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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인스타에 직관 영상 올리고, 굿즈도 ‘턱턱’ 구매” 프로스포츠 '큰손' 2030 여성들

윤채원 기자

2024. 10. 18

프로야구 관중이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했다. 2030 여성들이 프로스포츠 흥행을 견인하며 관람 문화도 바꾸고 있다. 

8월 18일 서울 송파구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기아타이거즈와 LG트윈스와의 경기 모습.

8월 18일 서울 송파구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기아타이거즈와 LG트윈스와의 경기 모습.

프로야구 SSG랜더스와 LG트윈스의 경기가 열리는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잠실야구장 앞, 짙은 초록색과 하얀색 야구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버뮤다팬츠(무릎 위까지 오는 반바지)에 야구 유니폼을 리폼한 가방을 메고 야구공 모양 액세서리가 달린 크록스를 신은 모습이 전형적인 MZ다. 매표소 앞에도, 잠실야구장 간판 치킨집 ‘잠실원샷’ 앞에도, 외야석 출입구 앞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기자가 한 무리에게 다가가 평소 야구장에 자주 오는지를 묻자 그 중 한 명이 옆에 있는 친구를 가리켰다. “얘가 인스타그램에 자꾸 직관 게시글을 올려서 궁금해서 저도 데려가달라고 했어요.” 이들은 깔깔 웃으며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비싼 콘서트 대신 경기장으로

프로스포츠에 여성 팬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프로스포츠 팬 2만5000명과 일반 국민 1만 명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발간한 ‘2023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처음 스포츠 경기장을 찾은 이들 중 75%는 여성이다. 2022년엔 첫 직관 관객 62%가 여성이었는데, 1년 새 13%p가 상승했다. 7월 KBO 사무국 발표에 따르면 이번 올스타전에서 2030 여성 팬 예매 비율은 58.7%에 달했다.

성재이(27) 씨도 지난 5월 롯데자이언츠 팬인 친구 손에 이끌려 야구장을 처음 찾았다. 성 씨는 “롯데가 또 졌다고 화를 내면서도 매일 야구를 보는 친구의 마음이 궁금했다”며 “친구와 취미를 공유할 겸 야구장에 가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야구를 직관한 날 롯데자이언츠는 패배했지만 한 선수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그 후로 하이라이트 영상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성 씨의 방 한쪽 벽은 롯데자이언츠 소속 윤동희 선수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한편 스포츠에 빠져든 여성이 업계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3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고관여 팬 표본 중 62%는 여성이다. ‘고관여 팬’은 관심 있는 리그의 지난 시즌 우승팀과 응원 구단 선수를 모두 알고 있고 유니폼을 보유한 팬을 뜻한다. 이들은 경기 시즌권을 지속적으로 구매하고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한 시즌 기준 MD상품 구매비도 여성(12만 원)이 남성(9만 원)보다 높았다.

2030 여성 팬이 유입되면서 관람 문화도 달라졌다. 특히 생경한 풍경은 다양해진 ‘직관 푸드’. 4년째 야구장을 찾고 있는 오혜림(30) 씨는 최근 야구장에서 요즘 핫한 요구르트아이스크림까지 등장한 걸 보고 놀랐다. “예전에는 맥주 캔 하나 달랑 들고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팬들은 요구르트아이스크림을 포함해 육회, 만두 등 다양한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다”며 “가끔 마카롱이나 빙수도 보인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는 각 지역 경기장 맛집을 공유한 게시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성 팬 꽉 잡아라

롯데자이언츠 소속 윤동희 선수의 사진으로 가득한 한 여성 팬의 방.

롯데자이언츠 소속 윤동희 선수의 사진으로 가득한 한 여성 팬의 방.

2030 여성들이 경기장으로 향하는 이유에는 젊은 스타 선수들의 등장이 영향을 미쳤다. 롯데자이언츠 윤동희(21), 기아타이거즈 김도영(21), 삼성라이온즈 이재현(21), 두산베어스 김택연(19)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선수는 모두 각 구단에서 2024년 전반기 유니폼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오 씨는 “직관 가면 훈훈하고 체격 좋은 선수들이 눈에 띄어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선수에 반해서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주변에선 아이돌을 좋아하다가 야구까지 기웃거리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상민, 전희철 등 미남 선수가 1990년대 농구 붐을 이끌었던 것처럼 실력 있는 신인 야구선수들이 여성들을 야구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키움히어로즈 관계자는 “키움을 응원하는 팬 중에는 여성의 비중이 높은데, 팀이 20대 초반 선수들로 이뤄져 그들 특유의 쾌활함과 열정이 어필되는 것 같다”며 “팬 서비스에 거부감이 없고, 구단 유튜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점이 팬들의 취향을 저격한다”고 말했다.

스타 선수들이 등장하며 경기 전후 선수들 출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도 늘어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프로농구 관람을 즐겼다는 전수민(25) 씨는 “예전엔 퇴근길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30~40명이 줄 선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2년 차 프로야구 팬 한수민(21) 씨도 “예전에는 사인받는 사람 대부분이 부모님과 함께 있는 어린이였는데 이젠 80~90%가 2030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고물가 시대에 저렴한 티켓 가격도 2030 여성들을 경기장으로 이끄는 요소다. KBO 경기 티켓은 1만 원대로, 비교적 좋은 자리는 2만~3만 원대면 구매할 수 있다. 2030 여성 팬이 주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뮤지컬이나 콘서트 티켓이 10만 원을 훌쩍 넘은 것과 비교하면 가성비가 뛰어난 셈이다. 성 씨는 “아이돌 콘서트는 최대 2시간 정도지만 야구는 기본이 3시간”이라며 “맛있는 걸 먹으며 신나게 응원도 하고 재밌는 경기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K리그는 산리오코리아와 협업해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K리그는 산리오코리아와 협업해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구단들은 달라진 팬층에 어필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여성 관객을 위한 일일 행사를 기획하거나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캐릭터와 컬래버한 굿즈를 내놓는 식이다. 키움히어로즈는 6월 ‘이화여자대학교 DAY’를 개최해 대학생을 고척스카이돔으로 초청했다. 키움히어로즈 관계자는 “여대와 백화점 등에서 야구 강의를 열어 평소 야구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자연스럽게 야구 팬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나 각 팀에서 내놓은 컬래버 캐릭터도 인기다. KBL 공식 캐릭터 ‘공아지’와 ‘공냥이’ 관련 굿즈가 출시되는 날에는 스토어 서버가 잠시 마비되기도 한다. K리그는 산리오코리아와 협업해 산리오 캐릭터들이 K리그 각 구단 유니폼을 입은 인형, 키 링, 스티커 세트 등을 판매했다. 한 달간 열린 팝업스토어에는 총 25만 명이 방문했다. K리그 관계자는 “오픈 첫날 전국 롯데백화점 팝업스토어 중 매출 1위를 찍었다”고 말했다. 두산베어스가 ‘망그러진곰’과 협업한 굿즈도 화제였다. NC다이노스 팬인 최지원(27) 씨는 “작은 야구 모자를 쓰고 있는 캐릭터가 예뻐서 응원하는 팀을 바꿀 뻔했다”며 웃었다.

KBL이 내놓은 공식 캐릭터.

KBL이 내놓은 공식 캐릭터.

프로스포츠 업계에서는 2차 창작물을 통한 신규 팬 유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 관련 소식을 접하는 창구 1위는 유튜브다. 각 팀은 바이럴마케팅을 위해 유튜브 동영상과 쇼츠 제작에 매진한다. KBL은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2023년부터 집중적으로 농구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인기를 끈 건 ‘슬램덩크’ 가상 경기 중계방송. 인기 스타인 변준형 선수가 해설로 참여하고, 인스타그램에 경기 예고 게시물과 스코어 알림을 올렸다. 이는 X(옛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등장하기도 했다. 박준희(22) 씨도 ‘슬램덩크’를 시작으로 KBL 팬이 됐다. 박 씨는 “재치 있는 SNS 콘텐츠를 보고 시간 날 때 직관을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2030 #여성팬 #KBO #여성동아

‌사진 뉴스1 
‌사진제공 성재이 K리그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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