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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 털어 호스피스 시설 마련, 말기암환자 돌보는 의사 심석규

“이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준 아내가 고마울 뿐이죠”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장다혜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2.10.09 13:18:00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호스피스 시설을 만들어 갈 곳 없는 말기암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의사 심석규씨. 목숨을 살리는 것만큼이나 죽어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도 의사의 사명이라는 그의 남다른 봉사와 사랑.
전 재산 털어 호스피스 시설 마련, 말기암환자 돌보는 의사 심석규
세상 어디에도 의탁할 데 없는 말기암환자들이 기거하는 호스피스 시설인 ‘평안의 집’. 천안시 구성동에 위치한 이곳은 2년 전 매입한 농가를 개조한 건물이어서 허름하고 시설도 미비하지만 봉사와 나눔의 정신으로 가득한 곳이다. 우리나라 의사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평안의 집’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남천안제일의원 원장 심석규씨(44).
그를 만나기 위해 천안 시내에 있는 그의 개인병원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병원 진료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사랑의 호스피스’ 사무실이었다. 진료중인 심원장을 기다리며 사무실을 둘러보던 중 책장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누렇게 색이 바랜 그 책을 들춰보니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이 그어진 귀절이 수없이 많았다.
심씨는 인턴시절 병원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이 책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밖에서 사람이 죽으면 임종을 확인하러 나가는 일을 인턴이 했어요. 시계를 들고 있다가 몇시 몇분에 임종했다고 말하면 유족이 일시에 울음을 터뜨려요. 그런 모습을 보고 병원으로 돌아오면 기분이 아주 이상해요. 죽음이 뭘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때까지는 제가 사실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엉터리 신앙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2년여 동안 생활을 한 의사의 생생한 기록’인 이 책은 그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었고, 지금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직접 이 일에 뛰어든 것은 미국에서 여동생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였다. 죽기 전까지 가난한 유학생들에게 무료식사를 제공하며 봉사했던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 저희 어머니는 거지가 와도 그냥 보내는 적이 없었어요. 그런 걸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무척 당연한 일로 여겼고, 어른이 되면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지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물론 호스피스는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이루겠다는 그 꿈이 여동생이 죽으면서 앞당겨진 셈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못한 어느 윤락녀의 죽음 통해 참 봉사의 의미 깨달아
99년 10월 그는 꿈으로만 생각하고 미뤄뒀던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가정방문을 통한 활동이었다. 가족과 돈이 있는 환자들은 그나마 병원에서 보살핌을 받다가 임종을 맞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환자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그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환자가 있다.
“작년 7월쯤 전화가 왔어요. 자기 동네에 한 윤락녀가 있는데 며칠째 식사도 못 하고 누워만 있다면서,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으니 와서 링거액이라도 놓아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 윤락녀가 몇년째 기침하는 걸 보니 폐가 안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들은 그는 윤락녀의 집을 찾아갔다. 천안에 살면서도 처음 가보는 동네의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단칸방에 들어섰을 때 그는 솔직히 그냥 되돌아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설거지를 하지 않은 듯 역한 냄새가 풍기는 싱크대와 침침한 형광등 불빛 아래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잠들어 있는 윤락녀의 모습은 처참한 광경 그 자체였다.
전해 들은 얘기로 그녀는 고아가 되어 일찍이 전국의 사창가를 떠도느라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바람에 의료보험증이 없어 제대로 진찰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그는 배꼽주변에 통증이 느껴진다는 말에 위장약을 임시로 처방해주고 다음날 병원에 나와 자세한 검진을 받아보라고 권하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는데 그녀가 희미한 목소리로 ‘선생님, 다음에 만나면 잘 해드릴게요’라고 하더군요. 그 말 때문에 동행한 목사님과 ‘뭘 잘 해준다는 거지?’ 하는 농담과 함께 ‘어떻게 하면 그녀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골목길을 내려왔어요.”

전 재산 털어 호스피스 시설 마련, 말기암환자 돌보는 의사 심석규

의지할 곳 없는 말기암화자들을 돌보고 있는 심석규씨(사진 맨 왼쪽.)

그러나 다음날 그녀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그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봉사를 하면서도 죽음을 앞둔 그녀에게 윤락녀라는 선입견을 가졌고 의사의 권위를 벗지 못한 그에게 윤락녀의 죽음은 진정한 봉사와 신앙심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사실 신앙심이 없으면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봉사 자체로 보람이 있다고 하지만 기대치라는 것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고아를 도우면 나중에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든지 하는 뿌듯함이 있지만 이런 일은 환우가 죽으면 끝이에요. 간혹 유족들이 인사를 할 때도 있지만 그들 역시 상처를 가슴에 안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치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래서 정말 왜 이 일을 하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도 의사인데,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직업인데 말이에요. 그렇지만 신앙인의 기쁨은 세상사에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미 죽어가는 사람들을 어찌해보겠다는 걸까. 호스피스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삶을 연장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임종을 앞둔 환자의 영혼과 육체를 편안하게 하며 삶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심리는 매우 불안하다.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난폭할 수도 있고 끝없는 자기비하에 빠질 수도 있다. 태어남과 죽음은 한 형제처럼 언제나 우리 인간을 따라다닌다. 오복 중 하나가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먼저 다른 세상에 가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그들의 마음과 몸을 평안하게 이끌어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오전 진료를 마치면 12시30분쯤 서둘러 평안의 집으로 향한다. 현재 평안의 집에 있는 환우들은 10여명으로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돌볼 형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절망으로 가득 차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들의 눈이 방안에 들어서는 그에게 쏠린다. 소망의 방에 입실해 있는 60세의 노인은 음식이 넘어가면 밤새도록 토한다. 그래도 살아 있는 한 무엇인가 먹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할아버지, 먹고 싶어도 조금 참아야 해요. 식도에 이상이 있기 때문에 자꾸 토하는 거예요.”
환자들을 위한 음식인 뉴케어를 먹은 노인은 밤새 3봉지 이상을 토하고 기력이 없는지 무엇을 물어도 벽을 향해 누운 채 꼼짝하지 않는다. 심원장은 다정하게 그를 위로하며 링거액을 꽂아준다.
“여기에 온 사람들 대부분이 참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거의 회생이 불가능한 환우들이기도 하고요. 죽을 때만이라도 호텔에서 호강하는 관광객처럼 살다가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환자들 방을 다 돌고 나면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넘는다. 몇 숟갈 식사를 마치고 나면 이번에는 병원에서 환자들이 밀려 있다고 호출이 들어온다. 서둘러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저녁 7시 진료를 마치고 나면 다시 평안의 집으로 향한다. 그의 하루는 틈이 없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다. 또한 봉사를 하기 전에 즐겨 했던 골프도 집어치웠다. 그러다 보니 동료의사며 친구들이 멀어져갔고 그가 하는 일을 질시와 오해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생겼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세상일에서 얻어지는 기쁨보다 봉사활동을 통해 얻는 기쁨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은 봉사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집에 오가는 길에 들러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쉰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내가 그들에게 주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을 그 사람들이 내게 돌려주고 있거든요.”
이런 그를 두고 아내와 일곱 살, 다섯 살 아이들은 뭐라고 말할까.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평안의 집으로 갈 때나 어려운 환우의 집을 방문할 때 종종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가곤 해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하려고요.”
아내와 아이들은 일찌감치 그와 ‘한패’가 되어 봉사를 하고 있다.
“아마 식구들이 이해를 못 해준다면 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사회봉사를 한답시고 가정에 소홀히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내도 아이들도 기꺼이 동참을 해주니까 고맙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지요.”
그의 아내는 별불평이 없었다고 한다. 신앙심이 깊은 아내 역시 봉사가 이미 몸에 익은 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금을 부어 모아두었던 목돈을 털고 융자를 받아 지금의 평안의 집 부지를 마련했을 때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주었다.
어렸을 때 학교 옆에 있던 고아원 아이들과 친구였던 심원장은 고아원을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그 꿈의 일환으로 그는 호스피스 시설을 세웠다. 그러나 꿈을 이루는 데는 현실적인 뒷받침이 필요했다.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걸 모르고 시작했거든요. 땅하고 건물하고는 어찌어찌 마련했지만 아직 3억5천만원 이상의 시설비가 더 필요해요. 시설비의 반을 법인에서 대야 한다는데….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세계 제일의 호스피스가 국내에 마련될 것이라며 웃는 그의 모습이 낙천적으로 보인다. 호스피스 옆에 고아원과 양로원을 세우는 등 그의 청사진은 이미 나와 있다. 조금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정말 사심이 없는 독지가가 나타나 그가 하는 일에 협력해준다면 그의 꿈을 조금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만큼 죽어가는 사람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이끄는 일도 중요하다고 믿는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참으로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 사회복지법인 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면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치매환자들, 뇌졸중 환자들 그리고 대부분 말기암환자인 호스피스 환자들을 무료로 돌보는 데 남은 여생을 바치고 싶어요.”
죽어가는 사람들의 많은 눈을 지켜본 심석규 원장. 그들의 눈은 세상을 원망하고 이루지 못한 욕망에 한숨짓고 그러면서도 사랑을 바라는 눈들이었다. 그는 남는 밥을, 남는 시간을 나누어주지 말고 모자라는 밥을 나눠먹고 모자라는 시간을 나누자고 당부한다.
호스피스 교육 문의 041-575-1600
후원구좌 주택은행 714002-01-155370
(예금주 심석규)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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