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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가슴아픈 고백

부모 이혼으로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 털어놓은 트랜스젠더 가수 류나인

“가수로 성공해 못난 아들이 아닌 자랑스러운 딸로 떳떳하게 어머니 만나고 싶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헤어&메이크업·쉔 미용실

입력 2005.06.09 11:35:00

케이블방송 시트콤에 출연하며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털어놓아 화제를 모은 신인가수 류나인이
부모의 이혼으로 네 살 때부터 고아 아닌 고아로 보육원에서 자라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고백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를 만나 그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눈물겨운 사연과 성전환 수술을 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부모 이혼으로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 털어놓은 트랜스젠더 가수  류나인

하리수의등장으로 그 존재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트랜스젠더’들이 최근 연예계에 잇따라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4인조 댄스그룹 레이디, 영화배우 박예린, 박유리에 이어 최근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로 데뷔한 류나인(23)도 트랜스젠더.
가수로 데뷔하기 전인 지난해 말부터 케이블TV에서 방영된 리얼 시트콤 ‘홈 스위트 홈’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4월 커밍아웃을 해 충격을 주었다. 6개월 동안 10명의 출연자와 많은 제작진이 거의 매일 동고동락을 했으면서도 그가 커밍아웃을 하기 전까지 트랜스젠더임을 눈치 챈 사람이 단 한명밖에 없었을 정도로 외모와 목소리, 행동이 여성 그 자체였던 것.
그는 또한 5월 중순 방송을 통해 네 살 때부터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도 공개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트랜스젠더라는 사실 밝혀져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당당해지기 위해 커밍아웃
“너무 속상해요.”
그의 첫마디였다. 오랜 번민 끝에 용기를 내 커밍아웃을 한 것을 놓고 일부 네티즌들이 “눈길을 끌기 위한 쇼 아니냐”며 삐딱한 시선을 보내 가슴이 아프다는 것.
“이젠 ‘저 트랜스젠더예요’ 한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되지도 않잖아요. 하리수 언니를 시작으로 이미 여럿 등장했으니까요.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시선이 아직 좋지 않으니까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꺾여버릴 수도 있고요.”
그는 처음 시트콤에 출연할 때까지만 해도 커밍아웃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트랜스젠더라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인간 류나인’으로 먼저 봐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부모 이혼으로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 털어놓은 트랜스젠더 가수  류나인

“사람들에게 자연스런 제 모습을 보여주고 가수 류나인으로 인정받은 후에 커밍아웃을 하고 싶었어요. ‘어? 쟤도 트랜스젠더였어? 아, 트랜스젠더도 우리랑 하나도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었던 거죠.”
트랜스젠더라는 말만 들어도 닭살이 돋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도 똑같은 사람이에요” 하고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계획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10명의 연예인과 거의 매일 합숙생활을 하고, 그 모습을 생생하게 방송하는 6개월 동안 그는 사람들에게 곧 가수로 데뷔할 여자 연예인 지망생으로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막상 합숙생활을 시작하니까 겁이 났어요. 예민한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눈치 채거든요. 자연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더욱 불편했다고 한다.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걸 들키지 않으려다 보니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 이혼으로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 털어놓은 트랜스젠더 가수  류나인

“사람들을 속이고, 저 자신을 속이는 일이잖아요. 당당한 삶을 살겠다며 성 전환수술까지 한 내가 왜 그 사실을 숨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참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 끝에 차라리 시트콤 출연을 못하더라도, 가수활동을 못하더라도 내가 한 선택과 내 삶에 대해 당당해지자고 결심을 했죠.”
그가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고는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남자친구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주민등록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주민등록번호까지 여자로 바꾸는 건 호적을 위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해요. 그런 면에서 하리수 언니는 특권을 얻은 셈이죠. 저도 여전히 ‘1’로 시작하는 남자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주민등록증을 보여줄 일이 생길 때마다 곤혹스러워요.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하고, 수표를 교환하고,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에도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 하잖아요.”
남자친구는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남자친구와 차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중에 검문을 받게 되었는데 운전하던 남자친구는 물론 자신에게도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했다고.
“남자친구가 보는 앞에서 차마 남자 주민등록증을 꺼낼 수는 없더라고요. 가방 안에 주민등록증이 있었지만 없다고 했죠. 그러니까 경찰은 지문검사를 해야 한다며 초소까지 가자고 했죠. 가끔씩 겪는 일이라 남자친구에게 잠깐 차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초소로 가려고 하는데 이 친구가 ‘혼자 보내기가 불안하다’며 굳이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서는 거예요. 그 바람에 결국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그의 집까지 오는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던 남자친구는 그 후로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그 일을 겪으며 커밍아웃을 결심했어요. 끝까지 숨기지 못할 바에야 당당해지자고 생각을 한 거죠.”

아직은 여자로 바뀐 자신의 모습 어머니에게 보여줄 자신 없어
그는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네 살 때 혼자 보육원에 보내진 것. 언니 둘은 고모가 키우겠다고 데려가면서 남자였던 그만 보육원에 보내졌다고 한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일년에 한 번 정도 아버지가 찾아오셨어요. 그때마다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힘들게 산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에요. 굶지 않고, 학교에도 다니려면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죠. 아버지는 돈 벌어서 꼭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했어요.”
잠깐 와서 몇 시간 함께 있다가 다시 멀리 일하러 가야 한다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짓곤 했다는 그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그런 추억조차 가질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언니들도 일년에 한두 번씩 찾아왔지만 어린 그가 느낀 외로움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아버지나 언니들이 올 때쯤 되면 몇날 며칠이고 마냥 보육원 정문 앞을 서성였어요. 그러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찌나 서럽던지…. 제가 있던 곳은 고아원이 아니라 저처럼 부모가 있는데 맡겨진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부모가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아이를 데려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부모와 함께 보육원을 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어요. 그럴수록 절 버리고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커져갔죠.”

부모 이혼으로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 털어놓은 트랜스젠더 가수  류나인

류나인은 한 케이블방송 시트콤 활영을 위해 6개월여 동안 많은 사람들과 거의 매일 합숙을 했어도 그가 트랜스젠더임을 눈치챈 사람이 한명밖에 없었을 정도로 여성스럽다.


그의 언니들은 어머니와 가끔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미움이 강해 만나려 하지 않았고, 커서는 여자로 바뀐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고. 어머니 역시 아직은 그를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딸 둘을 낳은 후 저를 낳아서인지 아들이라며 무척 좋아하셨대요. 그런 아들이 여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겠죠. 그게 다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어머니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선택이었는데도 말예요.”
불우한 환경에 더해 성 정체성 혼란까지 겪은 그는 힘겨운 사춘기를 보내야 했다. 어려서부터 남자아이들과 있는 것보다 여자아이들과 섞여 수다를 떨고 고무줄 놀이를 하며 노는 게 더 편했다는 그는 자라면서 멋있는 남자를 보면 가슴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하고 무섭고 두려웠다고 한다. 더욱이 그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기에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그때 저를 지켜준 게 피아노였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1년도 안돼 콩쿠르에 출전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어요. 보육원 원장선생님이 무척 대견해하시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죠. 고등학교도 예고를 지원하게 했고, 대학도 음대에 보내려고 하셨으니까요.”
그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중학교 3학년 때 방송을 통해서 알게 됐다고 한다. 트랜스젠더의 세계를 다룬 시사 프로그램을 본 그는 그날로 이태원으로 달려가 트랜스젠더들을 만났다고 한다.
“여성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니까 남자의 몸이 거추장스럽기만 했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성전환 수술을 했어요. 수술대에 오르면서 후회는 전혀 안 했어요. 그만큼 여자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지금 무척 행복해요. 영혼과 육체가 온전히 여자인 삶을 살고 있고, 이렇게 가수까지 되었으니까요.”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의 매력에 빠져 가수까지 되었다는 그는 앞으로 ‘트랜스젠더 연예인’이 아닌 ‘실력 있는 가수’로 인정받고 싶다고 한다. 가수로 성공한 후에 그간 한 번도 찾지 못했던 아버지 묘에 떳떳이 가고 싶고, 어머니 앞에도 못난 아들이 아닌 자랑스러운 딸로 나서고 싶다는 야무진 각오를 밝혔다.

여성동아 2005년 6월 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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