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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카데미 94년 ‘황색 천장’ 깬 양쯔충의 인생 드라마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3. 03. 23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양쯔충임이 분명하다.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수상의 영예까지 안았으니 말이다. 인종과 성별, 나이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 앞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린 그녀의 인생이야말로 희망과 가능성의 불꽃과도 같다.

양쯔충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에서 동양인 최초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았다.

양쯔충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에서 동양인 최초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았다.

지난 3월 12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시어터에서 열 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셸 여(Michelle Yeoh·양쯔충)’라는 이름 이 울려 퍼진 일은, 그녀가 수상 소감 말미에 외친 것처럼 “오래도록 기억될 역사적인 순간(This is history in the making)”이 될 것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이하 ‘에에올’)’가 무려 10개 부문에서 11개 후보를 배출하며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노미네이트 작품으로 등극했을 때까지만 해도 여우주연상 수 상은 반신반의에 가까웠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가능성을 높인 점과 인종 다양성이 고려되는 최근의 추세는 그린라이트로 해석됐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지난 94년 간 단 1명의 동양인도 트로피를 안은 적이 없었다는 점은 통계적 사실이었 기 때문.

이처럼 높은 문턱을 넘어 양쯔충이 ‘최초의 후보자’이자 ‘최초의 수상자’라 는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으니 전 세계인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2002년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 프리카계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할리 베리가 시상자로 나서 최초의 아시아계 수상자인 양쯔충을 맞이한 것까지! 아카데미 시상식 연출, 양쯔 충 주연의 드라마가 완성되었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성별과 나이, 인종을 넘어선 성취를 거두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은 물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남·녀조연상 등 총 7관왕을 석권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은 물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남·녀조연상 등 총 7관왕을 석권했다.

“오늘 밤 나와 같은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트로피는 희망 과 가능성의 불꽃입니다. 꿈이 실현된다는 증거입니다. 큰 꿈을 꾸고, 꿈이 실현된다는 걸 보여주세요. 그리고 여성 여러분, 그 누구도 여러분의 전성 기가 지났다고 말하도록 두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그녀의 수상 소감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환갑을 맞이한 동양인 여성 배우의 진심 어린 응원은 특히 마이너리티로 분류되는 이들(아이와 여성·노인·유색인 종)에게 큰 울림으로 전해지기에 충분했다. 여기에서 불거진 논란도 있었 다. SBS가 ‘8시 뉴스’에서 수상 소식을 전하며 ‘여성 여러분(And ladies)’이 라는 단어를 자막뿐만 아니라 음성에서도 지운 사건이다. 이후 보도국이 공 식 입장을 통해 “꼭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 단어 를 삭제했다”고 표명해 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가치판단의 권한이 해 당 방송국에 있다는 걸 차치하더라도, SBS가 양쯔충의 아이덴티티(유색인 종·여성·장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지난 1월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수상 소감을 되짚어보면 그녀가 메시지를 전하려는 대상 은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해진다.

“할리우드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오기 전까지는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오고 나서 ‘당신은 소수자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죠. 그리고 누군가는 나에게 ‘당신, 영어를 할 줄 아네요!’라고 말했고요.…나는 지 난해에 60세가 되었습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시간이 흐르 고 나이가 들수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줄어듭니다. 포기하려던 때에 이 영화를 만났습니다.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은 동양계 여러분과 앞으로 나와 같은 여정을 겪어야 할 이들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액션으로 아시아를 사로잡은 홍콩 영화의 간판스타

양쯔충의 커리어는 항상 ‘최초’ 또는 ‘최고’라는 수식어로 가득했다. 놀라운 점은 그녀가 스스로 커리어를 경신하는 방법이다. 1962년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주목받는 발레 유망주였던 것으로 알려 졌다. 네 살 때 토슈즈를 신고 열다섯 살에 영국왕립무용학교에 진학했지만 척추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고. 영국에서 창작 예술을 전공한 후 고국 으로 돌아가 미스 말레이시아 왕관을 거머쥔 때가 스무 살. 1984년에는 청 룽(성룡)과 함께 홍콩의 TV CF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카메라 앞에 섰 고, 홍진바오(홍금보) 주연의 액션 코미디 영화 ‘묘두응여소비상(頭鷹與小 飛象 The Owl VS Bumbo)’에 단역으로 얼굴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하는 최초의 여배우로 인식된 것은 1985년의 일이다. 두 번째 영화인 ‘예스 마담-황가사저’는 ‘천하무적 열혈 여형사’라 는 홍보 문구를 앞세울 만큼 화려한 액션이 인상적인 작품. 스턴트 연기를 직접 소화한 그녀는 홍콩은 물론 한국에서도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1편의 성공 이후 연이어 발표한 두 편의 후속작 ‘예스 마담2-황가전사’와 ‘예스 마 담3-중화전사’가 홍콩과 한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까지 흥행하면서 그 녀는 명실공히 아시아권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소속사에서 어떤 종류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지를 물었을 때, 액션이 가 장 친숙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큰 댄스 작품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것 을 안무라고 생각하고 이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스 말레이시아 출신인 양쯔충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007네버다이’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스틸 컷.

미스 말레이시아 출신인 양쯔충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007네버다이’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스틸 컷.

결혼과 이혼, 부상의 슬럼프를 극복하다

1988년, 그녀는 소속사의 대표인 반적생과 결혼하고 영화계를 떠난다. 아 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삶에 집중하고자 했던 양쯔충의 계획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변화를 맞았다. 5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친 그녀는 청룽의 ‘폴리스 스토리 3: 초급경찰’로 스크린에 돌아왔고 ‘태극권’ ‘영춘권’ 등의 액션 영화에서 다시 활약한다. 슬럼프도 있었다. 1996년 촬영 중 당한 목과 상반신 부상을 계기로 연기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지만, 다행히 이 시기에 홍콩에 머물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만난 덕분에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양쯔충의 회상이다. 당시 타란티노는 그녀의 액션 연기를 프레임 단위로 구분해 이야기할 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이는 그녀가 자신에게 들어오는 할리우드의 러브 콜을 받아들이게 된 결정 적인 계기였다. 1998년 개봉한 ‘007 네버 다이’에서 양쯔충은 007과 대등하 게 임무를 수행하는 본드 걸로 출연하며 국제 활동의 발판을 다진다. 이 시 기에 가장 흥행한 영화는 홍콩과 미국, 대만이 합작한 ‘와호장룡’으로, 북미 권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어 할리우드 제작자들과 관객에게 양쯔충을 소개 하는 대표작이 되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할리우드 도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할리우드 진출을 모색한 홍콩 톱스타 중 미국에 안착한 이는 양쯔충이 대표적이다. 영국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영어를 구사하는 데다 액션이라는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 세계 영화산업에서 가장 치열한 필드인 할리우드가 녹록했을 리는 만무하다. 동양인에게 주어지는 역할 자체가 한정적이라는 것은 넘기 힘든 허들이었다. 늘 주연을 맡았던 양쯔충조차도 ‘게이샤의 추억’ ‘미이라 3: 황 제의 무덤’ ‘바빌론 A.D.’ 등에 조연으로 출연해야 했다. 다행히 활동은 이어 졌지만 흥행이나 수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 양한 방법으로 길을 탐색했다. 충무로가 기획하고 정우성이 주연한 ‘검우강 호’에 출연하고, ‘쿵푸 팬더 2’의 목소리 연기에도 나섰다. 2015년에는 영국 제작사와 뤽 베송 감독이 손을 잡은 영화 ‘더 레이디’에서 아웅 산 수 찌로 분하는 동시에 영국 TV 시리즈 ‘스트라이크 백: 레거시’에도 출연하며 유럽 시장에서의 활동을 타진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내 아시아 플로를 이끌어낸 히로인

이런 활동이 차곡차곡 쌓인 끝에 만난 작품이 바로 2018년 개봉한 ‘크레이 지 리치 아시안’이다. 개봉 직후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영화 전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선호도) 91%를 획득하는 등 호평을 받 았다. 특히 이 영화가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할리우드가 202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 다양성을 이끌어 낸 작품이 기 때문이다. 1명도 없거나 혹은 단 1명만 등장하던 아시아계 배우가 그들 의 무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1년 9월에는 아예 미국 히 어로물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마블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개봉하면 서 최초의 아시아인 히어로가 탄생하기도 했다. 양쯔충은 이 영화에도 캐스 팅되어 명실공히 할리우드 내 아시아 플로를 이끄는 선봉장으로 인식되었 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3월, 할리우드 진출 이후 최초로 단독 주연을 맡 은 영화 ‘에에올’이 개봉했고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 상을 움켜쥐기에 이른 것이다.

양쯔충의 커리어는 그녀 개인의 성취인 동시에 여성의 성취이고 아시안의 성취가 되었다. 개인의 노력이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얼마나 큰 동기를 부여하고 용기를 더해주는지를 입증한 케이스이기도 하다. 실제로 ‘에에올’ 에 상대역으로 출연한 키 호이 콴의 경우 아역으로 데뷔했으나 성인이 된 이후 배역을 얻지 못해 영화를 포기하려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아시아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흥행까지 성공시킨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보고 용 기를 얻어 오디션에 도전한 그가 양쯔충의 상대역으로 캐스팅되고 아카데 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니 살아 있는 사례와도 같다. 이 아시 아 플로는 5월 말, 디즈니+를 통해 공개될 ‘아메리칸 본 차이니즈’로 이어질 전망이다. 심지어 ‘에에올’ 패밀리의 엄마 에블린(양쯔충)과 딸 조이(스테파 니 수), 아빠 웨이먼드(키 호이 콴)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출 예정이라니 그 폭발적인 시너지를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양쯔충 #아카데미여우주연상 #여성동아

사진 뉴시스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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