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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여왕이 될 상인가? LVMH 그룹 맏딸 델핀 아르노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3. 03. 03

세계 최고 부자가 후계자를 지명했다. 럭셔리 제국으로 불리는 LVMH 그룹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의 선택은 그의 첫째 딸 델핀 아르노. 막대한 부와 명예가 달린 승계 구도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2년 12월, 글로벌경제 뉴스는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이하 LVMH) 그룹 회장의 이름을 중요하게 다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돈이 가장 많았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제치고 아르노가 세계 최고 부자의 타이틀을 차지했기 때문.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순위 1위에 오른 데 이어, 역시 미국의 경제 미디어 블룸버그가 발표하는 억만장자지수(BBI)에서도 1위에 랭크되면서 명실공히 세계 최고 부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블룸버그 발표에 따르면 아르노가 보유한 재산은 2022년 말 기준 1708억 달러 수준으로 한화 223조5000억 원에 달한다.

베르나르 아르노가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회장이자 CEO로 재임하고 있는 LVMH의 매출 덕분이다.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모엣샹동(Moet & Chandon), 헤네시(Hennessy)의 머리글자를 딴 LVMH 그룹은 프랑스 증시 시가총액 1위인 동시에 유럽 증시 시가총액 1위 기업이기도 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명품 패션 하우스와 주류 회사의 합병으로 출발해 현재는 50여 개가 넘는 패션, 뷰티, 주얼리, 시계, 주류 브랜드를 통해 사업을 전개하는 중이다. 그리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2023년 1월, 베르나르 아르노의 딸 델핀 아르노가 LVMH 그룹에서 루이비통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크리스찬디올 새 CEO로 선임되면서 다시 한번 세계인의 이목이 LVMH 그룹과 아르노 패밀리에게 집중됐다.

타고난 금수저와 잘 훈련된 다크호스 사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과 함께 패션 행사에 참석한 델핀 아르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과 함께 패션 행사에 참석한 델핀 아르노.

48세인 델핀이 크리스찬디올의 CEO로 선임된 것을 두고 향후 LVMH의 경영권 승계를 점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올해 74세로 지난 수년간 승계 작업을 준비해온 베르나르 아르노도 델핀의 승진에 힘을 실었다. “패션과 가죽 제품 분야에서 (그녀가) 쌓은 훌륭한 커리어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며 “그녀의 날카로운 안목과 비교 불가능한 경력은 향후 크리스찬디올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결정적인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루이비통은 그녀가 부사장으로 재임한 2013년부터 10년간 기록적인 매출 신장을 이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LVMH의 왕좌를 눈앞에 둔 것처럼 보이는 델핀 아르노. 베르나르 아르노와 어머니 앤 드와브린 사이에서 1975년 태어난 그녀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와 유럽 최고 상경대학으로 꼽히는 에덱비즈니스스쿨(EDHEC)에서 수학한 후 글로벌전략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간 컨설턴트로 경험을 쌓은 델핀이 본격적으로 패션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2000년,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세운 ‘존 갈리아노 컴퍼니’에 입사하면서부터다. 2001년에는 존 갈리아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하던 크리스찬디올 쿠튀르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LVMH의 울타리 안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3년부터 LVMH 이사회에 선임되어 최연소 이사이자 여자로서는 두 번째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구두 공장 같은 생산 라인을 누비며 시작된 그녀의 커리어는 차근차근 발전해 2008년부터 상무이사를 역임하기에 이른다. 당시 디올의 베스트셀링 아이템인 레이디디올, 디오리시모 등의 가죽 제품을 중심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5남매 중 유일한 이사회 멤버로 상속 1순위 꼽혀

세계 최고 부자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가족. 왼쪽부터 프레데릭, 델핀, 앙투안 아르노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부부, 알렉상드르 아르노.

세계 최고 부자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가족. 왼쪽부터 프레데릭, 델핀, 앙투안 아르노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부부, 알렉상드르 아르노.

재벌 2세답게 꽃길만 걸었을 것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초년생 시절의 멘토와도 같았던 존 갈리아노가 2011년 반유대주의적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델핀의 경영 능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됐다. 브랜드의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하는 동시에 갈리아노의 빈자리를 메우고, 그 후임인 라프 시몬스를 선발해 브랜드에 적응시킨 일련의 과정은 델핀의 경영 능력에 가산점을 안겼다. 덕분에 2013년에는 그룹의 메인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부사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10여 년간 루이비통에서 이루어지는 제품 생산 전반에 관여하면서 경영 감각을 쌓은 끝에 크리스찬디올의 최고책임자 자리에 이른 것이다.

8부 능선을 넘은 것은 분명하지만, 델핀이 아직 왕좌를 손에 넣은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총 4명의 남동생이 있는 데다가 그들 역시 그룹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받아 활발하게 수업 중이기 때문. 첫째 딸 델핀의 유일한 동복 남매이자 장남인 앙투안 아르노는 LVMH의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을 거쳐 현재는 그룹 이사회 부회장, 벨루티와 로로피아나의 CEO를 겸하고 있다. 새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세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알렉상드르 아르노는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의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를, 프레데릭 아르노는 명품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의 CEO를 맡고 있으며, 막내 장 아르노는 지난해 루이비통 시계 사업부의 제품 개발과 마케팅 디렉터로 임명된 바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완벽주의자를 꿈꾸다

다섯 자녀가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 중 LVMH 상임이사회에 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델핀이 유일하다. 실제로도 LVMH 그룹 내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앞두고 베르나르의 승인을 얻으려면 먼저 델핀을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을 정도라고.

그렇다면 5명의 자녀 중에서 델핀이 아버지 베르나르의 신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델핀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차분함’이다. 차분함은 2014년 언론 인터뷰에서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며 선택한 단어이기도 하다. 경청 능력이 뛰어나고 인재를 보는 눈이 높다는 평판도 지배적이다. 라프 시몬스를 비롯해 2013년부터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조나단 앤더슨,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영입을 주도하면서 증명된 역량이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선명한 키워드를 고르자면 ‘미래지향적’에 가까울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커리어의 전반에 걸쳐 젊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2014년 그녀가 주도해 설립한 ‘LVMH 프라이즈’가 상징적인 사례다. ‘지구 최고의 패션 컴페티션’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경연은 두 시즌 이상 컬렉션을 진행한 40대 미만의 신진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을 만큼 문턱이 낮은 데다가 우승자에게는 30만 유로, 우리돈으로 4억 원에 달하는 상금을 수여하고 1년간은 LVMH에 소속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자신의 브랜드를 육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셈. 심사위원으로 피비 파일로, 캐롤 림, 라프 시몬스, 리카르토 티시 등 LVMH 그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총출동하고 샤넬의 칼 라거펠트 역시 생전에는 이 상의 심사위원이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크 뮈스가 이 상을 통해 배출된 대표적인 신진 디자이너다.

그녀의 안목은 스타트업 필드에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017년부터 진행 중인 ‘LVMH 혁신 어워드’는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협업을 이끌어내는 프로젝트로, 이 상 역시 델핀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래식하고 럭셔리한 상품을 주로 다루지만 시장의 변화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와인 재벌과 이혼 후 스타트업계 대부와 사실혼 유지

크리스찬디올의 2023 S/S 오트쿠튀르 프런트로에 나란히 앉은 델핀 아르노와 블랙핑크 지수, 태그호이어 CEO 프레데릭 아르노(왼쪽부터).

크리스찬디올의 2023 S/S 오트쿠튀르 프런트로에 나란히 앉은 델핀 아르노와 블랙핑크 지수, 태그호이어 CEO 프레데릭 아르노(왼쪽부터).

델핀이 공식적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2014년 10월, 루이비통 취임 1주년을 맞았을 때가 마지막이다. 그녀가 이처럼 언론 노출을 꺼리게 된 데는 이혼이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2005년, 스푸만테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어몬테 지방의 와인 명가 간치아 가문의 알레산드로 간치아와 올린 결혼식은 이후로도 세기의 결혼식으로 회자된 바 있다.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쿠튀르 가운을 입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성당에서 진행한 결혼식에 쓰인 비용은 700만 달러에 달했지만 둘의 결혼은 5년 만인 2010년에 마무리됐다. 이후 델핀은 기업가인 자비에 니엘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니엘은 ‘르 몽드’의 공동 소유자이자 프랑스 스타트업계의 대부로도 불린다.

델핀 아르노는 프랑스 스타트업계의 대부 자비에 니엘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델핀 아르노는 프랑스 스타트업계의 대부 자비에 니엘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언론 노출은 꺼리지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장은 반드시 방문하는 것이 델핀의 진면목이다. 올해 1월 6일부터 진행된 루이비통과 쿠사마 야요이의 새로운 컬래버레이션 전시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이런 사례다. 오후 11시가 넘은 시간, 샹젤리제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에 나타난 델핀 아르노는 마지막까지 디스플레이를 꼼꼼하게 살피며 10년 만에 다시 조우한 쿠사마 야요이와의 협업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후문.

이처럼 불철주야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그녀가 왕좌에 오를 수 있을까? 아버지 베르나르는 여전히 건재한 데다, 얼마 전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정년을 75세에서 80세까지 연장하기도 했다. 이제 막 경영 일선에 투입된 어린 동생들에게는 작은 성과로도 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치열한 승부는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델핀아르노 #LVHM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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