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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축하합니다

2003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김경해씨

“남은 인생, 좋은 작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최문갑 기자

2003. 02. 07

올해의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은 김경해씨의 <내 마음의 집>. 한 여성의 사랑과 정체성 찾기를 ‘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엮어나간 작품으로 “단아한 구성, 유려한 문체로 읽는 이를 사로잡는 힘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선자인 김씨는 알고 보니 이미 한 문학계간지에 단편을 발표한 ‘준비된 작가’. 그가 수줍게 털어놓은 당선소감을 들어본다.

2003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김경해씨

한 여자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한 집에서만 살았던 그녀는 다른 집에서 한번이라도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변화없이 밋밋한 생활에 진력난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게딱지 같은 집’에서 떠나고 싶던 남자와 결혼을 한다. 몹시도 추웠던 신혼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시작한 그녀. 점차 좋은 집으로 넓혀 옮겨간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간 그녀는 우연히 출판사에 다닌다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죽은 첫사랑’처럼 종갓집 종손. 그와의 밀회가 이어지면서 여자는 모텔이나 여관 대신 남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집’을 꿈꾼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고, 남편과 헤어진 그녀는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 걷는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 첫사랑의 집, 이제 남편의 집이 되어버린 떠나온 집… 기억 속의 모든 집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되묻는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라고.
김경해씨(38)의 당선작 <내 마음의 집>의 간략한 줄거리다. 그러나 1천2백매 분량의 소설 구성은 결코 간단치 않다. 김씨는 소설을 3부로 나누었다. 첫 장은 그녀의 첫사랑 훈의 추억이 남아 있는 ‘종갓집’, 두번째 장은 오랫동안 나고 자란 자신의 집, 셋째 장은 결혼한 그녀가 남편과 살던 집. 그리고 이 세장을 묶어낸 ‘현재형’의 사건은 그 남자와의 연애다.
당선소식을 알린 다음날, 바로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여성동아>로 찾아온 김씨는 얌전해 보이는 외모에 말수가 적었다. 초등학교 5학년, 4학년인 아들과 딸을 둔 주부라는데, 언뜻 보면 대학원생으로 보일 만큼 젊어 보인다.
그에게 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게 된 까닭과 소설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었는가 물어보았다.
“집이라는 공간은 붙박여 있는 공간이잖아요. 마음이 그안에 있지 않은 한, 아무리 집을 바꿔보았자 소용이 없으며, 결국은 마음의 문제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목도 <내 마음의 집>이에요.”
소설에는 자전적 요소도 엿보인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 한 집에서 20여년 이상을 보냈던 김씨 자신의 기억을 소설 속에 녹여낸 것. 변화없는 일상이 너무나 지긋지긋해서 늘 ‘이사’가는 친구를 부러워했던 어린 소녀는 바로 자신이었다.
평범한 가정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동덕여대 국사교육학과로 진학했다. 졸업 후 약 2년간 출판사를 다니다가 연애 결혼 끝에 91년 6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했다.
“학창 시절에는 소설보다는 미술을 더 좋아해서 미대 진학을 꿈꾸기도 했어요. 그랬던 제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건 결혼하고 나서였어요.”
신혼 시절, 사업하던 남편의 회사가 기울면서 한동안 경제난에 처한 일이 있었다. 그때만큼 많은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그.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을 독서로 눅여냈던 것이다. 주로 프랑스와 독일 작가들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그러나 살림하랴 갓난아기 돌보랴 바쁜 일상에서는 무리였다. 욕심을 접어두고 기회를 기다리던 그는 아이들이 서너 살이 되자, 글짓기 강사로 활동하면서 서서히 소설 곁으로 다가갔다.

“98년 한 문학계간지에 단편을 발표하긴 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소설가’라 생각해도 되는지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윤후명 선생님의 ‘소설대학’에 나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에 매달리게 되었죠.”
한달에 두번. 서울 인사동에서 열리는 ‘소설대학’은 문학 지망생들이 모여 소설을 서로 돌려 읽고 합평하는 자리다. 올해 ‘소설대학’ 동기들에게는 유난히 좋은 일이 많았다. 그의 당선소식은 다섯번째 희소식. 네명의 동기가 등단의 꿈을 이뤘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셈이다.
“선생님께 전화로 소식을 알렸더니, 깜짝 놀라시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셨어요. 선생님 모르게 저 혼자 응모했었거든요. 친정부모님은 물론 남편에게도 비밀로 했었죠. 왠지 말하기가 쑥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어제 당선소식을 전하니 다들 너무 기뻐하세요. 특히 시어머니가 가장 자랑스러워하시더라고요. 남편이요? 저녁 먹는 자리에서 덤덤하게 ‘축하해’ 이게 끝이던데요.”
처음에 남편은 아내가 소설을 쓴다는 걸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아내를 자랑스레 여겼다고 한다. 그가 힘들어할 때면 “포기하지 말아라” “끝까지 해봐라” 격려해줬던 것도 남편이었다.
“어제 차로 이동중에 핸드폰으로 당선소식을 들었는데 정말 그때 기분이란… 눈물이 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잘 할 수가 없더군요. 이제야 남은 인생을 소설에 걸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주로 단편을 썼던 그가 1천2백매 장편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각오도 대단했다. 하루에 무조건 20매 분량을 정해놓고 그 ‘목표량’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집필버릇이 남다른 그는 소설 쓰는 데 남들보다 2배의 시간이 걸린다. 일단 만년필로 원고지에 쓴 소설을 나중에 다시 컴퓨터로 옮기기 때문. “번거롭기는 해도 원고지 위에 직접 만년필로 쓰는 게, 한 단어라도 더 고민을 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이 습관을 고집한다. 바깥 외출까지 삼가면서 6개월 가량을 책상 앞에서 외롭게 씨름했다. 오죽 출입이 적었으면, 이웃 주부들은 그를 ‘심각한 병을 앓는 환자’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이번 당선소식을 지렛대삼아 그는 또다른 장편소설을 세상에 띄울 준비를 하고 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취재차 2월 초쯤 중국 용정으로 떠날 계획이다.
“그저 열심히 읽고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겠죠.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벅찬 표정으로 당선소감을 밝히는 김씨를 보고 있으니 ‘좋은 여성 작가가 출현했다’는 심사위원들의 기대가 결코 기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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