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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최미선 기자의 여행스케치

한겨울에 더욱 운치 있는 두령 산장 하룻밤 체험

“고즈넉한 분위기도 ‘짱’이지만 산장지기의 구수한 입담에 더 빠져드는 곳이랍니다”

■ 글&사진·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입력 2002.12.13 09:55:00

소담스럽게 내린 눈이 지붕을 덮고 산천을 덮은 모습이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지는 한적한 겨울 산장. 생각만 해도 운치가 있다. 2002년 한해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쯤 고즈넉한 겨울산장을 찾아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보는 것은 어떨까?
한겨울에 더욱 운치 있는 두령 산장 하룻밤 체험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꽃이요, 여름엔 시원스럽게 흐르는 계곡물, 가을엔 마치 산불이라도 난양 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 겨울엔 소담스러운 눈으로 뒤덮인 산….
예나 지금이나 달력을 넘기다 보면 계절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은 풍경들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상투적이고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는 모습(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2002년도 끝자락에 와 있는 12월이라… 이번엔 어디로 여행을 떠나야 각박한 세상살이에 조금이나마 ‘피가 되고 살이 될까’ 싶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후보 물망에 오른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그 가운데 속칭 ‘필’이 꽂히는 곳이 운두령산장이었다. 인적이 드물어 원시의 자연과 산속의 정취가 물씬 배어나온다는 운두령. 그 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에 달력에 나옴직한 그림 같은 겨울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강원도 산골의 아담한 산장이 눈에 쏙 들어왔다.
밤마다 모닥불 피워놓고 바비큐 파티 여는 산장
그러나 더욱 구미가 당겼던 건 산장을 운영하는 ‘산장지기’ 권대선씨(사람들은 그를 산속의 두목이라 하여 ‘두령’이라고 부른다)의 풋풋한 ‘철학’ 때문이다. 권두령은 산장 손님들을 방에 그냥 놔두질 않는다는 것. 저녁이 되면 비가 오나(비오는 날은 양철 지붕 밑에서 한다고) 눈이 오나 사시사철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손님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 먹으며(물론 여기에 술도 한잔 곁들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산장의 운영 방침이라니 한해를 돌아보면서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체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장을 찾아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영동고속도로 속사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운두령으로 향하는 인제 방향(31번 국도)으로 10여분 정도 달리니 길 왼편에 앙증맞은 모양의 나무판에 ‘운두령산장’이라는, 동글동글한 글자가 오밀조밀하게 씌어있는 간판이 쉽게 눈에 띄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로 접어든 이후 산장에 도착할 때까지 기자가 운전하는 차량 앞뒤로 다른 차는 단 한대도 없었으니 과연 인적이 드물긴 드문 곳이지 싶다.
강원도 평창군 내에서 산세와 경치가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라는 노동계곡(계방산이 옆에 있어 계방계곡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함)을 끼고 아늑하게 자리잡은 산장에서 제일 먼저 손님을 맞는 이는 롬멜이라는 이름의 진돗개. 나무에 묶여 줄 길이가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컹컹거리는 게 안돼 보이긴 했지만 반갑다며 연신 꼬리를 흔들어대는 녀석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이미 한차례 내린 눈발이 마당 군데군데를 덮은 형상은 마치 시루에 뿌려진 떡가루 같다. 그 마당 위를 거위와 닭들이 가느다란 발자국을 찍어가며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한켠에는 가마솥으로 만든 모닥불통과 나무 등걸을 그대로 잘라 만든 의자가 빙 둘러져 있어 아이들에겐 도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볼거리와 재미를 안겨주는 곳이다.
마당 끝에서 가파르게 연결된 나무 계단을 내려가니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제법 들린다. 여름에는 물소리가 워낙 커서 옆 사람과 얘기하기가 거북할 정도라나? 11월 초임에도 계곡물은 이미 투명한 살얼음이 덮여 있어 코끝으로 싸한 ‘얼음기운’이 스친다. 해발 800m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겨울엔 기온이 서울보다 보통 8도는 낮다고 한다. 한여름에도 해가 지면 모기조차 도망갈 정도로 서늘해서 긴소매 옷을 입어야 한단다.
한차례 주변을 둘러본 후 산장 안으로 들어서니 권두령은 한창 보일러 손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긴, 만만치 않은 강원도 산골 추위를 감당하려면 무엇보다 보일러가 생명 아니겠는가. 재미있는 것은 권두령의 허리춤에 꽂힌 무전기였다. 늘 못질을 하며 뭔가를 하나씩 만들어내고 집안팎을 손수 꾸미고 장작도 패놓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마당에서 보내는 고로 집안에 있는 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마다 매번 소리를 지르기도 뭐해 마련했다는 것(이 무전기는 저녁에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 때 그 진가를 나타냈다. 고기를 구워 먹다 김치가 떨어지자 권두령은 실내에서 일하는 부인에게 바로 무전을 ‘때려’ 갖고 나오게 했다).
산속의 밤은 성미도 급하지, 정말 빨리 찾아온다. 물론 날이 좀 흐린 탓이기도 했지만 오후 5시가 채 됐을까 말까 할 즈음 벌써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권두령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한다. 나무를 한두름 지고 나와 정글도(산나물 채취하러 갈 때 장애물을 없애는 데 쓰는 무식하게 생긴 칼을 권두령은 그렇게 지칭했다)로 나무를 자르고 모닥불을 지피는 모습이 아주 능숙해 보인다.

한겨울에 더욱 운치 있는 두령 산장 하룻밤 체험
한겨울에 더욱 운치 있는 두령 산장 하룻밤 체험
환한 불길이 연기와 함께 치솟으니 산장 마당은 또 다른 분위기가 살아난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불에 그을린 구수한 나무 냄새가 마당 가득히 뒤덮이다 보니 뭐랄까? 몸보다는 마음이 더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그러자 산장을 찾아 여정을 풀던 손님들이 하나 둘씩 마당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권두령을 따라 옆에 있는 또 다른 가마솥에다 모닥불을 피우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지 한참동안 애를 쓰는 모습이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이들도 불 피우는 게 흥미로운지 잔가지를 집어 슬쩍슬쩍 모닥불에 던져넣는다.
불기운이 점점 커지면서 연기가 걷힐 즈음 권두령은 대형 석쇠를 걸쳐놓고 불에 달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툼하게 썬 삼겹살과 숭숭 썰어 수북하게 담은 김치, 하얀 배추속대와 풋고추, 양념장이 푸짐하게 날라져 왔다. 정말이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야말로 ‘죽이는’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바비큐 파티 아닌가! 처음엔 ‘피곤하니까 그냥 조용히 방에서 지내리라’ 했던 사람도 마당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되면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 여지없이 얼굴을 내민다는 게 권두령의 얘기다.
바비큐 파티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서로 모르는 사이로 서먹서먹해하던 사람들도 술잔이 한두잔씩 오가면서 어느새 이러쿵 저러쿵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변하는 걸 보니 역시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때쯤 되면 이곳을 찾은 손님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넌지시 전하고 싶어하는 권두령의 ‘한말씀’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는 문화가 별로 없어요. 이런 데까지 와서 기껏 하는 것이 방안에 틀어박혀 앉아 고스톱 치고 술 마시고 그런 건데… 그럴 시간에 애들과 함께 주변에 있는 산도 둘러보고 잔가지도 주워와서 나중에 모닥불도 피우고 낙엽 태우면서 그 냄새도 맡고 하면 얼마나 좋아. 아, 도심에서 어떻게 불장난을 할 수 있어. 여기선 맘껏 할 수 있는데 얼마나 좋아. 또 도시에서 각박하게 살다 모처럼 떠나서 이런 데 오면 이야기의 깊이도 달라져요. 같은 얘기라도 어떤 분위기에서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자세도 틀려지거든. 우리집에 온 이상 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손님들을 방안에 앉혀놓지 않고 바깥으로 끌어내서 좋은 공기 마시게 하고 소리도 지르게 하는 거예요.”
권두령의 말에 다들 “옳으신 말씀”이라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두령님을 위해 건배”를 외쳤다.
요즘은 테마여행이라 하여 갖가지 특징을 앞세워 떠나는 게 추세라고 한다면, 운두령산장의 테마는 ‘자연스러움’과 ‘인간적임’ 그 자체다. 하지만 갑부도 아닌 권두령이 오는 손님에게 바비큐 파티를 그냥 열어줄 수는 없는 노릇. 바비큐 고기 1인분에 7천원을 받지만 거기에 권두령은 자존심을 담는다고 한다. 고기 질이라든가, 날씨라든가, 고기에 어울리는 장작이 없다든가, 바비큐 파티를 여는데 적격인 조건이 하나라도 빠질 땐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안한다고.
여기에 또 한가지, 다른 조건이 다 채워져도 손님이 주인의 분위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도 파티를 여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 기껏 공들여 해줬는데 추운데 밖에서 이게 뭐냐고 내심 불평하면 준비하느라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도 못듣고…. 그럴 땐 돈 받는 것도 찜찜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것. 이제는 처음 몇마디 나누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분위기 파악이 완료된단다.

바비큐 파티를 신청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고기를 가져 온다면 번개탄이든 뭐든 각자 땔감을 준비해와야 한다. 아님 산장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나무들을 알아서 주워와 때야 한다. 다른 인심은 후한 권두령이라 할지라도 장작인심만큼은 야박(?)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초기에는 그도 손님들에게 자신이 패놓은 장작을 그냥 내주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온 천지에 나무네’ 하면서 흔하다는 생각에 마구 갖다 쓰더라는 것. 자신은 그걸 만들기 위해 하루종일 땀을 흘렸건만 남이 애쓴 건 생각도 안하고 아무렇게나 갖다 쓰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노력을 스스로 체험하도록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때부턴 사람들도 자신이 직접 나무를 해오는 수고를 체험하면서 불을 지필 때 하나라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그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 처음엔 야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권두령의 이런 ‘깊은 뜻’을 알고 나선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다.
모닥불이 서서히 잦아들 즈음 권두령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과 사람간의 따뜻한 정을 체감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곳에 와서 보니 단순히 쉬다 가는 거라기보다 마음을 열고 가는 것 같아 기분 좋다”는 말과 함께 아쉬움을 남기며 저마다의 숙소로 돌아갔다.
운두령 산장의 객실은 달랑 4개뿐(12~15평 크기로 복층 구조, 이용료는 주중 8만원, 주말 10만원)이기 때문에 산장의 모든 손님이 다 모인다 해도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방이 적은 만큼 사전에 예약(033-332-7481)을 해야 한다. 예약을 해놓고 ‘펑크’내는 사람들이 많아 예약금은 전액 입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울러 산장 주변에는 장을 볼 만한 곳이 없어 먹을거리는 미리 준비해 와야 한다.
이곳에 오면 산장의 훈훈함과 함께 계절별로 자연이 바로 내 코끝에 와 있다는 것을 바로 느끼게 된다. 겨울에는 코끝으로 찬 바람이 스치고, 발 밑에 눈이 있고, 앙상한 가지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봄이면 꽃향기가 날리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가을에는 단풍이 코 앞에서 나풀거리고…. 이렇듯 거짓 없는 자연만큼이나 맑고 순수한 산장지기의 마음이 어려 있는 운두령산장에서의 하룻밤 체험, 짧은 일정이지만 그야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값진 여행이었다.


여성동아 2002년 12월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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