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표적인 록그룹 ‘시나위’의 리드보컬 출신의 가수 임재범(41)이 돌아왔다. 그가 5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고, 15년 만에 콘서트까지 여는 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선 ‘왕의 귀환’이라고 표현할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이기 때문이다.
86년 시나위로 데뷔해 ‘크게 라디오를 켜고’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91년 솔로로 변신, 4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남성들에게는 록으로, 여성들에게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 발라드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재미있는 건 그가 솔로앨범을 낼 때마다 잠적하는 등 제대로 활동을 한 적이 없음에도 그의 노래들은 CF 삽입곡으로 사용되는 등 꾸준히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근황을 알 수 없어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가 정식으로 인터뷰하기는 데뷔 18년 만에 처음. 로커답게 찰랑거리는 긴 머리를 하고 나타난 그는 ‘기인’이라는 세간의 평과 달리 무척 달변이었고, 넉살도 좋았다. 특히 탤런트 주현 성대모사로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전에 서태지, 김종서 등 록음악 하는 친구들로 구성된 ‘주둥아리클럽’이 있었는데 모이면 별로 말들을 안 해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 혼자 6시간을 떠들다보니까 자연스럽게 1백 명이 넘는 사람의 성대모사를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는 그동안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이 너무 많아 이번 기회에 해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저에 대해 별별 이야기가 다 있더라고요. 마약을 했다, 머리 깎고 스님이 됐다, 히말라야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고 있다, 심지어 외계인을 만났다는 소문도 있었어요(웃음).”
그의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법명도 있고, 심지어 결혼하기 직전엔 불교에 귀의할 생각으로 삭발까지 했던(그래서 그의 결혼식 사진은 삭발한 모습이다) 그였기에 궁금증을 자아냈다.
“천주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거치지 않은 종교가 없을 만큼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심지어 악마와 친해져 몸에 문신을 하고 악마 연구에 심취했던 적도 있어요.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경험들이 축적이 되어 제 음악을 이끌었던 것 같아요.”
임재범은 2001년 송남영씨와 결혼, 딸 지수를 두고 있다. 사진은 결혼식 모습.
이렇듯 2000년 4집 앨범을 내고 잠적할 때까지만 해도 정신적인 방황을 멈추지 않았던 그를 바꿔놓은 것은 딸 지수(3)였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며 제가 없어졌어요. 고집이 사라지고요. 가족을 보면서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평화, 사랑, 전쟁 등 다양한 주제 속에 인간과 인간의 공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담았어요. 앨범 제목도 공존이란 뜻의‘ Coexistence’로 했고요.”
“아이 위해 머리에 별 달린 헤어밴드 하고 수영 팬티만 입은 채 발레쇼도 해요”
그가 뮤지컬 배우였던 부인 송남영씨를 만난 것은 99년 초, 뮤지컬 ‘하드락카페’ 관람을 한 게 인연이 됐다.
“잘 아는 형이 출연을 해서 구경을 갔다 집사람을 처음 봤어요. 뮤지컬 출연 배우였거든요. 첫눈에 끌려 형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니까 ‘관심 갖지 마’ 하는 거예요. 더 묻기도 그래서 ‘알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2년 후 길을 가다가 우연히 그 형을 다시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차에 송씨가 타고 있었던 것.
“형이 같이 밥을 먹자고 해서 식당에 갔는데 집사람이 제 앞에 앉게 되었어요. 거짓말 안 하고 그 순간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오직 집사람만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아, 이 여자인가보다’ 생각했죠.”
그 일을 계기로 그의 말을 빌면 “무지하게 작업을 해서” 한 달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그는 결혼 후 가수라는 직업을 잊고 살려 했다고 한다. 그만큼 상처가 컸기 때문이다.
“항상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한 회의와 죄책감이 있었어요. 그룹에서 헤비메탈을 하다가 솔로로 나선 것이 동료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또한 가수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 방송과 연예계 시스템에 대한 환멸도 느꼈고요. 그래서 영원히 음악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는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처음 1년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우리 둘만을 위해 살자,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3년 동안은 힘들더라도 아이에게만 신경 쓰자. 그러고 나서 당신은 다시 무대에 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혼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싶었어요. 매일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아이 똥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시켜주고, 가고 싶은 데 마음대로 놀러 가고….”
그는 아이 목욕시킬 때 아내와 똑같이 반쪽씩 나눠 했을 정도로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고 한다.
“다른 아빠들은 회사에 다녀야 하니까 아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적잖아요. 대부분 아이가 잘 때 출근하고 귀가하면 아이가 자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아이랑 24시간 같이 있으니까 애정이 더할 수밖에요. 그러다보니까 지수가 가끔 저보고 ‘엄마’ 하고 불러요. 그래서 제가 ‘내가 왜 엄마냐, 아빠지’ 그러면 ‘아, 아빠’ 해요.”
아이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아이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까, 언뜻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는 집에서 컴퓨터를 하다가도 갑자기 머리에 돌고래나 별이 달린 헤어밴드를 하고 수영 팬티만 입어 출렁거리는 배를 드러낸 채 발레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아내와 아이가 폭소를 터뜨린다고 한다.
“우리 집에선 딸 지수와 제가 애교가 많아요. 집사람은 집 꾸미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제가 아이방도 알록달록 꾸미고, 꽃도 사다놓고 그래요. 제가 여성적인 면이 많거든요. 그래서 아내가 남편이고 제가 아내 같아요.”
아직 어린 지수가 아빠가 유명한 가수라는 것을 아냐고 묻자 지난 11월6일 열린 부산공연 때 데려가서 알고 있다고 한다.
“아빠가 가수라는 걸 알고 난 후에는 제가 외출을 해도 울지 않아요. 외출 준비를 하면 ‘어디 가’ 하고 묻는데 ‘노래하러 가’ 그러면 ‘아, 가수’ 하며 잘 갔다 오라고 손짓까지 해요.”
오히려 아이와 떨어져 있는 걸 참지 못하는 건 임재범 자신이라고 한다. 외출을 하면 하루에도 열 번 이상 전화를 걸어 “지수 지금 뭘 해” 하고 묻는다고.
그는 지수가 벌써부터 가수의 끼가 있는 것 같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수가 커서 음악을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엔 “말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2001년, 톱탤런트 A가 자신의 이복형이 임재범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 당사자들 모두 침묵을 하고 있는 상태. 조심스럽게 그에게 그 부분에 대해 묻자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하며 말을 아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그 기사가 났을 때 아버지도 저도 동생도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았어요. 지금 제 사랑하는 동생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또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편안해지면 그때 이야기를 할 날이 올 거예요.”
다시 화제를 돌려 음악에 복귀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저 혼자일 때는 라면 먹고 추위에 떨면서도 살 수 있지만 결혼하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어느 정도 저를 희생해서라도 아이는 굶기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노래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저를 기다려준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무대에 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작정했죠.”
그는 더 이상 앨범을 내놓고 무작정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그동안의 기행을 접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거예요. 그동안 스스로 고통을 만들고 살았다면 이젠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같이 편안하게 어우러져 살고 싶어요.”
얼마 전 서울과 부산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가졌던 그는 12월24일과 25일 양일간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다시 한 번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앞으로는 최소한 1년에 한 장씩은 앨범을 낼 생각이라는 임재범. 그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대중음악 시장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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