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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님 되기 위해 명예퇴직한 전 서울경찰청 차장김기영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2. 11. 21

“경찰 서열 5위이자 차기 총수감으로 거론되던 그가 초야를 택한 이유는?”17만 경찰관 중 서열 공동 5위인 고위 경찰 간부가 ‘스님이 되겠다’는 이유로 명예퇴직했다. 김기영 전 서울경찰청 차장이 화제의 주인공. 그는 지난 10월2일 명예퇴직을 신청했고, 10월17일 치안정감으로 1계급 승진하면서 퇴직했다. 평소 남다른 의협심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추후 경찰총수감으로 꼽혀왔던 그가 권력을 버리고 초야에 묻힌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스님 되기 위해 명예퇴직한 전 서울경찰청 차장김기영
온갖 폭로전쟁과 오직 자신의 실리만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환멸을 느끼지 않은 국민은 없을 것이다. 특히 대선정국에 접어들면서 정의와 명분, 오랜 동지애도 벗어 던지는 그들의 모습에 ‘도대체 권력이란 게 뭐길래 다들 저렇게 잡고 싶어서 난리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난 10월2일 있었던 김기영 전 서울경찰청 차장(54)의 명예퇴직 신청이 세간에 화제를 모으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스님이 되겠다”는 이유로 명예퇴직을 신청한 그는 17만 경찰관 중 서열 공동 5위인 고위 인사. 그의 상급간부로는 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 경찰대학장, 경찰청 차장 등 단 4명뿐이다. 또 그는 남다른 의협심과 추진력을 인정받아 경찰 내부에서 차후 경찰총수감으로 꼽혀왔다. 최소 3년 이상 ‘권력’을 쥘 수 있음에도 스스로 박차고 나와 구도자의 길을 택한 것.
명예퇴직을 신청한 다음날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스님이 되려고 했다.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는 것일 뿐”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다. 그는 “대구에 사는 누님과 암자를 짓고 부처님을 모시거나 대학 동창생이 있는 절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194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그는 선친이 대처승이고 식구들 모두 독실한 불교 신자인 불교 집안에서 자랐다. 부산 동래고를 졸업한 후 기독교계 대학에 진학하려 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동국대 불교학과에 갔을 정도. 대학 졸업 후 그는 선친의 절을 이어받기 위해 절에 들어가 수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절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내려왔다. 절에서 돌아온 후 그는 75년 간부후보생 23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그리고 28년간의 경찰 생활 동안 남다른 의협심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거침없이 일해왔다.
가족의 반대로 그가 정말 승려로 입적할지는 아직 미지수
95년 서울 강동경찰서장 재직 당시 ‘천호동 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사창가를 ‘싹쓸이’했다. 당시 그는 12~16세 미성년자들의 윤락사건을 접하고는 사창가 단속을 시작했다. 포주들이 지역유지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이고 ‘경찰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단속강도를 높여 사창가를 없애버렸다. 김강자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평소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이고 원칙주의자라 온갖 협박에도 불구하고 사창가 단속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 역시 사창가 단속을 하는 데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강자 과장 역시 서울 종암경찰서장 재직시 ‘미아리 텍사스촌’ 사창가를 철저히 단속한 바 있다. 한편 그는 김 전차장과 88년 서울올림픽을 함께 치른 적이 있는데,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스님 되기 위해 명예퇴직한 전 서울경찰청 차장김기영
“올림픽 당시 기안을 너무 잘해 비결을 물었더니 ‘나는 화장실에서도 기안을 연구한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한번은 김 전차장이 의경들을 지휘하는 단상에 서서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남성적이고 멋져서 ‘전경찰을 지휘해라’고 소리친 적도 있다. 야망도 있는 사람이라서 경찰총수까지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아쉽다.”
그외에도 김 전차장은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장일 당시 거물 조직폭력배 이강한을 검거하는 등 다수의 대형 사건을 성공적으로 처리하면서 경찰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한편 그는 자기 자신 및 조직관리에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했다. 청렴하기로 유명했던 그는 경찰서장 시절 관내 유지들의 청탁을 피하기 위해 점심은 늘 혼자 먹었고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테니스를 치거나 산책을 하는 등 시간낭비 없이 살려고 노력했다.
그는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에 수사 능력까지 뛰어나 부하직원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경찰내부에서는 그의 명예퇴직을 보며 훌륭한 인재가 그만둔 것을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평소 그가 “나는 중이 될 팔자”라고 말해올 정도로 불심이 깊은데다 한번 결심하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몰아붙이는 스타일이기 때문.
그의 명예퇴직 신청은 지난 10월17일 수리됐고 그는 치안정감으로 1계급 승진하면서 퇴직했다. ‘명예퇴직 신청 후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해 행방이 묘연하다’는 언론보도와는 달리 그는 현재 대구의 한 개인병원에서 요양중이며 가족들과도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다. 그가 정말 승려로 입적할지는 아직 미지수. 부인인 곽정선씨를 비롯해 가족들이 강력하게 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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