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엄마는 처음이다. 정규교육기관, 대학,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친절하게 ‘엄마가 되는 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결혼과 출산 후 생각지도 못했던 엄마의 삶에 많은 이가 매 순간 멘붕을 경험한다. 결국 ‘나’는 온데간데없고 ‘아내’와 ‘엄마’ 자리만 남은 현실에서 절망하기에 이른다.
특히 1980~1990년대에 태어난 엄마들은 여성도 남성과 평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시대적 변화 속에 글로벌 인재를 꿈꾸며 자신을 단련해온 이가 많다. 그렇게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워킹맘으로 살기도 하지만 휴직 후 뒤처져 경단녀로 전락하기도 한다. 전업맘과 워킹맘 양쪽 모두 어머니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자아 분열 속에 혼란스러운 엄마의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다.
엄친딸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광고 회사에서 일하던 오소희(50) 작가는 그 시절 누구나 부러워하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 입시 중심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회사원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삶에 염증을 느껴 궤도 이탈을 선택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세 살배기 아이와 세계 여행을 떠났다. 아이가 한글보다 세상을 익히길 원했고, 1등이 되기보다 더불어 살길 바랐다.
오 작가는 그렇게 20년 동안 아이를 키우고 지난해 자녀 대입을 치른 뒤 엄마를 졸업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엮어 지난해 12월 ‘엄마의 20년’이라는 책을 냈다. 그를 만나 자신을 잃지 않고 행복한 엄마로 사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너무너무 홀가분했어요. 자녀가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자신에게 더 많은 걸 허용할 수 있거든요. 끼니마다 밥을 차려주지 않아도 되고, 몇 시에 들어오든 관여하지 않고요. 집이라는 공간만 공유할 뿐이지 부모나 자녀 모두 독립된 개체죠. 양육에서 벗어나면 24시간을 오롯이 홀로 보낼 수 있으니 홀가분한 감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책 ‘엄마의 20년’이 저 같은 초보 엄마들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는데, 출간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앞서 몇 권의 책을 냈어요.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라는 책은 아들이 한 말을 제목으로 뽑아 아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출산을 앞둔 분들을 위해 썼어요. ‘엄마 내공’은 특이한 방식으로 집필했는데, 블로그 이웃의 경험담을 문답 형식으로 여러 사람과 같이 썼어요. 책의 마지막 챕터가 ‘입시 중심의 대한민국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인데, 그 부분을 확장해 답을 제시한 책이 ‘엄마의 20년’이에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요.
강의를 하면서 많은 엄마를 만났어요. 자신을 잃고 방황하며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았어요. 다양한 지역의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고, 솔루션을 찾아갔어요. 그 과정에서 15개 구체적인 솔루션이 나왔죠.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학력 중시 풍조가 남아 있잖아요. 어머니 세대의 양육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엄마들도 많고요. 이런 풍조는 체제를 바꾸기 전에는 쉽사리 변하지 않아요. 왜 지금 이 시대 엄마들이 나서서 바꿔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뜻을 같이하는 우군이 있는 것 같아요.
온라인상에 ‘언니공동체’를 오픈했어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엄마들이 대화하고 공감하고 변화를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많은 사람이 가입해 대화했고, 오프라인에서 함께 활동하기를 원하는 사람끼리 공동체를 만들었죠. 제가 판을 깔아드렸을 뿐 엄마들이 알아서 결집한 거예요. 활동 보고서도 자발적으로 써 올리고, 지역별로 공동체 이름을 만들어 활동을 이어가는 멋진 분들이죠.
선행학습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사실 사교육은 나쁜 게 아니에요. 아이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면 가르치면 돼요. 선행이 나쁜 거예요. 더 정확히는 우리 시대 성행했던 낡은 방식의 선행을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시키는 게 나쁘죠. 우리는 3대에 걸쳐 각각 전혀 다른 나라를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세대는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가는 시기에 있었고, 2세대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시기를 지나왔죠. 그런데 지금 선진국에 사는 우리 아이들을 왜 중진국 방식으로 키우는지 모르겠어요. 20년이란 시간은 금방 가요. 아이가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 20년뿐이죠. 그러니 많은 엄마가 자기 가족만의 문화를 만들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누렸으면 해요.
세 살배기 아이와 터키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배낭여행으로 다닐 결심은 어떻게 했나요.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계룡산 자락에 살았을 때 한 3년 동안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목소리에 집중했어요. 전까지는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거든요. 이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3년쯤 지났을 때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 집 아들은 한글나라 안 시켜요?’ 같은 목소리를 듣자 우리 교육현실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느끼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가보자’ 싶어 아이와 함께 떠났어요. 자기 신뢰가 바탕이 돼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었죠. 떠날 때는 의미를 몰랐지만 여행하면서 세상은 선한 곳,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보통 자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가는데 세 살은 어리지 않나요.
물론 ‘여행 가서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있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인데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들이 기억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 시기에 체험하며 느끼는 게 분명 있어요. 아이들이 꼭 여행지를 기억해야 하고, 뭔가 수치화된 결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들이 ‘여행의 본전’을 따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여행은 그 자체로 마음 따뜻해지는 여정이죠. 그런 만족을 아이가 클 때까지 지연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가 다 잊어버리더라도 여행지에서 여러 아이들과 뛰논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 무리 지어 아이를 키우기 마련인데 작가님의 초등학교 학부모 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입시육아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냈어요. 그리고 입시 경쟁에 매몰된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 공동육아를 했어요. 당시는 80년대 학번 선배들이 공동육아의 씨를 뿌리고 있던 때라 굉장히 좋은 경험을 했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 엄마들은 조금씩 자기 시간이 생기는데 작가님은 무엇을 했나요.
대부분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보냈어요. 책을 내기 전부터 주변을 관찰하고 글을 썼는데 아이와 여행을 다니면서도 꾸준히했죠. 당장 책을 내려고 했던 건 아닌데 과정에 충실하다 보니 작가가 되었네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자녀와 나를 분리해야 하는데 아직도 아이를 업고 뛰려는 엄마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면 자녀가 스무 살이 되어도 업고 뛰어야 해요. 결국 자신은 허약해지죠. 다르게 살려면 다른 개념부터 탑재해야죠. 눈에 띄는 곳에 써 붙이고 봐야 변화가 시작돼요.
눈썹을 그리고 나가 자신을 위해 가장 비싼 커피를 시키라는 주문도 흥미로웠어요.
우리가 누군가를 대접할 때는 돈과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다하죠. 그걸 나에게 하자는 거예요. 엄마는 아껴야 하고 엄마는 대충 꾸미고 다녀야 하나요. 눈썹을 그리고 화장하는 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력적인 나를 누리자는 것이에요. 나에게 아끼지 마세요. 비싼 커피를 마시는 건 내게 좋은 공간에서 귀한 시간을 제공하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애가 생기는 거죠.
가장 궁금했던 건 나를 잃지 않고 수험생 엄마가 되는 법이었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대학은 최종 목표가 아니라 인생을 사는 데 그 길에 놓인 과정일 뿐이에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명문대 졸업장이 유리하지 않아요. 어떤 대학을 가든, 스스로 배움의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새로운 직업으로 연결해낼 줄 아는 아이들이 유리하죠. 그런 성향의 아이가 고등학교 시기 대학 입학을 목표한다면 1~2년 정도 아이 일과에 맞춰 엄마의 활동을 조정해주면 돼요. 이 경우 수험생 학부모라고 해도 엄마가 할 일은 기본적인 것에 머물기 때문에 엄마는 매일 자신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요. 나와 아이의 인생을 분리해 살아온 엄마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엄마 20년을 졸업한 후 돌아볼 때 잘한 점, 후회되는 점이 있을까요.
잘한 점은 아들이 말해줬어요. 자기가 답답하고 멍청한 말을 해도 엄마는 하나의 인격체가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의 인생에 멘토가 되어줘서 고맙다고도 했죠. 후회되는 건 의외로 단순한 거예요. 이유식을 잘 못 만들어준 거요. 밥을 안 먹는 아이였는데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 땅의 많은 후배 엄마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육아는 20년이지만 혼자 살아갈 시간은 훨씬 길어요. 엄마는 자녀에게 삶의 태도와 가치를 가르쳐주는 사람이지 학습 노동자나 감시자는 아니에요. 그건 너무 낮은 지위잖아요. 나의 인생에 해방의 문을 열어줄 사람은 남편도 아닌 사회도 아닌, 나 자신뿐이란 걸 스스로 깨닫길 바라요.
오소희 작가가 말하는
1 써 붙이자. ‘내 인생은 나의 것, 애 인생은 애의 것’
2 내 안의 낡은 ‘엄마’ 롤 모델을 지우자.
3 눈썹부터 그리자.
4 나만의 속도로 ‘활동’을 찾자.
5 매월 ‘활동비’를 정하고 남김없이 쓰자.
6 장애물은 그냥 밟고 가자.
7 꾸준히 하기 위해 활동공동체를 만들자.
8 독박육아는 금물! 육아공동체로 극복하자.
9 창의력 별거 아니다. 내 식으로 하자.
10 육아 ‘롤 언니’를 곁에 두자.
11 가족의 다름을 정중히 인정하자.
12 범국민적 질병 ‘성적분리불안’을 극복하자.
13 엄마 활동의 꽃, 가족 문화로 탄생시키자.
14 나를 잃지 않고 수험생 엄마가 되자.
15 엄마의 20년 내내 운동하자.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박경옥 장소협찬 몽유도원 도이창
특히 1980~1990년대에 태어난 엄마들은 여성도 남성과 평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시대적 변화 속에 글로벌 인재를 꿈꾸며 자신을 단련해온 이가 많다. 그렇게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워킹맘으로 살기도 하지만 휴직 후 뒤처져 경단녀로 전락하기도 한다. 전업맘과 워킹맘 양쪽 모두 어머니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자아 분열 속에 혼란스러운 엄마의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다.
엄친딸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광고 회사에서 일하던 오소희(50) 작가는 그 시절 누구나 부러워하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 입시 중심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회사원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삶에 염증을 느껴 궤도 이탈을 선택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세 살배기 아이와 세계 여행을 떠났다. 아이가 한글보다 세상을 익히길 원했고, 1등이 되기보다 더불어 살길 바랐다.
오 작가는 그렇게 20년 동안 아이를 키우고 지난해 자녀 대입을 치른 뒤 엄마를 졸업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엮어 지난해 12월 ‘엄마의 20년’이라는 책을 냈다. 그를 만나 자신을 잃지 않고 행복한 엄마로 사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방황하는 엄마들을 위해 책 펴내
엄마 졸업을 축하드려요. 자녀의 입시를 마친 뒤 소감이 어땠나요.너무너무 홀가분했어요. 자녀가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자신에게 더 많은 걸 허용할 수 있거든요. 끼니마다 밥을 차려주지 않아도 되고, 몇 시에 들어오든 관여하지 않고요. 집이라는 공간만 공유할 뿐이지 부모나 자녀 모두 독립된 개체죠. 양육에서 벗어나면 24시간을 오롯이 홀로 보낼 수 있으니 홀가분한 감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책 ‘엄마의 20년’이 저 같은 초보 엄마들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는데, 출간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앞서 몇 권의 책을 냈어요.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라는 책은 아들이 한 말을 제목으로 뽑아 아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출산을 앞둔 분들을 위해 썼어요. ‘엄마 내공’은 특이한 방식으로 집필했는데, 블로그 이웃의 경험담을 문답 형식으로 여러 사람과 같이 썼어요. 책의 마지막 챕터가 ‘입시 중심의 대한민국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인데, 그 부분을 확장해 답을 제시한 책이 ‘엄마의 20년’이에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요.
강의를 하면서 많은 엄마를 만났어요. 자신을 잃고 방황하며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았어요. 다양한 지역의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고, 솔루션을 찾아갔어요. 그 과정에서 15개 구체적인 솔루션이 나왔죠.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학력 중시 풍조가 남아 있잖아요. 어머니 세대의 양육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엄마들도 많고요. 이런 풍조는 체제를 바꾸기 전에는 쉽사리 변하지 않아요. 왜 지금 이 시대 엄마들이 나서서 바꿔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뜻을 같이하는 우군이 있는 것 같아요.
온라인상에 ‘언니공동체’를 오픈했어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엄마들이 대화하고 공감하고 변화를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많은 사람이 가입해 대화했고, 오프라인에서 함께 활동하기를 원하는 사람끼리 공동체를 만들었죠. 제가 판을 깔아드렸을 뿐 엄마들이 알아서 결집한 거예요. 활동 보고서도 자발적으로 써 올리고, 지역별로 공동체 이름을 만들어 활동을 이어가는 멋진 분들이죠.
세상을 달리 보게 된 아이와의 세계 여행
엄마들은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바라다가도 나중에는 빨리 걷길, 어서 말하길, 일찍 한글을 떼길 바라는 식으로 욕심이 많아지는데 작가님은 어땠나요.선행학습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사실 사교육은 나쁜 게 아니에요. 아이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면 가르치면 돼요. 선행이 나쁜 거예요. 더 정확히는 우리 시대 성행했던 낡은 방식의 선행을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시키는 게 나쁘죠. 우리는 3대에 걸쳐 각각 전혀 다른 나라를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세대는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가는 시기에 있었고, 2세대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시기를 지나왔죠. 그런데 지금 선진국에 사는 우리 아이들을 왜 중진국 방식으로 키우는지 모르겠어요. 20년이란 시간은 금방 가요. 아이가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 20년뿐이죠. 그러니 많은 엄마가 자기 가족만의 문화를 만들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누렸으면 해요.
세 살배기 아이와 터키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배낭여행으로 다닐 결심은 어떻게 했나요.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계룡산 자락에 살았을 때 한 3년 동안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목소리에 집중했어요. 전까지는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거든요. 이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3년쯤 지났을 때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 집 아들은 한글나라 안 시켜요?’ 같은 목소리를 듣자 우리 교육현실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느끼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가보자’ 싶어 아이와 함께 떠났어요. 자기 신뢰가 바탕이 돼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었죠. 떠날 때는 의미를 몰랐지만 여행하면서 세상은 선한 곳,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보통 자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가는데 세 살은 어리지 않나요.
물론 ‘여행 가서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있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인데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들이 기억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 시기에 체험하며 느끼는 게 분명 있어요. 아이들이 꼭 여행지를 기억해야 하고, 뭔가 수치화된 결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들이 ‘여행의 본전’을 따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여행은 그 자체로 마음 따뜻해지는 여정이죠. 그런 만족을 아이가 클 때까지 지연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가 다 잊어버리더라도 여행지에서 여러 아이들과 뛰논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 무리 지어 아이를 키우기 마련인데 작가님의 초등학교 학부모 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입시육아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냈어요. 그리고 입시 경쟁에 매몰된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 공동육아를 했어요. 당시는 80년대 학번 선배들이 공동육아의 씨를 뿌리고 있던 때라 굉장히 좋은 경험을 했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 엄마들은 조금씩 자기 시간이 생기는데 작가님은 무엇을 했나요.
대부분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보냈어요. 책을 내기 전부터 주변을 관찰하고 글을 썼는데 아이와 여행을 다니면서도 꾸준히했죠. 당장 책을 내려고 했던 건 아닌데 과정에 충실하다 보니 작가가 되었네요.
“사소하지만 특별한 시도가 필요해요”
책에 나를 찾는 법 15가지가 나와요. 몇 가지가 눈에 띄는데 ‘내 인생은 나의 것, 애 인생은 애의 것’이라고 써 붙이는 시도는 왜 필요할까요.그게 사실이니까요. 자녀와 나를 분리해야 하는데 아직도 아이를 업고 뛰려는 엄마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면 자녀가 스무 살이 되어도 업고 뛰어야 해요. 결국 자신은 허약해지죠. 다르게 살려면 다른 개념부터 탑재해야죠. 눈에 띄는 곳에 써 붙이고 봐야 변화가 시작돼요.
눈썹을 그리고 나가 자신을 위해 가장 비싼 커피를 시키라는 주문도 흥미로웠어요.
우리가 누군가를 대접할 때는 돈과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다하죠. 그걸 나에게 하자는 거예요. 엄마는 아껴야 하고 엄마는 대충 꾸미고 다녀야 하나요. 눈썹을 그리고 화장하는 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력적인 나를 누리자는 것이에요. 나에게 아끼지 마세요. 비싼 커피를 마시는 건 내게 좋은 공간에서 귀한 시간을 제공하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애가 생기는 거죠.
가장 궁금했던 건 나를 잃지 않고 수험생 엄마가 되는 법이었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대학은 최종 목표가 아니라 인생을 사는 데 그 길에 놓인 과정일 뿐이에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명문대 졸업장이 유리하지 않아요. 어떤 대학을 가든, 스스로 배움의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새로운 직업으로 연결해낼 줄 아는 아이들이 유리하죠. 그런 성향의 아이가 고등학교 시기 대학 입학을 목표한다면 1~2년 정도 아이 일과에 맞춰 엄마의 활동을 조정해주면 돼요. 이 경우 수험생 학부모라고 해도 엄마가 할 일은 기본적인 것에 머물기 때문에 엄마는 매일 자신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요. 나와 아이의 인생을 분리해 살아온 엄마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엄마 20년을 졸업한 후 돌아볼 때 잘한 점, 후회되는 점이 있을까요.
잘한 점은 아들이 말해줬어요. 자기가 답답하고 멍청한 말을 해도 엄마는 하나의 인격체가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의 인생에 멘토가 되어줘서 고맙다고도 했죠. 후회되는 건 의외로 단순한 거예요. 이유식을 잘 못 만들어준 거요. 밥을 안 먹는 아이였는데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 땅의 많은 후배 엄마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육아는 20년이지만 혼자 살아갈 시간은 훨씬 길어요. 엄마는 자녀에게 삶의 태도와 가치를 가르쳐주는 사람이지 학습 노동자나 감시자는 아니에요. 그건 너무 낮은 지위잖아요. 나의 인생에 해방의 문을 열어줄 사람은 남편도 아닌 사회도 아닌, 나 자신뿐이란 걸 스스로 깨닫길 바라요.
오소희 작가가 말하는
‘나를 찾는 법’ 15가지
1 써 붙이자. ‘내 인생은 나의 것, 애 인생은 애의 것’2 내 안의 낡은 ‘엄마’ 롤 모델을 지우자.
3 눈썹부터 그리자.
4 나만의 속도로 ‘활동’을 찾자.
5 매월 ‘활동비’를 정하고 남김없이 쓰자.
6 장애물은 그냥 밟고 가자.
7 꾸준히 하기 위해 활동공동체를 만들자.
8 독박육아는 금물! 육아공동체로 극복하자.
9 창의력 별거 아니다. 내 식으로 하자.
10 육아 ‘롤 언니’를 곁에 두자.
11 가족의 다름을 정중히 인정하자.
12 범국민적 질병 ‘성적분리불안’을 극복하자.
13 엄마 활동의 꽃, 가족 문화로 탄생시키자.
14 나를 잃지 않고 수험생 엄마가 되자.
15 엄마의 20년 내내 운동하자.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박경옥 장소협찬 몽유도원 도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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