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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자살’ 아픔 딛고 7년 만에 김광석 추모사업 시작한 미망인서해순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3.01.14 14:02:00

가수 김광석이 돌아왔다. 석장의 CD와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DVD,그리고 그의 체취가 묻어나는 일기장과 함께. 96년 1월 갑작스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꼭 7년 만이다.
추모앨범의 제작자는 미망인 서해순씨. 그를 만나 지난 7년간의 가슴앓이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남편 자살’ 아픔 딛고 7년 만에 김광석 추모사업 시작한 미망인서해순

7년 전, 우리 시대 최고의 포크가수로 명성을 누리던 김광석씨가 갑작스런 자살로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영화 , 드라마 등을 통해 여전히 세대를 초월해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최근 그의 7주기에 즈음해 특별한 추모앨범이 나왔다. 그의 음악인생을 총결산하는 컴필레이션 앨범 가 그것. 앨범은 그의 노래 33곡을 담은 석장의 CD, 8㎜로 찍은 생전 모습과 뮤직 비디오를 담은 DVD, 사진과 글을 모은 포토 에세이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추모앨범의 제작자는 미망인 서해순씨(39). 96년 1월 김광석씨가 작고한 후 남편을 잃은 상실감과 자신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으로 인한 가슴앓이 끝에 그 해 7월 딸과 함께 한국 땅을 떠났던 그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귀국해 본격적으로 남편 추모사업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이제 앞으로 더 이상 김광석의 이름을 단 추모앨범은 없을 겁니다.”
서씨는 지난 세월의 가슴앓이를 이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했다. 그는 미망인이면서도 김광석이 사망한 후 열린 추모공연은 물론 그동안 김광석의 이름을 달고 나온 여러 장의 추모앨범 제작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런 섭섭함이 그의 말에서 진하게 묻어났다.
“개인적인 섭섭함은 차치하고라도 그동안 나온 추모앨범을 들어보면 조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미발표곡 하나 넣고 김광석이란 이름을 달고 나오고…. 더 이상 그의 이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걸 방치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김광석에게 인생의 반려자일 뿐 아니라 음악적 반려자였다. 90년 결혼한 후 음반계약, 방송스케줄 관리 등 대외 업무는 물론 앨범을 만들 때도 선곡에서부터 녹음작업, 홍보까지 참여하며 김광석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갔다.
이 앨범은 고인이 작고한 지 7년 만에 나온 셈이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서씨는 추모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지만 시집과의 관계 때문에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6년 이미 김광석 음반의 판권문제로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가족간 마찰을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음반 판권 문제로 불거진 시집과의 갈등 많이 해소돼
“음반 판권 문제는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는 직접 관리하고, 그후에는 손녀(서우)에게 넘겨주기로 했어요. 이젠 시집과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어요. 이 사업도 아버님께서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용기를 내 시작한 거예요. 회사까지 직접 오셔서 둘러보고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를 해주셨어요.”
그는 남편이 물려준 유일한 유산인 홍대 앞 건물을 팔아 ‘with33music’이라는 기획사를 만들었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야단을 맞아가며 배웠다”는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이제 혼자 펼쳐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위드33뮤직은 김광석 추모기획사가 아니에요. 과거 남편이 했던 ‘둥근소리 기획’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김광석에 한정하지 않고 유망 신인을 발굴 육성하고, 또 우리 음악인을 해외에 소개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물론 공연사업도 하고요. 김광석 추모사업은 회사가 아닌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김광석 추모사업의 얼개가 짜여져 있다. 우선 올봄에는 7주기 추모콘서트를 열 계획이고, 가을쯤엔 김광석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책을 출간할 생각이다. 또한 고인이 쓰던 물품을 이용해 박물관 겸 카페를 만들고, 라이브 소극장을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서씨도 잘 알고 있다.
“추모사업은 저 혼자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고인을 사랑하는 지인과 팬들이 힘을 모아 함께 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죠. 우선 ‘김광석 장학금’부터 시작할 생각이에요. 이번 음반 수익금으로 역량 있는 후배에게 도움을 줄 겁니다. 현재 학전소극장 (김)민기형이 고인 이름으로 장학사업을 하고 있는데, 형편이 힘든 모양이에요. 그것과 합쳐야죠. 또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교육사업을 펼칠 예정이에요.”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니 처음부터 너무 큰 것을 기대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능력이 닿는 대로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남편 자살’ 아픔 딛고 7년 만에 김광석 추모사업 시작한 미망인서해순

김광석이 추진했던 음악기획사업을 실현하기 위해 서씨는 위드33뮤직을 만들었다고 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의욕을 말하는 서씨이지만 아직도 말 구석구석에서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아픔이 진하게 느껴졌다. 김광석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인의 여자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이로 인한 심각한 부부불화가 고인을 자살로 몰고 갔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때는 이 세상 밖으로 내쳐진 기분이었어요. 아무도 저와 딸아이를 보호해주지 않더라고요. 그런 현실에 환멸을 느껴 미국으로 떠났어요. 그곳에서 한 3년 살다 캐나다로 가서 2년을 살았죠. 정말 저를 서운하게 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기로 살았던 것 같아요.”
김광석의 자살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급작스러운 것이었다. 서씨 역시 당시 뚜렷한 자살동기를 알 수 없다고 했었다.
“저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본 사람이잖아요.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남편은 마음속으로 이미 준비를 했었던 것 같아요. 자살하기 며칠 전에 갑자기 머리를 깎는가 하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래서 그랬었구나’ 싶더군요.”
서씨에 따르면 당시 김광석은 아침에 일어나 보면 밤새 잠을 편하게 못 잤구나 싶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무게감에 짓눌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이 잘 안 풀리면 혼자 침체해 있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순식간에 밝아지는 등 감정기복이 심했고, 우울증도 있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
그건 그의 음악적 성공과도 맞닿아 있었다. 당시 김광석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 부와 명예를 한손에 거머쥐었다. 남들이 20년에 걸쳐 이룰 수 있는 걸 그는 단숨에 이룬 셈이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허탈감과 함께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혼란에 빠졌다는 것이다.
“당시 남편에 대한 비난도 많았어요. 특히 동물원 시절의 순수함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그의 대중적인 모습에 많은 실망을 했죠. 그것 때문에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물론 당시 가정적으로 불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한마디로 말해 안 좋은 일들이 그때 한꺼번에 터진 거예요. 그걸 남편은 견디지 못한 거고…. 그때 남편이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가족들이 반대를 했어요. 만약 그때 외국으로 나갔으면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남아요.”
이번 앨범은 아빠 그리워하는 딸에게 주는 생일선물
‘남편 자살’ 아픔 딛고 7년 만에 김광석 추모사업 시작한 미망인서해순

김광석은 딸 서우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남편의 부재가 주는 고통이 컸을 법도 하건만 그는 잘 이겨냈다. 아니, 그런 것을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만약 미국이란 낯선 곳에서 딸과 둘이서 계속 살았다면 알코올중독에 빠지거나 자살을 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딸에게 제 감정을 폭발시켰을지도 모르죠. 다행히 서우는 계속 미국에 있고, 저는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6개월씩 오가며 살았어요. 떨어져 있으면 서우가 보고 싶고, 같이 있을 때는 주로 여행을 다녔어요. 그렇게 3년이 지나니까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그렇다고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날 학교에서 발표회가 있었다. 그런데 서우가 엄마, 아빠, 할머니 등 가족들이 잔뜩 온 친구를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딸의 그늘진 표정을 보고 가슴이 저려왔다고 한다.
그는 딸아이에게 아직까지 아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처음엔 그냥 ‘미국에 공연을 하러 갔다’고 둘러댔다. 그래서인지 처음 미국에 갈 때 서우가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고 우려했던 것보다 미국생활에 잘 적응했다고 한다. 크면서 아빠의 부재를 깨달았겠지만 서우는 엄마에게 한번도 아빠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한다.
“딸아이도 힘들었을 거예요. 저도 아직 힘든데 서우라고 왜 아빠가 안 보고 싶겠어요.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왜 울고 있냐’고 물으면 대답을 안하고 말을 돌려요. 그럴 땐 아빠가 보고 싶으면 음악을 들으라고 하죠. 서우는 아빠노래를 잘 들어요. 아빠의 생전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고, 아빠 친구들 이야기도 하고…. 저도 놀란 게 서우가 다섯 살도 안 되었을 때의 아빠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일까, 서씨는 이번 앨범이 엄마와 아빠가 함께 주는 서우의 11번째 생일선물이라고 했다.
“앨범이 나오니까 무척 좋아해요. 친구와 선생님들에게 모두 갖다주겠다고 하더군요. 서우는 아빠가 가수였다고 사람들에게 무척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해요. 음악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요.”

‘남편 자살’ 아픔 딛고 7년 만에 김광석 추모사업 시작한 미망인서해순

90년 결혼식 사진.

딸 서우는 성장장애증후군이란 병을 앓고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육체적, 지능적으로 성장이 늦다는 이야기다. 서씨에 따르면 돌 때부터 걷기도 늦었고 발육도 늦었다고 한다.
“처음엔 광석이형 식구들이 작으니까 작기만 한 줄 알았는데, 클수록 또래 아이들과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더라고요. 키도 작지만 공부 같은 걸 못 따라가요. 병원에서는 피터팬증후군 같은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을 받아 증세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현재 서우는 초등학교 5학년 나이지만 지능은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씨는 지난해 5월 한국에 돌아왔을 때 딸의 학교진학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는 학습능력에 맞춰 학년을 정하지 않고 무조건 나이에 따라 학년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일반 학교로 진학하면 서우의 실력으로 학습진도를 따라갈 수 없고, 그렇다고 특수학교에 보내는 것도 아이에게 도움이 안될 것 같아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결국 지난해 9월부터 외국인학교에 보내고 있는데, 다행히 잘 적응하고 있다고.
“아이가 또래보다 작은데다 요즘 살이 많이 쪘어요. 그래서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고요.”
서우는 아빠를 닮아서일까, 학습능력은 떨어지지만 음악은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도 거리에서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고 있으면 걸음을 멈추고 마냥 바라본다는 것. 또 한번은 미국에서 여행을 다닐 때 시카고에서 LA까지 장거리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종일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음악을 들으면 금방 멜로디를 익히고 따라할 정도로 음감이 있어요. 보이밴드 백스트리트 보이즈를 좋아하는데, 다른 애들은 보통 키가 크고 잘생긴 애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서우는 키도 작고 못 생긴 브라이언이 좋대요. 이유를 물었더니 노래를 가장 잘한대요. 아빠를 닮아 음악적 감각이 있는 모양이에요. 하긴, 사소한 걸로 고집을 피우는 것도 아빠를 꼭 닮았어요(웃음).”
딸을 김광석처럼 음악의 길을 걷게 할 생각이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광석이형도 아이에게 악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걸 싫어했어요. 그냥 많이 듣는 게 좋다고 했어요. 음악은 스스로 집념으로 하는 것이지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모르겠어요. 서우가 언제부터인지 아빠의 하모니카를 들고 다니며 불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제 과거의 아픔은 가슴에다 묻고 딸을 키우며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서해순씨.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김광석 추모앨범을 들고 있는 그의 표정에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남편이 하늘에서 저를 도와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제가 전에 몰랐던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남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할 거예요.”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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