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최명길(41)이 8년 만에 라디오 DJ로 ‘복귀’했다. 물론 그의 본업은 연기자다. 하지만 MBC 라디오 ‘최명길의 음악살롱‘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복귀라는 표현에 거부감은 없을 듯싶다. 당시 최명길은 특유의 촉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많은 청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95년에 결혼하면서 라디오 프로 진행을 그만뒀어요. 그때 ‘음악살롱‘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고 사랑한 프로그램이라 그만둘 때 굉장히 아쉬웠던 기억이 나요. 당시 반응도 상당히 좋았어요. 제가 활동을 안할 때 많은 분들이 ‘왜 TV에 안나오냐’고 물으셨는데, 열명 중 두분은 ‘이제 라디오 안하냐’고 물으셨어요.”
그가 이번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가요응접실‘이다. 주로 30∼40대 취향의 가요와 시청자 사연을 들려주는 MBC 간판 프로그램으로 두터운 청취자 폭을 가지고 있다. 가수 권진원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그는 지난 4월14일 첫 방송을 했다.
라디오 진행을 그만둔 뒤에도 그는 DJ 제의를 심심치 않게 받았다. 하지만 2시간을 꼬박 할애해 생방송을 하는 것이 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고 한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데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잖아요. 아이 둘을 낳은 엄마가 됐고 남편이 정치에 입문했죠. 그러면서 모든 여건이 편안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그리고 오랫동안 DJ를 쉬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려니 은근히 걱정도 되더라고요.”
사실 이번 ‘가요응접실‘의 DJ 제안을 수락한 것은 그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처음 그가 DJ 제의를 받은 것은 두달 전. 아직 둘째 무진이(18개월)가 너무 어리고 무엇보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남편 김한길(50)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도와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 김 전 장관도 “당신 좋을 대로 하라”며 격려해줬고, 예전에 함께 일했던 스태프들이 다시 뭉친다기에 힘들게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한다.
“첫 방송할 때 너무 떨렸어요. 주변에서는 처음 하는 일도 아닌데 떨 일이 뭐가 있냐고 했지만 그렇지 않아요. 오랜만에 마이크 앞에 앉았고 생방송으로 진행하는데 어떻게 안 떨려요. 하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너무 큰 호응을 해주셔서 지금은 너무 좋아요.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동안 바빠서 음악 들을 시간이 없었는데 2시간 동안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다는 게 그 중에서도 가장 행복해요.”
MBC 라디오 녹음실은 그와 인연이 각별하다. 그는 지난 87년 MBC FM ‘0시의 데이트‘로 라디오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95년 ‘최명길의 음악살롱‘을 마지막으로 DJ 생활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은 그와 남편 김한길 전 장관이 처음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그때 남편이 ‘MBC 초대석‘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제가 ‘장미빛 인생‘이라는 영화로 낭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서 남편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게 첫 대면이었죠. 그게 인연이 돼서 결혼까지 했으니, 이곳이 저에겐 애틋한 장소일 수밖에 없어요.”
가요, 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좋아한다는 최명길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열마디 말을 세마디로 줄여 그 시간에 좋은 음악을 더 많이 들려주겠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로 결혼 8년째를 맞는다. 그 사이 그는 어진(6)과 무진이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너∼무 예쁘다”는 말로 시작한 아이들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아이들 사진 좀 달라”고 부탁하자 “하루하루 너무 예뻐지기 때문에 직접 와서 찍어야 할 거예요” 하고 말할 정도다. 아이들에 대한 그와 남편의 사랑도 유별나지만 동생 무진이에 대한 어진이의 사랑도 만만치 않다고.
“어진이는 ‘내 동생 무진이’가 아예 입에 붙었을 정도로 무진이를 너무 사랑해요. 농담이 아니라 동생을 안 낳아줬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그 또래 아이들이 동생한테 질투나 시샘을 많이 한다는데 어진이는 무진이가 아파서 울면 자기도 같이 따라 울 정도예요.”
같은 아들이라도 어진이와 무진이는 많이 다르다. 어진이는 외모는 외탁을, 성격은 친탁을 한 편이라 내성적이고 점잖은 편. 반면 막내 무진이는 흥도 많고 남자답고 애교도 많아 ‘예쁜 짓의 왕자’로 군림하고 있다. 무진이 덕택에 이 부부는 시간가는 줄 모를 지경이다.
특별한 육아법, 교육법은 따로 없다. 가능한 한 아이와 많이 대화하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 전부다. 한가지 특별하게 신경을 쓰는 게 있다면 예의 범절과 생활습관이다. 목표는 ‘새나라의 어린이’. 아직 여섯살인 어진이는 엄마 아빠한테 꼬박꼬박 높임말을 쓰고,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6시에 일어난다. 모든 면에서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듬직하기만 한 장남인데, 딱 한가지 편식만큼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햄버거나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를 싫어하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것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밥, 두부, 멸치 외엔 다른 걸 잘 먹으려 하지 않아요. 먹는 양도 적어서 체력이 약한 편이라 다소 걱정이 돼요. 무진이는 이제 이유식을 시작했는데, 아무 거나 잘 먹어 별 걱정이 없어요.”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어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유치원 가기 전인 아침 9시까지, 검도장에서 돌아오는 오후 5시부터 8시까지는 웬만하면 집에 있으려고 한다. 이 시간은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다.
민주당 구로을 개편대회에 참석한 김한길, 최명길 부부.
그동안 아이와 잘 놀아주는 비법도 터득했다. 비법은 간단하다. 엄마가 무엇인가를 시키려 하지 말고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는 수시로 아이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가거나 가위바위보, 공굴리기, 레슬링, 팽이돌리기 등 다양한 놀이를 같이 한다.
“항상 어진이한테 이렇게 말해요. ‘어진아, 어진이가 무진이하고 엄마, 아빠 돌봐줘야 해. 어진이가 형이니까 무진이 돌봐줘야하는 거 알지? 너희들은 항상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고요. 그러면 자기가 아주 씩씩하게 ‘내가 다 돌본다’고 그래요. ‘엄마는 이 세상에서 우리 어진이를 제일 사랑해’라고 하면 ‘저두요’ 하면서 뽀뽀를 하고요.”
조기교육 바람도 그에게는 남의 집 이야기일 뿐이다. 요즘은 영어유치원이 인기라지만 어진이는 평범한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이는 아이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김 전 장관의 뜻이기도 하다. 평소 김 전 장관은 “언어 능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에 두 가지를 함께 배우면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며 “마음놓고 뛰어놀게 해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
대신 어진이는 검도와 축구를 배우고 있다. 어진이가 싫어한다면 언제라도 그만두게 할 생각이지만, 다행히 매우 재밌어하는 눈치라고 한다. 특히 요즘 어진이는 축구에 푹 빠져 있다.
“차범근 축구교실에 다니고 있는데, 얼마 전 어진이가 게임에서 혼자 세골을 넣어서 해트트릭을 했어요. 차범근 감독님도 어진이가 재능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차감독님이 사인을 해주시면서 ‘아저씨도 엄마, 아빠만큼 유명한 사람이야’라고 했는데 어진이는 멀뚱멀뚱 쳐다만 보더라고요. 그분이 얼마나 유명한 분인지 아직 잘 몰라요(웃음).”
결혼과 동시에 정치에 입문한 남편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정치인의 아내’로서 살아왔다. 그의 생활이 더 바쁘고 분주해진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 7월 KBS 사극 '명성황후'의 종영을 끝으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은 그는 두 아들 어진과 무진이를 키우며 차기작을 물색중이다.
“오늘 아침에도 지역구 행사에 참가하고, 감기에 걸린 무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오고, 이렇게 방송국에 온 거예요. 인터뷰가 끝나면 방송하고, 다시 저녁 때 지역구 행사에 참가해야 해요. 정신없죠? 내년에 남편이 구로구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아내로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에요.”
지난해 9월, 그는 구로구 보궐선거에 참가하는 남편을 위해 가리봉 시장에 선거운동을 나가기도 했다. 무진이를 출산한 지 열흘 만의 일이다. 남편이 만류했지만 ‘아내로서 해야할 일’이라는 그의 뜻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보름 동안 선거운동으로 뛰어다니면서 체중이 무려 10kg이나 빠졌다고 했다.
정치인의 아내가 되면서 전과 달라진 것이 많다. 전에는 무심했던 신문과 뉴스를 한번이라도 더 챙겨보게 되고 나라의 경제와 민생 현안에 대한 걱정도 하게 됐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라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점이다.
“남편을 도우면서 많은 분들과 만나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게 사실이에요.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경험이고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년 총선에 구로구에서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는 남편 때문에 그와 가족들은 동부이촌동에서 구로구 신도림동으로 이사했다. 덕분에 요즘 그는 ‘구로댁’으로 통한다. 구로구는 그의 가족에겐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곳이다. 남편 김 전 장관이 구로구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둘째 무진이가 구로구 고대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 또한 이곳과 아예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제가 출연했던 ‘장미빛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맡았던 역할이 가리봉동 만화방 여주인이었어요. 그때 제 대사 중에 ‘모든 사람이 다 떠나도 난 이곳을 지킬 것이다’ 하는 게 있었어요. 이 정도면 저도 구로구와 인연이 깊은 거죠?(웃음)”
지난 81년 MBC 공채로 데뷔한 그는 올해로 연기경력 22년을 맞았다. 어느덧 불혹을 넘어선 나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름답고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젊음의 비결을 묻자 “세 남자에게 사랑받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예전처럼 며칠 밤을 새워도 피부가 그대로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편해 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특히 40대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시기라고 하잖아요. 마음의 평화가 없는데 좋은 화장품 바른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지난해 어버이날 그와 남편은 어진이로부터 유치원에서 만들었다는 종이카네이션 꽂을 선물 받았다. ‘어진이가 이렇게 자랐구나’하는 생각 뒤에 ‘내 나이가 벌써’라는 회한이 이어졌다. 그는 여자 나이 마흔에 대해 계속 곱씹어본다고 했다.
“마흔은 최고의 나이라고 생각해요. 30대는 결혼과 출산으로 멋모르고 지나갔지만 40대는 중반 이후의 인생을 설계하는 시기잖아요. 훨씬 신중해지기 때문에 인정도 많이 받고요. 지금부터 10년은 앞으로 저의 노후생활을 확실히 결정짓는 황금기로 만들려고 해요.”
배우로서의 욕심도 마흔에 접어들면서 더 많아졌다. KBS 사극 ‘용의 눈물‘ ‘명성황후‘를 통해 그의 원숙미는 빛을 발했다. 이 페이스를 이어 그는 차기작을 놓고 고민중이다.
“개인적으로 현대물을 하고 싶은데 사극 제의가 많아서 고민이에요. 하지만 저에게 맞는 작품이 아니라면 굳이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작품을 선택할 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돼요. 아무래도 남편의 입장도 생각하게 되고 아이들이 있으니까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작품에 대해서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네요. 물론 선택은 전적으로 제 몫이죠.”
결혼 후 지금까지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연기자와 정치인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 중 어떤 타이틀에 가장 치중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그는 주저없이 “김한길의 아내, 어진이와 무진이의 엄마”라고 답해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내와 엄마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배우 최명길도 있고, 정치인의 아내 역할도 있는 거죠. 제가 가족들을 위해 뭘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사실 남편과 아이들이 제 든든한 ‘빽’이죠(웃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앞으로 청취율도 많이 올리고, 내년 남편 선거도 이겨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계획”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두 아이의 엄마, 정치가의 아내, 연기자 그리고 라디오 DJ까지 1인4역을 하면서도 전혀 힘겨워하지 않는 그. 그의 끊임없는 열정이 무엇보다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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