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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아내VS남편

아내의 남자친구 & 남편의 여자친구

“나도 이성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 글·최희정 ■ 일러스트·정지연

2003. 01. 10

요즘은 예전과 달리 학교 동창이니 뭐니 해서 이성친구로서 남녀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연인관계가 아니라 해도 결혼한 부부들에게 남편이든 아내든 이성친구가 있다는 것은 신경 쓰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서로 연애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화를 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그냥 받아들이자니 부글부글 속이 끓고…. 서로의 이성친구 때문에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부부와 서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지내고 있는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내의 남자친구 & 남편의 여자친구

누가 내 남편 좀 말려줘!
남편은 충청도 논산이 고향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나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깨소금맛 나는 신혼생활이 지나고 아이가 둘 생기고 나자 솔직히 서로에게 무심하게 대할 때가 많다.
아침에 세수도 안한 얼굴로 남편 밥 차려주는 일은 보통이고 집에서는 일하기 편한 헐렁헐렁한 고무줄 바지를 입었다. 이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그러면 남편이 딴 생각 한다”며 나이가 한살이라도 젊을 때 몸매를 가꾸라고 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외모를 믿었다기보다는 그만큼 남편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좀 우울하다. 나는 이렇게 별볼일 없이 펑퍼짐하게 늙어가고 있는데, 남편은 무슨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회사일에 치이거나 가족들 생계 책임지느라 늘 파김치가 됐던 남편이 생기 넘치는 미소년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지난 7월, 중학교 동창회를 다녀오고 난 후부터인 것 같다. 평소 남편은 옆집 아저씨가 충청도 출신이라는 말에 바로 술 사가지고 놀러갈 만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유난히 짙었다. 술 한잔 마시고 나면 언제나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불러대며 고향친구들이 보고 싶다던 남편에게 어느날, 중학교 동창이 연락을 해왔고 남편은 좋아라 하며 모임에 나갔다.
그날 동창모임에 다녀온 남편의 표정은 그야말로 15세 미소년 같았다. 남편의 중학교는 남녀공학으로 그중 서울에 살고 있는 동창들만 만났는데 그곳에서 남편은 자신이 중학시절 좋아했던 여학생을 만났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설레였다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사실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중학교 친구든, 동창이든 남편이 나 아닌 다른 여자에게 잠시나마 설렘을 느꼈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게다가 그 여자 동창이 중학교 교사이고 아직까지 생생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나는 뭔가? 남편은 나에게 더이상 섹시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하는 참담한 기분마저 느꼈다.
남편은 이런 나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중학교 때 여자친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당신이야”라고 말한다. 그 말을 믿지만 동창들과 두달에 한번씩 만나고 가끔 그 여자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새카맣게 타는 것 같다. 남편이 동창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유치하다는 말을 들을 까봐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자니 마음이 답답하다(결혼 7년차, 37세, 은평구 역촌동, 주부, 아이 둘).
남편 핸드폰 확인하는 내가 너무 싫어!
남편은 그야말로 일 중독자다. 일 자체가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기 아니면 회사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지나친 책임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회사일에 파묻혀 늘 귀가 시간이 늦고 어느날은 아예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일에만 파묻혀 사는 남편에게 화를 내고 이혼을 하겠다며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별로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거의 포기한 상태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그 정도로 일을 하니 우리 식구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사는구나’ 하는 생각에 남편이 고맙고 혼자 아등바등하면서 고생하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날 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남편의 회사, 그것도 남편과 같은 부서에 남편이 대학 때 잠시 사귄 여자가 동료로 근무한다는 얘기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벌렁거리고 눈앞에 뭐가 낀 듯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남편이 옛 감정을 되살려 그 여자랑 연애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여자친구 역시 번듯한 남편이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있으니 남편과 다시 뭘 해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기분이 안 좋다. 남편이 나말고 과거 여자친구와 하루종일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남편이 어쩌다 일찍 퇴근해 돌아오거나 주말에 쉴 때는 나는 넌지시 지금은 동료가 된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본다. 남편은 처음에는 내 태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내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잘 했지만 요즘은 내가 물어보면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냐? 그렇게도 나를 못 믿냐? 한번 만나게 해줄 테니 만나서 얘기해봐라.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하면서 화를 낸다.
지레짐작에 겁먹고 의심부터 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 혼자 울 때도 많다. 정말 둘은 동료나 옛 친구 이상 아무 관계도 아닌 것 같은데 요즘 내가 상당히 예민해진 것 같다.
어느날은 남편이 샤워 할 때 남편의 핸드폰을 열어 ‘혹시 그 여자친구와 통화라도 했을까?’ 싶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내 자신이 유치한 것 같아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남편에게 말을 하면 “별거 아닌 일로 생트집 잡는다”고 말하고, 그 말을 믿으면서도 괜히 마음이 울적하고 막 화가 난다. 조만간 그 친구를 만나 내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하고 싶다(결혼 5년차, 32세, 송파구 방이동, 주부, 아이 하나).

아내의 남자친구 & 남편의 여자친구

나도 아내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
요즘 아내는 무척 바쁘다. 아내가 워낙 부지런하고 활동적이어서 늘 많은 일들을 해왔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아내는 중등학원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짬짬이 번역서도 내는 등 일욕심을 많이 낸다. 그러면서 운동을 좋아해 사이클 동호회에 가입해 한 달에 한두 번은 취미활동을 꼭 하는 편이다.
나도 아내가 아무 일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자기 일 하고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결혼 전 아내의 활발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반해 청혼을 한 나였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고 나이도 중년에 들어서니 이제는 아내가 가정일과 나만 생각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아내는 나와 있을 때는 사이클에 대해 별로 말을 안한다. 처음에는 관심 갖는 분야가 달라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모이는 동호회에 다녀 온 이후로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내는 그곳에서 동호회 사람들하고 사이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무 유쾌하게 말을 잘했다. 남편을 옆에 두고 자기네들끼리 “영원한 사이클 동지를 위하여!” 하면서 맥주잔을 부딪칠 때는 나만 소외당한 것 같아 낭패감이 들기도 했다. 평소에는 피곤하다며 나와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는 아내가 취미활동이 같은 사람(그것도 대부분이 남자)들을 만나 저렇게 호탕하게 웃고 열을 올리다니… ‘나는 뭔가’ 하는 생각에 참 울적했다.
그날 집에 와서 한마디도 안하고 뾰로통해져 있는 나에게 아내는 “남자가 쫀쫀하게 왜 그러냐? 당신도 나와 함께 동호회에 가입하든지, 아니면 취미활동을 하라”고 말한다.
물론 나도 아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 지 아내도 동호회 활동을 줄이겠다고 한다. 이럴 때는 괜히 내가 예민해져서 아내의 취미활동까지 제대로 못하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변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부부가 취미활동도 같이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나도 내 기분만 생각하지 말고 아내와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봐야겠다(결혼 8년차, 37세, 강북구 미아동, 회사원, 아이 둘).
아내와 남편의 이성친구 스트레스 극복하고 다같이 재미있게 사는 부부
남편과 함께 산에 오르면서 남편의 여자친구들과 친해졌어요
남편은 산을 무척 좋아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운 뒷산은 물론이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닐 정도로 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남편이 시도 때도 없이 산에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나나 아이에게 소홀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직장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이 산에 오르면서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 것 같아 좀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남편은 어느날 혼자서는 산에 다니기가 힘들다며 산악회에 가입하겠다고 했다. 나 역시 ‘남편 혼자 산에 다니다가 혹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던 차에 반대하지 않고 흔쾌히 동의했다.
남편이 산악회에 가입한 지 서너 달이 지나자 슬슬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다니는 산악회는 여자 회원도 많아 같이 산행을 가는 날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산행을 갔다온 날은 그날 산행이 아주 멋있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또 매일 산악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메일을 확인하면서 혼자 낄낄거리며 웃고 여자회원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니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가슴이 벌벌 떨려왔다.
남편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남편이 산악회에 가입해서 내가 모르는 여자들하고 산에 다니고, 정상에 가서 정상주 한잔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가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남편보고 산에 다니지 말라고 대놓고 반대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산악회에 대해 불쾌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남편은 “그럼 내가 산악회를 그만두고 옛날처럼 혼자 다니겠다”고 말했다. 남편이 여자 회원들하고 산에 다니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남편이 좋아하는 취미활동까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타까웠다. ‘내가 원한 것은 이런 게 아닌데….’

아내의 남자친구 & 남편의 여자친구

며칠 고민하던 나는 아예 남편이 가입한 산악회에 들어가 등산을 같이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괜히 상상만 갖고 혼자 속을 끓이거나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하느니 같이 산을 타면서 산악회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남편이 가입한 산악회에 들어가 등산을 한 지 3개월로 접어든 지금,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또 여자 산악회원들이 털털한데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도 각별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질투했구나’ 하는 생각에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남편이 나 아닌 다른 여자와 취미활동을 같이 한다고 해서 그다지 화를 내거나 속을 끓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남편과 취미활동을 같이 하면서 그들과 친해지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결혼 4년차, 33세, 영등포구 신길동, 주부, 아이 하나).
남편의 여자친구를 아예 내 친구로 만들어버렸어요
남편은 초등학생을 상대로 조그마한 영어학원을 운영한다. 아이들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그만큼 수입도 늘어나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우리 학원에 등록하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고 남편은 학원 운영에 아주 열심히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의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의 아이가 우리 학원에 등록했다. 그 여자 동창은 한달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동창들에게 남편 소식을 듣고 일부러 우리 학원에 아이를 등록시켰다며 무척 반가워했다.
여자 동창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너 어렸을 때는 키가 무척 작았는데 지금은 크다. 뭘 먹고 그렇게 컸니? 키 크는 방법 좀 알려줘라. 우리 아들에게 써먹게” 하면서 엊그제 만난 사람처럼 아주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남편 역시 그 동창을 보면서 20여년 전의 일들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서로 옛일을 떠올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자니 은근히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요즘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우연히 동창과 만나 불륜관계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는데… 혹시 남편도?
남편 학원과 집이 가까운 관계로 그 여자 동창은 수시로 학원에 들러 아이의 영어 실력에 대해 상담을 하는 것 같고 가끔 간식거리를 챙겨주는 것 같았다.
여자 동창과 친하게 지내는 남편을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다시는 얼굴 보지 말라고 엄포를 놓아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고 신경이 쓰여 회사일도 잘할 수 없었다. 여자 동창이 상냥하게 웃는 얼굴이 내 눈가에 맴맴 맴돌았다. 남편과 옛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너무 불쾌했다. 내가 모르는 일을 그들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
계속 둘의 관계 때문에 속을 끓인 나는 한가지 묘책을 생각해냈다. 살다 보면 언제든지 생길 수도 있는 일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느니 아예 내가 그 여자 동창과 친구가 되자고! ‘어차피 나이도 비슷하고 아이도 하나씩 키우는 입장인데 서로 못할 말도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내가 먼저 그 동창에게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어느날 나는 여자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학원 근처에 오뎅 국물이 아주 맛있는 포장마차가 있는데 거기서 소주 한잔 하자고 했다. 그 동창도 흔쾌히 응했고 그날 우리는 술 한잔씩 하면서 아이 얘기, 남편 얘기, 시댁 얘기 등 여느 30대 주부들이 느끼는 일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화장실 앞에서 바지에 오줌 싼 얘기를 듣고는 배가 아프도록 웃어댔다.
여자 동창은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꾸 만나다 보니 의외로 솔직하고 멋진 여자였다. 요즘에는 남편보다 내가 먼저 그 동창을 챙긴다. 결혼 후 맘 맞는 친구들하고 떨어져 살면서 외로웠는데 남편의 여자 동창을 만나서 얘기하면 재밌고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정답다(결혼 6년차, 34세, 서대문구 홍은동, 맞벌이주부, 아이 하나).

아내의 남자친구 가족과 함께 여행하다 보니 저도 좋은 친구 얻게 됐어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을 때 아내의 소탈하고 명랑한 성격이 맘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 아내는 털털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챙겨주는 세심한 면도 있어 학창시절부터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여학생이었다.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해서인지 여자친구보다는 남자친구나 남자선배가 더 많았고 나와 연애를 할 때도 같은 과 남자친구들을 자주 만났다.
나를 만나는 횟수만큼 남자친구들을 만나는 아내를 보고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결혼 후 나의 소심한 성격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대학 때 만난 서클 친구도 있고 과 여자친구도 있지만 지금은 만나지 않는데, 왜 아내는 계속 만남을 유지하는 것일까? 혹시 나란 존재를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어느날은 저녁 때 늘 어울리는 남자친구 만나러 간다더니 자정이 넘어서야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 나타났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내를 부축하고 있는 남자친구를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어떻게 나 아닌 남자와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뭘 믿고?’ 사실 결혼 전에 그 남자친구를 몇번 만난 적이 있고 사람 됨됨이가 괜찮다고 여겨서 이상한 생각까지는 안했지만 어쨌든 기분은 불쾌했다.
다음날, 아내에게 그동안 혼자서 끙끙거리며 속 끓였던 일들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남자친구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솔직히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소심한 나의 모습에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속은 후련했다.
아내는 내 말을 듣고 “미안하다”는 말부터 했다. 자기는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줄 몰랐다며 원하면 안 만날 수도 있지만, 그래도 10년 이상 사귄 친구라며 아예 그 남자친구 가족과 함께 만날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내가 속이 상한 만큼, 그 남자친구 부인도 속이 상했을 거라는 말과 함께.
그후로 아내는 남자친구를 만날 때 나와 함께 만나든지, 아니면 남자친구의 부인과 같이 만난다. 일년에 서너 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끼리 함께 만나 외식을 하고 가까운 놀이동산에 놀러간다. 지난 여름에는 동해바다로 여름휴가도 함께 다녀왔다.
아내가 남자친구 만나는 것을 그대로 참고 보기만 했다면 아내나 나나 불신의 골은 아주 깊어졌을 거다. 역시 부부문제는 서로 마음 터놓고 얘기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결혼 5년차, 35세, 경기도 일산, 회사원, 아이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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