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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주세요

선천성 신장기형으로 만성신부전증 앓는 경선이네 딱한 사연

“어떻게든 신장이식을 해서 경선이가 건강하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안소희 ■ 사진·최문갑 기자

2003. 01. 09

선천성 신장기형으로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경선이. 신장이식을 하지 않는 한 평생 투석의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경선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타는 듯 아프기만 하다. 하루 세 차례 받는 힘겨운 복막투석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IMF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애써 웃으며 살아가는 여섯 식구, 경선이네의 희망가

선천성 신장기형으로 만성신부전증 앓는 경선이네 딱한 사연

“다섯살인데 너무 작아서 엄지공주라고 불러요” 라며 딸을 소개시켜 주는 엄마 신광미씨(33) 곁에서 경선이는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85cm 키에, 12kg. 또래에 비해 왜소할 뿐 겉모습은 여느 아이처럼 건강해 보이는 경선이지만 실은 하루에 세 차례 복막투석을 해야 살 수 있는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어서 겨우 걸음마를 뗐을 정도로 발육이 늦다.
“태어나자마자 자꾸 토해서 큰 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먹질 못하고 계속 토해서 태어날 때 3.2kg이었던 몸무게가 2.6kg까지 줄어들었어요. 자정부터 울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울음을 멈추질 않곤 했어요. 증세가 나아지지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져서 다시 병원을 찾았죠.”
돌도 지나지 않은 때였기에 몇날 며칠 계속된 검사로 아이는 거의 초주검이 되곤 했다. 혈관을 찾기 힘들어 목에서 피를 뽑아서인지 아직도 목의 혈관이 약간 튀어나와 있다. 조직검사까지 해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이상을 찾지 못했고 증세는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다시 세번째 검사를 했을 때 신장이 아먼드 알만한 크기에서 성장을 멈춰버려 제 기능을 못하는 만성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만성신부전증이란 몸 안의 노폐물을 걸러내고 혈액 생산에 관여하는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병이다. 이 경우 신장을 이식하는 것만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외에 혈액투석과 집에서 환자 스스로 할 수 있는 복막투석이 있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어려운 치료법이라고 한다.
경선이는 너무 어린 나이라 혈액투석을 할 수도 없고 신장이식은 더욱더 불가능했다. 힘겨운 검사 끝에 결국 병명은 알아냈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 아버지 이진석씨(33)는 할 말을 잃었다.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퇴원을 해서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딸을 살리기 위한 이씨 부부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되었다. 경선이는 하루 종일 힘겹게 먹은 음식을 한꺼번에 토하기를 반복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어 부부가 번갈아가며 딸 곁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깨어있는 동안 끊임없이 우유와 이유식을 먹여야 했다. 게다가 피부에 각질이 일고 염증이 생겨서 날마다 약초 물에 목욕을 시켜야 했다. 기적처럼 경선이는 잘 자라주었다. 신씨도 경선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늦을 뿐 신장은 호전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작년 8월에 감기를 앓더니 폐렴으로 번져서 고생을 하고 난 후였어요. 코피가 한번 나더니 몇 시간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았어요. 병원에 갔더니 혈액이 정상인의 3분의 1밖에 없고 몸에도 노폐물이 많이 쌓인 상태라고 하더군요.”
우려했던 만성신부전증이 악화된 것이다. 지난 9월에 경선이는 복막투석을 위해 관을 몸 안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씨 부부는 배를 뚫고 나와 있는 관을 보고 경선이가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경선이는 그 낯선 장치를 자기 신체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시술한 관을 통해 하루 세 차례 투석액을 투입하고 빼내는 치료 또한 의젓하게 받아내고 있다.

선천성 신장기형으로 만성신부전증 앓는 경선이네 딱한 사연

태어나서부터 신장병을 앓아 그 영향으로 다섯살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시작한 경선이.


“이렇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처음 병원에서 절망적인 말을 들었을 때는 나쁜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땐 정말 힘들었거든요. 매일 하루에 2시간도 못 자고 매달려 있었지만 차도가 없으니 차라리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죠. 어차피 떠날 아이라면 빨리 떠나길 바란 적도 있어요. 정말 못난 엄마였죠.”
신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둘째 경선이를 낳을 무렵까지 이씨 부부는 첫째 경진이(7)를 키우며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이씨가 다니던 기계설계 회사가 IMF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씨는 그 후 2년이 넘도록 월급도 받지 못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끝내 회사가 문을 닫았고 밀린 월급도 포기해야만 했다.
신씨가 결혼 전 모아둔 돈과 결혼 후 푼푼이 모은 저축도 경선이 치료비와 생활비로 고스란히 들어가고 지금은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빚만 남았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 4천만원도 모두 빚이고 경선이 치료비에 들어간 1천만원은 사채와 신용카드 빚으로 메꾸었다. 그나마 주변 분들의 도움이 없다면 경선이의 치료도 계속 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행히 지난 봄부터 이씨가 작은 회사에 취직해 1백50여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지만 매달 40여만원씩 들어가는 치료비 때문에 살림은 항상 빠듯하기만 하다.
경선이네 집에는 경선이네 식구와 정신지체 장애인인 이현숙씨(22)까지 모두 여섯명의 식구가 살고 있다. 현숙씨는 경선이의 먼 친척으로 1년 전부터 갈 곳이 없어 함께 살게 되었다. 요즘엔 언니 경진이마저 신장에 이상을 보여 다섯 식구가 매일 병원에 다니고 있다.
“복막투석을 하면 노폐물과 함께 몸안의 영양분도 빠져 나가버려요. 경선이가 잘 걷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앞으로 학교도 다니고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장이식을 해야죠. 지금 경선이가 너무 작아서 저희 신장을 이식받을 수 없지만 조금만 자라면 가능하다고 해요. 그때까지 제발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러나 정작 신장이식 수술이 가능하다 해도 2천만원이 넘는 수술비와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경선이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어떻게든 마련해서 평생 동안이라도 갚아나가야지요. 경선이를 위해 주변에서 이렇게 도와주시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겁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신씨는 오히려 행복하다고 답한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살게 될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랑으로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이 작은 집에 밝은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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