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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황주리의 그림 에세이

달나라에 땅을 사두면

2004. 05. 04

달나라에 땅을 사두면

그대안의 풍경, 2000, 캔버스에 아크릴, 43×60cm


미국에서 어떤 이가 사람들에게 달의 땅을 팔아 24년간 6백만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그 땅을 분양하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이름은 ‘달 대사관’이라고 한다. 미국판 봉이 김선달인 셈이다.
사람들이 1에이커 당 19불99센트를 주고 샀다는 달나라의 땅은 이웃도 없고 공기와 물도 없는 곳이다. 달을 산 사람들은 적은 돈으로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뿌듯해 한다. 당장은 가볼 수도 없는 달의 땅을 싼 값에 사두는 것은 꿈을 저축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달 부동산 중개업자는 달뿐 아니라 화성과 목성도 분양 중에 있다고 한다. 달이나 화성에 내 땅이 있다면, 지구에서의 삶이 고달플지라도 일단 마음은 부자가 된 듯 할 것 같다. 적어도 달에는 내 땅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죽은 뒤의 천국을 꿈꾸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만약 내가 달에 땅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 곳에 미술관을 짓고 싶다. 평생 만들어온 내 작품들을 거대한 캡슐로 된 미술관에 전시해놓고, 달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꼭 들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기 위해 미술관 밖에 길게 줄 서 있는 풍경을 상상한다. 이 무슨 지독한 꿈인가. 문득 꿈마저도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가하여 미안해진다. 달에다 땅을 사두고, 그 땅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언젠가 현실속의 풍경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5월의 꽃봉오리들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지천에 가득한데, 아무래도 달나라에 내 땅은 아니 가져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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