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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프라이버시 인터뷰

‘야인시대’의 매력적인 조연 이창훈의 일과 사랑

“쌍칼, 구마적 못지않은 카리스마 보여주고 멋있게 떠날 거예요”

■ 글·이한경 기자(hklee9@donga.com) ■ 사진·조영철 기자

2002. 12. 11

지난 7월 첫 방송을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야인시대'. 주연 안재모를 비롯해 ‘쌍칼’ 박준규, ‘구마적’ 이원종, ‘신마적’ 최철호 등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이 드라마에서 다음 주자로 나선 사람은 바로 ‘하야시’ 이창훈이다. 매력적인 악역을 하고 싶어 조연을 자처했다는 그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일과 사랑 이야기.

‘야인시대’의 매력적인 조연 이창훈의 일과 사랑
풍운아 김두한의 생애를 그린 SBS 월화드라마 ‘야인시대‘의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최근 김두한이 주먹세계의 ‘오야붕’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그리면서 50%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쌍칼’ 박준규, ‘구마적’ 이원종, ‘신마적’ 최철호 등이 주인공 김두한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김두한에게 패한 쌍칼, 구마적, 신마적이 떠난 ‘야인시대‘에서 인기 돌풍의 다음 주자로 나선 사람은 ‘하야시’ 이창훈(36). 사업 영역을 종로로 확장하려던 하야시는 사사건건 김두한과 부딪치면서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어차피 ‘야인시대‘의 주인공은 김두한이니까 오래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저 역시도 앞선 사람들처럼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나게 되겠죠. 사실 처음 ‘야인시대‘의 출연을 결정했을 때는 초반부터 부각되는 걸로 알았는데 제 차례가 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한마디로 연출을 맡고 계신 장형일 감독님한테 속은 거죠(웃음).”
“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오기까지 4개월이나 걸릴 줄 몰랐어요”
그가 ‘야인시대‘의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은 지난 5월. 장형일 PD는 당시 그가 주연한 영화 ‘4발가락‘의 시사회장까지 찾아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때 그가 출연을 망설인 가장 큰 이유는 하야시가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는 점. 하지만 내심 하야시가 악역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꼈던 그는 장PD의 설득에 마음을 바꾸었다.
대신 그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야시를 ‘태조 왕건‘의 궁예처럼 멋지게 그려줄 것과 가능한 한 액션 장면을 많이 찍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장PD는 이런 그의 요구 조건을 흔쾌히 수락했다. 당시 그가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하야시의 모습은 잔인하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지닌 야쿠자 보스의 모습. 하지만 그는 당초 약속과 달리 4개월이 지나도록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하야시가 멋있는 액션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회를 거듭해도 부하들을 모아놓고 회의하는 모습만 나오더군요.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감독님께 이의를 제기했더니 감독님이 솔직하게 ‘너를 잡고 싶어서 거짓말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나오시는데 뭐 어쩌겠어요? 이미 정도 들었고 해서 나오는 장면이 적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가 하야시를 연기하면서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영화배우 신현준이 90년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연기했던 하야시다. ‘야인시대‘에 출연키로 하고 ‘장군의 아들‘을 다시 봤는데 당시 신인이었던 신현준이 연기를 너무 잘했다는 것. 그 영화를 보고 그는 최소한 후배보다는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어떤 때보다도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야인시대‘ 제작진은 그에게 일본인 성우를 붙여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거절했다. 기왕이면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하고 싶어서다. 그는 종종 드라마에서 한국어를 하는 모습이 어색하다는 말을 듣는데 이는 일부러 일본어 억양을 살려 한국어를 하기 때문이라고.

‘야인시대’의 매력적인 조연 이창훈의 일과 사랑

그는 올해 말까지 <야인시대>에만 출연할 생각이라고.

“‘장군의 아들‘의 신현준씨는 일본인 성우가 더빙을 했다고 들었어요. 당시 신현준씨가 신인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목소리 연기까지는 무리였을 거예요. 대신 시선 처리나 표정 연기는 완벽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신현준씨에 비하면 베테랑이고 해서 욕심을 냈죠. 다행히 제작진에서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단번에 OK 사인을 냈어요.”
종종 회의 장면이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방영되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숨은 사연이 있다. 출연자들이 세번 이상 NG를 내면 장형일 PD가 곧바로 한국어로 바꾸라고 지시한다는 것.
“전 초보 연기자일 때부터 촬영이 있으면 미리 세트에 들어와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요즘 후배 가운데는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언젠가 한번도 그런 상황이 벌어져서 제가 ‘NG 내지 말라’고 미리 경고를 했는데 어김없이 돌아가며 NG를 내더라고요. 물론 그 장면도 한국어로 촬영됐고요. 가끔 그런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까워요.”
다작(多作) 연기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NG를 내서 촬영이 중단되는 일은 손에 꼽는다. 한때 그는 한꺼번에 무려 4편의 드라마에 겹치기 출연을 한 적도 있는데 그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도 연기자로서 자기 관리를 잘못했다고 인정한다. 90년대 스타덤에 오른 연기자 가운데 그만큼 많은 작품에 출연한 사람이 없다는 것. MBC 19기 공채 탤런트 출신인 그는 92년 MBC 주말연속극 ‘엄마의 바다‘로 청춘스타 대열에 합류한 후 무수히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스타성’을 잃어버렸다.
“일하는 게 좋아서 욕심을 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돈 욕심이 컸어요. 젊어서 남편을 잃고 혼자 힘으로 1남4녀를 키우신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싶었거든요. 한마디로 인기 관리 같은 걸 생각할 틈이 없었죠. 평생 고생만 해오신 어머니에게 번듯한 집 한칸이라도 마련해드리고 싶은 욕심에 한창때는 하루 2시간씩 자면서 강행군을 했지요.”
그렇다고 작품 하나하나에 소홀한 적은 없다. 4편의 드라마에 겹치기로 출연할 무렵, 그는 이영애, 추상미 등이 출연한 <초대>에도 출연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드라마가 끝난 뒤 담당 작가인 최윤정씨로부터 “내가 쓴 대본보다도 연기를 더 잘해줘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야인시대’의 매력적인 조연 이창훈의 일과 사랑

그는 스타가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지만 대신 폭넓은 사랑을 얻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는 지난해 그렇게 소원하던 집을 어머니에게 사드리면서 조금 여유를 찾았다. 요즘 출연중인 드라마가 ‘야인시대‘ 단 한편뿐인 것. 그는 올해 말까지는 이렇게 빈둥대다 내년쯤에나 다음 작품을 결정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즐기고 싶어서 요즘 신나게 놀고 있어요. 몇달 전에 골프를 시작했는데 경치 좋은 곳에서 골프 친다는 핑계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죠. 며칠전에도 전라도에 사는 친구들 만나러 내려갔다 왔는데 문득 ‘내가 사람답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도 감상하고 술도 마시고 지금처럼 행복했던 때가 또 있었나 싶어요.”
20대에 자신을 짓눌렀던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난 요즘이 너무 좋아
그는 술을 마시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그는 평소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자기 절제가 강한 스타일.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잘못 행동하면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라 그렇다’는 말을 듣게 될까 봐 조심하며 살아온 것이 자신도 모르는 새 제2의 본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평소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딱딱한 틀에서 유일하게 벗어나는 순간은 바로 술에 취했을 때. 그는 그때서야 술의 힘을 빌려 친구들에게 욕도 하고 가슴 속에 담아놓은 이야기도 속시원히 털어놓는다고 한다.
“사실 여기까지 오기 참 힘들었어요. 저를 위한 시간을 하루에 30분도 낼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았다면 어떤 모습일지 짐작되시죠? 그런 만큼 가슴에 쌓이는 것도 많았는데 성격상 발산은 못하고…. 그러다 어쩌다 시간이 나서 친구들하고 술 마시면서 스트레스 풀고 그랬죠. 고맙게도 제 주위에 좋은 친구들이 많거든요.”
그는 짧지 않은 생을 살아오면서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연기자로서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올랐고 20대에 자신을 짓눌렀던 경제적 부담감에서도 벗어났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명의로 된 집은 모두 3채.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과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최근 마련한 오피스텔까지 포함해서다.
“아직은 막연한 생각뿐이지만 좀더 나이가 들면 임대업을 해볼까 해요. 원래 연기자라는 직업이 불안정하니까 부업이 있었으면 해서요. 그래서 지금은 버는 즉시 저금하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러죠. 연예인이라고 하면 큰돈 버는 걸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쓰는 돈도 그만큼 커요. 아무래도 제가 많이 버니까 사람들 만나면 주로 돈을 내거든요.”
최근 방송가에서는 누가 최고의 개런티를 받고 드라마에 출연했다는 기사가 연일 화제를 모으지만 그는 별 관심이 없다. 출연료를 많이 받으면 그만큼 시청률에 대한 책임도 커지기 때문에 부담스럽다는 것. 그는 현재 일반에 공개된 개런티 등급 가운데 최고 등급을 받고 있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한 한 작품을 끝내고 오랜 공백기를 갖는 연기자들이 많은데 그는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한다. 연기자는 ‘감’이 중요한 직업인데 오래 쉬면 바로 그 ‘감’을 잃게 된다는 것.
“‘골프황제’라는 타이거 우즈도 하루에 8시간씩 연습한다잖아요.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죠.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오랜만에 연기에 복귀했다고 화제를 모았던 연기자 가운데 기대에 못 미친 연기로 혹평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해요. 그런 이유로도 전 공백 없이 꾸준히 활동하는 연기자가 될 겁니다.”
이미 노총각 대열에 들어섰지만 그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 어렵게 얻은 지금의 여유와 자유를 맘껏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홀어머니 홍순암씨도 가끔씩 “누가 옆에서 밥을 해줘야 할 텐데…”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하지만 서둘러 결혼하라고 종용하지는 않는다고.
어떤 역을 맡겨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내는 연기자 이창훈. 그는 스타가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되었기 때문. 그는 “얼마전 어느 시골에 갔었는데 시골 할머니가 알아보고 너무나 반가워하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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