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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TV 출연해 ‘책 장례식’ 이후 참담했던 심경 고백한 이문열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01.29 11:48:00

2년 전 벌어진 ‘책 반환운동’과 각종 소송사건 이후 이문열씨는 침묵을 지키다시피 해왔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TV에 출연했다. 지난 1월7일 방영된 EBS <인사이드 컬처-문화, 문화인>에 출연한 그가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은 자신의 문학세계 & 그동안의 심경 고백.
오랜만에 TV 출연해 ‘책 장례식’ 이후 참담했던 심경 고백한 이문열

EBS TV 이후 어떤 지상파 TV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작가 이문열씨(55)가 2년 만에 방송에 출연했다. EBS 에 등장한 그는 자신의 문학세계와 그간의 심정을 토로했다.
작가 이문열, 그는 누구인가. EBS 프로그램의 도입부 내레이션을 빌려 설명하면 이렇다. ‘발표하는 글마다 논쟁의 중심에 서는 작가’ ‘찬사와 비난의 변경에 선 작가’.
이문열씨는 이제까지 총 2천5백만부나 책이 팔린 ‘국민작가’이며, 12개 국가에서 33권의 책이 번역되어 나올 정도로 그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는 작가다. 그러나 동시에 2001년 에 기고한 칼럼 ‘신문 없는 정부 원하나’와 칼럼 ‘홍위병이 판친다’로 ‘안티조선’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에 의해 형사·민사소송 3건의 고소(형사소송은 무혐의, 민사소송은 기각된 바 있다)를 당했으며, ‘책 장례식’까지 겪어야 할 정도로 공격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얼마전에는 또다시 그를 대상으로 1건의 민사소송이 추가됐는데, 이번에도 신문의 칼럼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논쟁의 중심에 선 작가인 셈이다.
고속도로로 달리면 서울에서 약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거리에 위치한 경기도 이천 장암리의 ‘부악문원’. 이씨는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문원의 뒷산의 옛이름을 따서 지은 이곳은 일종의 문학사숙(文學私塾). 소설가 지망생, 인문학 지망생들에게 연구하고 집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 이씨가 처음 온 것은 86년. 식구들까지 모두 내려온 지는 6년이 되었다. EBS 방송 녹화 역시 바로 이 ‘부악문원’의 널찍한 마당에서 이뤄졌다.
“2000년 를 발표한 이후 통 소설을 펴내지 못했다”는 이씨는 “지난 2년여 글을 쓰지 않은 것은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전제한 후 입을 열었다(여기서 특별한 사정이란 ‘이문열 책 반환운동’을 가리킨다. ‘이문열 책 반환운동’은 이씨의 ‘홍위병’ 발언에 분노한 어떤 독자가 그에게 책을 반환하겠다고 하자 그가 “이자를 쳐서 받아주겠다”고 한 것이 발단이 되어 ‘이문열 책 반환 운동본부’가 꾸려지고, 그로 인해 두 차례의 책 반환 퍼포먼스가 있었던 사건을 가리킨다).
“장례식 당하고, 불태워진 책들 생각하면 글쓸 마음도 생기지 않아”
“내 책이 어디 가서 장례식을 당하고, 나무 위에 매달리고, 불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책을 써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전에도 문학적 시비는 있어왔지만, 이렇게 악의적인 폭력을 당한 건 처음이니까요. 처음엔 그래도 문화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그게 아닌 것 같더군요. 그때는 정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는 “재작년과 같은 일들을 겪었기에 작가로서 회의를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논란이나 시비의 대상이 된다는 거 자체는 물론 괴롭다. 그러나 그 때문에 작가가 된 걸 후회하거나 하진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맘에 안 드는 작가를 벌하는 방법이 장례식이라는 건… 수백년 동안 이런 일은 히틀러나 진시황 외엔 없었습니다. 그래서는 정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은 (앞으로) 없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이씨는 올해 소망에 대해 “많이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책 생산’이 많이 떨어졌기에 “모든 걸 우선해서 쓰는 걸 제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쓰고 싶은 소설의 방향도 대강 잡아둔 상태다.

오랜만에 TV 출연해 ‘책 장례식’ 이후 참담했던 심경 고백한 이문열

EBS TV에 출연한 이씨가 ‘이문열 책 반환운동’(왼쪽)으로 인한 심적 고초로 한동안 글도 못 썼다고 밝히고 있다.


“하나는 80년대를 문학적으로 정리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의 모티브였던 존재의 문제, 초월의 문제를 더 확대시킨 소설을 쓰는 일입니다. 후자의 소설은 올해 초부터 인터넷 쪽에 쓸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80년대를 다룬 소설의 경우는 아무래도 지금 일간지에 연재중인 소설이 끝나고 나서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올해는 그의 소원대로 이 부악문원의 너른 마당을 바라보며 소설만 쓰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하지만 연초부터 ‘영국 이민설’이니 ‘소송’이니 그를 둘러싸고 각종 구설수가 아직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이번에는 어떻게 헤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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