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다. 동그란 얼굴에 커다란 체구. MBC 주말특별기획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이하 〈아제모〉)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 뒤늦게 성악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중학생 긍정 식탐왕 ‘창수’ 얘기다. 창수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내는 배우 손보승(20)은 개그우먼 이경실의 아들이다. 몇 해 전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부모가 함께하는 토크쇼 jtbc 〈유자식 상팔자〉에 엄마 이경실과 함께 고정 출연하면서 얼굴이 알려졌는데, 정식 배우로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느라 또래보다 한 학년 늦게 국내 학교에 진학한 스무 살 청년 손보승은 현재 안양예고 연극영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한 작년 11월만 해도 보승 ‘군’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어엿한 성인 연기자가 됐다. 〈아제모〉 세트 촬영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대본 연습에 여념이 없는 손보승을 만났다.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어달라는 에디터의 주문에 “어색한데” 하며 한동안 진땀을 빼더니 “연기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는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채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모전자전(母傳子傳)이다.
▼ 드라마를 보다 깜짝 놀랐어요. 처음엔 보승 씨인 줄 몰랐거든요. 〈아제모〉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제게 잘 어울리는 배역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디션을 봤어요. 2~3주쯤 흘렀는데도 소식이 없기에 “떨어졌나보다” 하고 낙담하고 있었는데 한 번 더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세 번이나 오디션을 치르고서야 창수 역을 맡게 됐어요.
▼ 오디션이 떨리진 않았나요.
전혀요. 예전에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께서 어디선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방송사 면접 때 떨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면접 볼 때 방송국 국장님, 이사님, 사장님이 앉아 계시지만 내가 입사를 해야 국장님이고 사장님이신 거지 떨어지면 동네 아저씨보다 못한 분들이지 않나. 굳이 떨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라고요. 현재 재학 중인 안양예고 면접시험을 치르기 전에 그 말씀을 들었는데 그 후론 어떤 오디션도 떨리지 않더라고요.
▼ 〈아제모〉가 정식 데뷔작인 셈인데, 기분이 어때요.
얼떨떨해요. 오디션에 합격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배우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누나를 통해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지 익히 들어왔거든요. 데뷔작에 대한 소회 같은 건 드라마가 끝나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 〈아제모〉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역이었는데, 해가 바뀌면서 성인이 됐네요. 스무 살이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나요.
나이는 스무 살이지만, 캐나다로 유학을 다녀오는 바람에 또래보다 1년 늦어져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어울리는 친구들은 아직 성인이 아니죠. 그래서인지 제가 성인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마 제가 스무 살인 걸 아는 분도 별로 안 계실 거예요. 호프집에서 맥주라도 마시고 있으면 분명 “쟤 고등학생 아니야?” 하실걸요? 이경실의 철없는 사춘기 아들로 인식이 돼 있는 데다 극 중 창수는 중학생이니까요.
▼ 보승 씨가 이해한 창수는 어떤 아이인가요.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공부는 못하지만 성악에는 남다른 재능이 있는 아이죠. 저 역시 공부는 못했지만 예체능 쪽으로는 어려서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회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인정받는 창수를 보면 꼭 제가 꿈꾸는 이야기와 닮아 있는 것 같아 더 애정이 가요.
▼ 창수가 성악곡을 생각보다 잘 불러서 놀랐어요.
학교에 성악 선생님이 계신데, 드라마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도와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오디션에 합격한 후에는 아예 전문적으로 레슨을 받고 있고요. 저도 성악은 처음인데 가사를 다 외워서 완곡을 부를 때 전율이 오더라고요.
▼ 연기는 언제부터 했나요.
캐나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국내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공부엔 영 흥미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극단에 가면 예쁜 누나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지인을 따라갔던 게 계기가 됐죠. 가보니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예쁜 여고생 누나들이 정말 많더라고요(웃음). 그때 연기 공부를 시작해 대학로 연극 무대에 두 번 올랐어요. 친구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저는 무대에 선다는 게 마치 정식 배우가 된 것처럼 뿌듯하더라고요. 그때 대학로 극회 전체를 통틀어 제가 가장 막내였어요. 뭔가 간절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연기뿐이었죠. 엄마는 그때 입었던 티셔츠를 이제는 버리라고 하시지만, 저는 절대 버리지 않아요. 지금도 가끔 대학로에 가면 제가 섰던 공연장을 꼭 한 번씩 들러요. 제겐 정말 낭만적인 과거니까요.
▼ 요즘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나요.
한번은 버스를 탔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좌석에 앉아 DMB로 〈아제모〉를 시청하고 계시더라고요. 그 앞에 서 있었는데 제 얼굴과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시더니 “얘 맞지?” 하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엄마와 함께 〈유자식 상팔자〉에 출연할 때보단 덜 알아보는 것 같아요. 그때와 많이 달라져서 그런가(웃음).
▼ 모니터링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캐나다 유학 시절부터 연기를 공부한 누나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보통 제가 합을 맞춰달라고 조르곤 해요. 평소에도 서로 장난을 잘 치는 사이라 누나와 합을 맞추면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더라고요. 극 초반엔 누나가 “왜 이렇게 어색하냐”고 싫은 소리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가끔 “잘한다”고 칭찬도 해줘요. 창수는 원래 제 성격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대사를 하는 제 모습을 보면 쑥스러울 때가 많아요.
▼ 엄마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더 능청스럽게 해야 한다고 하시죠. 대본 리딩 현장에 무조건 많이 가야 한다고도 하셨어요. 누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먼저 하는 게 연기자의 기본 자세라면서요.
▼ 학교에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 부럽다곤 안 하나요.
오디션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다들 축하해줬어요. 드라마를 본 친구들은 “네게 딱 맞는 역할인 것 같다”고도 하더라고요. 만약 저였다면 일찍 데뷔한 친구를 질투하고 시샘했을 것 같은데 진심으로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 출연료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스스로에게 선물은 줬나요.
전부 엄마께 드리고 있어요. 아직 학생 신분인 데다 성악 레슨비도 들어가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 물론 계속 드리겠다는 건 아니에요. 나중엔 잘 나눠야죠(웃음).
▼ 가족극이다 보니 걸출한 선배 배우들도 많이 출연하시잖아요. 특별히 해주신 조언이 있나요.
극 중 창수 출생 당시 병원에서 부모님이 바뀌는 에피소드가 있거든요. 혜주(김선영)의 아들인 줄 알고 살다가 나중에 희숙(신동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 등장해요. 한마디로 극 중 엄마가 두 분인 거죠. 엄마 역할을 맡은 두 선배님들께서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연기 공부를 하시던 학창 시절의 이야기부터 배우로서 느끼는 희열이나 보람 같은 것들도 종종 말씀해주시죠.
▼ 연기할 때 어려운 점은 뭔가요.
요즘 창수가 우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극에 몰입해서 빨리 눈물 흘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저희 집이 12층인데,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까지 가는 동안 눈물을 흘리는 게 매일의 마지막 일과죠. 성공하면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요(웃음). 사실 캐나다에서 지낼 땐 자주 울었어요. 인형 뽑기를 하다가도 생각대로 잘 안 되면 ‘나는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사는데 인형 하나도 곁에 둘 수 없는 건가’ 하면서 울곤 했죠. 그땐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눈물이 안 나요. 함께하는 가족이 있으니까요.
▼ 연예인이 되면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잖아요. 두려움은 없나요.
그런 건 해탈한 지 오래예요.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진 않았으니까요. 엄마 덕분에 어려서부터 방송에 출연했고, 어린 시절 캐나다에서 가족과 따로 떨어져 살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힘든 일이 닥쳐도 ‘될 대로 되라’ 하고 넘기는 법을 배웠죠. 두렵진 않아요.
▼ 손보승이 이루고 싶은 꿈은 뭐예요.
세계 여행요. 워킹홀리데이로 외국에 나가봐도 좋을 것 같아요. 특히 미국 뉴욕에서 지내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뉴욕을 두고 ‘꿈의 도시’라고들 하잖아요. 사실 작년에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에 뉴욕행 비행기 편을 끊었다가 취소한 적도 있어요. 그땐 답답한 일이 많아서 학교고 뭐고 그냥 한국을 떠나고 싶었거든요. 친한 친구에게만 살짝 계획을 말했는데 그 친구가 담임 선생님께 좀 말려달라고 울면서 전화를 하는 바람에 무산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에게 정말 고마워해야 해요. 그때 떠났으면 〈아제모〉 오디션을 못 봤을 테니까요.
▼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세계 여행이라니 의외네요.
아, 사실 진짜 꿈은 도라에몽이 되는 거예요. 가고 싶은 곳에 언제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 닿을 수 없는 걸 꿈이라고 하잖아요. 좋은 배우가 돼 드라마, 영화, 뮤지컬, 공연 등 여러 무대에 서고 싶은 건 제 목표죠. 날마다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기도 하고요.
▼ 드라마가 끝나면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 이따 연기해야 하는 31회 대사를 잊어버릴까 봐 머리가 아파요. 그런데 드라마가 끝난 후의 일을 생각하라고요? 진짜 머리 아픈 일이네요(웃음).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느라 또래보다 한 학년 늦게 국내 학교에 진학한 스무 살 청년 손보승은 현재 안양예고 연극영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한 작년 11월만 해도 보승 ‘군’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어엿한 성인 연기자가 됐다. 〈아제모〉 세트 촬영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대본 연습에 여념이 없는 손보승을 만났다.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어달라는 에디터의 주문에 “어색한데” 하며 한동안 진땀을 빼더니 “연기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는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채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모전자전(母傳子傳)이다.
▼ 드라마를 보다 깜짝 놀랐어요. 처음엔 보승 씨인 줄 몰랐거든요. 〈아제모〉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제게 잘 어울리는 배역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디션을 봤어요. 2~3주쯤 흘렀는데도 소식이 없기에 “떨어졌나보다” 하고 낙담하고 있었는데 한 번 더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세 번이나 오디션을 치르고서야 창수 역을 맡게 됐어요.
▼ 오디션이 떨리진 않았나요.
전혀요. 예전에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께서 어디선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방송사 면접 때 떨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면접 볼 때 방송국 국장님, 이사님, 사장님이 앉아 계시지만 내가 입사를 해야 국장님이고 사장님이신 거지 떨어지면 동네 아저씨보다 못한 분들이지 않나. 굳이 떨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라고요. 현재 재학 중인 안양예고 면접시험을 치르기 전에 그 말씀을 들었는데 그 후론 어떤 오디션도 떨리지 않더라고요.
▼ 〈아제모〉가 정식 데뷔작인 셈인데, 기분이 어때요.
얼떨떨해요. 오디션에 합격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배우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누나를 통해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지 익히 들어왔거든요. 데뷔작에 대한 소회 같은 건 드라마가 끝나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 〈아제모〉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역이었는데, 해가 바뀌면서 성인이 됐네요. 스무 살이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나요.
나이는 스무 살이지만, 캐나다로 유학을 다녀오는 바람에 또래보다 1년 늦어져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어울리는 친구들은 아직 성인이 아니죠. 그래서인지 제가 성인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마 제가 스무 살인 걸 아는 분도 별로 안 계실 거예요. 호프집에서 맥주라도 마시고 있으면 분명 “쟤 고등학생 아니야?” 하실걸요? 이경실의 철없는 사춘기 아들로 인식이 돼 있는 데다 극 중 창수는 중학생이니까요.
▼ 보승 씨가 이해한 창수는 어떤 아이인가요.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공부는 못하지만 성악에는 남다른 재능이 있는 아이죠. 저 역시 공부는 못했지만 예체능 쪽으로는 어려서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회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인정받는 창수를 보면 꼭 제가 꿈꾸는 이야기와 닮아 있는 것 같아 더 애정이 가요.
▼ 창수가 성악곡을 생각보다 잘 불러서 놀랐어요.
학교에 성악 선생님이 계신데, 드라마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도와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오디션에 합격한 후에는 아예 전문적으로 레슨을 받고 있고요. 저도 성악은 처음인데 가사를 다 외워서 완곡을 부를 때 전율이 오더라고요.
▼ 연기는 언제부터 했나요.
캐나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국내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공부엔 영 흥미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극단에 가면 예쁜 누나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지인을 따라갔던 게 계기가 됐죠. 가보니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예쁜 여고생 누나들이 정말 많더라고요(웃음). 그때 연기 공부를 시작해 대학로 연극 무대에 두 번 올랐어요. 친구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저는 무대에 선다는 게 마치 정식 배우가 된 것처럼 뿌듯하더라고요. 그때 대학로 극회 전체를 통틀어 제가 가장 막내였어요. 뭔가 간절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연기뿐이었죠. 엄마는 그때 입었던 티셔츠를 이제는 버리라고 하시지만, 저는 절대 버리지 않아요. 지금도 가끔 대학로에 가면 제가 섰던 공연장을 꼭 한 번씩 들러요. 제겐 정말 낭만적인 과거니까요.
▼ 요즘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나요.
한번은 버스를 탔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좌석에 앉아 DMB로 〈아제모〉를 시청하고 계시더라고요. 그 앞에 서 있었는데 제 얼굴과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시더니 “얘 맞지?” 하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엄마와 함께 〈유자식 상팔자〉에 출연할 때보단 덜 알아보는 것 같아요. 그때와 많이 달라져서 그런가(웃음).
▼ 모니터링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캐나다 유학 시절부터 연기를 공부한 누나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보통 제가 합을 맞춰달라고 조르곤 해요. 평소에도 서로 장난을 잘 치는 사이라 누나와 합을 맞추면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더라고요. 극 초반엔 누나가 “왜 이렇게 어색하냐”고 싫은 소리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가끔 “잘한다”고 칭찬도 해줘요. 창수는 원래 제 성격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대사를 하는 제 모습을 보면 쑥스러울 때가 많아요.
▼ 엄마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더 능청스럽게 해야 한다고 하시죠. 대본 리딩 현장에 무조건 많이 가야 한다고도 하셨어요. 누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먼저 하는 게 연기자의 기본 자세라면서요.
▼ 학교에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 부럽다곤 안 하나요.
오디션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다들 축하해줬어요. 드라마를 본 친구들은 “네게 딱 맞는 역할인 것 같다”고도 하더라고요. 만약 저였다면 일찍 데뷔한 친구를 질투하고 시샘했을 것 같은데 진심으로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 출연료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스스로에게 선물은 줬나요.
전부 엄마께 드리고 있어요. 아직 학생 신분인 데다 성악 레슨비도 들어가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 물론 계속 드리겠다는 건 아니에요. 나중엔 잘 나눠야죠(웃음).
▼ 가족극이다 보니 걸출한 선배 배우들도 많이 출연하시잖아요. 특별히 해주신 조언이 있나요.
극 중 창수 출생 당시 병원에서 부모님이 바뀌는 에피소드가 있거든요. 혜주(김선영)의 아들인 줄 알고 살다가 나중에 희숙(신동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 등장해요. 한마디로 극 중 엄마가 두 분인 거죠. 엄마 역할을 맡은 두 선배님들께서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연기 공부를 하시던 학창 시절의 이야기부터 배우로서 느끼는 희열이나 보람 같은 것들도 종종 말씀해주시죠.
▼ 연기할 때 어려운 점은 뭔가요.
요즘 창수가 우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극에 몰입해서 빨리 눈물 흘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저희 집이 12층인데,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까지 가는 동안 눈물을 흘리는 게 매일의 마지막 일과죠. 성공하면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요(웃음). 사실 캐나다에서 지낼 땐 자주 울었어요. 인형 뽑기를 하다가도 생각대로 잘 안 되면 ‘나는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사는데 인형 하나도 곁에 둘 수 없는 건가’ 하면서 울곤 했죠. 그땐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눈물이 안 나요. 함께하는 가족이 있으니까요.
▼ 연예인이 되면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잖아요. 두려움은 없나요.
그런 건 해탈한 지 오래예요.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진 않았으니까요. 엄마 덕분에 어려서부터 방송에 출연했고, 어린 시절 캐나다에서 가족과 따로 떨어져 살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힘든 일이 닥쳐도 ‘될 대로 되라’ 하고 넘기는 법을 배웠죠. 두렵진 않아요.
▼ 손보승이 이루고 싶은 꿈은 뭐예요.
세계 여행요. 워킹홀리데이로 외국에 나가봐도 좋을 것 같아요. 특히 미국 뉴욕에서 지내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뉴욕을 두고 ‘꿈의 도시’라고들 하잖아요. 사실 작년에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에 뉴욕행 비행기 편을 끊었다가 취소한 적도 있어요. 그땐 답답한 일이 많아서 학교고 뭐고 그냥 한국을 떠나고 싶었거든요. 친한 친구에게만 살짝 계획을 말했는데 그 친구가 담임 선생님께 좀 말려달라고 울면서 전화를 하는 바람에 무산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에게 정말 고마워해야 해요. 그때 떠났으면 〈아제모〉 오디션을 못 봤을 테니까요.
▼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세계 여행이라니 의외네요.
아, 사실 진짜 꿈은 도라에몽이 되는 거예요. 가고 싶은 곳에 언제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 닿을 수 없는 걸 꿈이라고 하잖아요. 좋은 배우가 돼 드라마, 영화, 뮤지컬, 공연 등 여러 무대에 서고 싶은 건 제 목표죠. 날마다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기도 하고요.
▼ 드라마가 끝나면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 이따 연기해야 하는 31회 대사를 잊어버릴까 봐 머리가 아파요. 그런데 드라마가 끝난 후의 일을 생각하라고요? 진짜 머리 아픈 일이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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