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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부부가 함께 보세요│남편 vs 아내

명절 때마다 끙끙 앓는 아내와 눈치 보는 남편

갈등해소하고 사랑 키워주는 부부 노하우

■ 글·최희정 ■ 도움말·유경희 ■ 일러스트·정지연

입력 2002.10.14 16:53:00

“즐거워야 할 명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음식 장만하랴 상 차리랴 시집식구들과 대면하랴… 명절이 다가오면 아내들은 고달프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다 나올까. 남편 역시 그런 명절이 편치만은 않다.
집안 어른과 불만 터뜨리는 아내 사이에서 눈치 보기 바쁘다. 과연 언제까지 이래야만 할까?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통한 문제진단과 즐거운 명절을 맞기 위한 ‘신 명절 프로젝트’ 제안.
며느리는 파출부? 명절은 시집식구들만의 잔치
명절 때마다 끙끙 앓는 아내와 눈치 보는 남편
해마다 추석 즈음이면 뒷목이 뻣뻣해 오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는다. 한달치 집안일 만큼을 시집에서 사나흘 동안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애를 할 때는 남편이 종가집 장손이라는 것이 그다지 맘에 걸리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결혼안한 시누이도 둘이나 있어 음식을 장만하고 만드는 일, 설거지하는 일은 서로 도와가며 할 것이라는 아주 ‘순진한’ 착각을 했었다.
그러나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추석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절 때마다 당해야 했던 고통과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지방에 사는 시어머니는 명절 사나흘 전부터 나를 부르신다. 남편한테 큰아이를 맡기고 작은아이는 업고 시댁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맨 처음 할 일은 떡과 강정 만들기. 아침에 일어나 쌀을 씻어 방앗간에 갖다주고 콩 볶고, 깨 볶아 엿을 묻혀 강정을 만든 다음, 인절미까지 해놓으면 어느새 하루는 후딱 지나간다. 간간이 시부모 밥상 차리랴, 칭얼거리며 우는 아이 달래랴, 동네 어른들 오시면 과일 깎아 드리랴 정말 혼이 쏙 빠질 것 같다.
둘째 날, 셋째 날 시집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차례 음식 만드느라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다. 결혼 전 도와줄 줄 알았던 시누이들은 직장 일이 바쁘다며 아예 안보이고 시어머니도 도와주기는커녕, 음식이 싱겁다, 짜다 하며 나에게 “ 너는 어째 손맛이 이리도 없냐, 그 음식 솜씨로 애비가 잘도 버티겠다”며 타박만 하기 일쑤다.
이 모든 일들이 신혼 때는 나를 제대로 가르치려는 것인줄 알고 정말 배우는 마음으로 견뎠다. 그런데 아이도 둘 낳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절 전날, 내 몸은 기름 냄새에 절어 있는데 마치 금의환향하는 것처럼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남편을 보면 반갑기는커녕, ‘나는 이렇게 뼈 빠지게 고생하고 있는데 그렇게 폼 잡으면 다냐?’는 생각에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그나마 이런 힘든 일들을 하고 나면 친정에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버티고 있는데, 종가집이라 작은집 식구들이 몰려 올 때면 이런 기대도 물거품이 된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작은집 식구들과 노느라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주부·결혼 7년차)

아내들이여, 속타는 남편 맘을 아는가?
아내는 명절 때마다 시댁에 갔다오고 나면 한동안 나하고 말도 안한다. 그만큼 힘들고 짜증이 났다는 거다. 하긴, 그 많은 식구들 먹을 음식장만에 설거지까지 한바탕 난리를 치르다보면 힘들었을 거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아내의 무언의 시위를 보면 나도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내만 힘든 게 아니다. 나 역시 보통 주부들이 앓고 있는 명절증후군 초기증세에 시달린다.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포항. 명절 한달 전부터 꽉꽉 막히는 도로를 뚫고 운전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남들 다 구하는 기차표가 왜 우리에게는 없는 건지, 비행기표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그렇다고 명색이 명절인데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을 수는 없고 부모님 용돈, 조카들 용돈 챙기는 것도 사실 부담스럽다.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20시간 정도 운전을 하고 고향에 내려가면 어깨가 욱신욱신 쑤시고 눈이 침침해 그냥 자리에 눕고만 싶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연신 일이 많다며 투정을 부린다. 사실, 아내도 직장에 다니느라 힘든데 쉬지도 못하고 먼 곳까지 와서 일만 죽도록 하고 가니 안쓰럽기도 하다. 아내가 안돼보여 어깨라도 주물러주면서 기분을 맞춰줄라치면 부모님과 형은 “쯧쯧, 사내놈이 할 것 없어 아내 눈치나 보고 있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신다. 아내에게 잘해주자니 부모님이 바보 같다며 언짢아하시고, 힘든 아내를 그냥 지나치자니 미안하기 짝이 없고…. 이래저래 눈치만 보다 명절을 지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남편·결혼 3년차)

시어머니보다 더 무서운 큰형님의 잔소리
나는 일년 중 명절 때가 가장 괴롭다. 남들은 연휴랍시고 쉬기도 하는데 나는 회사에서나 시댁에서나 마음 편히 쉬지를 못하고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몸이 힘든 건 그래도 참을 수 있는데 큰동서에게 받는 설움과 핍박은 정말 참을 수 없고 너무 억울해 눈물이 나올 정도다.
회사에 다니다보니, 명절 전전날에야 시댁에 도착하는데, 내 딴에는 서둘러 간다고 해도 그때마다 “늦었네” 하며 싸늘하게 인사를 던질 때는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 쥐 꼴이다. 매번 이러다보니 큰 형님과 사이가 좋지 않을 수밖에.
명절 때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집안 치우기와 설거지다. 아이들까지 합쳐 식구들이 다 모이면 20명이 넘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치우고 설거지하는 일이 장난 아니다. 국그릇 따로, 찌개그릇 따로, 반찬 접시들, 한번에 수십 개의 그릇을 씻고 나면 머리가 핑 돌 지경이다. 끼니마다 많은 그릇을 씻고 정리하는데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남편은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러 외출했고 시댁 식구들은 내가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나도 이 집의 며느리인데 모든 게 큰형님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에 남편한테 형님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으면 남편은 다독거려주기는커녕 “명절 때마다 그렇게 형수님 욕을 해야 직성이 풀리냐? 당신 지겹지도 않아?”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기까지 한다.
결혼한 지 5년이 됐지만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난 늘 이방인 신세다. 같은 여자인데도 나를 감싸주고 모자란 것을 가르쳐주기는커녕, 흠집을 찾아 잔소리만 하는 형님 얼굴 보기가 이제는 너무 부담스럽다.(주부·결혼 5년차)

역 귀성 시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온천여행
명절 때마다 끙끙 앓는 아내와 눈치 보는 남편
시댁이 지방에 있으면 귀성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나 역시 결혼 초에는 명절을 지내러 부산까지 내려갔었다. 그때 차 안에서 고생한 것이 너무 지긋지긋해 떠올리기도 싫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몸은 여기저기 쑤시지만 제대로 잠을 청할 수도 없다. 졸린 눈 비비며 운전하는 남편보기가 미안해서다. 20시간 넘는 길을 운전하는 남편은 무슨 죄란 말인가? 지난해부터 나는 남편과 시부모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들이라면 끔찍하게 여기는 시부모에게 “애기 아빠가 명절을 지내고 나면 한달 정도 앓아 누워요. 쉬지도 못하고 긴 시간을 운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직장일도 너무 힘든데 걱정이에요. 좀 불편하시더라도 아버님, 어머님께서 올라오셔서 명절을 지내면 어떨까요” 하고 은근히 떠봤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제안에 흔쾌히 “응”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아들이 몸 아프다는데 끝까지 고집 피울 부모 어디 있을까?
부모님 설득이 끝나자 나는 남편에게 “당신 운전하기 너무 힘들지? 부모님께서 올라오셔서 명절을 지내면 어떨까? 오다가다 길거리에 뿌리는 돈과 시간으로 부모님하고 온천여행을 하면서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하고 제안했다. 남편은 “어떻게 부모님이 올라오시게 해. 우리가 힘들어도 내려가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심 나의 제안을 따르고 싶어하는 눈치다. 이젠 내가 손 쓰는 일만 남은 셈.
지난 추석부터는 나의 제안대로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신다. 오실 때도 연휴를 피해서 이틀 전에 올라오시고 연휴가 끝난 이틀 후에 내려가시기 때문에 교통혼잡은 피할 수 있어 더욱 편하다.
명절날 차례를 지낸 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온천으로 향하는 우리 가족. 거기서 하루를 보내며 평소 때 하지 못한 말을 하면서 덕담을 나눈다. 우리가 부산에 내려갈 때는 부모님과 하루 이틀 정도밖에 함께할 시간이 없었는데, 부모님께서 역귀성하시니 일주일을 함께 있게 되어 남편도 좋아하고 부모님들도 만족해 하신다. (주부·결혼 4년차)

음식준비는 나누어서 준비, 한끼 외식은 기본
주위 친구들을 보면 명절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 같다. 그중 음식을 장만하고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들 한다. 잘 하면 잘 한대로 계속 시키고, 못 하면 시집오기 전에 친정에서 뭘 배웠냐며 핀잔이나 주고, 어쩌다 같은 여자랍시고 큰동서에게 투정을 부리면 “그래도 지금 많이 좋아진거야, 나 시집올 때는 더 했어” 하는 말이나 듣는다나. 그럴 때는 새로 생겨난 정도 싹 없어질 정도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이런 얘기를 듣다보면 ‘나는 참 다행이고 행복한 며느리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든다. 사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명절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안히 보낼 수 있는 것은 다 지혜로운 시어머니 덕분이다. 시어머니께서는 며느리들이 내려오기 전에 음식 몇가지쯤은 미리 준비하신다. 명절이라고 특별히 음식에 욕심을 부리시지도 않고 제상에 올릴 음식과 식구들이 먹을 음식만을 간단히 장만한다는 게 시어머니의 원칙. 그렇다고 음식을 모두 시어머니만 담당하는 건 아니다. 미리 목록을 정해놓고 첫째는 김치, 둘째는 갈비찜, 셋째는 전 등 일감을 분담시켜 식구들이 먹을 만큼 간단히 해오라고 당부하신다. 처음에는 ‘내가 해간 음식이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맛이 있건 없건 간에 음식타박을 하는 식구가 하나도 없이 다들 잘 먹는다.
이러다보니 자연히 음식장만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고 동서들끼리도 서로 ‘내가 더 일을 많이 했네, 네가 더 했네’하는 신경전이 줄어들어 갈등도 엷어지는 것 같다.
또 시부모님은 명절 연휴 중 하루는 “며느리들이 힘들 테니 한끼는 외식을 하자”고 먼저 제안할 정도다. 가사부담을 없애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외식까지 하라고 하니 어찌 명절이 괴로울 수 있겠는가? 결혼한 지 8년째 되어 가지만 명절이 괴롭지 않고 고부간에 사이가 좋은 것은 모두 어머님의 따뜻한 배려 덕분인 것 같다.(주부·결혼 8년차)



설거지 당번은 남편과 시동생
큰며느리인 나와 홀로 사는 시어머니, 장가 안간 시동생. 이렇게 맞이하는 명절은 쓸쓸했고 그만큼 고달팠다.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해야 해서 음식장만을 해야 하는데 일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말이다. 더구나 어머님은 원래 통이 크고 손이 크셔서 우리 식구가 먹을 음식만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을 대접해야 할 만큼 준비한다. 서너가지 전이며 부침개, 물김치, 배추김치, 제육볶음, 갈비찜 등등 해야 할 음식 가짓수는 또 어떻고.
결혼 전에 무슨 일을 해보았다고 이 많은 음식을 나 혼자 장만할 수 있겠는가. 집에서는 곧잘 설거지를 도와주던 남편도 시댁만 오면 어머니 눈치 보느라 뒷짐만 지고 있고, 시동생은 친구들 만난다고 아침에 나가 밤늦게 들어온다.
결혼 2년 후. 더 이상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음식은 간소하게 장만하고 설거지는 남편과 시동생이 맡아 하면 가사부담에서 좀 벗어날 수 있겠다는 내 주장을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일단 시어머니 앞에선 열심히 음식 장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시장에 가서 파 좀 사와라, 설거지 한 그릇 좀 챙겨주라”는 식으로 열심히 부엌으로 끌어들였다. 어머니에게도 눈웃음과 갖은 애교를 섞어가며 “어머니, 이 음식은 어머니가 간을 맞춰야 될 것 같아요. 어머니가 해주신 잡채가 먹고 싶어요” 하면서 슬슬 역할분담을 해나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더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어머니는 나의 태도에 동조해 “그러마” 하며 나서주셨다.
지금? 남편과 시동생이 함께 설거지하는 모습은 우리 집에선 전혀 낯설지 않다. 처음에는 아들들이 앞치마 두른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시어머니도 아들들이 즐겁게 일을 하는 것을 보고 “ 그래, 우리 아들들이 착하지, 요즘 남자들도 집안일을 할 줄 알아야해” 하면서 도리어 자연스러워 하신다. (주부·결혼 5년차)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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