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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스타라이프 │ 프라이버시 인터뷰

이혼위기 극복하고 더욱 행복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가수 조관우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2.10.07 13:35:00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조관우의 독특한 음색을 라이브 무대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오는 10월20일과 11월3일 서울과 부산에서 7집 음반 출시 기념 콘서트를 갖는 것.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하필 6월에 음반을 내 월드컵과의 한판 승부에서 완패했다”며 아쉬운 미소를 지었지만 표정만은 매우 밝았다.
이혼설까지 떠돌게 했던 아내 장복신씨와의 작은 불화를 극복하고 더욱 행복해졌기 때문. 콘서트 준비에 정신없이 바쁘지만 두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만은 항상 비워둔다는 조관우가 털어놓는 그의 음악인생 &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
이혼위기 극복하고 더욱 행복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가수 조관우
“월드컵 기간의 틈새 시장을 노렸거든요. 아무도 음반을 내지 않을 때 내면 대박일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빗나갔어요. 모두 월드컵 노래만 찾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월드컵에는 틈새가 없구나(웃음). 그래도 월드컵 노래 틈새에 낀 제 노래가 음반판매량에서 꾸준히 10위권에 있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았죠.”
7집 음반 가 잘 나갔냐는 질문에 대한 조관우(37)의 답이었다. “리메이크 음반인 2집이 큰 사랑을 받아 이번에도 많이 ‘팔아보려고’ 리메이크 음반을 냈는데 월드컵이라는 복병에 KO패를 당하고 말았다”는 그는 “그래도 이번 콘서트를 하면 음반이 조금이나마 더 나가지 않겠냐”며 허허 웃었다. 음반 판매량이 부진하다면 다소 의기소침할 수도 있을 텐데, 일산의 작은 카페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이혼설까지 나돌던 부인 장복신씨(32)와의 작은 불화를 극복하고 요즘 더욱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혼설의 발단은 이랬다. 조관우 부부는 음악에만 몰두하는 조관우의 작업 스타일 때문에 종종 다퉜고 그 갈등의 골이 깊어져 지난 4월 협의이혼까지 했다는 것. 그리고 부인 장씨가 두 아들와 함께 집을 나가 친정 언니네 집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7집 음반 작업을 하면서 집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에요. 작업실이 집에 있다 보니 새벽까지 사람들로 북적였고, 집안 전체가 쉬는 곳이 아닌 작업공간이 돼버렸어요. 아이들도 가뜩이나 어린데 집안이 너무 어수선하니까, 이 문제로 집사람과 종종 다퉜어요.”
경기도 일산의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는 그는 집의 3층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반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집으로 몰려왔고, 음악 하는 사람 특성상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다보니 지나칠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던 것. 특히 첫째 아들 휘(8)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침마다 학교를 제대로 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의 다툼이 잦아졌고 그래서 부인 장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에 사는 친정 언니의 집에서 머무는 고육책을 내린 것이다. 그도 아이들 정서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부인의 결정에 동의했다.


“부부싸움을 하다 보면 ‘이혼해’ ‘갈라 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가 다시 화해하고. 그런 사소한 다툼이었고 본의 아니게 잠시 별거를 했던 것뿐이에요. 하도 집에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것이 이혼으로까지 확대돼 소문난 것이고요. 소문이 나자 집사람과 아이들이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왔어요(웃음). 지금은 호된 구설수를 겪은 후라 서로 더욱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1, 2층은 집사람과 아이들을 위한 공간, 3층만이 작업실이라는 원칙을 세워 반드시 지키고 있죠.”
94년 조관우는 SBS 쇼탤런트 출신인 부인 장복신씨와 결혼했다. 같은 해 조관우가 첫 음반 을 내며 톱 가수의 반열에 올랐고 95년에는 첫 아들 휘, 99년에는 둘째 현(4)을 낳았다. 7개의 음반을 내는 동안 조관우는 부인 장씨에 대해 ‘나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음악적 선생’이라 칭할 정도로 그의 음악인생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노래 실력에서도 남편에 전혀 뒤지지 않아 조관우의 모든 음반에 코러스로 참여했고, 콘서트 무대에 올라 함께 올라 듀엣곡을 부르기도 했다. 요즘 그의 소원이 있다면 이렇게 실력 있는 부인 장씨의 독집 음반을 내주는 것이라고.
“아내는 노래를 참 잘해요. 초창기에는 저보다 스카우트 제의를 더 많이 받았을 정도죠. 아내 이상 가는 코러스를 본 적이 거의 없고요. 사실 아내는 2곡 정도 녹음을 한 상태예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싱글앨범 시장이 잘 형성돼 있다면 벌써 음반을 냈을지도 모르죠. 확신이 생기면 바로 음반을 낼 계획입니다.”
하지만 조관우의 이런 바람과 다르게 장씨는 조금씩 음반 작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여덟살, 네살 난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살림 도우미도 없어 3층에 이르는 넓은 집안 살림을 그가 도맡고 있다.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냐”고 넌지시 물으니 그는 “커피 정도 타나”라며 말을 돌린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꽤 가정적인 남자라고. 특히 두 아들 휘와 현과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야구, 축구, 농구 등을 하며 장난도 많이 치는 친구 같은 아빠라고 한다.
“3층에서 작업하는데 딱 세 시간마다 ‘아, 난 애들이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 내려가서 5분 정도 놀아주고 다시 올라가죠. 그리고 다시 세 시간이 지나면 또 ‘아, 난 애들이 있지’ 하는 생각이 나고. 며칠 전에는 큰 아들 휘의 학교에서 바자회를 열어 하루종일 봉사를 했는데, 그날 학교에 온 ‘아빠’는 딱 두명이었어요. 바로 저랑 홍서범씨였죠(웃음).”

큰아들 휘가 조용한 반면 둘째인 현은, 조관우의 말에 따르면 ‘난 녀석’이다. 한번은 부인 장씨가 작업실에서 녹음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고 한다. 기분 좋게 녹음실에서 나왔는데 현이 기계의 전원을 전부 꺼버려 하나도 녹음이 안됐던 것. 또 3백만~4백만원짜리 고가 스피커를 산 지 1주일 만에 고장냈고, DVD 플레이어 속을 야구공으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그렇게 말썽만 피우는 데도 막내라 그런지 조관우는 둘째 현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고 한다.
“둘째 녀석은 제 콘서트 때 무대에 올라 노래까지 했어요. ‘아빠가 누구야’라고 물으면 ‘조관우’라고 크게 소리치더니 구성지게 노래까지 부르더라고요. 관객들은 저보다 현에게 더 열광했을 정도였어요.”
그러고 보니 휘와 현이라는 외자 이름이 특이해 어떻게 이름을 지었냐 물었더니 그 사연 또한 재미있다. 알려진 대로 조관우의 아버지는 인간문화재 조통달 선생으로, 그가 아주 어렸을 적 그의 친어머니와 이혼했다.
“휘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친어머니 모두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하나를 선택하려는데 참 난감하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분이 지어준 이름에 모두 ‘밝을 휘’자가 들어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휘라고 지었어요. 물론 두분 다 섭섭해 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두분 다 이름을 지어주려 하지 않아서 한달 내내 고민하다가 ‘밝은 현’자를 써서 현이라고 지었어요. 두 아이 다 대한민국을 밝게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죠(웃음).”
그는 인터뷰가 있던 날까지 사흘 째 담배를 끊은 상태였다. 하루 한갑은 기본, 공연이나 녹음이 있는 날에는 서너갑씩 피우는 골초인 그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 직접적인 계기는 고(故) 이주일의 죽음을 접하고서라고 한다. 이젠 홀몸이 아니라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
“예전의 제 삶은 혼자 스포츠카를 타고 시속 200km로 달리는 것과 같았어요.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지도 모르고 앞으로만 달렸죠. 하지만 한차례 어려운 일을 겪고 나니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크게 깨달았고 그만큼 가족에게 잘하리라 다짐하게 됐죠.”
조관우는 10월20일 서울, 11월3일 부산에서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연다. 콘서트를 마친 후 8집 음반 작업을 위해 미국으로 갈 예정. 12월15일에는 일본에서 첫 콘서트를 여는데, 기회가 되면 일본 진출도 모색할 계획이다. 내년 1, 2월쯤에 발표할 8집은 미국 유명 작곡가들의 곡으로 구성되는데, 상당히 파격적인 음반이 될 거라고 귀띔했다.
인터뷰를 끝낸 후 그는 기자에게 “저, 생각보다 재미있죠?”라고 말하며 환히 웃었다. 항상 어둡고 슬픈 노래만 불러 성격 또한 우울할 거라는 선입견을 확 깨버릴 정도로 그는 밝고 활달했으며 무엇보다도 매우 가정적인 남자였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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