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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훈훈한 사연

윤락녀들과 정감 어린 편지 주고받는 강동경찰서 김형중 서장

“그들도 윤락녀이기 이전에 인간이기에 좀더 따뜻하게 대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 글·김순희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 2002.12.17 10:47:00

우라나라의 대표적인 윤락가 중의 하나인 서울 천호동 423번지. 경찰의 단속 대상인 ‘천호동 텍사스’
지역의 윤락여성과 단속권자인 관할 경찰서장 사이에 하소연과 격려를 담은 훈훈한 편지가 이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윤락녀들과 정감 어린 편지 주고받는 강동경찰서 김형중 서장

지난 10월12일 강동경찰서 김형중 서장(총경·47)에게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천호동에서 일하는 아가씨 중 한사람입니다”로 시작된 이 편지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동생들을 가르치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활비와 동생들 학비 마련으로 인하여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연과 함께 윤락녀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이 나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편지를 받고 보니 마음이 참 아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디다. 편지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봤어요.”
윤락녀 이은정씨(가명·26)의 편지를 받은 김서장은 이씨에게 “가정을 책임지는 이양을 위해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윤락가에서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챙겨가며 저축해 하루빨리 원하는 가게라도 차리고 안정된 가정 속에서 더 나은 내일을 가꾸길 빈다”는 따뜻한 충고를 담은 답장을 보냈다.
‘쫓고 쫓기는 관계’인 경찰과 윤락녀 사이에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편지가 오갈 수 있었던 것은 윤락녀를 바라보는 김서장의 ‘남다른’ 사고방식 때문이다. 지난 7월16일 강동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김서장은 관내에서 가장 큰 골치 덩어리인 ‘천호동 텍사스’ 지역을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성을 ‘사는 자’나 ‘파는 자’ 모두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 불법행위임은 분명하지만 무엇보다도 윤락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의 실질적인 인권보호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불법행위 여부를 떠나 윤락녀들이 인간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에 관심을 기울였어요. 업주들의 횡포나 노예매춘, 조직폭력배 연계 등 윤락녀를 둘러싸고 있는 인권유린의 행위를 먼저 차단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어요. 완전 근절이 불가능한 매춘이라면 최소한 윤락여성의 인권이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김서장은 부임 직후인 7월31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윤락여성의 인권을 전담하는 여경(고정남 경사·42)을 ‘천호동’에 배치했다. 윤락가를 단속하는데 접근방식을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고경사에게 다른 것은 주문하지 않았어요. ‘무조건 윤락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친숙해져라.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윤락여성들의 친언니가 된다는 심정으로 그들을 대하라’고만 했죠. 처음엔 시큰둥하던 윤락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고경사를 믿기 시작했고, 사소한 어려움까지 털어놓게 되었어요. 그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작은 배려가 그들에게는 아주 크게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김서장은 이씨로부터 편지를 받은 며칠 뒤 또 다른 윤락여성으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이씨와 마찬가지로 가정형편으로 인해 윤락을 하고 있는 김영주씨(가명·25)는 “수많은 직업을 두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우리 마음을 헤아려줘서 고맙다”면서 “모든 세상이 부정적으로 생각되고 몸과 마음이 괴로웠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소녀가장인 내가 그나마 집안에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곳은 소방검열이나 시설단속도 철저하고 여성인권보호경찰관까지 생겨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고마움을 표하면서 “하지만 불을 켜고 커튼을 열지 못하게 하는 단속 때문에 손님과 수입이 줄어 어려운 형편”이라며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천호동’은 청량리 588이나 용산, 미아리 등과 함께 대표적인 윤락가 중의 하나지만 다른 홍등가와는 달리 상호 대신 ‘1호집’ ‘2호집’ ‘3호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한다. 뿐만 아니라 홍등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불빛조차 찾아볼 수 없다. 업소마다 출입문을 비롯하여 손님을 맞이하는 ‘쪽방’에 난 작은 창에까지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다.
김서장은 “천호동은 현행법상 청소년 유해환경지역이고, 주민과 행인들의 항의가 있어 불법행위를 양성화해서 커튼을 제치고 불을 켠 채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한다.
“천호동이 다른 윤락가에 비해 가장 말이 많고 문제가 된 점이 바로 주택가 인근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에요. 주민들의 통행로에 윤락가가 자리잡고 있으니 주민들 반발이 거셀 수밖에요. 주민들의 민원이 빈번해지자 몇해 전부터 업소에서 자체적으로 커튼을 치고 영업을 하고 있어요. 며칠전 김양을 직접 만나봤는데 얼굴도 참 앳되고 여리게 생긴 아가씨였어요. 어떤 여자가 그 일에 종사하고 싶겠습니까.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결손가정에서 자랐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거든요.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윤락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윤락녀들과 정감 어린 편지 주고받는 강동경찰서 김형중 서장
지난 1월4일. ‘천호동’에서 일하고 있는 윤락녀 80여명이 전세버스 두대에 나눠 타고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해 경찰의 인권유린행위를 조사해 달라며 인권위에 추가 진정서를 제출한 일이 있었다. 작년말 경찰이 매매춘 단속을 하면서 강제로 매춘여성들의 나체사진을 찍는 등 인권을 유린했다며 천호동 윤락여성 17명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한 것에 대해 조속한 진상조사를 촉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제가 부임하기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매매춘 현장을 급습해 사진을 찍어 증거를 확보하는 게 범행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식의 단속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사람인데 성관계하는 장면을 경찰이 목격하고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잖아도 수치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는 그들이 느끼는 수치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70년대부터 하나둘 윤락업소가 들어서기 시작해 전성기에는 1백여개 업소에 1천여명의 윤락여성이 일하던 천호동은 지난 96년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 이후 매춘여성이 크게 줄어 현재 1백20여명의 윤락여성이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 80% 이상이 집에 돈을 부친다고 합니다. 부모 형제에게는 대부분 동대문이나 남대문 등 옷가게에서 일을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해요.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자신들의 영업시간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지요. 비록 윤락에 종사하고 있지만 착한 여성들도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질타하고 무시하고 있지만 그들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김서장과 윤락녀 사이에 편지가 오고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강동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칭찬과 격려의 글이 쏟아졌다. 또한 김서장으로부터 답장을 받은 윤락녀들이 “저희들의 당돌한 편지를 서장님이 정성스럽게 읽어줘 고맙고 앞으로 편지를 계속하고 싶다”고 게시판에 남겨 놓아 “아직도 세상은 따뜻한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네티즌들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윤락가의 불법행위 단속과 윤락녀의 인권보호는 다른 문제지만 이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편지를 주고받으며 대화할 수 있게 돼 기쁘고 앞으로도 편안한 대화의 장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김서장은 밝게 웃으며 “경찰에 입문할 당시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찰이 되겠다는 각오를 늘 잊지 않고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른 겨울추위를 녹인 김서장의 미소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성동아 2002년 12월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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