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의 기악과 교수는 고급스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처럼, 포근하게 손님을 맞았다. 음악가로서의 철학과 고집으로 뭉친, 기성세대의 꼬장꼬장함은 찾아볼 수 없었을 뿐더러, 부드럽기까지 했다. 그래야 맞는 말이 된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처럼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고집하는 삭막한 음악인이 예술인으로서의 중후한 멋을 풍기며 “음악을 즐기자”고 말하는 음악가보다 더 현실적인 건 안타까운 일이니까.
이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김대진(52) 기악과(피아노) 교수가 20년간 음악 교육 현장에서 깨달은, 진정한 음악과 교육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수학한 후 1994년부터 한예종 교수로 교편을 잡은 김 교수는 2003년부터 해마다 청소년 음악회, ‘김대진의 음악교실’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 활동하며 인재 육성에 매진해왔다. 2008년에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는 한편 2012년부터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러는 동안 손열음과 김선욱, 이진상 등이 그의 사사로 국제 무대에서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 앞에 ‘명교수’라는 수식어를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그 또한 강마에처럼 호통치며 자신의 방식만 주입시키던 때가 있었고, 한때는 실기 시험이나 콩쿠르에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최고의 ‘교육 목표’였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그 덕에 “과분하게 인정받고 부담스러울 만큼의 명예도 얻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한국인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배출한 명교수’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세월과 나이 듦, 또 그간 켜켜이 쌓인 경험이 준 교훈을 밑거름 삼아 다시금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재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부터 김 교수가 말하는 이야기는 음악과 교육을 뛰어넘는 음악 교육자로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명과 다름없다.
즐기지 못하는 경쟁 사회
“국제 콩쿠르 대회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출전하면 심사위원들도 자세를 고쳐 잡고 긴장하게 돼요. 연주 실력을 떠나 입장할 때부터 표정이 다르거든요. 무척 경직돼 있어서 때론 무서워 보일 정도죠. 콩쿠르의 특성상 출전자 대부분이 긴장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즐기는 아이들의 연주는 심사위원도 즐기면서 듣게 돼요. 반면 ‘잘해야 돼’에만 사로잡힌 아이들의 연주는 듣는 사람에게도 즐거울 수 없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 학생들은 왜 외국 학생들처럼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됐죠.”
김 교수는 이것이 비단 음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 선수들이 “어린 시절 최고의 장난감이 축구공이었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의 경우 어린 시절 엄격한 교육 환경과 고된 훈련을 감당해야 했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처럼 경쟁을 좋아하는 나라도 드물어요. 과도한 경쟁으로 예술마저 즐기지 못하고 있는 거죠. 음악 교육은 ‘교육이 아닌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배우고 익히는 게 아니라 ‘우리 곁에 항상 있는 것’으로 즐기고 느끼는 거죠.”
하지만 현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어느 순간부터 유년 시절에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됐지만 대부분의 학원은 ‘즐기는 것’이 아닌 음표의 조합과 피아노 기술을 연마하는 데 치우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한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콩쿠르 입상, 진학 문제 등에 얽매여 정작 음악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피아노를 잘 친다고 해서 꼭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에요. 보통 음악적 재능을 판단하기에 앞서 아이가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거든요. 이것은 문학,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모두 해당되는 점이죠. 더 넓게 보면, 감정이 풍부한 아이들은 생각의 폭도 넓다는 걸 감안하면 예술을 진정 즐길 수 있는 아이의 미래는 더욱 풍부해질 거예요. 물론, 아이들의 감수성을 키우는 데 음악만 한 게 없고요.”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단계에까지 올라선다는 게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 또한 어린 시절 그렇게 음악을 접했거든요. 부친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니까 늘 집 안에 음악이 흘렀죠. 그때는 그게 클래식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거죠. 하지만 막상 음악을 ‘전공’으로 삼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즐겁게 들었던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를 알게 됐죠. 물론, 클래식 음악은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직접적이고 순간적으로 와 닿는 즐거움이 부족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죠. 그러고 나면 음악이 마음을 비추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진로 선택의 세 가지 기준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가 갖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진로 문제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기 교육, 영재 교육도 모두 거기서 출발한다. 교육 일선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을 김 교수 또한 “이것은 가장 어렵고 힘든 문제”라고 했다. 더욱이 부모의 시선과 전문가의 시선 차이가 진로를 선택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부모로서 아이의 재능을 판단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저에게 딸이 둘 있는데, 큰아이가 바이올린(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을 하고 있어요. 그 애가 말을 시작한 돌 즈음 어느 날 ‘오늘은 마음이 허전해. 슬퍼’ 그러더라고요. ‘감수성이 있구나’ 싶었죠. 그래서 피아노를 조금 시켜봤는데 썩 잘하진 못하더라고요. 바이올린을 시켜봤더니 그건 또 쉽게 잘 맞았어요.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에게 재능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보니, 아이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어서 정확한 평가와 판단을 내리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다른 전문가에게 평가를 부탁해야 했죠.”
실제로도 재능을 키워주는 부모보다 ‘억지로 재능을 만들려는 부모’를 더 많이 만나게 된다고 했다. 아이가 가진 재능을 착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저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하나씩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찾는 것이 어려울 뿐이죠. 흔히 예술분야에서는 천재적 재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천재도 단점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잘하는 부분을 찾고 그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지, 단점을 찾아 극복하려고는 하지 않거든요. 단점을 지적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도 하고요.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죠.”
그래서 김 교수는 지금도 진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아이들을 상담하거나 테스트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곤 한다.
“아이가 계속 음악을 할 것이냐를 놓고 평가를 하는데,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을 봐야 하지만 결국에는 원론적인 기준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첫째, 남들도 다 인정할 만큼 거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면 당연히 그걸 해야겠죠. 두 번째로는 공부나 미술, 체육 등 여러 가지 가운데 그나마 악기를 가장 잘 다룬다면 또 당연히 그걸 선택해야 하는 거고요. 세 번째로는 재능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가 미치도록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해야 함이 옳다고 봐요. 가장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분야가 있는데도 아이가 음악에 집착하는 경우죠. 그럴 땐 아이의 실력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실력이 일정 수준 이하라면 말리는 편이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선택과 집중. 그는 오히려 음악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고 했다.
“얼마 전 판사들과 연주를 한 적이 있었어요. 음악이 좋아서 조금씩 시간을 내 배운 분들도 있고 전문적으로 악기를 배운 분들도 있었죠. 그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말 그대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분들이었거든요. 음악을 좋아한다면, 억지로 재능을 만들어내기보다 열정을 풀어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두고 다른 재능을 키우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콩쿠르가 최대 목표여서는 안 돼
김대진 교수가 부드러운 어투로 풀어놓은 한국 음악 교육의 현주소는 우리나라 예술 교육, 더 넓게는 경쟁 구조가 극대화된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성공을 향한 치맛바람과 피 튀는 콩쿠르 경쟁, 남들 다 가니 나도 안 갈 수 없는 유학처럼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기성세대에 대한 솔직한 반성까지도.
“만약 콩쿠르에서 상을 받아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였으면 아이들도 거기에 목을 매지는 않겠죠. 상을 받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 또 상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잘 해도 인정받을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점차 개성이 다양해지고 독창성을 갖추고 있는데, 기존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요. 사회에서 제시한 틀 안에 무조건 넣으려고 하니까요. 세대는 변하는데, 사회는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죠. 때문에 그 안에서 아이들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물론 국제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출신의 음악가들이 좋은 성적을 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인정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성공에 취해 콩쿠르가 최대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콩쿠르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그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평가해 1등을 뽑는 거잖아요. 자신의 개성과 특성을 키우기보다, 대회에서 돋보이기 위한 연주에 몰입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일정 나이가 지나면 콩쿠르에 나갈 수 없거든요. 학교를 졸업하고 흔히 말하는 기성 음악인이 되면 비교할 상대가 없어요. 오로지 자기 자신을 보여줘야 하죠. 그런데 콩쿠르에만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신이 주체가 돼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는 것에는 서툴러요. 그래서 콩쿠르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사람들이 기성 음악인으로서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결론은 다시 ‘음악을 즐기자’로 돌아온다. 음악을 진정 즐길 수 있는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 어쩌면 김대진 교수가 말하는 모든 음악이라는 단어를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바꾸면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재능을 바라봐야 할 긍정적인 태도가 아닐까.
■ 참고도서·음악이 아이에게 말을 걸다(웅진리빙하우스)
이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김대진(52) 기악과(피아노) 교수가 20년간 음악 교육 현장에서 깨달은, 진정한 음악과 교육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수학한 후 1994년부터 한예종 교수로 교편을 잡은 김 교수는 2003년부터 해마다 청소년 음악회, ‘김대진의 음악교실’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 활동하며 인재 육성에 매진해왔다. 2008년에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는 한편 2012년부터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러는 동안 손열음과 김선욱, 이진상 등이 그의 사사로 국제 무대에서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 앞에 ‘명교수’라는 수식어를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그 또한 강마에처럼 호통치며 자신의 방식만 주입시키던 때가 있었고, 한때는 실기 시험이나 콩쿠르에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최고의 ‘교육 목표’였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그 덕에 “과분하게 인정받고 부담스러울 만큼의 명예도 얻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한국인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배출한 명교수’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세월과 나이 듦, 또 그간 켜켜이 쌓인 경험이 준 교훈을 밑거름 삼아 다시금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재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부터 김 교수가 말하는 이야기는 음악과 교육을 뛰어넘는 음악 교육자로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명과 다름없다.
즐기지 못하는 경쟁 사회
“국제 콩쿠르 대회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출전하면 심사위원들도 자세를 고쳐 잡고 긴장하게 돼요. 연주 실력을 떠나 입장할 때부터 표정이 다르거든요. 무척 경직돼 있어서 때론 무서워 보일 정도죠. 콩쿠르의 특성상 출전자 대부분이 긴장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즐기는 아이들의 연주는 심사위원도 즐기면서 듣게 돼요. 반면 ‘잘해야 돼’에만 사로잡힌 아이들의 연주는 듣는 사람에게도 즐거울 수 없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 학생들은 왜 외국 학생들처럼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됐죠.”
김 교수는 이것이 비단 음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 선수들이 “어린 시절 최고의 장난감이 축구공이었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의 경우 어린 시절 엄격한 교육 환경과 고된 훈련을 감당해야 했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처럼 경쟁을 좋아하는 나라도 드물어요. 과도한 경쟁으로 예술마저 즐기지 못하고 있는 거죠. 음악 교육은 ‘교육이 아닌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배우고 익히는 게 아니라 ‘우리 곁에 항상 있는 것’으로 즐기고 느끼는 거죠.”
하지만 현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어느 순간부터 유년 시절에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됐지만 대부분의 학원은 ‘즐기는 것’이 아닌 음표의 조합과 피아노 기술을 연마하는 데 치우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한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콩쿠르 입상, 진학 문제 등에 얽매여 정작 음악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피아노를 잘 친다고 해서 꼭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에요. 보통 음악적 재능을 판단하기에 앞서 아이가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거든요. 이것은 문학,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모두 해당되는 점이죠. 더 넓게 보면, 감정이 풍부한 아이들은 생각의 폭도 넓다는 걸 감안하면 예술을 진정 즐길 수 있는 아이의 미래는 더욱 풍부해질 거예요. 물론, 아이들의 감수성을 키우는 데 음악만 한 게 없고요.”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단계에까지 올라선다는 게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 또한 어린 시절 그렇게 음악을 접했거든요. 부친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니까 늘 집 안에 음악이 흘렀죠. 그때는 그게 클래식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거죠. 하지만 막상 음악을 ‘전공’으로 삼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즐겁게 들었던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를 알게 됐죠. 물론, 클래식 음악은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직접적이고 순간적으로 와 닿는 즐거움이 부족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죠. 그러고 나면 음악이 마음을 비추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진로 선택의 세 가지 기준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가 갖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진로 문제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기 교육, 영재 교육도 모두 거기서 출발한다. 교육 일선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을 김 교수 또한 “이것은 가장 어렵고 힘든 문제”라고 했다. 더욱이 부모의 시선과 전문가의 시선 차이가 진로를 선택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부모로서 아이의 재능을 판단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저에게 딸이 둘 있는데, 큰아이가 바이올린(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을 하고 있어요. 그 애가 말을 시작한 돌 즈음 어느 날 ‘오늘은 마음이 허전해. 슬퍼’ 그러더라고요. ‘감수성이 있구나’ 싶었죠. 그래서 피아노를 조금 시켜봤는데 썩 잘하진 못하더라고요. 바이올린을 시켜봤더니 그건 또 쉽게 잘 맞았어요.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에게 재능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보니, 아이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어서 정확한 평가와 판단을 내리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다른 전문가에게 평가를 부탁해야 했죠.”
실제로도 재능을 키워주는 부모보다 ‘억지로 재능을 만들려는 부모’를 더 많이 만나게 된다고 했다. 아이가 가진 재능을 착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저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하나씩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찾는 것이 어려울 뿐이죠. 흔히 예술분야에서는 천재적 재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천재도 단점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잘하는 부분을 찾고 그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지, 단점을 찾아 극복하려고는 하지 않거든요. 단점을 지적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도 하고요.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죠.”
그래서 김 교수는 지금도 진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아이들을 상담하거나 테스트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곤 한다.
“아이가 계속 음악을 할 것이냐를 놓고 평가를 하는데,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을 봐야 하지만 결국에는 원론적인 기준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첫째, 남들도 다 인정할 만큼 거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면 당연히 그걸 해야겠죠. 두 번째로는 공부나 미술, 체육 등 여러 가지 가운데 그나마 악기를 가장 잘 다룬다면 또 당연히 그걸 선택해야 하는 거고요. 세 번째로는 재능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가 미치도록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해야 함이 옳다고 봐요. 가장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분야가 있는데도 아이가 음악에 집착하는 경우죠. 그럴 땐 아이의 실력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실력이 일정 수준 이하라면 말리는 편이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선택과 집중. 그는 오히려 음악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고 했다.
“얼마 전 판사들과 연주를 한 적이 있었어요. 음악이 좋아서 조금씩 시간을 내 배운 분들도 있고 전문적으로 악기를 배운 분들도 있었죠. 그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말 그대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분들이었거든요. 음악을 좋아한다면, 억지로 재능을 만들어내기보다 열정을 풀어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두고 다른 재능을 키우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콩쿠르가 최대 목표여서는 안 돼
김대진 교수는 모든 교육에서 아이의 성향과 장단점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만약 콩쿠르에서 상을 받아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였으면 아이들도 거기에 목을 매지는 않겠죠. 상을 받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 또 상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잘 해도 인정받을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점차 개성이 다양해지고 독창성을 갖추고 있는데, 기존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요. 사회에서 제시한 틀 안에 무조건 넣으려고 하니까요. 세대는 변하는데, 사회는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죠. 때문에 그 안에서 아이들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물론 국제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출신의 음악가들이 좋은 성적을 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인정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성공에 취해 콩쿠르가 최대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콩쿠르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그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평가해 1등을 뽑는 거잖아요. 자신의 개성과 특성을 키우기보다, 대회에서 돋보이기 위한 연주에 몰입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일정 나이가 지나면 콩쿠르에 나갈 수 없거든요. 학교를 졸업하고 흔히 말하는 기성 음악인이 되면 비교할 상대가 없어요. 오로지 자기 자신을 보여줘야 하죠. 그런데 콩쿠르에만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신이 주체가 돼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는 것에는 서툴러요. 그래서 콩쿠르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사람들이 기성 음악인으로서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결론은 다시 ‘음악을 즐기자’로 돌아온다. 음악을 진정 즐길 수 있는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 어쩌면 김대진 교수가 말하는 모든 음악이라는 단어를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바꾸면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재능을 바라봐야 할 긍정적인 태도가 아닐까.
■ 참고도서·음악이 아이에게 말을 걸다(웅진리빙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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