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심부름도 잘하고 영리한 지훈이(8)는 이상하게 간단한 셈하기 문제를 번번이 틀린다. 7+3=10이라는 것을 겨우 익힌 뒤, 3+7이 뭐냐고 물으면 멍하니 있기 일쑤인 것. 더하기를 빼기로 잘못 이해하거나, 빼기를 더하기로 착각해서 엉뚱한 답을 쓰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지훈이 엄마는 ‘늦되는 아이들도 있다’는 생각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지훈이가 “아이들이 바보라고 놀린다”며 학교 가기를 싫어하며 우울 증세를 보이자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학습장애’.
학습장애, 학습지진이나 학습부진과는 다르다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아이가 자신보다 2년 정도 낮은 학습 수준에서 맴돌며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면 학습장애를 의심해볼 수 있다. 학습장애는 지적 능력이 낮아 공부를 따라가기 힘든 ‘학습지진’, 부모의 이혼이나 정서불안 등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학습부진’과는 구분된다. 가정환경이나 신체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고, 지능도 정상인 아이가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을 익히고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 학습장애로 본다.
학습장애 증상은 대부분 학교에 들어가 책을 읽고, 받아쓰기를 하면서 확실히 드러난다. 글자와 숫자를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특정 과목의 성적이 뒤떨어지며 자신의 생각을 글과 말로 정확히 표현하는 데 서툴다.
학습장애의 문제는 학습장애 자체보다 학습장애로 인해 정서적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는 수업 시간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이 늘어나고,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 우울증, 자신감 상실, 무기력증 등의 정서적인 문제를 겪게 된다. 또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학습장애가 의심되는 아이들의 경우 초등학교 3~4학년을 넘기기 전에 반드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애를 일찍 발견하면 치료효과가 높지만, 치료시기를 놓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습장애의 원인과 증상
뇌의 미세한 손상과 불균형한 발달, 유전적 요인, 환경적인 요인이 학습장애의 주된 원인. 뇌에 미세한 이상이 생기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종합, 활용하는 데 문제가 생겨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특정 과목에 장애를 보인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 학습방법의 문제, 공부 및 시험에 대한 불안감, 학습동기의 부족, 정서적 불안 등이 증상을 악화시킨다.
학습장애 아이들이 가장 힘들게 느끼는 것은 읽기와 쓰기, 셈하기. 전체 학습장애 아동의 80∼90%가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에는 한 가지 분야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다른 분야의 이해력과 흥미도 떨어진다.
● 읽기장애
읽기장애는 문자라는 부호를 받아들이고 소리로 나타내는 과정에 장애가 발생한 경우. 읽기장애 아이들은 ‘ㄱ’과 ‘ㄴ’, ‘ㅔ’와 ‘ㅐ’, ‘ㅊ’과 ‘ㅅ’등 비슷한 음과 비슷하게 생긴 글자를 혼동한다. ‘고구마’를 ‘나누마’로 읽는 식이다. 청각적으로 ‘학교’를 ‘하교’, ‘산림’을 ‘사람’으로 잘못 받아들이기 때문에 쉬운 단어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한다.
또한 공간감각이 떨어져 글을 읽을 때 한줄을 통째로 빼버리고 읽거나 뒤에서부터 읽기도 한다. 무엇보다 글자를 읽어도 자신이 방금 읽은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아이들은 친구들 앞에서 책 읽는 것을 싫어하고, 국어 시간이 되면 멍하니 있거나 산만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 쓰기장애
쓰기장애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거나 글자를 바르게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 쓰기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손 근육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연필을 제대로 쥐지 못하며 알아볼 수 없는 글씨를 쓰는 특징을 보인다. 받아쓰기를 하면 단어와 문장을 다닥다닥 붙여 쓰거나, 한 글자는 크고, 한 글자는 작게 쓴다. 맞춤법도 틀리게 받아 적어 무슨 말을 썼는지 알아보기 힘들다.
● 산수장애
산수 공식이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다른 과목에 비해 산수 성적만 뒤떨어지는 경우. 산수장애 아이들은 숫자는 알아도 계산을 하지 못하거나 글로 쓰여진 문제를 수식으로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 -, ×, ÷등의 계산부호를 혼동하며,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다. ‘19+9’처럼 10을 받아올려 더하거나 빼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문제 자체를 ‘1+99’ 등으로 엉뚱하게 받아 적기도 한다.
● 전문기관의 특수교육
아이가 단순히 공부를 못한다고 섣불리 학습장애로 단정해서는 안된다. 근육질환이 있거나 시력, 청력이 나쁜 경우 정상적인 아이가 학습장애 아동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가 학습장애의 증상을 보인다면 전문기관의 체계적인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뇌의 발달 문제, 유전적인 요인이 학습장애의 원인인 만큼 완벽한 치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꾸준히 노력하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 가정에서 돌보는 법
학습장애의 치료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가정에서는 아이가 우울증,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아이가 어려워하고 성적이 나쁜 과목이 무엇인지, 지금 하고 있는 학습지가 어렵지는 않은지, 아이가 어떤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지, 시력이나 청력이 나쁘지는 않은지, 몇분 정도 집중할 수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아이에게 맞는 학습방법을 찾아본다
바둑알이나 구슬, 사탕 등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수 개념을 알려주거나 말 잇기 게임, 카드를 이용한 기억력 게임, 이야기 순서 맞추기 등을 같이 해본다.
-정돈된 학습 환경을 만들어준다
집안 전체를 공부하는 분위기로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아이 방으로는 조용하고 햇빛이 직접 들지 않는 시원한 곳이 좋으며, 방은 단순하게 꾸며주고 책상 위에 물건을 산만하게 늘어놓지 않도록 한다.
-손쉬운 운동을 자주 한다
공기놀이, 줄넘기 등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가벼운 운동을 자주 한다. 운동신경을 발달시켜줄 뿐 아니라 아이의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형제나 친구들과 비교해서 아이를 야단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학습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 그보다는 아이가 평소보다 오랜 시간 공부하는 데 집중하거나 집안일을 도와줄 때 칭찬을 듬뿍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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