했다. 이들 부부는 평소 화목하게 지냈으나 수개월 전부터 남편 김씨가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면서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B씨 부부는 광고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커플’이었다. 대형 광고회사인 D사에 근무했던 B씨는 한때 한 자동차 회사의 광고를 제작하는 등 ‘잘 나가는’ CF감독이었고 살해된 장씨는 한 광고 대행사에서 조감독을 맡고 있었다. 몇 년 전 회사를 그만둔 B씨는 벤처기업에 손을 댔다가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자 그 일에서 손을 뗐다. B씨는 가끔씩 아내 장씨가 ‘수주’해온 영화홍보와 관련된 일을 했지만 그것도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B씨의 직장 동료였던 P씨는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아내’에 대해 겉으로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심리적인 부담이 컸던 것으로 안다.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정신을 갉아먹었을 것”이라고 했다.
P씨에 따르면 B씨는 평소 사람들에게 친절한 스타일로 예의가 깍듯했다고 한다. 영화감독을 꿈꾸기도 했던 B씨는 ‘물주(거액의 영화제작비를 대는 투자자)’를 만나 영화데뷔를 준비했지만 그것도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벌어진 살해사건 자체도 영화 같지만 두 사람이 사는 모습도 한편의 영화 같았다는 게 P씨의 말이다.
“두 사람 다 자기과시형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광고계 사람들은 입을 모았어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우리는 꼭 행복해야만 해’라고 되뇌이기도 하고, ‘우리는 너무너무 행복해. 광고계에서 우리처럼 행복한 부부는 없어’라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웃곤 했는데 어떨 땐 그 모습이 참 어색해 보였어요. 하지만 실제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죠.”

‘야인시대’ 장형일PD 사위에게 살해당한 딸을 가슴에 묻은 사연

드라마 ‘야인시대’의 한 장면.


B씨는 재혼 당시부터 건강이 몹시 안 좋았다고 한다. 허리 통증이 심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고 마사지를 해줘야만 했다는 것. 재혼 당시 장씨가 그 사실을 안 상태에서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B씨의 건강이 두 사람 사이에 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인은 아니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장PD의 가족일 것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은 장PD는 1월22일 오후 경찰서에 출두해 참고인 진술을 했다. 하지만 곧 진술을 마치고 돌아와 평소와 다름없이 ‘야인시대’ 오픈 세트에서 직접 연출을 맡아 출연진과 제작진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착한 사위였는데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야인시대’의 스태프 중 한명은 “처음에는 감독님에게 그처럼 큰 사건이 일어난 줄 몰랐다. 그냥 급한 일이 있어서 잠시 갔다 오겠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지 딸이 살해된 줄은 아무도 몰랐다. 누군가 자기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TV뉴스를 통해 알았지만 나중에 그 피해 당사자가 감독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연기자와 스태프들도 할말을 잊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개인적인 슬픔을 뒤로 한 채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은 ‘야인시대’의 게시판을 통해 장PD에게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그냥 사고도 아니고 살해를 당해서…. 그것도 사위에게서. 그 와중에 야인시대의 촬영을 끝까지 해내신 장형일 PD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야인시대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시청자들이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는 거 잊지 마시고 힘내세요.”(김은지)
“불의의 사고로 따님을 잃으신 장형일 PD님.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더욱 좋은 드라마로 슬픔을 잊으시길 바랍니다. 고인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신재호)
“멋진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에게) 선물하신 장PD님의 기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비보를 접하고도 ‘프로그램’을 우선으로 생각하시는 감독님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빠른 시간 내에 슬픔이 해소되길 바랍니다.”(박성현)
방송 관계자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상태. 장PD의 딸 부부는 지난해 12월31일 S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연출부문 특별상을 수상한 장PD를 축하하기 위해 등촌동 공개홀에 나란히 참석해 장PD의 소개로 방송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당시 장PD는 수상소감에서 가족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했고 “딸과 사위에게 감사한다”는 말도 덧붙이는 등 남다른 가족애를 과시했다.
SBS의 한 관계자는 “B씨가 장인인 장PD와 처가 식구들에게 ‘이보다 더잘 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아주 잘한 것으로 안다. 착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장PD도 사위 자랑을 잊지 않았는데…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촬영에 몰두하고 있는 장PD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했다.
“딸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고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라 알리기 싫었다”는 장 PD는 금요일(1월23일)까지 촬영을 마친 후 이틀 후 화장을 해 사랑스런 딸을 가슴에 묻었다. 예기치 않은 큰 사건을 당한 상태에서 슬픔을 끌어안은 채 시청자와의 약속인 ‘프로그램’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촬영현장을 지키고 있는 장PD와 그의 가족들이 하루빨리 아픔을 딛고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동아 2003년 3월 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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