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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중국에 머물고 있는 작가 김인숙이 직접 쓴‘중국 생활’

“불혹의 나이에 다시 학교 다니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어요”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입력 2003.02.28 16:03:00

지난해 8월 중학생인 딸과 함께 중국 다롄으로 떠난 작가 김인숙.
떠나기 전만 해도 뚜렷한 목적이 없었던 그는 요즘 ‘학생’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해왔다. 학교에 다니고 중국말을 배우며 인생의 ‘방학’을 만끽하고 있다는 그녀의 행복한 고백.
딸과 함께 중국에 머물고 있는 작가 김인숙이 직접 쓴‘중국 생활’

수학여행을 떠난 단둥의 오룡산 앞에서의 김인숙씨. 그는 불혹의 나이에 중국 다롄의 대학에서 어학코스를 밟고 있다.


나이 들어서 학교에 다니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내가 다니는 어학코스는 다롄(大連)에 있는 ‘민족학원’ 유학생부에 부설된 것이다. 기껏해야 말 배우러 다니는 일을 가지고 무슨 ‘학교’ 운운하는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학생증도 가진 엄연한 학생이다. 간혹 한국의 친구들이 ‘민족학원’이란 이름을 듣고 오해를 해 “학원 다니는 게 재밌느냐”고 물을 때가 있는데,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나는 ‘학원’이 아니라 ‘학교’에 다니고 있다. 다롄 민족학원은 소수민족들을 위해 세워진 대학으로, 단과대학으로 출발해서 현재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종합대학의 수준에 이르러 있다.
베이징대도 칭화대도 아닌, 다롄에 있는 자그마한 대학을 자랑하자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나이에 내가 다시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 재미도 재미지만, 학교에 다니는 재미가 각별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책가방을 챙기고 도시락은 없지만 대신 물병을 챙기고, 책가방을 둘러메고 아직 아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걸어 학교까지 걸어가는 일, 그리고 이윽고 학교에 이르러 밀물처럼 등교하는 갓 스물의 대학생들 사이에 끼어 교정을 걷노라면 그 오전의 풍경이 어찌나 싱싱한지, 아무나 붙들고 “나도 학생이랍니다” 떠들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학원’이라니. 이건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진이 떡 하니 붙은 학생증이 나왔을 때, 나는 그게 무슨 요술처럼 신기하고 좋았다. 이 나라에는 학생증을 가지고 있으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여러가지 있다. 그렇지만 난 돈 몇푼 할인 받겠다는 욕심에서가 아니라 내가 학생이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공원이나 박물관 매표구에 설 때마다 진지하게 묻곤 한다. 학생 할인이 되나요? 실제 비행기표값을 25%나 할인 받기도 했는데, 할인 티켓을 끊을 때마다 돈보다 그 짜릿함에 행복하다.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 뭐가 그리 행복하냐고? 수능이 끝날 때마다 최고령 합격자가 신문의 한 귀퉁이에 소개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단 한번도 그 노년의 향학열을 이해해본 적이 없었다. 그 나이에 새삼 대학생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들이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굳이 수능까지 쳐가면서 대학생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공부라는 게 반드시 학생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학생이 된다는 것이 공부 이상의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학생이 된다는 것은 공부를 한다는 게 아니라, 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돌아갈 수 없으리라고 믿었던 어떤 시절, 어떤 순간으로의 섬광 같은 이동, 말하자면 타임머신의 기적과도 같다. 배낭에 책과 필기도구를 챙겨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내가 어미라는 사실, 당장 다음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생활인이라는 사실, 물론 작가라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그중에서도 나이를 잊어버리는 일이 가장 쉽다. 내가 속해있는 반의 절반은 십대들. 어느 정도냐면 40대인 내가 속해도 반 전체 평균연령이 24세가 안될 정도다. 18세 짝꿍은, 내가 지각이라도 하는 날은 당장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오는데, ‘아줌마, 왜 안 오세요’라는 문장의 ‘아줌마’가 좀 거슬리기는 해도 그 살가운 우정이 고맙기만 할 따름이다.
중국으로 떠나올 때만 해도 한 6개월 동안 그냥 쉴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정에도 없던 학교 등록을 끝내버린 것은 이곳에 도착해서 고작 보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영어를 못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는데, 중국에서는 중국말을 못하고서는 도무지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았기 때문이다.
집을 얻은 첫날, 상점에 가서 5kg 무게의 쌀을 샀다. 계산은 겨우 끝냈으나 가게 주인이 쌀을 배달해준다고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게 됐다. 가게 주인의 태도가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했으나, 대답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파트 몇동 몇호라는 말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배달이 필요없다는 말도 할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결국 가게주인에게서 쌀봉지를 빼앗듯이 낚아채 끌어안고는, 그대로 가게를 나와버렸다. 가게주인이 쫓아 나왔다. 마치 강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게 주인의 손에는 파 한단이며 감자 몇개가 든 봉지가 들려있었다. 쌀봉지만 끌어안고 도망치느라, 다른 물건들을 가게 안에 그대로 버려두고 왔던 것이다.
그날 가게에 같이 갔던 아이의 입이 뿌루퉁하게 나와 있었다. 엄마의 몰골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집에까지 오는 동안 아이는 내게 말도 잘 하려고 들지 않았다. 무거운 쌀봉지를 끌어안고서, 나도 화가 났다. 저나 나나 중국이라곤 처음인데, 뭘 그걸 갖고 엄마를 부끄러워한단 말인가. 야속한 마음이다가 ‘좋다, 중국말 배우면 될 거 아니냐!’ 속으로 큰소리를 쳤다. 설마 그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며칠 후 정말로 학교에 등록을 해버렸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 중에 바올 루시라는 호주 남자가 있다. 그는 민족학원의 영문학과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자신은 중국어 어학코스의 학생으로 있다. 그와 같은 반에 있을 때, 나는 줄곧 그와 짝꿍이었는데, 서양인인 그에 비하면 내 중국어 실력은 ‘대단히’ 훌륭했다. 그나 나나 겨우 “니 하오”라는 인사 한마디밖에는 할 줄 모르는 처지인데 무엇이 낫다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한자단어의 뜻을 모르고 나는 알았다. 예컨대 나는 ‘학교’라는 글자는 그것이 비록 간자체이기는 해도 읽지 못할 지경은 아니었고, 중국어 발음을 모르더라도 그 뜻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날 바올은 내게 “너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아느냐?”고 경이롭게 물어오기까지 했다. 사실대로라면, 한국 사람들은 대개 기본적인 한자 정도는 안다고 말해줘야 마땅했지만, 중국어만큼 영어도 달리는 형편이라 그런 설명을 못 해주고 말았다.
그는 나를 진렌슈라고 부른다. 진렌슈는 내 이름의 중국식 발음이다. 나 역시, 폴 로스라는 이름 대신 바올이라는 중국 이름으로 부른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그는 자신의 원룸에서 파티를 열었다. 초대된 사람들의 국적이 다양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중국에서 살고 있는 바올의 친구라는 것뿐, 그 이외에 공통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언어가 같지 않았다. 한국말밖에는 하지 못하는 한국인과 영어밖에는 못하는 호주인·캐나다인과 중국말밖에는 못하는 중국인이 한국말도 하고 중국말도 하거나, 그리고 영어도 하고 중국말도 하는 사람들과 섞여 이야기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그들 모두 공통적으로 할 줄 아는 중국말 중의 하나가 ‘헌 하오(매우 좋다)’인데, 그날의 파티는 그렇게 난잡한 대로 ‘헌 하오’였다.
딸과 함께 중국에 머물고 있는 작가 김인숙이 직접 쓴‘중국 생활’

단둥 오룡산(왼쪽)과 압록강 쪽에서 바라본 중국의 모습(오른쪽).


어느날 바올이 내 소설을 보고 싶다고 했다. 마침 내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는 친구가 보내온 소설이 있어서 그걸 이메일로 보냈다. “헌 하오.” 내 소설을 본 뒤 그의 첫 소감이었다. 하긴 다른 말을 하고 싶은들 할 수가 없고, 할 수 있다 한들 내 쪽에서 알아들을 리가 없다. 그저 모든 게 “헌 하오”로 통하니, 우리가 ‘매우 좋은’ 친구 사이인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겠다.
외국인들이 중국 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한어수평고시’라는 것을 치러야 한다. 중국말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시험에 응시를 하겠는가 마는, 중급반 학생들이 쓰는 한어수평고시 문제집을 보고는 호기심이 발동해 쉬는 시간에 잠시 그걸 빌려다 보고 있었다. 바올은 내가 그 시험에 응시할 모양이라고 생각했는지 무엇 때문에 시험을 보려고 하냐고 물어왔다.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왜냐하면 공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라고 대꾸해버렸다. 바올은 참으로 희한한 대답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으나, 오히려 나는 그 엉뚱한 대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아마 그 순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좀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야 했을 것이다. 공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이다. 말하자면 내가 학생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을 좋아하는 거라고 말이다.
아무리 순간순간 의도적으로 나의 처지를 망각한다고 해도, 나는 별수없이 40대의 아줌마고, 생활인이다.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학생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될 수는 있지만, 완전히 학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나에게 이 순간들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에 가깝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공부란 참된 의미에서 공부가 아니라, 오히려 휴식에 가깝다. 나는 때때로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처럼 잊는다. 그러고는 무슨 상관이냐, 한다. 때때로 내가 너무나 건전해져서, 퇴폐적이고 혐오스러운 순간들이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다 휴식시간에 잠깐 주어지는 거짓인들 어떠하겠는가. 짧지 않은, 긴 호흡으로 쉬는 게 중요할 뿐이다.

딸과 함께 중국에 머물고 있는 작가 김인숙이 직접 쓴‘중국 생활’

18살 짝꿍 한아름과 함께. 그는 국적 다른 젊은 친구들과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경절 때는 학교에서 1박 2일로 수학여행을 갔다. 여행지는 단둥. 유학생부의 대다수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북한과의 국경지역인 단둥을 특별히 염두에 두었던 모양이다. 단둥은 다롄에서 버스로 다섯 시간쯤의 거리에 있는데, 한강의 절반도 안돼 보이는 좁은 폭의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이 보였다. 배를 타고 북한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자 조선이라는 붉은색 글씨가 뚜렷하게 보이고, 군복을 입은 북한 사람들이 강물에 발을 씻다가 우리 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배를 탄 한국 사람들이 소리 높여 “안녕하세요!” 하자, 저쪽에서는 팔을 머리 위까지 들어올려 흔들며 화답했다.
이튿날은 아침 일찍부터 등산을 했는데, 한국의 산처럼 무성한 나무와 숲으로 풍성하지는 않지만 동굴도 있고 바윗길이 제법 험한 산을 정상까지 올랐다. 산을 오르는 동안 내내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이 떠올랐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서대문에 위치해 있어서 봄이고 가을이고 소풍의 목적지는 항상 경복궁이나 창경원이었다. 학교에서부터 창경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오직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한번인가는 기어코 줄을 놓치고 선생님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른 반 줄을 쫓아서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담임선생한테 뺨을 맞았다(내 생에 유일한, 뺨 맞은 기억이다!). 중국에서야 길 잃어버렸다고 내 뺨을 때릴 사람은 없겠지만, 말도 잘 안 통하는 낯선 곳, 낯선 산중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게 더 큰 문제라 앞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그러나 불행히도 불치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한 ‘방향치’인 난 기어코 일행들을 놓치고, 길도 놓치고, 전혀 낯선 사람들과 뒤섞여 하산을 하게 됐다.
단풍이 물든 계곡을 따라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잃어버린 길,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했다. 노여웠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아팠던 순간들도 떠오르고,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 기억들을 지우느라 혼자 씩씩거리는 동안 어느새 산 밑이었는데, 그곳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내 일행들, 갓 스물의 아이들이 그야말로 참새떼처럼 눈부시게 재재거리며 모여 서있었다. 꼿꼿하게 서있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그러졌다. 그렇지, 여기는 여행지이고 아직은 휴식시간이구나…. 밭은 숨을 천천히 고르는 게 중요했다.
삶이란 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의 밭은 숨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6개월 전 내가 불현듯 중국으로 온 것도 느닷없이 숨이 넘어갈 지경 같은, 그러나 결국 엄살이었던 그것 때문이다. 그러나 엄살을 부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어서 떠날 수 있고, 떠나와서는 엄살을 고백하는 대신 이 순간들을 휴식이라고 믿어버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건 아니지 않은가.
며칠 후면 다시 개학이다. 휴식도 오래 가면 진부해지고 그것 자체가 일상이 되는 법이라, 새 학기가 또 다시 내게 지난 6개월과 같은 싱싱한 기쁨을 선사해줄지는 모르겠다. 휴식을 누리는 자세에도 교만이 있어서 턱을 뾰족하게 올린 채 보냈던 지난 6개월을 되돌아보며, 이제는 그야말로 겸손해지리라 생각하는 중이다. 어차피 이곳은 여행지고, 내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에. 여기 중국땅에서 내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채워 돌아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밭은 숨을 천천히 고르는 게 중요한 것처럼, 돌아가야 할 곳을 항상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휴식은 어차피 종이 울리면, 끝나게 마련이므로.

여성동아 2003년 3월 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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