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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당신이 그립습니다

추모 1주기 박용하 유족 첫 인터뷰

“성실하고 진실했던 동생, 고맙다는 말로 부족한 팬들의 사랑…”

글·김유림 기자 사진·홍중식 기자

2011. 08. 17

한류 스타 박용하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6월30일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경기도 파주시 약천사에서 그의 가족과 일본 팬 1천7백여 명이 모여 1주기 추모 행사를 가졌다. 이제는 그를 대신해 일본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 박용하의 누나 박혜연씨와 매형 김재현씨를 만나 생전 박용하의 진솔했던 모습, 고인을 향한 그리움을 들었다.

추모 1주기 박용하 유족 첫 인터뷰


이날도 역시 비가 내렸다.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비가 와 ‘레인 맨’이라는 별명이 붙은 고(故) 박용하의 추모 1주기 날, 새벽부터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고 행사가 시작되자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6월30일 경기도 파주시 약천사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하루 전날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서 날아온 1천7백여 명의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행사는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팬들은 1시간 가까이 줄 서 차례로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헌화를 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70대 노인도 일본인 남성의 도움으로 어렵게 계단을 올라 고인의 얼굴과 마주했다. 그때까지 슬픔을 억누르고 있던 팬들은 사진 속 박용하의 해맑은 모습을 보며 결국 애통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오후가 되자 고인의 유골이 안치된 경기도 분당 메모리얼파크에 다시 모여 고인을 추억했다.
이른 새벽부터 추모제 준비로 분주했던 박용하의 가족은 분당 납골당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먼저 찾은 곳은 아버지의 묘소. 고인이 떠난 지 4개월 만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아들과 같은 공간에 모셨다. 박용하의 어머니와 누나 내외는 봉인담에서 묵념과 헌화를 한 뒤 고인을 잊지 않고 먼 곳까지 찾아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보름 뒤, 박용하의 누나 박혜연씨와 그의 남편 김재현씨가 오랜 망설임 끝에 본지 인터뷰에 응했다.

추모 1주기, 일본 팬 1천7백여 명 운집

추모 1주기 박용하 유족 첫 인터뷰

팬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허망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 유족들.



현재 박혜연씨는 2007년 박용하가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요나엔터테인먼트’를 이어가고 있다. 다른 사업체를 운영 중인 남편 김재현씨도 아내를 도와 요나엔터테인먼트 실무를 맡고 있다. 이번 추모식도 이들을 주축으로 준비가 진행됐는데, 행사를 마치고 어머니를 포함해 온 가족이 몸살이 났다고 한다. 허탈함도 밀려왔다.
“추모식을 준비하면서 수시로 약천사와 메모리얼파크를 오갔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착잡했어요. 특히 묘소 주변에 활짝 펴 있는 꽃들을 보면 더 슬프고 화도 나고…, 눈물도 많이 흘렸죠. 그래도 이번 일 치르면서 많은 분들께 도움을 받아서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희 가족끼리 준비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추모식은 준비 단계부터 요나엔터테인먼트와 박용하가 생전에 활동하던 일본 측 매니지먼트사 업프런트의 공조로 이뤄졌다. 유족들은 올 초부터 1주기 행사를 두고 고민하던 중 지난 3월 일본에 지진이 나자 잠정 보류하기로 결정했는데, 일본 팬들이 추모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혀와 추모제를 준비하게 됐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팬클럽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회사가 있어 팬들의 의견 수렴이 빠르고,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도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고 김재현씨는 말한다. 실제로 추모식을 앞두고 일본 관계자들이 네 번에 걸쳐 한국으로 답사를 왔다. 일산과 분당을 돌며 이동 경로와 시간, 심지어 관광버스 주차 공간까지 철저히 확인했다. 이런 치밀함 덕분에 추모식 당일 2천 명 가까운 인원이 모여들었음에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준비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행사 개요를 짜는 것부터 팬들에게 나눠줄 우비와 모자를 준비하는 등 소소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두피가 빨개질 만큼 신경을 썼는데, 그래도 놓친 게 있더라고요. 추모제 며칠 앞두고 어머니가 약천사로 수건 2천 개를 보낸다고 하시는 거예요. 만약 비가 오면 빗물을 닦을 수건이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했다고 하시더군요. 실제로 그날 유용하게 잘 썼어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많이 놀랐어요.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마음이 하나가 돼서 용하를 위해 애써주는지, 일본 측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약천사 주지스님께서도 특별히 저희를 위해 절 마당을 개방해주셨어요. 메모리얼파크 측에서도 관광버스가 여러 대 올라올 걸 대비해 길까지 새로 내주셨죠.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에요.”
박용하가 떠난 지 1년, 그동안 가족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부모님은 아들을 떠나보낸 뒤 바로 누나네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은 또 한 번 슬픔에 잠겼다. 모든 것이 폭풍우처럼 한꺼번에 휘몰아치자 마음은 흔들리는 배처럼 혼란스러웠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나 싶다가도 불쑥불쑥 밀려오는 그리움에 마음 한켠이 늘 아렸다.



추모 1주기 박용하 유족 첫 인터뷰


차마 그 얼굴 보지 못해 TV를 끈 가족
“거실 벽난로 위에 용하 사진이 가득해요. 팬들이 보내주신 게 대부분이죠. 하루에도 몇 번씩 용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영상은 도저히 못 보겠어요. 얼마 전에 케이블채널에서 용하가 출연했던 영화 ‘작전’을 방영하더라고요. 용하 얼굴이 큰 화면으로 나오는데 순간 눈을 감아버렸어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정신이 멍하더라고요. 어머니도 비슷한 경험을 하셔서 용하가 가고 난 뒤 식구들은 TV를 거의 안 봐요. 그래도 목소리는 듣고 싶어서 용하 노래는 수시로 들어요. 차에도 용하가 일본에서 발표한 음반들이 다 있어요.”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는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아도 오늘 힘들고 내일 또 힘들다. 그래도 지금까지 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팬들을 보며 많은 위안을 얻고 있다. 가족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분당 납골당에 들르는데, 그때마다 묘소 앞에 앉아 있는 일본 팬들을 만난다고 한다. 지난겨울에는 추운 곳에서 떨고 있는 팬들을 위해 어머니가 커다란 보온병에 커피와 유자차를 담아 납골당으로 향했다.
“따뜻한 차라도 대접하고 싶어 하셨어요. 일본이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고 해도 지금까지 찾아주시는 팬들이 있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감사하죠.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묘소 앞에서 용하를 그리워하며 서로 끌어안고 울다보면 마음은 다 통해요. 용하와 관련해 일이 있어서 일본에 가면 공항까지 마중 나와주는 분들도 계세요. 그분들이 안 계셨다면 아마 지난 1년이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팬들의 추모가 끊이지 않기에 묘소에는 1년 내내 꽃과 선물로 가득하다. 심지어 어떤 팬은 매달 묘소로 꽃을 배달하고, 또 어떤 팬은 정기적으로 가족들에게 꽃을 보낸다. 수가 적어서 그렇지, 한국 팬들의 정성도 일본 팬 못지 않다. 매일 같이 분당 묘소를 찾아오고 묘역 앞에 앉을 공간을 마련하고자 푹신한 비닐 장판을 깔아준 팬도 있다. 박혜연씨는 “고맙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남편 김재현씨 역시 일본 팬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이 보여주는 배려와 관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사실 용하가 가고 난 뒤 팬클럽을 계속 유지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아내와도 그 부분에 대해 의논했는데 일본은 우리와 정서가 다르더라고요. 비록 스타는 가고 없지만 그가 생전에 남기고 간 흔적들을 유지하는 게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더욱 놀라운 건 팬들을 만나면 ‘용하씨를 볼 수 없어서 슬퍼요. 힘들어요’ 하고 푸념을 하는 게 아니라, 지난 7년 동안 용하가 자신들에 안겨준 기쁨과 행복이 크기에 이제는 자신들이 용하에게 그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는 얘기를 해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가족으로서 정말 감사하죠.”
일본에서는 지난 1년 동안 박용하를 추모하는 행사가 여러 차례 열렸다. 지난해 18회 공연으로 잡혀 있던 ‘박용하 콘서트 투어 2010 Stars’가 박용하 사망으로 3회에서 그쳤는데, 팬들의 요청으로 지난해 3월부터 박용하의 생전 활동 모습을 편집해 보여주는 ‘필름 콘서트’ 형식으로 바뀌어 공연됐다. 일본 12개 지역을 돌면서 진행됐는데, 마지막 공연은 가장 큰 지진 피해 지역인 센다이에서 열렸다. 처음에는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는 상태에서 공연을 연다는 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취소하려 했지만, 오히려 센다이 지역 팬들이 콘서트를 통해 위로받고 싶다며 예정대로 진행해주길 요청해왔다. 결국 지난 7월 2만5천여 명의 팬들이 참여한 필름 콘서트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용하가 떠났을 때 슬픔을 견디기도 힘들었지만, 실타래처럼 얽혀 있을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이었어요. 더욱이 대형 콘서트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중단으로 인한 금전적 손해를 피해갈 수 없었죠. 그런데 일본 측 관계자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떻게든 저희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가셨어요.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안정을 취하는 게 우선이라면서 배려해주셨죠. 팬들 또한 대부분이 티켓을 환불하지 않았고, 공연장을 대관해준 업체는 최소한의 경비만 받았어요. 세션들마저 자신들은 연주를 하지 않았으니 돈을 안 받겠다고 하더라고요. 도무지 믿기 힘든 광경이었어요.”
일본 측 관계자들은 멀리 떠난 박용하 대신 가족들에게 스타급 대우를 해준다. 회사 측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할 때면 생전 박용하가 타고 다니던 비행기 좌석에, 박용하가 묵었던 호텔을 기꺼이 내준다. 박혜연씨는 “그럴 필요 없다고 아무리 사양을 해도 소용없다. 감사한 마음은 다 말로 표현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 가슴에 영원히 지지 않는 별로 남아

추모 1주기 박용하 유족 첫 인터뷰

약천사에는 수시로 찾아오는 일본 팬들을 위해 박용하 영정 사진을 놓아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일본에서 박용하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 한국에서는 이 사실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그간 일본에서 활동한 면면을 살펴보면 그의 인기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박용하는 일본의 한 위성방송이 주최하는 시상식에서 두 번에 걸쳐 대상을 받았다. 수상작 선정은 팬들의 투표로만 이뤄지는데 지난 2008년에는 박용하의 일상을 공개한 ‘요나다이어리’가 대상을 받았고, 지난해 11월에는 아프리카 차드에서 ‘요나스쿨’을 지으며 봉사 활동을 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박용하 아프리카 여행’이 또 한 번 대상을 차지했다. 이때는 어머니와 함께 가족이 대리로 참석해 수상했다.
박혜연씨는 지난 1년 동안 동생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팬들의 사랑에 감사한 건 물론이고, 누구에게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동생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는 “예전에도 용하가 내 동생이란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했지만, 용하가 가고 난 뒤에 그 마음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제가 아는 용하는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른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아이였어요. 솔직히 용하는 처음부터 스타는 아니었어요. 직장인처럼 차근차근 성실하게 계단을 올라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좌절도 맛봤죠. 그러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일본 활동도 하게 됐어요. 그 때문에 용하 스스로 자신이 맞은 기회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고, 가족들에게도 그런 얘기를 자주 했어요. 그럴수록 더욱 노력했고요. 용하가 떠나기 전까지 일본어를 열심히 배운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한번은 저희 식구가 일본에 있는 용하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용하가 ‘미안하지만 지금 일본어 선생님이 오기로 돼 있으니 공부 마치고 조금 있다가 놀러 나가자’고 하더라고요. 팬들과 직접 소통하려면 언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학원이며 개인교습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결국 마지막 콘서트 장면을 보면 통역 없이 팬들에게 농담까지 할 정도로 일본어를 익힌 걸 알 수 있어요. 노래 연습도 열심히 했어요. 용하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낙이었는데…. 앨범이 나올 때마다 실력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춰져 있는 연예인으로서의 고충을 박용하 역시 느꼈을 법하다. 이에 대해 박씨는 “연예인으로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아마도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가족의 눈에 비친 박용하는 연기자로서 가수로서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7년이나 일본에서 라이브 가수로 활동했지만 한국 방송에서는 노래 부르는 걸 부담스러워하며 “아직은 실력이 모자란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또 드라마 ‘온에어’ 등으로 연기자로서 인지도가 올라갔지만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작품에 들어가기 전 항상 연기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이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한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누나 내외는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박용하는 결코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누구보다 소탈하고 진솔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가족들은 팬들이 원하는 범위 내에서 박용하의 업적을 기리는 일들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당장은 오는 9월 일본 신주쿠와 나고야에서 개최되는 유품전시회가 있다. 김재현씨는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다른 연예인 유품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둘러보더라. 어찌 보면 고인이 팬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시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혜연씨는 박용하가 성실하고 진실했던 그 모습 그대로 팬들에게 기억되면 좋겠다고 했다. 언젠가 그 기억마저 희미하게 사라질 날이 온다 하더라도 상관없다고 한다. 박씨는 “내 가슴에는 언제나 별처럼 빛나고 있는 동생”이라고 말했다. ‘영원히 지지 않는 별’, 박용하의 또 다른 이름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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