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벨과 피터팬’.
독고영재(55)와 그의 아내(39)가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다. 올해로 결혼 14년째, 적지 않은 나이 차를 극복하고 아내와 알콩달콩 살고 있는 독고영재를 서울 남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아이보리색 양복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그는 신혼처럼 사는 비결을 묻자 쑥스러운 듯 웃었다.
“평소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날, 특별한 이벤트를 하고 선물공세를 하는 것보다 평상시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고 사랑하는 감정이 느껴지도록 아껴주는 것이 부부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신혼 초 세대 차이로 갈등 겪을 때마다 아내 업어주면서 화해 청해
그는 지난 92년 영화 ‘장군의 아들3’을 촬영하면서 아내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영화 의상 분야에서 일을 하던 아내는 전처와 이혼 후 홀로 남매를 키우고 있던 그의 처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독고영재는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자신의 과거까지 털어놓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재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왕년의 액션스타였던 아버지 독고성에 이어 2대째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데다 결혼도 한 번 실패했던 터라 혼자 아이 둘을 키우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날 아내로부터 먼저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왔고, 만남이 계속될수록 사랑이 깊어졌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의 부모는 두 사람의 교제를 극구 반대했지만 아내가 장인, 장모를 끈질기게 설득해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지금도 아내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이혼하고 10년 동안 혼자 살면서 많이 외롭고 힘들었는데 그런 저를 받아준 사람이 아내잖아요. 한번은 ‘그때 나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았냐?’고 물었더니 ‘다 좋았다’고 대답하더라고요.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거죠(웃음). 아내를 만난 뒤 점차 인기도 얻어 여러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오는 바람에 결혼식 날 신혼여행도 못 갈 정도였어요. 아내 덕분에 모든 일이 잘 풀렸어요.”
하지만 결혼 초에는 나이 차로 인해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아내도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아내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 그럴 때마다 그가 ‘아니, 그것도 몰라?’ ‘그걸 왜 몰라?’ 하고 의아해하면 아내는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해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집에 일찍 들어가도 반기기는커녕 굳은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고 ‘밥 먹어요’ 등 몇 마디 하는 게 전부였다고.
“아내가 별것 아닌 일로 토라져서 말을 안 하니까 화가 나기보다 귀엽고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마다 업어줬어요. 아내가 업어주는 걸 좋아했거든요. 어떨 땐 아내를 등에 태우고 장난을 치면서 ‘이제 그만 화 풀라’고 달래기도 했어요. 제가 첫 결혼에 실패한 후 배운 게 많은데 그중 하나가 사소한 일로 다툰 다음에는 바로 화해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자존심 세우고 신경전을 벌여봤자 서로 불만만 쌓이고 부부 사이가 멀어지니까요.”
독고영재는 결혼 후 3년 정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아내와의 세대 차를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살아온 세대가 다른 만큼 경험이나 지식이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데 그걸 이해하지 못한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 결혼한 지 4~5년쯤 지나 주위 사람들이 ‘왜 아이를 안 갖냐?’ ‘빨리 낳으라’고 재촉하면 ‘바빠서요’라고 말하곤 했지만 애초부터 두 사람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0년쯤 지나 두 사람은 아이 갖는 문제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역시 ‘낳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아이를 낳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 나이 들면 우리 둘이 손잡고 세계일주나 하면서 재미있게 살자고 약속했어요. 결혼했다고 해서 꼭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아이로 인해 웃는 일도 많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도 있지만, 아이가 없기 때문에 부부관계에 더 충실해지는 면도 있어요.”
“‘엄마’ 호칭 강요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엄마’라고 부를 때까지 기다렸어요”
이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독고영재가 첫 결혼에서 얻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독고영재는 그동안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두 아이를 반듯하게 키워준 아내가 고맙다고. 현재 아들 준씨(31)는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고 딸 지은씨(27)는 의료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데 아들은 5년 전 독립했고 딸은 현재 자신들과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저는 결혼할 때 두 아이에게 아내를 소개하면서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부르면 된다’고 했죠. 그랬더니 딸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엄마, 엄마’ 하며 따랐는데 아들은 쑥스러운지 ‘엄마’라는 호칭을 쓰지 않다가 따로 독립해 살고부터 ‘엄마’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는 “얼마 전에는 나만 쏙 빼놓고 셋이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면서 “그럴 땐 조금 질투도 난다”며 웃었다. 이 가족은 한달에 꼭 두 번씩 외식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딸 지은씨가 음식점을 예약하고 음식값은 그가 낸다고 한다. 돈 관리는 아내가 하고 있는데 행정학과 출신답게 아주 꼼꼼하게 잘한다면서 또 아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의 아내는 결혼 후 영화 관련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 지금은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한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아내의 직장에서는 ‘독고영재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데 이는 아내가 그런 일로 주목받는 것을 원치 않아 일부러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고영재는 그동안 부부동반을 조건으로 CF 출연도 여러 번 제의받았지만 “아내가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자신은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식구들끼리 대중목욕탕에도 가고 시장에 가서 물건 값도 깎으면서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하는 아내의 바람을 존중해주고 싶어요.”
세대 차이를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아내와의 나이 차가 가끔은 부담이 되기도 할 터. 하지만 독고영재는 “그런 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끔씩 친구들이 와이프가 젊어서 좋기도 하겠지만 제가 나이가 많으니까 신경이 쓰이겠다고도 말하는데 별로 그렇지 않아요. 젊어보이려고 애써 앳되게 옷을 입지도 않고 특별히 노력하는 것도 없어요. 다만 운동은 열심히 하는 편인데 그것은 아내와 결혼하기 전부터 그랬어요.”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물이나 우유를 한잔 마시고 40분 동안 러닝머신을 한 뒤 바벨을 3백~4백 번 들고 팔굽혀 펴기를 3백 번 정도 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아내와의 성생활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내의 세대를 이해하게 되니까, 노래방에 가서도 요즘 유행하는 곡을 따라 부를 줄도 알게 되고 어린 후배들이 자기 주장을 당당히 펼칠 때도 버릇없다고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신세대는 다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하게 돼요. 마음이 넓어졌다고 할까요?(웃음)”
독고영재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와 닮아가서 부부라기보다는 남매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연애를 할 때는 사랑해서 죽고 못사는 사이였는데 결혼해서 부부가 되고 보니 느껴져 편안한 느낌이 든다는 것.
“아내의 자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도 이젠 나이를 먹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해요. 눈가에 잔주름이 몇 개 생긴 것 같고 날씬했던 몸매도 군데군데 군살이 붙은 걸 보면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돼요.”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와 닮아가는 듯 하다는 독고영재.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