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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Economy Special/Self-Employed ②

정부 지원 얻어 주부 사업가로 나선 이수영씨 생생체험

각종 창업 스쿨 참여하고

2009. 05. 14

결혼 후 아들과 딸을 키우며 살림하는 ‘보통 아줌마’였던 이수영씨는 자녀들이 장성하자 사업 전선에 뛰어들어 3년간의 악전고투 끝에 지금은 사찰 장류 제조업체와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됐다. 창업에 나선 후 지난 3년간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와 애환, 그리고 창업 노하우까지 그녀의 진솔한 경험담을 들어보았다.

정부 지원 얻어 주부 사업가로 나선 이수영씨 생생체험


97년 외환위기 한파로 이수영씨(46)의 남편, 신종대씨(51)가 하던 중소기업은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많은 사람이 겪었던 그 고통의 궤적을 이씨 부부도 똑같이 따라갔다. 힘든 좌절의 시간이었지만, 한창 커가는 자녀들 앞에서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지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씨 부부는 힘을 모아 건강식품 도소매업을 시작했다. 이수영씨는 날마다 매장에 나가 남편 일을 도왔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다시 가세는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지난 2003년, “사업가 기질은 나보다 당신이 더 있으니 이제 당신 일을 한 번 만들어보라”는 남편의 권유로 이씨는 창업 구상에 나섰다. 그러나 창업에 나서려고 하자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어떻게 창업 아이템을 찾고, 어떻게 사업장을 열고, 자금 조달은 어떻게 하며, 세무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정부에서 주부 도와준다고 여는 무료 강좌가 많더라고요. 주민센터나 마을 구민회관 등 무료 강좌라고 하는 데는 다 찾아가서 설명을 들었어요. 도움은 되는데 아무래도 원론적이고 추상적이더라고요.”
이곳저곳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이씨가 부탁한 것은 하나였다. “현실성 있는 도움을 원한다, 다리를 놓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부분은 관청의 역할 밖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이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접지 않았다. “안 된다면 왜 안 되는지 나를 설득해보라”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결국 소상공인센터에서는 그에게 3회에 걸친 무료 창업 컨설팅을 알선해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업계획서라는 걸 알았다. 자금조달 계획, 원가계산, 손익분기점 등을 구체화시켜 사업계획서라는 걸 쓰자 아이디어가 비로소 정착되는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이제 사람들과 논의라는 걸 해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 사업계획서를 만든 후에 서울시 창업 스쿨이라는 데를 참가했어요. 다른 데는 다 무료인데 거기만 15만원인가 받더라고요. 돈을 받으니까 조금 더 잘해주겠지, 하고 갔는데 정말 다르더라고요. 1주일에 3일 동안 야간강좌를 듣는데 처음부터 다 실기예요. 컴퓨터 사용법, 회계, 컨설팅까지 다 해주고 자금 지원까지 알선해줬어요. 3.8% 저금리로 3천만원 대출을 받게 해줬거든요.”
처음 이씨가 만든 사업계획서는 건강식품 체인사업에 대한 것이었지만, 서울시 창업 스쿨에 참여하면서 사업계획은 바뀌고 만다. 수강생들과 같이 토론하며 조정해가는 동안 관련 법규 등의 이유로 사업성,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 당시 수업을 들으며 여기저기 창업박람회 등을 돌아다니던 그는 결국 ‘사찰 된장’을 상품화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치킨 집, 족발집, 피자집 설명회에서 인쇄박람회, 기계박람회까지 3년간 1백여 개 박람회를 누볐던 이씨는 2005년 초 한 식품박람회에서 금강정사라는 사찰의 신도들이 직접 담근 사찰된장을 파는 것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다시 관청과의 실랑이가 시작됐다. 이씨가 창업자금으로 생각한 것은 2억원. 그러나 모두들 그 자본으로 제조업 창업은 안 된다고 말했다. 적어도 20억원은 필요하다며 기를 죽였지만, 작게 시작해서 조금씩 키워가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인허가 문제를 비롯해 관청의 도움을 받을 일은 많았다. 농림부를 찾아 콩에 대해 문의하고, 지역 농장을 찾기 위해 문화관광부를 찾으며 공무원들과의 실랑이가 다시 시작됐다.

정부 지원 얻어 주부 사업가로 나선 이수영씨 생생체험

3년간 창업박람회 등을 돌며 이수영씨가 찾아낸 사업 아이템은 ‘사찰 장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겠다는 강한 의지
관련 법규, 인허가 문제 등이 해결 되자 이씨는 된장을 담가줄 사찰을 찾는 일에 나섰다. 이 일은 누구의 도움도 청할 수 없었다. 직접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스님 몇 분을 찾았지만 죄다 퇴짜였다. 이씨의 고향은 충청도, 결국 1년여의 수소문 끝에 이씨와 인연이 닿은 곳은 충남 공주의 영평사였다. “중생에게 좋은 음식을 나누는 것도 부처님의 뜻”이라는 긴 설득 끝에 영평사 측에서 된장을 담궈 주기로 했고, 그는 사찰죽염된장·사찰매실고추장·사찰죽염 간장 등을 ‘카르마젠’이라는 상표로 세상에 내놓았다.
“2007년 2월이었죠. 남편이 건강식품점을 했기 때문에 이런 류의 상품을 어떻게 상품화해 내놓아야 하는지 저 나름대로의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건강식품은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포장을 고급화하고 선물용으로 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포장재 구매부터 패킹까지 의외로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잘 팔릴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국산 콩과 고추, 그리고 구중구포 죽염만을 사용한 건강식품인 탓에 일반 된장에 비해 고가일 수밖에 없는 사찰된장의 약점을 그는 오히려 상품화의 포인트로 삼아 선물용 상품으로 기획해 내놓았다. 처음부터 잘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벤처 타운에 사무실을 두 개나 얻어 야심차게 벌인 사업치고는 매상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벤처 사장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사갈 거라고 생각해서 벤처타운에 입주한 건데 벤처 사장들에겐 너무 고가였나봐요. 잘 안 팔리고, 사무실 비용이며 운영비용 같은 게 워낙에 크다 보니까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피 같은 자본금이 조금씩 조금씩 소모돼갔다. 3년은 묵혀둬야 제 맛이 올라온다는 사찰된장의 속성 탓에 매출과 상관없이 된장은 계속 담가야 했고, 저장고도 확보해야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게 벌인 사업장 규모 탓에 임대비용·판매비용 등 고정비용이 매출에 비해 너무 과했다.
해법을 찾아야 했던 터라 이씨는 다시 한 번 강좌를 찾았다. 그는 한양대 학위인정과정에 도전, 올 2월 경영학 학사 학위를 땄는데, 이 과정 중 교수로부터 “규모를 줄여서 장기적으로 매출을 확대하라”는 해법을 얻어냈다. 그래서 2개나 빌렸던 사무실을 줄여 남편의 매장과 합쳤다. 많이 팔아 큰 수익을 얻을 생각만 했던 게 잘못이었다. 고정지출을 줄이자 비로소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사찰된장은 장기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얻어가며 확대해가야 할 사업이었고, 단기적으로 수익을 올릴 사업이 필요했어요. 여러 창업 스쿨 등에 참여하면서 얻은 지식도 있었고, 지난해엔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한 터라 칼국수집을 열기로 했죠. 자본금이 적어 권리금 없는 매장을 찾느라 고생이 심했어요.”
체계적으로 창업을 준비해온 이씨인 만큼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상권분석을 할 수 있었다. 목과 유동인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그는 과감히 새로 생긴 오피스 타운 1층에 칼국수집 ‘수’를 개장했다.
“새로 생긴 건물은 권리금이 없어요. 그래서 위험부담도 크죠. 오피스 타운에서 음식점을 열 때는 맹점이 있는데 점심 한때 반짝 장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래가지고는 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죠. 하지만 이 매장은 앞이 개방돼 있어서 저 앞 아파트 촌에서 바로 보이잖아요. 그 덕에 저녁 장사는 물론이고 주말까지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어요.”
칼국수집을 연 지 이제 고작 두 달이지만 하루 매출 90만원 정도는 무난하게 올리고 있다고 했다.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직장생활하던 남자라도 누구나 막상 창업에 나서면 막막해요. 하지만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죽기살기로 매달리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또 창업이에요. 창업 스쿨에서 본 사람들 중 90%는 중도에 포기해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하겠다는 의지만 강하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봐요.”
‘창업 선배’ 이수영씨가 해주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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