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국(48) 가족이 모처럼 한집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큰아들이 하와이에서 유학 중이라 5년째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 김흥국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족의 온기에 요즘은 밥을 먹지 않아도 절로 힘이 난다고 말한다. 이사 온 지 한 달이 채 안 된 그의 집에 들어서자 막내딸 주현이(7)가 애교 있는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김흥국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TV 화면으로 볼 때보다 한층 밝은 모습이었다.
“요즘은 정말 살 맛이 납니다. 특히 아침저녁으로 주현이의 재롱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혼자 살 때는 집이 절간처럼 조용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오니까 북적북적한 것이 이제야 비로소 사람 사는 집 같아요(웃음).”
그는 비록 두 달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아내가 있는 동안에는 끼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혼자 쓸쓸히 식탁에 앉는 일도 없어 좋다고 한다. 벌써 몇 년째 아침마다 조기축구회에서 축구를 한 뒤 찜찔방에서 몸을 풀고 누룽지, 미역국 등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해왔다는 그는 “아내가 해준 밥이 찜질방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며 즐거워했다.
“조기축구회에 나가면 어르신들한테 매일 혼나요. 인생 뭐 있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사냐고 야단을 치시죠. 요즘은 찜질방 식당 아주머니들이 왜 제가 안 오나 궁금해하실 거예요(웃음). 아침마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가족들을 불러들여서 같이 살고 싶지만 아무래도 동현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힘들 것 같아요.”
“아이들 교육 생각하면 유학생활이 좋지만 남편 생각하면 못할 짓인 것 같아요”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 윤태영씨(43)도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이들 교육만 생각하면 외국에서 생활하는 게 나쁘지 않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에게는 정말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남편을 안쓰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하지만 김흥국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동안 아내 윤씨도 낯선 외국 땅에서 고생을 이만저만 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5년 전 동현이(17)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호주 유학길에 오른 그는 아이들 진학과 관련된 문제부터 외국생활에 적응하기까지 혼자서 모든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다보니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고 한다. 특히 스트레스로 인해 안압이 높아지는 바람에 백내장에 걸렸는데, 상태가 심각해 조만간 수술을 받을 계획이라고.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김흥국 부부.
“저도 저지만 아내가 고생이 많아요. 약을 달고 살 정도로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죠. 다행히 지금은 외국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한시름 놓았어요. 아이 둘 데리고 씩씩하게 잘 사는 것 보면 대견하죠.”
당초 호주로 유학을 떠났던 아들이 1년 전 하와이로 옮긴 것은 동현이의 대학입학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미국 대학으로 진학할 계획이기에 미국령인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동현이는 미술에 재능이 있어 호주에 있을 때도 미술경시대회에 출전해 여러 번 상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성격이 내성적인 편인데 호주는 물론 하와이도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생활이 아이의 성격과 잘 맞는다고. 학원도 미술학원밖에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동현이, 주현이 모두 저녁 9시 반만 되면 잠자리에 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졌다고.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 받자 스스로 유학 결정
윤씨가 아이 둘을 데리고 유학길에 오른 결정적인 이유는 동현이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연예인인 아버지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당하면서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했던 것. 아이는 6학년이 되자 자신이 김흥국의 아들인지 모르는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동현이가 말하기 전까지는 저나 남편 모두 아이가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아주 어릴 때는 아빠와 같이 TV에도 출연하고, ‘번칠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들한테 놀림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아이가 힘들어하면서 외국에 가겠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보내기로 한 거죠.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 많이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다행히 적응을 잘하고 있어요.”
어린 아들을 혼자 보낼 수 없었던 아내는 당시 세 살이던 주현이를 데리고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동현이와 열 살 터울인 주현이는 아빠를 닮아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 아빠가 가수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한다고. 동현이와 달리 성격이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아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고 한다.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건 당연지사. 김흥국도 가족들 중에서 주현이가 가장 눈에 밟힌다고 털어놓았다.
“첫째 낳고 10년 만에 얻은 딸인데 얼마나 보고 싶겠어요. 아침에 아이와 손잡고 유치원 버스 기다리는 엄마들을 보면 ‘나도 저만한 딸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어요. 보고 싶은 딸 얼굴도 못 보고 사는 제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지죠. 술이라도 한잔 하고 들어온 날은 더 보고 싶어서 딸아이 방을 기웃거리다가 잠이 들기도 해요. 동현이는 한창 사춘기라 그런지 곰살궂은 행동을 전혀 안 하는데 주현이는 사람을 녹아내리게 만들 정도로 애교가 많아요. 요즘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데 아침마다 스쿨버스 타는 데까지 제가 직접 데려다주죠(웃음).”
혼자 생활할 때면 머리맡에 걸어둔 가족사진을 보면서 잠이 들기 위해 침대 발치에 머리를 두고 잠을 청한다는 김흥국. 가족에 대한 사랑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진다는 그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마음이 더 약해지고 가끔은 참기 힘들 정도로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보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고 싶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그 또한 쉽지 않다고 한다. 교통방송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매일 생방송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장기 휴가를 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하와이에 가더라도 3일 이상 머문 적이 없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기 전날은 가슴이 설레 잠이 오지 않을 정도인데, 하와이에서 돌아올 때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무너져내려요.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절대로 가족들이 공항에서 배웅하지 못하게 해요. 그리고 저 혼자 공항 가는 택시 안에서 눈물 흘린 날도 많았죠.”
윤씨는 요즘 들어 부쩍 아이들에게 아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동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자 남자대 남자로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윤씨는 “아이가 어릴 때는 아빠 몫까지 해줄 수 있었는데 요즘은 한계를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하루빨리 ‘기러기 아빠’ 생활 청산하고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요”
얼마 전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공개방송에 찾아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동현이가 어렸을 때는 가족끼리 방송국에 자주 찾아오곤 했는데 주현이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마냥 신기해했다고 한다. 그가 무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달려가 안기고 음악에 맞춰 아빠와 춤도 추면서 열심히 응원했다고. 아내 역시 집에서 준비해온 음료수를 건네며 그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줬다고 한다.
“남편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파요. 가끔 방송에서 가엾은 ‘기러기 아빠’로 비춰지면 다음 날 어김없이 친척이나 지인들로부터 하와이로 전화가 걸려와요. ‘남편이 너무 안돼 보인다. 갑자기 늙은 것 같다’며 한마디씩하시면 제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죠. 사실 남편은 가족들 앞에서는 그렇게 힘든 내색을 안 해요. 아이들한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그럴 거예요. 저 역시 그런 남편 생각하면 힘든 내색을 못하고요.”
매달 들어가는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동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많았지만 올가을 주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학비가 더욱 늘어날 예정. 김흥국은 “이럴 줄 알았으면 ‘호랑나비’로 잘나가던 시절 돈 좀 많이 모아둘 걸 그랬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평소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남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그는 요즘도 자신이 직접 세운 장학재단을 통해 일년에 한 번씩 불우한 환경의 초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동현이는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서 자신을 뒷바라지해주는지 잘 알아요. 어려서부터 터놓고 그런 얘기를 해줘서인지 용돈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고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요. 뭐든 풍족하게 해주지 못하는 게 못내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부족한 듯 자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돈의 소중함도 알고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갖게 되고요.”
김흥국·윤태영 부부는 올해로 결혼생활 17년째를 맞는다. 당시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를 맞이해 화제를 모았던 김흥국은 “지금 생각해도 아내는 내게 과분한 여자”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이름 없는 무명가수였고, 아내는 미스 충남 진에 선발돼 모델 활동을 준비 중인 최고의 신붓감이었다고. 하지만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안돼 김흥국은 ‘호랑나비’로 스타덤에 올랐고 두 사람은 이내 결혼에 골인했다. 이색 결혼식으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수영장에서 화촉을 밝혔기 때문이다.
“‘호랑나비’로 인기도 얻고 해서 결혼식을 동네잔치처럼 치를 생각이었어요. 제일 넓은 장소를 물색하던 중 동네 근처 야외수영장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마침 가을이라 수영장 안에 물도 다 빠져 있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결혼식장으로 결정했어요(웃음).”
“저는 야외 결혼식이라고 해서 수영장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웃음). 신부 대기실도 없어서 땡볕에서 고생을 많이 했죠. 그때는 남자 쪽에서 하자는 대로 다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불만은 없었어요. 오히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과 함께 사는 요즘이 더없이 행복하다는 김흥국. 그럼에도 그는 혼자 남을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보며 “동현이가 혼자 생활할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때는 주현이와 다시 한국에 돌아오겠다”며 남편을 위로했다.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입을 모으는 두 사람이 하루빨리 다시 모여 집안 가득 환한 웃음꽃을 피우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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