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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와인은 춤춘다 | 춤추며 사랑을 쟁취하라

도냐 도밍가 그란 레세르바 데 로스 안데스

이찬주 무용평론가

2024. 10. 18

무심코 바라본 와인 라벨 속 춤. 전 세계 와인과 그에 얽힌 춤 이야기를 연재한다.

마누엘 안토니오 카로가 그린 ‘사마쿠에카 The Zamacueca’(1873)

마누엘 안토니오 카로가 그린 ‘사마쿠에카 The Zamacueca’(1873)

와인 입문자에게 가성비 좋은 칠레산 와인은 편한 친구와도 같다. 양질의 포도를 만들어주는 토양, 바람, 물 같은 재배 환경이 탁월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안심하고 고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고품질 포도를 재배하는 지역은 콜차과(Cholchagua) 밸리, 마이포(Maipo) 밸리, 카차포알(Cachapoal) 밸리다. 당연히 최고급 칠레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모리츠 루겐다스 ‘스페니시-라쿠에카’(1843)

모리츠 루겐다스 ‘스페니시-라쿠에카’(1843)

마이포 밸리가 남미의 보르도라면 콜차과 밸리는 남미의 나파 밸리로 불린다. 콜차과 밸리에는 수많은 와이너리가 모여 있는데 특히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이 유명하다. 도냐 도밍가 그란 레세르바 데 로스 안데스 카베르네 소비뇽(Dona Dominga Gran Reserva de Los Andes Cabernet Sauvignon)은 2020년 남미 전역을 여행하면서 만난 와인이다.

도냐 도밍가 그란 레세르바 데 로스 안데스

도냐 도밍가 그란 레세르바 데 로스 안데스

수건춤을 추는 도냐 도밍가는 어떤 맛일까.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몬테스 알파’를 떠올리면 비슷할 듯하다.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도 콜차과 계곡에서 생산된다. 도냐 도밍가 라벨의 하단에는 카사 실바(Casa Silva)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데 카사는 집, 실바는 와이너리 이름이자 와이너리 오너의 이름이다. 비냐 카사 실바는 프랑스 보르도 생테밀리옹 출신인 에밀리오 부숑이 처음 시작해 1892년부터 현재까지 6대에 걸쳐 이어져오고 있는 와이너리다.

칠레 쿠에카 발파라이소 벽화

칠레 쿠에카 발파라이소 벽화

칠레 최대 항구도시이자 남미 횡단 열차의 시작점인 발파라이소에서 손수건을 들고 춤을 추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발파라이소는 집집마다, 거리마다 형형색색으로 칠해놓아 가는 곳마다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을 입구에서 케이블카의 일종인 푸니쿨라르를 타고 이동하면서 벽화를 구경하던 중 한 호텔의 벽면 전체에 그려진 춤을 보았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발리에 라 쿠에카(Balie La Cueca)’라는 칠레 민속춤이다. 칠레 사람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생 때까지 이 춤을 배운다고 했다. 보통 고등학교 졸업 파티에서 아들은 엄마와, 딸은 아빠와 이 춤을 춘다. 가이드는 졸업을 앞둔 아들과 춤을 추기 위해 연습 중이란다.

쿠에카는 칠레의 대표적인 무곡이자 춤 이름이다.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일종의 커플 댄스인데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남성과 여성이 닭 볏을 상징하는 봉과 손수건을 쥐고 흔들며 춤을 춘다. 춤은 남성이 행진하다가 여성에게 춤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원을 그리며 전진하다가 반원을 그리며 후퇴하고, 파트너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스텝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탉이 암탉을 쫓아다니며 구애하는 행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춤은 암탉이 수탉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것을 희극적으로 묘사한다.

이 춤을 출 때 남성은 흰 셔츠에 얇은 망토를 걸치고, 승마 바지를 입고, 칠레 전통 카우보이모자를 쓴다. 여성은 앞치마가 달린 꽃무늬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고 검은 모자를 쓰거나 짧은 재킷을 걸치기도 한다. 쿠에카는 1979년에 칠레 공식 춤으로 지정됐다.

칠레 화가 마누엘 안토니오 카로의 ‘사마쿠에카’(1873)는 많은 사람 가운데 두 남녀가 신이 나서 춤을 추는 것을 묘사했다. 여성의 미소가 매력적이다. 오른쪽에는 여성 악사들이 기타와 하프를, 왼쪽에는 한 남성이 흥에 취해 음료가 가득 든 잔을 들고 춤에 가세하는 모습이 보인다. 칠레의 한 폭포에서 그렸다는 모리츠 루겐다스의 ‘스패니시-라쿠에카’(1843)는 스페인 사람들이 즐기는 수건춤을 묘사했다.

쿠에카는 남성이 여성에게 다가가 사랑을 쟁취하는 춤이다. 도냐 도밍가 그란 레세르바 데 로스 안데스 카베르네 소비뇽의 라벨 속 남녀가 추는 춤과 같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추는 춤이 쿠에카라면, 쿠에카가 그려진 와인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춤을 추며 서로에게 매료되는 것처럼 와인을 나누며 서로에게 취하기를.



#와인라벨 #와인과춤 #여성동아

사진제공 이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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