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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도장 깨기 같은 삶, 혼자서도 단단하게

김현미 기자

2026. 03. 27

이기영 좋은규제시민포럼 지방규제위원회 위원장.그는 만화를 사랑하고 여행을 좋아한다.

이기영 좋은규제시민포럼 지방규제위원회 위원장.그는 만화를 사랑하고 여행을 좋아한다.

3월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국걸스카우트연맹회관에서 ‘2026 허브리더십포럼’이 열렸다. ‘허브’는 여성(her)들의 중심지(hub)가 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조어로, 회원들이 인생 경험을 나누고 리더십을 기르며 네트워킹하는 모임이다. 2026년 허브리더십포럼 첫 순서는 1981년생 이기영 좋은규제시민포럼 지방규제위원회 위원장의 ‘마이 스토리(My Story)’였다.   

“어릴 때 꿈이 만화가였고 대학 만화학과에 가려 했는데 엄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사회학과로 바꿨지만, 대신 대학신문에 카툰을 연재했어요. 이우영의 만화 ‘검정 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와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찐빵 같은 얼굴이 비슷하다고 학창 시절 별명이 ‘기영이’였죠. 또 웃기려는 의도가 없는데 웃기고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웃을 수밖에 없다며 친구들은 저를 ‘여자 기안84’라고 불렀어요.”

이기영 씨는 대학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소벤처기업부 옴부즈만지원단, 중소벤처기업부 규제개선 팀장, 행정안전부 지방규제혁신 과장으로 일하는 12년 동안 폐기물 규제개선, 방산·항공우주산업 규제개선, 지방규제혁신위원회 구축, 규제혁신 지속을 위한 행정 시스템 정비 등 가시적 성과를 이뤄냈고 그 결과 기획재정부 장관상, 대통령 표창 등을 받기도 했다. 경력만 보면 엘리트 공무원의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공무원 시험 및 연수 강사,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책위원,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등 그의 이력은 너무 다채로워서 한 줄로 요약하기 어렵다. 한때 ‘이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노량진 공시생들 사이에서 ‘행정학 명강사’로 통했다. 

“시행착오만 100만 번, 잘하지는 못해도 계속한다”

그 시절을 그는 “도장 깨기의 삶”이라고 말한다.  

“한 직장에서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 직장으로 달려갔어요. 일단 많은 경험을 쌓아보자. 이 직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워보자. 강의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되자. 논문을 작성할 수 있는 경험을 쌓자. 정식 공무원으로 인정을 받자. 다음은 학자가 되자.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도전했죠.” 



그는 2024년 5월 국무조정실에서 규제조정 업무를 했던 분들과 사단법인 ‘좋은규제시민포럼’을 만들어 활동하는 한편, 방통대 법학과와 서울대 행정학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시행착오만 100만 번쯤 한 삶이지만 결국 창작, 문화, 창업·혁신, 정책·규제, 법학, 여성 이 6개 분야의 이야기가 하나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경로 전환이 필요할 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꺼내 든다.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문장에서 위로받고,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당연히 받았어야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를 곱씹는다. 그리고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행복한 삶이란 항상 기쁜 삶이 아니라, 불행에 과도하게 사로잡히지 않는 삶이다”를 음미한다.

3월 17일 ‘2026 허브리더십포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용실 아나운서. 

3월 17일 ‘2026 허브리더십포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용실 아나운서.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이해하는 것

웹사이트에서 정용실이라는 이름을 치면 아나운서가 자동 완성된다. 지난 35년간 ‘여성공감’ ‘한국 한국인’ ‘생방송 글로벌 대한민국’ ‘생방송 오늘 정용실입니다’ ‘추적 60분’ ‘정용실의 뉴스브런치’ 등 KBS TV와 라디오의 주요 여성·교양·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했다. 그는 20년 차 작가이기도 하다. 2006년 ‘서른 진실하게 아름답게’를 시작으로 ‘도시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혼자 공부해서 아나운서 되기’ ‘언젠가 사랑이 말을 걸면’ ‘공감의 언어’까지 에세이집 5권을 썼다. 

“어려서 병약했기 때문에 늘 혼자 놀며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다락방이라고 상상하며 동화책을 읽었죠. 그때 가장 소중한 책이 ‘작은 아씨들’이었어요. 저는 둘째 조를 흠모했지만 맏딸 메그의 자존심, 막내 에이미의 이기심, 셋째 베스의 선함을 모두 사랑했고, 언젠가 나도 글을 쓰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엄마는 딸이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일찌감치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다. 피아노가 얼마나 하기 싫었는지 대회에 나갔다 도망쳐버리는 것으로 반항하기도 했다. 대신 공부로 타협을 했지만 대입 원서를 쓸 때까지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솔직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때 선생님이 신문방송학과를 골라주셨다. “너는 노는 데 관심이 많잖니.” 

졸업할 무렵 동기들처럼 언론사 입사를 염두에 뒀지만 기자 시험을 치니까 자꾸 떨어졌다. 그럼 PD가 될까 했는데,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몰라서 고민하다 아나운서가 됐다. 정용실이 아나운서가 된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사실 어려서부터 그는 또래들의 연애 상담가였다. 친구들은 남자 친구가 생기면 일부러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중에 아나운서직에 도전하는 젊은 친구들의 진로 상담을 해주다 보니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됐다. 

“저는 진로 상담을 할 때 욕망이 무엇인지 물어요. 엄마, 아빠의 꿈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욕망을 찾아가는 게 진로거든요. 학창 시절 또래 친구들이 말해주는 나의 역할도 좋은 단서가 됩니다. 작은 사회지만 항상 앞장서고 결정하는 대장 같은 친구가 있고, 엄마처럼 챙겨주는 친구가 있고, 웃겨주는 친구가 있잖아요. 결국 사회에 나가서도 비슷한 일을 하더라고요.”

그는 인생이란 계획한 대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강조한다. 

“제가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하고 있을 때 한 후배가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뭐냐, 혹시 정치를 할 생각이냐’고 묻더군요. 제가 ‘꿈이 없다’고 했더니 ‘방송국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해본 여자 선배가 그런 대답을 하다니 실망’이라고 해요. 그러나 인생은 내가 정한 대로, 계획한 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만 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어쨌든 그때 후배의 도발적인 질문을 받고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감정소통이라는 것을 알았죠. 대학원에서 미디어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다시 상담심리대학원을 다니고 조직상담학을 공부하면서 ‘내면의 작은 방’이라는 자기 이해 워크숍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35년, 교보문고 북리뷰 10년, 심리 공부 10년, 스피치 수업 5년 등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이 감정소통 전문가 정용실을 만들었다. 2026년 봄 그가 잡고 있는 화두는 “인생은 혼자다. 혼자서도 단단해질 줄 알아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4월에 나올 새 책 ‘내면의 작은 방’은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과 방법론으로 꽉 채워져 있다.

#도장깨기 #마이스토리 #여성동아

사진제공 허브리더십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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