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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남자의 한국 사랑

한국을 배우기 위해 온 고(故) 안익태 선생 손자 미구엘 익태 안 기옌

“저도 애국가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한국 사람입니다”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02.28 17:14:00

애국가의 작곡가 고(故) 안익태 선생의 외손자 미구엘 익태 안 기옌이 3월부터 한양대 국제대학원에서 한국학과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밟는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스페인 마요르카의 고 안익태 선생 집에서 외할머니 로리타 안 여사와 단둘이 살았던 그는 할아버지 나라인 한국의 말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쓰던 휴대전화 벨소리가 애국가였다는 그는 할아버지에 대한 자부심과 한국 사랑이 참 대단했다.
한국을 배우기 위해 온 고(故) 안익태 선생 손자 미구엘 익태 안 기옌

첫인상은 전형적인 스페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얇은 쌍꺼풀에 위로 살짝 올라간 눈매와 짱구형 이마,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애국가 후렴구인 ‘우리나라 만세’를 매우 자연스럽게 부르는 모습을 보면 그의 몸속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는 속일 수 없겠구나 싶었다.
애국가의 작곡가 고(故) 안익태 선생의 외손자 미구엘 익태 안 기옌(Miguel Eaktai Ahn Guillen·26). 고향인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변호사와 발레릭 아일랜드대 조교수로 일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해왔던 그는 가족과 친구들을 고향에 남겨두고 홀로 한국에 왔다. 이유는 단 한가지. 할아버지 나라에서 한국의 말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다. 올해 봄학기부터 한양대 국제대학원에서 한국학과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밟는 그는 이 대학이 우수 외국인 학생에게 수여하는 국제장학금 프로그램에 선발돼 2년간 학비와 기숙사비, 생활비 등을 받으며 공부하게 됐다.
“세살부터 여섯살까지 한국에서 살았어요. 그때는 친구들과 한국말로 장난치며 놀았는데,스페인에 간 후로 완전히 잊어버렸죠. 저뿐 아니라 가족들 모두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는데, 이 모습을 보고 안되겠다 싶었어요. 그러던 중 좋은 기회가 닿아 이렇게 한국에 오게 됐죠. 물론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있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잊어버렸던 한국말을 되찾고 한국문화를 배우고 싶은 소망이 더 컸습니다.”
미구엘은 한국에 오기 전 고 안익태 선생이 살던 바로 그 집에서 외할머니 로리타 안 여사(83)와 함께 11년 동안 살았다. 완전한 스페인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이라는 할머니는 그에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고. 덕분에 미구엘은 마치 자신이 태어나기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한집에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는 “한국인들이 할아버지가 작곡가라는 사실만 알지 인간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며 “할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였다”고 강조했다.
“모든 한국인이 애국가를 부르고 작곡가 안익태를 존경하죠. 하지만 인간 안익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심지어 할아버지가 스페인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정말 애국자이셨다고 말씀하세요. 할아버지는 단 한번도 당신의 집을 소유하신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언젠가는 당신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죠(하지만 안익태 선생은 국내 음악계와의 갈등 등 여러가지 이유로 65년 스페인에서 일생을 마감했고, 그후 12년이 지난 77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한국을 배우기 위해 온 고(故) 안익태 선생 손자 미구엘 익태 안 기옌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살던 고 안익태 선생의 생전 모습(위). 고 안익태 선생의 가족들. 가운데 앉아 있는 할머니가 로리타 안여사,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미구엘이다(아래).


또 그는 안익태 선생의 애국심을 짐작하게 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했다. 콘서트를 할 때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소개하면 일제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당당히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고 밝혔던 일, 지난 36년 6월 애국가를 만든 후 그해 8월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 등을 찾아가 자신의 애국가를 열창했던 일 등을 열정적으로 말하는 그의 눈에서는 마치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미구엘은 가족 중에서 가장 안익태 선생과 닮았다고 한다. 할머니인 로리타 안 여사가 남편과 함께 사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번은 그가 이모와 크게 다툰 후 “조심해. 난 네 아빠야”라고 농담하면서 푼 적도 있다고. 또 그는 할아버지의 핏줄뿐 아니라 ‘익태’라는 이름까지 이어받았다.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그의 어머니가 중간 이름을 ‘익태’로 지은 것. 그의 공식적인 성도 스페인 아버지의 성인 ‘기옌’이 아니라 어머니를 따른 ‘안’이다. 자신의 아이에게 외할아버지의 성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보통 스페인 사람들은 본 이름과 중간 이름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순서대로 쓴다. 그리고 자식에게는 아버지의 성을 물려준다.
“원래 제 이름은 ‘미구엘 익태 기옌 안’이어야 해요. ‘안 기옌’이 아니고요. 그리고 제 아이는 ‘기옌’이라는 아버지 성을 물려받아야 하죠. 하지만 저는 제 아이에게 외할아버지의 성을 물려주기 위해 공식적인 성을 어머니의 성으로 택했어요.”
애국가를 들을 때마다 가슴 속의 무언가 소용돌이치는 것 같다는 미구엘이 스페인에서 사용했던 휴대전화 벨소리 역시 애국가다. 전자음악을 배운 친척이 직접 연주한 애국가를 휴대전화 벨소리로 사용했던 것. 그는 “아무에게도 없는 나만의 벨소리였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미구엘은 지난해 6월 한일월드컵 때 한국인들이 거리 응원을 하며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팀은 정말 ‘역사’를 만들었잖아요. 한국 팀의 경기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봤습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붉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와 응원을 하면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봤을 때의 느낌은 경이 그 자체였어요.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통해 그 모습을 보시고는 할아버지가 평소 강조하던 한국인들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다며 눈물을 흘리셨죠.”
그는 한국과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도 한국팀을 응원했다고 한다. 스페인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한국을 응원한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배우기 위해 온 고(故) 안익태 선생 손자 미구엘 익태 안 기옌

그는 좀더 많은 한국친구들을 사귀기 위해서라도 한국말을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99년 스페인에서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어요. 고향인 마요르카에서 농구, 유도 경기 등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가족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찾아가 한국팀을 응원했습니다. 한국이 메달을 따면 주변 사람들이 제게 ‘축하한다’고 말할 정도였죠. 그러면 저는 ‘감사하다’고 한국말로 대답했어요. 한국말을 못하고 한국 땅에 없었지만 한국은 항상 제 조국이거든요.”
그는 아직 미혼이다. 그래서 “한국 여자와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못할 이유는 없다”며 미소지었다.
“할머니는 오히려 제가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라세요. 그래야 한국인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거죠.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스페인 여자친구가 있는데 말을 잘못하면 혼나거든요(웃음).”
한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국제변호사가 되어 한국과 스페인 양국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미구엘. 그는 한국에서 직장을 가질 계획도 배제하지 않았다. 남편의 나라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하는 할머니와 함께 한국에서 살 생각도 있기 때문. 하지만 확실한 건 어디에 있든 한국과 관계된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어릴 적 살았던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친구들에게 할아버지가 애국가를 작곡한 사실을 자랑했던 것 그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그냥 서있는 친구들을 보면 친구의 손을 가슴에 얹어줬던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죠. 그러나 지금 저는 애국가 멜로디는 확실히 외우지만 가사는 ‘우리나라 만세’밖에 부르지 못하고 가사에 담긴 뜻도 잘 모릅니다. 할아버지와 제게 많은 관심을 베풀어준 한국인들에게 죄송할 뿐이죠.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 애국가를 완벽하게 부르는 것이 저의 1차 목표입니다.”
미구엘은 한국어로 된 기사를 정확히 1년 후 읽고 해석할 수 있게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자가 반드시 확인 전화를 하겠다고 말하자 그는 흔쾌히 그러라고 대답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사진 촬영을 위해 들어간 그의 기숙사 방에는 한국어 교재와 어설프지만 정성스레 한국어 음절 하나하나를 써놓은 연습 노트가 가득했다. 이 모습을 보니 그의 약속이 지켜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성동아 2003년 3월 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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