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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청와대 국민참여수석 된 ‘여자 노무현’ 박주현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02.28 17:18:00

사상 최초로 정부와 국민이 쌍방향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노대통령의 실험정신이 담긴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 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박주현 변호사.
그는 ‘여자 노무현’으로 불릴 정도로 강직하고 소신이 뚜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연소 여자수석이 된 그의 소감과 각오.
초대 청와대 국민참여수석 된 ‘여자 노무현’ 박주현

강직하고 소신이 뚜렷해 ‘여자 노무현’으로 불리는 박주현 청와대 국민참여수석.


신설된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 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된 박주현 변호사(40)는 임명 당시 뜻밖의 인사라는 평가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가장 정확히 펼칠 인물이라는 평가가 공존했다. ‘여자 노무현’이라 불릴 만큼 직설적이고 자기 소신이 또렷하기 때문이다.
변호사 시절부터 사회활동을 해온 그는 2001년,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변호사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본격적인 사회참여에 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는 “젊었을 때 잠깐 노력해 얻은 자격증을 15년이나 우려먹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본격 기여하고 싶었다”고 말했었다. 옳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행동하는 그의 기질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97년 대선 때. 당시 그는 대통령 후보 초청토론회에 패널로 참여, 날카로운 질문과 후보의 답변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후 TV방송 토론에 자주 출연하는 것은 물론 시사 프로그램인 SBS 과 KBS 를 진행하며 논리적이고 탁월한 언변으로 시청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85년 사시 제27회에 합격, 88년 변호사가 된 그는 인권변호사의 대부로 불리는 고 조영래 변호사가 이끄는 시민합동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며 줄곧 참여 변호사의 길을 걸어왔다. 여성민우회, 여성단체연합, 경실련, 참여연대 등 대표적 시민단체에서 여성, 복지, 문화, 환경 등 다방면에 걸쳐 적극적인 법률활동을 해왔다.
그가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이 될 국민참여수석실을 책임지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게 청와대 인선에 참여한 신계륜 의원의 이야기다.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일관되게 시민단체의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봉사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의견을 편견 없이 볼 수 있고, 있는 그대로 보고해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높은 능력과 자질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입증하듯 박수석은 “당선자가 현재까지 국민 여론에 귀를 잘 기울이고 있지만 설사 듣지 않으려 하는 날이 와도 끝까지 붙들고 직언을 하겠다”고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1월27일 임명 소식을 듣고 소감과 각오를 듣기 위해 연락을 했다. 그는 “마음은 고맙지만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그림자일 뿐 자신이 앞에 나서서는 안된다고 들었다”며 정식 인터뷰를 사양했다. 대신 전화로 간단하게 소감과 각오를 들을 수 있었다.
“대통령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건 지난 1월23일이었어요. 전 정치를 하지 않고 사회평론가로 계속 남아 있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처음 제안을 받고 고민을 했어요. 과거에도 몇 차례 여러 정당으로부터 입당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평소 사람들에게 ‘참여하지 않은 자는 욕하지 말라’고 말을 하고 다녔거든요. 제가 한 말에 저 스스로 묶이는 꼴이 되었습니다(웃음).”

초대 청와대 국민참여수석 된 ‘여자 노무현’ 박주현

박주현 수석은 TV시사프로그램 <박주현의 시사토론>과 <다큐대화 21세기>를 진행했었다.


박수석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원으로 처음 만났지만 특별한 교분은 없었다”고 했다. 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에 노대통령이 출마하면서 부산으로 내려가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는 것.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노대통령측으로부터 “찬조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정치활동은 하지 않겠다”며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 국민참여센터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 오랫동안 그의 활발한 사회참여활동을 지켜보았던 노대통령이 1월23일 “국민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다”며 내정 사실을 통보했다.
박수석은 이번 발탁으로 최연소 여자수석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따라서 개혁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과연 노년과 장년층의 의견수렴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도 높다.
“제가 40대니까 아주 젊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여성이지만 여성문제 뿐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어리다’ ‘여자다’라는 부분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면 극복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겠죠.”
그가 맡게 된 국민참여수석실은 노무현 대통령이 각별히 관신을 갖는 분야다. 노대통령은 국내 선거사상 처음 실시된 국민참여 경선을 통해 후보가 됐고, 대통령선거 때는 국민참여본부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는 국민참여센터를 두었다. 그만큼 국민참여라는 개념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고, 자신의 대통령직 수행의 성패를 좌우할 정치적 실험으로 꼽고 있다.
“대통령께서 저에게 주문하신 내용은 국민과 정부가 쌍방향으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국민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좀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국민참여수석실은 단순히 시기마다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잘못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까지 제시하는 더욱 적극적인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국민참여센터에서 일반 국민들로부터 장관 후보들을 직접 추천받고, 정책 제안을 받는 것 등이 단적인 예인데, 앞으로 민원·정책 제안·인사 추천·부정부패고발·제도개선 등 국민제안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6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박수석은 전주여고 시절 3년 내내 한번도 전교수석을 놓쳐본 적이 없었고, 전주여고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수재’소리를 듣기도 했다. 대학 시절엔 법대학보인 ‘FIDES’ 편집활동을 하는 등 학생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그에 대해 대학 동기들은 “활발하고 씩씩했던 친구”로 기억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 그가 활동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그를 두고 “매사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름만 걸어두고 활동을 등한시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있는 남편 홍기태 판사(42)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취미는 피아노 치기.

여성동아 2003년 3월 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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