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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물 & 화제 │ 이 남자의 삶

16년간 채식 실천하다 격월간지 <채식> 창간한 이원복

“건강보다는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채식을 시작했어요”

■ 기획·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글·최희정 ■ 사진·김성남 기자

2002. 10. 09

16년간 채식을 실천해온 사람이 지난 7월 ‘1인 잡지’ <채식>을 펴내 화제다. 한국채식연대와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이기도 한 이원복씨는 홀로 취재, 기사작성, 원고청탁, 편집 그리고 유통까지 모든 일을 해냈다. 사람들에게 채식과 동물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 잡지를 창간했다는 이원복씨의 남다른 채식 사랑.

16년간 채식 실천하다 격월간지  창간한 이원복
건강을 위해 채식을 결심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나버린다. 어려서부터 우리 입이 철저히 고기 맛에 길들여졌기 때문. 채식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는 이유 중에는 ‘눈앞에 치킨이 아른거려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돼지갈비가 먹고 싶어서’ 등 고기에 대한 금단증상을 극복하지 못한 예가 많다.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이원복씨(37)는 지독한 사람이라 불린다. 그만큼 완벽하게 채식을 하고 있다는 얘기. 이씨는 장장 16년 동안 한끼도 거르지 않고 채식만을 해왔다. 게다가 보통 채식주의자들이 영양을 고려해서 섭취하는 달걀과 우유는 물론 벌꿀도 먹지 않고 젓갈이 들어간 김치도 안 먹는다. 제철에 나는 과일이나 채소, 잡곡밥, 된장국, 젓갈을 넣지 않고 손수 담근 김치가 그의 식단에 오르는 음식들이다.
사실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채식주의자들에게 그리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골고루 먹어야지, 풀만 먹고 어떻게 사냐”며 빈정거리는 사람도 종종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분명 깡마른 몸매에 예민한 신경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원복씨를 만났을 때 이런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16년 동안 완전 채식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단단해 보였고 적당히 균형 잡혀 있었다. 고기류에 해당하는 것만 먹지 않을 뿐 이것저것 잘 먹는 모습이 그리 까탈스럽게 보이지도 않았다.
“분식점 앞을 지나갈 때 가끔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점심 한끼는 떡볶이로 때워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때마다 군침을 삼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떡볶이 맛을 내는 데는 어묵 국물이 들어가는데 그 어묵에는 생선가루가 섞여 있잖아요. 그걸 먹으면 채식이 아니지요.”
채식의 중요성 알리기 위해 10년간의 교사생활 정리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이다. 시장 부근에서 살던 그는 개나 돼지, 닭들이 뻘건 피를 뚝뚝 흘리며 도살되는 장면을 수없이 보게 되었는데 어린 마음에 그것이 늘 가슴이 아팠고 마음 한 켠에 동물에 대한 진한 애정이 싹 트고 있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채식을 시작했어요. 워낙 동물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 보니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단순히 건강을 위해 채식을 시작했다면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10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지냈던 그는 식탁의 ‘녹색혁명’을 위해 2년 전에 학교 문을 나섰다. 채식운동과 동물보호운동을 좀더 체계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일반인의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을 없애는 운동을 시작으로 더 나아가서는 동물보호운동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활동영역도 확대시키고 있다.
한국채식연대와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이기도 한 그는 사람들에게 채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지난 7월 <채식>이란 격월간지를 창간했다. 취재해서 기사 쓰고 원고 청탁하고 편집하고 유통하는 것까지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
“책을 만드는 게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닌 것 같아요. 창간호를 내느라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자며 일했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채식의 좋은 점을 알려야겠다는 결심으로 힘들게 책을 냈습니다.”

그는 <채식>을 통해 할 말이 참 많다. 채식 자체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물론 채식요리법, 전국의 채식식당이나 채식 동호회들을 알려주고 더 나아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이 잘 먹고 잘 사는 법’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채식주의자들은 당뇨병이나 고혈압, 동맥경화와 같은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적어요. 아토피성 피부염을 개선하는 데도 좋고요. 채소에는 성인병을 유발하는 포화지방산과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거든요.”
그는 쇠고기와 돼지고기에는 단백질이 20% 들어 있고 콩과 브로콜리는 그 두배가 넘는 40~45%를 함유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빈혈과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D와 비타민 B12를 섭취하면 된다고 덧붙인다.
“채식을 시작할 때 초기에는 무리해서는 안돼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번 채식으로 하다가 차츰 3일에 한번, 하루에 한번으로 점점 채식으로 옮겨가는 거지요. 의욕만 가지고 채식을 시작하면 성공하기 어려워요.”
또한 처음 채식할 때 육류 금단 현상을 이겨내고 고기 맛에 미련을 버리지 못할 때는 콩과 밀로 만든 고기 대용식을 이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콩고기와 밀고기는 씹는 맛이 고기와 비슷하며 단백질로 만든 제품이기 때문에 영양가도 높다고 귀띔한다.
한편,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이기도 한 그는 동물보호소 설치, 동물실험 윤리법 같은 동물보호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가축을 생명이 있는 존귀한 존재가 아닌, 마치 돼지를 소시지 만드는 원료, 소를 우유 만드는 기계, 닭을 달걀 만드는 기계로 여기는 현실이 안타까워 두팔 다 걷어붙이고 동물보호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
“비틀스 멤버였던 폴 메카트니가 이런 말을 했어요. 가축을 도살하는 곳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볼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요. 채식은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생명을 존중하는 정신과도 연관되어 있어요. 저는 이 점이 좋아 채식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이 마음은 변치 않을 겁니다.”
어렸을 때 유난히 잔병치레가 심했고 성인이 돼서도 늘 피곤을 쉽게 느꼈지만 채식을 한 이후로는 정신도 맑고 늘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는 이원복씨. 채식사랑이 일궈낸 그의 밥상은 늘 소박하지만 건강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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