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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가슴 뭉클한 사연

‘환경운동하는 글쟁이’최성각과 네팔인 여성 찬드라의 특별한 인연

“약자와 더불어 살지 못하는 무례한 삶의 태도 버리기,그것이 환경운동이며 인권운동입니다”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김지현 ■ 사진·정경택 기자, 풀꽃세상(www.fulssi.or,kr)

입력 2002.11.14 12:31:00

소설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최성각씨. 그는 10월 중순에 네팔로 잠시 떠났다. 2년 전 구명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찬드라에게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찬드라는 한국에서 ‘정신병자’로 오인받아 정신병원에서 7년여를 감금당했던 네팔인 여성 노동자.
“환경운동과 외국인 노동자 인권운동은 한 뿌리”라고 말하는 최성각씨를 만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들어보았다.
‘환경운동하는 글쟁이’최성각과  네팔인 여성 찬드라의 특별한 인연
2000년 3월 어느 날 소설가 최성각씨(46)는, 네팔에서 섬유 관련 일을 배우러 한국에 온 케이피 시토우라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찬드라 구룽이라는 네팔 여성이 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자세한 사연을 들은 최씨는 가슴에 둔중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네팔인 여성 노동자 찬드라 쿠마리 구룽(46)이 동네 식당 주인과 음식물 계산문제로 다투다 동부경찰서로 넘겨진 것은 93년의 일. 취조과정에서 우리와 비슷한 외모에 한국말이 서툰 찬드라는 정신병자로 몰렸고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됐다. 무려 6년4개월 동안 병원을 떠돌며 ‘정신병자’로 취급받아온 찬드라가 한국말이 서툰 네팔인이라는 것을 알아낸 이는 용인정신병원의 의사 황태연씨. 그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하 풀꽃세상)’의 회원이자 네팔의료봉사활동자인 이근후씨에게 이 사연을 전했고, 이근후씨는 네팔인 노동자 케이피에게 찬드라의 신원을 알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찬드라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몰아 7년 가까이 감금해두다니,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어찌 이런 야만적인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해가지고 이 나라를 과연 문명 국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찬드라의 얘기를 접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막 낳은 돼지 새끼를 내다버린 아버지를 보고 충격받았던 소년 시절
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 등단한 최성각씨는 라는 소설집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소설가라는 본업보다 ‘환경운동을 하는 글쟁이’로 더 유명하다. 현재 그는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사무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하다가 ‘환경운동’에 관심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까. 최씨에게 환경운동은 단지 ‘환경’ 그 자체가 아니라 ‘생명’을 아우른 폭넓은 개념이다. 얘기는 아주 오래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 우리집에서는 돼지를 한 스무 마리 정도 키웠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갓 태어난 새끼돼지 한 마리를 남대천에 버리는 겁니다. 어미돼지의 젖이 열두개인데, 열세 마리의 돼지가 태어나는 바람에 가장 약한 돼지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어린 나이의 제게 그 모습은 아주 충격적이었어요. 저는 아버지가 새끼돼지를 버리던 날 밤, 몰래 나가 강에 버려진 그 새끼돼지를 구해 있던 자리에 도로 갖다놓았어요.”
일명 ‘돼지 사건’은 어린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모질게 돼지를 버린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던 그는 아버지를 고발하는 글을 써서 에 응모, 입선하게 된다. 훗날 7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 또한 환경과 관련한 글이었다. 내용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영동지방이 얻은 것과 잃은 것에 대한 것이다.
“대관령이 뚫리고 영동고속도로 공사가 벌어진 일은, 제게는 아주 큰 사건이었어요. 눈 덮인 대관령의 신비가 끝장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고향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빨라졌고 여기저기 이상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입에 자주 올리는 이야기들이 발전, 개발이라는 것을 느꼈지요. 소비가 부추겨지고 잘산다는 게 돈을 많이 가진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기 시작하더군요.”
이처럼 성장과정에서 온몸으로 겪었던 환경문제들은 그후로도 그에게 ‘여진(餘震)’처럼 영향을 미쳤고 자연스레 그의 글 속에 녹아 들어갔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시절, 그의 청바지 뒷주머니에는 늘 헨리 소로우의 이 꽂혀있을 정도였다. 은 자연 예찬을 바탕으로 한 숲 생활의 기록이자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은 책이다.
“제가 대학 다니던 때는 유신시절이었지요. 말이 감금되고 침묵이 강요되는 우울한 시절이었어요. 그때 저는 강의실에 들어설 때나 막걸리를 마실 때나 언제나 그 책과 함께했어요.”
그후 최씨는 81년 아내와 함께 뗏목으로 낙동강 발원지에서 부산 구포까지 노를 저어 내려가기도 했고, 이때의 경험을 강원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오염된 강과 기형어, 죽은 철새들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해서 연재한 것. 또한 97년에는 북인도 라다크에 가서 스웨덴의 언어학자이자 녹색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를 만나기도 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에 문명사회가 도래했을 때의 문제점을 짚어낸 저서 로 유명한 이다.
“그래도 문명화가 덜 된 네팔과 라다크인들을 보며, 어쩌면 저들에게서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이때부터 환경과 생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씨에게 좋은 글이란, 생명을 존중하는 세상이 바탕이 되는 글이다. 그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면 결코 좋은 글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제가 속해있는 ‘풀꽃세상’에서는 자연물에게 상을 드립니다. 감사와 때로는 사죄의 마음으로 본상은 자연물에게, 부상은 본상과 관련해 애쓰신 분들이나 단체에게 드리고 있지요. 지금까지 새, 돌, 풀, 골목길, 조개, 꽃, 지렁이, 자전거에게 풀꽃상을 드렸어요. 다만 상징적인 의미로 상을 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렁이 키우기, 자전거 타기의 일상화, 갯벌체험 참여 등 현실생활 속에서 풀꽃상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풀꽃상이 선정될 때마다 ‘풀꽃세상’에서는 라는 비매품 매체를 발행, 풀씨처럼 세상에 뿌린다고 한다. ‘풀꽃세상’에서는 회원 한명 한명을 ‘풀씨’라고 부른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러한 마음을 ‘풀씨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풀씨처럼 세상에 퍼뜨려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환경운동하는 글쟁이’최성각과  네팔인 여성 찬드라의 특별한 인연

환경사랑을 실천하는 <풀꽃세상>회원들과 함께한 최씨(오른쪽 세번째).

이처럼 환경운동가인 그가 외국인 노동자인 찬드라 구룽의 일에 적극 개입한 것은 왜일까. 그는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저는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이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찬드라 구릉 사건의 원인은 제3세계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근거 없는 멸시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난폭한 인권유린과 폭력의 뿌리는 한국의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야기해온 물질지상주의와 약자와 함께 사는 데 서툰 무례한 삶의 태도에서 기인했다고 봐요.”
네팔 여인 찬드라 쿠마리 구룽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92년 2월, 단기비자로 한국에 온 그는 광진구의 한 유공업사에 입사해 근무했고 이듬해 11월, 음식물 계산문제로 다투다 동부경찰서로 넘겨졌고 곧바로 1종 행려자로 처리돼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 찬드라는 히말라야 산간지대에 흩어져 사는 구룽족의 한 사람. 구룽족은 몽골리안으로 우리 한국인과 외모가 아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언뜻 보기에 그녀는 우리네 순박한 시골 아낙네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경찰은 그런 그녀를 한국말이 서투르다는 이유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정신병자로 몰고간 것이다.
“찬드라는 경찰서에서도, 청량리 정신병원에서도 ‘나는 돈 벌러 온 네팔사람이다’ ‘내가 일하는 공장에 가봐라, 거기 여권이 있다’고 울부짖었어요. 하지만 행색이 남루하고 옷에 묻은 때와 냄새는 위생상태 미흡으로, 내보내 달라는 호소는 고집이 센 정신병자의 특성으로 기록되고 말았지요.”
찬드라는 병원에 감금된 지 사나흘 후 ‘1종 생활보호대상자’로 낙인 찍히면서 ‘선미야’라는 한국이름을 얻고 강제 치료 상태에 들어갔다. 94년 7월, 청량리정신병원에서 서울시립부녀자보호소로, 이어서 용인정신병원으로 옮겨진다.
“용인정신병원 황태연 박사님이 찬드라가 네팔인이라는 사실을 안 뒤, 주변에서 네팔인을 만나기 위해 적잖이 애썼다고 해요. 겨우 한 파키스탄인을 만났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가 ‘선미야’가 아니라 ‘찬드라 쿠마리 구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파키스탄인은 찬드라가 발음하는 대로 ‘Chandra Kumari Gorum’이라고 이름을 써주었고 황박사는 이것을 출입국사무소에 공문을 보내 조회를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신원 확인 불가’. ‘Gurung’이 ‘Gorum’으로 잘못 표기된 탓에 신원 확인에 실패했던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그녀는 정신병자 아닌 정신병자로 정확히 6년3개월26일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어야 했다.

“찬드라 사건이 이토록 저의 마음을 둔중하게 때린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았어요. 그 동안 여러 차례 히말라야 산중을 헤매면서 만났던 라다키나 구룽족, 티베탄들에게서 느꼈던 깊은 인간애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들은 우리 이웃과 달리 탐욕과 경쟁, 경제지상주의에 오염되어 있지 않아요.”
최씨는 젊은 시절, 대학 선배와 함께 배낭 하나 둘러메고 몇달씩 히말라야나 남미나 중국의 외진 땅을, 허리에 칼을 차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지 않은 구룽족의 순수함, 순박함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그였기에, 찬드라 사건은 이 땅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다가왔던 것이다.
“‘풀꽃세상’을 통해 사과하고 위로할 줄 아는 한국인도 있다는 것에 감동한 찬드라가 우리를 초대했어요. 그때가 2001년 4월이었죠. 찬드라의 고향인 네팔 히말라야를 방문했고, 그 사실이 네팔 영자신문 1면에 실리면서 한국과 네팔 사이에 가로놓인 미움을 다소라도 걷어내는 데 기여했지요. 이 일은 ‘환경문제는 환경문제만은 아니다’라는 ‘풀꽃세상’의 생각이 빚어낸 아주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씨는 올해 3월 ‘풀꽃세상’과 계간 이 공동 모금운동을 벌여 모은 돈 1천만원 가량을 전대에 넣어 허리에 차고 네팔로 건너가 찬드라에게 직접 전달했다. 10월 중순경 그는 추가로 모인 7백만원을 전하기 위해 다시 네팔을 찾았다.
“돈을 전대에 넣어간 것은 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어요. 젊은 시절, 어머니께서는 대학 등록금과 같이 소중한 돈은 무명천으로 된 전대에 넣어 제게 주곤 하셨어요. 전 모금운동을 통해 모은 돈은 찬드라에게 사죄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참회의 돈이며, 이 땅의 인간성 회복을 염원하고 상징하는, 매우 소중한 돈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대에 넣어 찬드라에게 전달하기로 한 것입니다.”
젊은 시절 최씨의 어머니가 무명천으로 전대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의 부인이 전대를 만든다. 무명천이 아닌 낡은 티셔츠로.
최씨와 ‘풀꽃세상’ 회원들의 노력으로 풀려난 찬드라 쿠마리 구룽. 그녀는 네팔로 돌아가던 날, 최씨의 귀에 대고 “우리나라, 놀러 와!” 하고 속삭였다고 한다. 약속대로 찬드라의 고향을 처음 방문한 날 “우리나라 놀러오라고 했지? 그래서 왔다!”고 말하는 최씨에게 “그래, 참 잘 왔다”며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던 찬드라. 얘기를 하는 동안 줄곧 표정이 어두었던 최씨지만 찬드라를 떠올리는 순간만큼은 덩달아 밝아진다. “처음 그녀의 마을을 찾았을 때, 우리는 찬드라에게 광명을 찾아준 특별한 사람들로 극진하고 따뜻한 환대를 받았어요. 마을 소년들은 피리를 불었고 우리는 좋은 식사를 대접받았지요. 인심 좋은 우리네 농촌 축제에 초대된 기분이었습니다.”
최씨와 찬드라가 나눈 우정과 친근감은 모든 이념과 국경을 넘어 맺어진 것이기에 더욱 끈끈하고 값져 보였다. 환경단체 일과 함께 네팔행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최성각씨를 졸라 얘기를 듣고 돌아서는 길. 최씨의 마지막 말은 물질만능주의와 근거 없는 우월주의에 젖어 제3세계 사람들을 멸시해온 우리의 비뚤어진 눈을 교정하라고 다시 한번 일깨우는 듯했다.
“현재 국내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줄잡아 35만명 가량 됩니다. 그들은 하루 12시간의 중노동과 폭행과 욕설, 성적 모욕, 산업재해, 임금체불,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서 학대받고 있어요. 국가간에 서열을 매겨놓고 거기에 따라 턱없는 동정과 연민을 보내거나, 멸시를 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그들에게 한국은 ‘일상적 차별’의 땅으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여성동아 2002년 11월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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