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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로 걷는 아이’ 양은미양의 가슴 아픈 사연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최희정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3.02.07 16:07:00

한창 걸음마에 재미를 붙일 즈음인 세살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지금껏 네 발로 걸어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생 양은미양.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이때의 충격으로 아버지는 정신병을 얻어 가출해,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외할머니 내외 밑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은미양의 딱한 사연.
‘네 발로 걷는 아이’ 양은미양의 가슴 아픈 사연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지만 치료비가 없어 막막한 상태에서 네 발로 다니는 은미양.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읍 근처에 사는 ‘네 발로 걷는 아이’를 찾으러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아이가 산다는 지역에 가서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려봤지만 좀처럼 ‘특이한 형상’을 지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덕소읍내를 벗어나 차 한대쯤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비포장도로를 지나자 야산 끄트머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닐하우스 몇 채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은미가 산다는 말을 듣고 왔지만 도무지 사람 사는 ‘집 같은 집’은 한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발길을 되돌리려고 할 때 저만치 오솔길에서 뭔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이 마치 개가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아이가 바로 ‘네 발로 걷는 아이’ 양은미양(8)이었다.
운동화 네 짝을 손과 발에 각각 한 짝씩 끼고 걷는데, 손에 끼어 있는 운동화는 다 해어져 걸을 때마다 손가락이 삐죽삐죽 빠져나왔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은 동상에 걸렸는지 벌겋게 부어 올랐고 손등에는 가느다란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은 은미가 더 불쌍해요. 어린 게 뭔 죄가 있다고 저래야 하는지…. 옆에서 보는 사람도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미어져요.”
네살 때부터 은미를 보아온 동네 할머니는 은미 얘기를 하면서 눈물부터 훔쳤다. 여느 아이처럼 두 발로 걷고 뛰어야 할 은미가 네 발로 걷게 된 것은 바로 척추신경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걸음마를 배워 걷는 재미를 붙일 즈음인 세살 때, 엄마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은미의 걸음마 솜씨도, 단란했던 가족도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엄마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죽었고, 은미는 척추신경을 다쳐 하반신을 전혀 못 쓰게 된 것이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은미 아빠는 정신병까지 얻어 집을 나갔는데,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
졸지에 걷지도 못하고 부모까지 잃게 돼 고아가 될 뻔한 은미를 맡아서 지금까지 길러준 사람은 은미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다. 이들 역시 폐지나 고철, 빈 병 따위를 주워 팔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생활하는 형편이라 은미를 맡아 기른다는 것이 버거웠지만 오갈 데 없는 은미가 눈에 밟혀 그냥 버려둘 수가 없었다. 은미를 키우고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세금마저 빼내 어쩔 수 없이 지금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참 걱정입니다. 은미가 죽을 때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치료비가 만만치 않거든요. 단순한 검사는 무료지만 근전도 검사나 CT촬영은 검사비가 비싸 엄두도 못 내요. 돈을 마련해 검사도 받고 치료도 받아야 하는데….”
은미의 치료를 걱정하는 외할아버지 김좌상씨(62)는 은미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한다.
한달 내내 리어카를 끌며 폐지나 빈 병들을 주워 팔아도 그들이 손에 쥐는 돈은 고작해야 40만원 정도. 이 수입도 그나마 날씨가 좋을 경우에 해당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이 많으면 한달 내내 ‘공치기’ 일쑤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생활에 은미를 제대로 치료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은미가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어 정부로부터 한달에 25만4천원을 받는다는 것. 냉기가 도는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는 그들에게 25만4천원은 그야말로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존재다.

‘네 발로 걷는 아이’ 양은미양의 가슴 아픈 사연

은미는 몸이 나으면 돈 많이 벌어서 매일 일만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빵 사드리는 게 소원이란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은미는 지금껏 기저귀를 찬 상태에서 대소변을 받아낸다. 학교에서는 기저귀에 똥을 눠도 갈지 못해 하루종일 그 상태로 있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은미 엉덩이 살은 늘 빨갛게 짓물러 있고 아이들은 그런 은미에게 ‘냄새난다’며 가까이 오려 하지 않는다. 하반신이 마비돼 자신이 똥을 쌌는지, 오줌을 쌌는지도 모르는 은미는 그저 자신을 멀리하는 아이들이 야속할 따름이다.
매달 은미에게 들어가는 종이 기저귀 값만 해도 몇만원. 언젠가는 기저귀 값이 너무 부담스러워 면 기저귀를 채웠다가 기저귀 밖으로 대변이 빠져나오는 바람에 다시 종이 기저귀로 바꿨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가 그런 걸로 인해 더는 상처를 받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서다.
“이 어린 것이 살아 있는 동안 두 발로 걷는 것이 꿈이건만…”
“그래도 은미 성격이 워낙 명랑해서 그런지 힘든 티를 잘 안내요. 여기는 마을하고 떨어져 있어 말동무 할 친구가 하나도 없거든요. 심심하다고 투정부릴 때말고는 할아버지, 할머니 힘들다고 고물도 같이 주우러 다니고 폐지나 빈 병 정리도 잘해요.”
그러고 보니 빈 병을 정리하는 은미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비록 하반신은 쓰지 못하지만 그것말고는 모든 게 다 정상이고 몸 상태도 건강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네 발로 걷는 것’ 빼고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은미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은미가 처음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찾아가는 병원마다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기 때문이다. 전혀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게 당시 은미를 진단했던 의사들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리면 은미는 평생 앉은뱅이 신세로 살아야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 지금 은미가 치료를 받고 있는 강남성모병원 정형외과. 담당의사는 처음에는 자신이 없다는 말을 했지만, 1년 동안 치료한 후에는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의사 스스로도 놀랄 만큼 은미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던 것.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으며 커서 수술을 받게 되면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고마워 의사 선생님 손을 잡고 펑펑 울었어요. 부모도 없는 것이 평생 걸어보지도 못하고 사나 했는데 수술이 잘되면 지팡이 하나만 짚고도 걸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은미는 지금 네 발로 걸으면서 가끔 목발을 짚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은미를 담당하고 있는 옥인영 박사(강남성모병원 정형외과)는 “은미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다. 스무살 정도 되면 수술이 가능한데 그때까지 성장에는 이상이 없다. 치료가 잘 되면 지팡이만 짚고도 걸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목발로 딛는 연습을 하고, 네 발로 걸으면서 꾸준히 다리 근육을 키우는 은미를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치료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들에게 수천만원의 치료비는 감히 생각도 못할 금액이다. 그나마 지금은 자신들이 있어 은미 기저귀도 갈아주고 업어주면서 등하교를 시키지만, 자신들이 죽으면 누가 은미를 보살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제가 몸이 다 나으면 일 많이 해서 돈 많이 벌고 싶어요. 돈 많이 벌면 매일 일만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빵도 사드릴 거예요. 배고프고 힘드니까 빵 많이 먹고 힘내라고요.”
여덟살 난 아이 같은 말이지만, 그 말 속에는 두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는 은미의 걱정스런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처음 봤을 때는 꽤 수줍음을 탔지만 잠시 후 생글거리며 귀엽게 웃는 은미. 은미의 때묻지 않는 미소와 순수한 마음이 더는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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