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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부부의 사랑

10년 전 작고한 아내 유작들과 함께 부부전시회 연 박장년 교수의 순애보

“지금도 그림을 통해서 아내와 사랑을 속삭입니다”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박진숙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01.14 15:35:00

자신의 그림과 함께 10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유작들로 부부전시회를 열어 남다른 부부애를 보여준 화가가 있다. 군산대 미대 박장년 교수가 그 주인공. 지금도 아내가 남긴 그림을 보며 저승의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는 박교수의 순애보.
10년 전 작고한 아내 유작들과 함께 부부전시회 연 박장년 교수의 순애보

박장년 교수는 삼베(마포)를 이용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11월 예술의 전당에서는 이색전시회가 열렸다. 한 전시 공간에서 전혀 다른 화풍의 두 작가 그림이 나란히 전시된 것. 그 전시회엔 죽음도 막을 수 없었던 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화제의 전시 의 주인공은 박장년씨(65·군산대 교수)와 그의 아내 고(故) 김미자씨.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화풍을 지니고 있었지만 미술계에선 소문난 잉꼬부부 화가였다. 10년 전 김화백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박교수는 지금까지도 아내에 대한 애잔한 사랑을 간직해오다 이번에 자신의 정년퇴임을 맞아 ‘부부전’을 연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오랜만에 여는 부부전시회였는데도 기억하고 찾아와주는 분들이 있어 고마울 뿐이죠.”
신인예술상, 동아미술대상 등을 수상한 박교수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올곧게 유지해온 보기 드문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소재인 색깔을 전혀 입히지 않은 삼베 위에 또다른 삼베가 자연스럽게 얹혀진 것처럼 주름을 그려 넣거나 무명실로 덧붙여 꿰매는 으로 유명하다.
“마포는 삼베예요. 돌아가신 분에게 마지막으로 입히는 수의에 쓰는 천이지요. 제가 마포작업을 시작한 것이 76년부터니까 벌써 20년이 훨씬 넘었군요. 74년 열달 사이에 장인·장모님과 부모님이 한꺼번에 돌아가셨어요. 네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갑작스럽게 고아가 돼버린 심정이었죠. 그때 우연히 제 옆으로 삼베 한 조각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마 부모님 장례를 치르면서 삼베에 대해 각별한 느낌을 갖게 되었던가 봐요.”
이번 전시회는 박교수와 고인의 60년대 초기 작품부터 최근까지 시대별로 전시를 해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작품세계를 좀더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아내의 그림과 제 그림이 나란히 걸린 모습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더군요. 집사람이 떠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요. 그 세월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내가 서있다는 것도 그렇고….”
두 사람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선후배 사이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65년 결혼한 두 사람이 겪어야 했던 현실들은 만만하지 않았다. 물감 하나 마음놓고 쓰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부부가 동시에 작품활동을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박씨가 선택한 길은 미술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미대를 나와 직장을 다니는 길은 교사밖에 없었어요. 그것이 가장 성공한 사례였죠. 저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이었기에 당연히 교사의 길을 택했죠. 중고등학교 미술선생을 몇년 하다 대학교수로 임용이 되었는데, 그때 아내가 무척 싫어했어요. 저희 신조가 성인에게 미술을 가르치지 말자는 것이었거든요. 미술교육은 어릴 때부터 해야 영향력이 있는 것이지, 대학생은 이미 다 배운 상태라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었죠. 그랬던 제가 교수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이젠 속물이 되는구나’ 싶었겠죠(웃음).”
유달리 부부애가 깊었다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격려하는 동반자의 길을 걸었다.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아내가 조금씩 그림 그리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더군요. 저대로 놔두면 안되겠다 싶었어요. 저 사람의 재능을 망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느날 아내의 그림 위에 유화를 지우는 테레핀유를 확 뿌렸어요.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내가 벌떡 일어나면서 화를 막 냈죠. 저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능청을 떨었어요(웃음). 그런데 정말로 그림이 지워지면서 마치 눈이 뿌려진 것처럼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더라고요. 그제야 아내도 화를 누그러뜨렸죠.”

10년 전 작고한 아내 유작들과 함께 부부전시회 연 박장년 교수의 순애보

부인 김미자씨가 살아있을 때 촬영한 부부사진(왼쪽). 박교수가 자신의 그림을 보며 아내를 추억하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김화백의 그림은 수채화처럼 서정적인 화풍으로 바뀌었고, 시리즈는 이런 화풍을 잘 보여준 대표작들로 꼽힌다.
다복한 가정을 이루며 때로 선배로, 때로 친구로, 때로 동반자로 서로 의지하며 살던 86년 어느 날, 김화백은 우연히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간경화 증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내는 평소 폐렴을 조금 앓아서 약을 먹긴 했었지만 그다지 건강이 나쁜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선천적으로 좌심실과 우심실에 바늘구멍만한 구멍이 있는 심실중결손증으로 인해서 간이 안 좋아졌던 모양이에요. 간경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상당히 진전된 상태라 간암으로 발전하는 것은 순식간이었죠.”
91년부터 증세가 악화되어 갑작스러운 고열로 응급실을 들락거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약물치료에도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박교수는 좌절하지 않고 아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암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써보았다. 식이요법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식이요법 동호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김화백이 본격적으로 암 증세를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복수가 차기 시작했고 결국 간을 들어내야 했다.
“의사가 수술실에서 아내의 진행 상태를 보여주더군요. 아내의 간을 꺼냈을 때는 너무 조그맣게 굳어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지요. 희망이라고는 이식수술밖에 없었는데, 그 당시는 부작용이 너무 심해 환자만 고통스럽다고 해서 포기했어요. 정말 너무 괴로웠어요.”
병원에서 힘든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를 위해 그는 21년간 살았던 정든 집을 옮기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에서 그들 부부는 처음 장만한 집에서 계속 살았지만 아내를 위해서 ‘절대 이사를 하지 않겠다’던 고집을 꺾었다.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아내를 낡은 집으로 데려올 때 처제들이 무척 반대했어요. 60년대에 지어진 한옥이라 환자가 있을 만한 곳이 못 되었거든요. 겨울이면 외풍이 심해서 아무리 불을 때도 따뜻하지 않았고, 여름이면 장마로 지하실에 차 오르는 물 퍼내는 것이 일이었죠. 아내를 데리고 움막 같은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저도 무척 안타깝더군요. 그래서 과감하게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결국 몇개월 못 살고 92년 1월에 가버렸어요.”
김화백의 투병생활 이야기가 계속되자 박교수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잠시 시선을 먼 곳으로 향하며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 했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이미 물기가 배어 있었다.
“아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애잔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저도 인간이라 슬픔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가 않아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내가 꼭 살릴 수 있다고, 아니 살리고 말겠다고 자신했는데 떠나보내게 되어 그 슬픔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지금도 아내의 그림 통해 대화를 나눠
그가 이 힘겨운 시간들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준 것들은 그림 그리는 일과 아내의 작품을 보는 일, 그리고 명상이었다. 그래서일까?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들은 샤머니즘적인 기원과 장엄하고 영적인 기운이 넘쳐난다.
“아내는 떠나기 직전인 91년에 운명을 예감했기 때문인지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심취해서 그림을 그리더군요. 그래서 그림과 혼연일체가 된 완숙한 경지의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기고 떠났어요. 그 그림 안에 들어있는 아내의 절규와 넘치는 에너지들이 지금 나의 삶을 뒷받침해주고 있지요.”
비록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져 살고 있지만 서로 그림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영혼을 울리는 두 화가의 사랑은 현실세계에서 아직도 진행중이다.
“아내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살아있어요. 지난해엔 교수 안식년이라서 산에 들어가 쉬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을 많이 했어요. 명상을 통해서 이젠 아내가 좋은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저도 평화를 찾았어요.”
예술혼은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체험해야 얻어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슬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박교수와 그림 속에서 못다한 부부의 연을 풀어가는 김화백은 진정 예술과 하나가 된 듯했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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