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갑작스레 KBS ‘아침마당’에서 물러났던 MC 이상벽(57)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주부들과 다시 만났다. 지난 12월16일 현대백화점 중동점에서 마련한 ‘명사 특강’에 강사로 나선 것. 그가 한손에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나타나 언제나처럼 편안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자 대형 이벤트홀을 채운 주부들이 뜨거운 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생방송으로 토크쇼를 진행하다 보니 매번 달라지는 초대손님을 맞기 위해 때로는 대포알 같은 깊은 지식을, 때로는 잔탄 같은 자잘한 상식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렇게 오래 실탄을 쌓다 보니 오늘처럼 이런 자리에서 여러분들께 나눠줄 이야기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방송도 오래하다 그만두니 금단현상 같은 게 있는데 오래간만에 여러분을 만났으니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좀 해야겠네요.”
당초 알려졌던 이날 특강의 주제는 ‘생방송의 어려움, 방송을 진행하며 생긴 에피소드와 차마 방송에는 내보내지 못했던 이야기’였지만 그는 정해진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을 초과하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총알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탓하기도 하고, 노년을 제대로 보내기 위해서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인생의 후반기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강연 내용 중 특히 관심을 끈 대목은 역시 ‘아침마당’을 떠나게 된 배경이었다. 이상벽은 “미대(홍익대 산업디자인과)를 나와 한때 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는데 기자가 됐다”며 “꼬박 10년간 기자로 일하다 방송을 시작했는데 내 적성에 가장 잘 맞는 건 ‘아침마당’의 진행이었다”고 말했다. 그토록 좋아하지 않았다면 92년부터 10년 넘게 매일 아침 생방송을 진행하며 ‘생방송 진행 최장기간 기록’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가 ‘아침마당’을 떠난 이유가 궁금한지도 모른다. 그는 물론 ‘아침마당’ 고별 방송을 통해 “10년 이상 오전 5시에 일어나다 보니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건강상의 이유로 방송을 떠나게 되어 죄송하다”고 밝혔지만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그러던 중 터져나온, 그가 아내와 별거중이라는 보도는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제가 13년 동안 ‘아침마당’을 진행하다 그만뒀는데 사실 3년 전에도 그만둔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한 1년 쉬었는데 이번에는 언론에서 엄청나게 떠들어대는 바람에 이상해졌어요. ‘이상벽 별거’ 해서 말이죠.”
이상벽은 모처럼 주부들 앞에서 입담을 과시했다.
방송에서 때로는 달래듯, 때로는 다그치듯 초대손님을 구슬리며 주부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줄 알았던 그는 자신을 둘러싼 별거설에 대해서도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거 참 이상해요. 방송을 그만둔다고 하니까 피를 나눈 식구인데도 반응이 다 다르더라고요. 남동생은 잘했다고 하더군요. ‘형이 술을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만날 새벽같이 고생했다’면서요. 반면에 여동생은 대번에 ‘미쳤수?’ 하더라고요. 병원에 실려가게 생긴 것도 아닌데 그만둘 것까지 있냐면서요. 가장 현실적인 반응을 보인 건 우리 마누라였어요. 방송 그만두고 싶다고 하니까 강하게 반대하더라고요. 그럴 만도 하죠. 얼마 전 신문에서 보니 제가 2002년에 KBS에서 출연료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지난해 KBS ‘출연료 고액 수령자’ 현황자료에 따르면 이상벽은 2002년에 2억6천8백만원을 받아 그해 KBS TV에 출연한 연예인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 그는 적지 않은 수입을 포기해야 하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아침마당’에 출연하는 동안 우리 마누라가 늘 하던 일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매일 새벽 자명종이 울리면 ‘보소보소, 인나소’ 하면서 저를 깨우는 일과 출연료 가져다주면 돈 세는 것(웃음).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다 못하게 됐으니 성질을 낼 만도 하죠. 그런데 좀 야속하더라고요. 그래서 ‘도대체 내가 얼마나 더 마당쇠 노릇을 해야 하냐, 병원에 실려가도록 해야 하냐’고 화를 냈어요. 그렇게 좀 다투고 집을 나와 여의도 근처에 화실용으로 마련해둔 오피스텔에서 닷새쯤 지낸 건데 스포츠신문에 ‘별거’라고 났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죠.”
그에 따르면 자신이 집을 나와 있는 사이 한 스포츠신문 기자가 ‘아침마당’을 그만두는 배경을 묻기 위해 집으로 전화를 했고, 토라져 있던 아내가 “몰라요, 집에 없어요” 하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은 게 별거 기사로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상벽은 자신이 지금껏 한 일 중 ‘아침마당’진행이 가장 적성에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얘기를 간간이 들려주며 자신의 가정에 별문제가 없다는 걸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맘때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며 예전의 건장하시던 모습은 간 데 없이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회상했고, “새해 팔순이 되는 어머니가 뒤늦게 붓글씨를 배워 노인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며 “어머니가 몸 관리를 잘 하셔서 1백세까지 장수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동네 목욕탕에 가기 때문에 아들이 자신과 긴히 할 얘기가 있으면 그 시간에 목욕탕으로 찾아온다는 소소한 일상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런 자식들에게 그는 “효도해야 한다”고 강요하기보다는 “너희와 나 사이의 의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가족이라는 인연을 맺은 사람들끼리 서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과 애정에 대해 얘기한다고.
강의가 끝난 뒤에 만난 그는 “‘아침마당’은 그만뒀지만 지난 8월부터 시작한 MBC ‘가요콘서트’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 방송과 함께 간간이 강연을 다니며 잘 지내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그는 이날 강연을 시작하며 “가을에 앓던 사람은 겨울이 유난히 시리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젊은 시절을 알차게 보낸 사람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쁜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 다소 여유 있는 생활로 돌아선 그의 인생 제2막에 따뜻한 햇살이 비추기를 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