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아이 육아를 전담하는 ‘일삼파파’ 김경훈(34) 씨는 이런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한국 라테 파파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다. ‘일삼파파’는 첫째 아들 1명(일)과 3명(삼)의 쌍둥이를 둔 아빠(파파)라는 의미. 군인 부부로 생활하던 그는 아내가 첫째 아들과 둘째 세쌍둥이 출산 후 소령 진급에서 밀리는 것을 보고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2월 3일 만난 그는 “아내와 ‘바통 터치’ 후 뛰어든 4남매 실전 육아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고 말했다. 이어 “휴직 전에는 나 정도면 육아를 꽤 열심히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큰 오만인지 깨달았다”며 “육아는 장거리 운전과 같아서 부모라는 두 운전자가 교대로 핸들을 잡을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아빠가 양육의 주체가 돼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경훈 씨는 2년 전 KBS ‘인간극장’의 ‘세쌍둥이 육아를 명 받았습니다’ 편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자신도 상상해본 적 없는 ‘아빠 육아 전도사’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에는 책 ‘아빠 육아, 서툴러도 괜찮아’로 자신이 체득한 각종 육아 지식을 초보 아빠들과 나눴고, 인스타그램에서는 ‘경력직이 중요한 이유’ ‘아빠 공동육아 도전기’ 등 정보와 재미를 다 잡은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제 10여 년간 몸담은 군을 떠나 “‘엄마가 많이 바쁜가봐요’ 하는 질문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그와 마주했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인간극장’ 때보다 아이들이 많이 자랐더라고요.
첫째 도준이가 한국 나이로 7세,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요. 세쌍둥이(딸 서윤·아들 서준, 도윤)는 33개월, 한국 나이로 4세가 다 돼가고요. 도준이가 이제 좀 커서 엄마, 아빠를 정말 많이 도와줘요. 동생들을 예뻐하고 잘 챙기고, 자기도 어리광을 부릴 나이면서 의젓하게 저희 말을 따라주죠. 세쌍둥이는 아무래도 셋이라 그런지 단합력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집에서는 물건으로 ‘내 것 네 것’ 하며 싸울지언정 밖에 나가서는 다른 친구가 장난감을 빼앗아 간다든지, 셋 중 누구 하나를 때린다든지 하면 한 팀이 돼서 똘똘 뭉쳐요. 커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웃음).

2025년 11월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운영한 ‘경기아이사랑 부모학교’에서 양육사례 수기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한 김경훈 씨.
원래대로라면 작년에 복직해야 했어요. 그런데 육아휴직 기간에 군 생활과 네 아이 육아를 병행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아빠 육아가 워낙 정보가 부족한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다 보니 관련해서 강연이나 저술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는데, 하루 동안 제게 주어지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전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는 데 두려움이 있긴 해요. 지금 가려는 길은 선례도 거의 없고, 성공하는 길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결정하게 됐습니다.
군인과 전업 아빠, 편견일 수 있지만 갭이 크다고 느껴져요. 원래 가정적인 성격인가요.
저도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사실 시작은 네 아이를 키우는 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니, 육아하는 시간을 버리지 말고 콘텐츠화해서 육아용품 협찬이나 주변의 도움을 좀 받아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유모차도, 카시트도, 옷도 전부 4개씩 필요해지니까 암담했거든요. 그런데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를 전담한다는 걸 다들 좋게 봐주시는 거예요. 사람이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열심히 하고 싶은지, 여기까지 와 있네요. 생각해보면 제가 군에서도 후보생들을 교육하는 교관이었어요.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게 적성에 꽤 잘 맞습니다.
“동네 엄마들 ‘엄니’라 부르며 친해졌어요”
아빠 육아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어떤가요. 소외감을 느낄 때는 없었나요.처음에는 놀이터에서 엄마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외딴섬처럼 있었어요. 엄마들은 저를 궁금해하긴 했죠. 아빠가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도 한둘이 아니라 세쌍둥이니까요. 그럼에도 서로가 낯설다 보니 다가가서 친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그때 제 나름대로 노력한 건 호칭이에요. 엄마들끼리는 ‘OO맘’ 하면서 금방 친해지는데 ‘OO파파’는 네 글자라 길기도 하고 아직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다 보니 저를 항상 누구 아버님, 아버지 이렇게 부르더라고요. 호칭에서부터 벽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그냥 제가 먼저 ‘엄마+언니’의 의미로 엄마들을 ‘엄니’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OO엄니’ 이렇게 하니까 그분들도 너무 좋아하고 저를 편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렇게 엄마들 세계에 스며들어서 이제는 서로의 집을 왕래하는 사이가 됐어요(웃음).
아빠 육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와 장점이 있다면요.
아빠의 육아 관여도가 아이의 발달 수준, 사회성에 영향을 미친다고들 하잖아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제가 경험적으로 느끼는 건 아빠가 육아를 하면 아이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대상이 2명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엄마가 일하고 아빠가 육아를 할 때 엄마가 주 양육자 역할을 내려놓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반대의 경우 육아에 무관심한 아빠는 많지만요. 이 말인즉 아빠가 육아를 할 때 아이는 엄마, 아빠 모두와 깊이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양쪽에서 배우고 느끼는 무언가가 생기는 거죠. 엄마가 ‘독박 육아’를 할 때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은 아무래도 좁을 수밖에 없어요. 또 아빠 육아가 사회 전체로 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핏덩이를 떼놓고 나간다’는 죄책감 없이 직장에 복귀할 수 있으니 노동력이 유실되지 않잖아요. 저희는 특수하게 제가 복직을 안 하게 됐지만, 아이 한둘 있는 집은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면) 부모 모두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육아휴직을 하기 어려운 아빠들을 위해 ‘이렇게 상쇄할 수 있다’는 팁을 주세요.
만약 육아에 쓸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고 가사와 돌봄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조건 돌봄을 하는 게 좋아요. 그중에서도 목욕과 재우기는 꼭 아빠가 하기를 권해요. 가장 힘든 목욕을 담당해서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고, 또 퇴근이 아무리 늦어도 잠은 집에서 자기 때문에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거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한 번이라도 교감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건 최소한이고, ‘9 to 6’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저녁 시간만큼은 아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아빠를 먼저 찾을 정도로 모든 일에 능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불안해하지 않고 맡길 수 있을 만큼요. 그러려면 엄마랑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같이 배워야 해요. 그래서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출산휴가를 쓰지 말고, 집으로 돌아와서 산후도우미에게 우리 집 육아용품으로 우리 환경에 맞는 육아를 배울 때 함께해야 한다”고 말해요. 이걸 엄마가 먼저 배우고 저녁에 아빠에게 가르쳐준다면, 엄마도 초보라 어설프고 나중에는 서로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안 배우게 되죠. 그렇게 아빠가 육아에서 점점 멀어지는 거예요.

김경훈 씨 가족사진. 서윤이, 아내 김은영 씨, 도윤이, 도준이, 김경훈 씨, 서준이(왼쪽부터).
엄마들과 한 가지 다르다고 느낀 지점이 있었어요. 제가 엄마들이랑도 모임을 해보고 아빠들이랑도 해봤는데요. 확실히 엄마들은 아이 자체에, 아빠들은 아이와 자신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엄마들이 아이의 발달 단계마다 뭐가 필요한지, 자신이 뭘 해줘야 하는지 이런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면 아빠들은 자신이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가정 안에서 아버지, 아빠의 역할 비중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역할 모델이 별로 없는 거죠. 우리 어릴 적 아버지들은 정말 경제적 부양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엄마들은 자녀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아빠들은 친구 같아야 하나, 좀 더 단호해야 하나 등을 헷갈리는 듯해요. 제가 다음으로 기획하고 있는 책도 아빠 역할에 관한 에세이인데요. 제가 아들이었을 때 본 아버지와 아빠가 되고 나서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버지상이 다르니, 육아를 해본 사람으로서 ‘어떠면 좋더라’ 하는 것을 풀어보고 싶어요.

“경력 단절 우울감, 누구보다 잘 알아요”
육아휴직을 하면서 사회와 단절된 것 같다는 불안은 없었나요.사기업과 비교하면 군은 상대적으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분위기예요. 하지만 여전히 안 쓰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면 거짓말이죠. 어느 순간 직장 단톡방에서 대화에 끼지 못하고, 몰래 그 방을 나가고 있더라고요. 이번에 아빠 공동육아 모임을 만든 것도, 그동안 사람을 너무 안 만나다 보니까 이전의 ‘소령 김경훈’ ‘사람 김경훈’이 없어진다는 느낌이 컸기 때문이에요. 지난해 아내가 소령으로 진급하면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른바 ‘경력 단절 여성’들이 겪는 우울감과 그 심정이 뭔지 너무 잘 알아요. 이런 분위기에서는 누구라도 아이를 낳기 힘들 거예요.
어떻게 하면 남성 육아휴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까요.
최근에 정부가 ‘육아휴직’이라는 명칭을 ‘육아몰입기간’ ‘돌봄전담기간’ 등으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반가웠어요. 아무것도 아닌 듯해도 단어 하나로 ‘쉰다’는 이미지에서 ‘부모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는 시기’로 인식이 바뀔 수 있거든요. 여기에 더해서 경제적인 이유로 아빠들이 선뜻 육아휴직에 나서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아요. 육아휴직 급여로 ‘기본급 100%면 됐다’가 아니라 상한제 자체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식구가 늘어나는데, 월수입이 줄어드는 건 너무 큰 리스크잖아요.
아내분은 아빠 육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육아와 관련해서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풀었는지도 궁금해요.
저희가 군인 부부라 아무래도 정해진 규칙을 잘 따릅니다(웃음). 제가 육아를 전담하기로 했어도 초반에는 아내가 육아휴직 기간 만들어둔 규칙과 관련해 의견 충돌이 좀 있었는데, 나중에는 하루 종일 아이와 호흡하고 관찰하는 사람 뜻대로 하는 게 맞는다는 결론이 났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내도 제 스타일을 바꾸려 하지 않고 따라줘요. ‘돌봄 시간이 더 긴 사람 방식에 무조건 맞춘다’가 저희 규칙이자 부부관계의 비결이에요.
마지막으로, 책에 “육아로 삶을 다시 배웠다”는 문장이 있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먼 훗날 네 아이에게 어떤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지도 들려주세요.
육아라는 게 스스로를 희생하고 아이들에게 주기만 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세쌍둥이 중에 서준이가 나머지 아이들보다 걷는 게 좀 느렸어요. 그런데 몇 번이고 넘어지면서도 서윤이, 도윤이를 따라가려고 계속 다시 일어서서 걷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어른이면서도 조금만 잘 안되면 바로 포기하려 하는 태도를 고치게 되었어요.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달까요. 그리고 예전에는 허투루, 쉽게 흘려보내던 시간도 이제는 너무 소중해서 하루를 더 잘게 쪼개 알차게 쓰고 있어요. 저를 위한 시간으로 새벽 러닝을 시작하기도 했고요. 이런 것들이 저를 더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이기를 바라느냐… 이 답변은 얼마 전 에피소드로 대체할게요. 저희 동네에 작은 하천이 하나 있는데, 최근에 날이 추워서 거기가 꽁꽁 얼어 있으니까 아이들이 하원길에 잠시 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도준이가 밟아도 되는 곳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눈 덮인 곳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눈 때문에 잘 안 보이는데 괜찮겠어? 안 무서워?”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아빠가 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손을 꽉 잡으면서요. 앞으로도 아이에게 제가 이런 존재면 좋겠어요. 살면서 어떤 난관에 봉착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아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든든해지고,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아빠이기를 바라요.
#아빠육아 #저출생극복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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